<연구방법>
▶ 본 연구는 크게 3단계로 나누어 진행된다.
1. 이민과 정착의 역사. (문헌 자료, 증언 등에 의거)
2. 현재 멕시코와 쿠바에 거주하는 한인 후손들의 실태 조사.
(자료수집과 설문조사를 통해 생활상과 의식 상태를 조사)
3. 한인 후손들의 정체성 ...
<연구방법>
▶ 본 연구는 크게 3단계로 나누어 진행된다.
1. 이민과 정착의 역사. (문헌 자료, 증언 등에 의거)
2. 현재 멕시코와 쿠바에 거주하는 한인 후손들의 실태 조사.
(자료수집과 설문조사를 통해 생활상과 의식 상태를 조사)
3. 한인 후손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정책 대안 수립.
▶ 역할 분담과 연구 조율은 다음과 같이 행해진다.
연구팀은 1, 2단계의 연구를 1. 이민사 2. 멕시코 한인 후손의 실태와 정체성 3. 쿠바 한인 후손의 실태와 정체성으로 나누어 3개조가 각각 하나의 주제를 담당한다. 각 조에는 연구책임자 혹은 공동연구원 1명, 연구전임인력 1명 그리고 연구보조원 1명 등 3명이 팀을 이룬다.
제3단계 연구는 모든 연구팀이 공동으로 진행한다.
▶ 연구 방법과 진척
1. 먼저 국내에서 필요한 자료 수집을 한다. (일반 이민사, 정체성, 멕시코와 쿠바의 문화적·역사적 배경 등에 대한 책자, 사진, 글 등을 망라)
2. 현지 연구에 대비해 설문 작성을 하고 분석 요령을 공부한다
3. 1개월에 한번씩 함께 세미나를 개최하여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의견 조율을 한다.
4. 방학을 이용해 매년 1회, 총 2회에 걸쳐 약 보름 동안 멕시코나 쿠바를 방문해 직접 한인 후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행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정체성 회복 방안을 연구한다.
5. 귀국 후에는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인들의 정체성 상실도 등의 의식 상태를 분석한다.
6. 한인 후손들의 정체성 회복, 혹은 확립을 위한 정책 대안을 마련한다.
7. 이 모든 연구는 재 멕시코 한인회와 긴밀한 협조 체제 하에 진행된다. 현재 쿠바 한인들과의 접촉도 진행 중이다.
<연구내용>
▶ 이민사
여러 지역에 산재 혹은 사장되어 있는 자료를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종합·정리하여, 사료에 근거한 유카탄 이민사를 재정립하고, 평가한다. 이를 위해서 국내·외의 각종 도서관과 정부기관을 통해 관련 서류, 신문, 잡지 등의 자료를 수집한다. 또한 필요한 경우에는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을 하여 역사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한다.
멕시코와 쿠바의 이민사는 다음과 같이 시대별로 구분하여 각각 연구가 진행된다.
1. 멕시코 이민사: 이민 모집과 송출(1904-1905), 에네깽 농장에서의 생활(1905-1909), 노동계약 이후의 한인사(1910-1960), 멕시코·한국 외교수립 이후의 한인사(1961-현재).
국제이민 브로커 마이어스는 1904년 {황성신문}에 이민모집 광고문을 게재했고 이에 1033명의 한국인이 4년간의 노동계약을 맺고 한국을 떠났다. 75일의 항해 끝에 유카탄 반도에 도착한 이들은 22개의 에네깽 농장으로 분산되어 4년 동안 외부와 격리된 채 노예와 같이 혹사당했다. 그러나 계약기간이 끝난 1909년 이들에게는 돌아가야 할 조국이 없었다. 이에 대한인 국민회의 북미총회가 방화중과 황사용을 파견하여 한인공동체를 조직하기도 했고, 광무시절 공병하사 출신인 이근영의 지도 아래 무력으로 조국을 되찾기 위한 군사훈련을 하기도 했다. 또한 1909년 11월 18일 을사조약 4주년을 맞이하여 멕시코의 메리다에서 대대적인 가두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간의 구심점은 점차 약화되어 급기야는 현지의 원주민 사회에 동화·흡수되고 만다.
2. 쿠바 이민사: 이민 모집과 송출(1904-1905), 에네깽 농장에서의 생활(1905-1909), 노동계약 이후의 한인사(1910-1928), 사회주의 혁명 이전의 한인사(1929-1960), 혁명 이후의 한인사(1961-현재).
1921년 에네깽 이주민들 가운데 291명의 한인이 쿠바로 떠났다. 쿠바에 도착한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흩어졌지만 한인단체와 한글학교 등을 운영하며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멕시코에 남은 한인 후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많은 혼혈을 거쳐 정체성을 상실하고 쿠바 사회에 동화되어갔다. 한편 카스트로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일부 한인들은 미국(특히 LA)으로 이주했고, 1961년 2월 중순에는 북한의 홍동칠이 쿠바 주재 북한대사로 임명되면서 한인회의 활동은 전적으로 북한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초기에 강한 결속력을 보이던 북한과 한인회와의 관계는 북한이 경제위기를 맞은 이후에 형식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재 쿠바에는 한인회가 조직되어 있는데, 이들 한인들의 소망은 뿌리 찾기와 후손들의 교육을 위해 한인회관을 건립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쿠바의 한인 후손은 남한과의 연결고리를 확보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 한인 후손들의 실태와 정체성 연구
다양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한인 후손들이 현지에 동화된 정도와 정체성 상실 정도를 조사하고, 문화와 의식구조를 연구하여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가를 진단해본다. 이를 위해서 한인 후손들의 지역별 분포와 현황(혼혈정도, 직업, 생활)을 먼저 조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