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의 목적은 근대 지식과 개념이 형성, 변모되는 과정을 밝혀 근대 지식사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에 있다. 본 연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기존의 연구들은,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에 초점을 두어 조선조 말과 대한제국기의 정치체제의 균열 및 이에 따른 민족국가 수 ...
이 연구의 목적은 근대 지식과 개념이 형성, 변모되는 과정을 밝혀 근대 지식사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에 있다. 본 연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기존의 연구들은,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에 초점을 두어 조선조 말과 대한제국기의 정치체제의 균열 및 이에 따른 민족국가 수립의 실패라는 '정치적 맥락'에서 진행되거나, 근대적 자본주의 발전 여부에 초점을 두어 상업적 농업의 발전 정도와 지주-소작관계라는 '사회경제적 맥락'을 강조하였다. 사상사적 영역에서는 조선조 주자학과 서학, 개화사상간의 이념적 대결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맥락'을 부각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이런 경향과는 달리 본 연구는 근대적 지식과 개념들이 해당 사회의 대중들 사이에서 형성, 수용되는(생산되고 소비되는) 하나의 역동적 문화의 전체로 파악하고, 이러한 문화적 담론적 접근 방법을 통해 한국 근대의 특성과 변용 과정을 형상화하려 한다.
그간 1894-1910년에 이르는 이 시기는 일반적으로 국가주권이 상실되어 가는 식민화의 시기라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쇠퇴기라고 이해되어 왔지만, 본 연구에서는 사회적인 제반 영역에서 근대적 인식과 개념을 대중적으로 확산, 주조하는 시기였다고 보고, 이 시기에 폭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근대적 인쇄매체-신문, 잡지(학회지), 단행본, 교과서 등을 통해 전파된 근대적 지식과 개념의 유형과 성격에 주목하고자 한다. 근대 지식이 생산, 유통, 소비되는 과정이 신문, 잡지, 서적, 문학서 등 인쇄매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은 근대의 일반적 특성이다.이 사실에 주목할 때 근대적 지식의 형성과정과 인쇄매체의 상관성을 밝히는 작업은 근대 지식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 관건이 된다. 특히 독립신문과 같은 대중적 신문의 출현과 근대적 교육제도의 실시에 따른 교과서 발행, 그리고 인쇄소와 출판사의 설립은 근대 인쇄매체의 본격적 등장을 알리는 중요한 기준이다. 본 연구가 1894년-1910년 동안을 대상 시기로 설정한 것도 한국에서 이러한 조건이 1894년 이후에 마련되었다는 이유에서이다.
근대 계몽기 동안 근대적 지식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아울러 다양한 인쇄매체와 사회집단, 계층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성과가 축적되었다. 하지만 주로 정치사상이나 운동사의 관점에 치우침으로써 근대적 지식의 형성을 주로 이데올로기적 차원으로 제한하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문학, 역사학, 철학, 정치학,법학, 교육학 등 개별 분과학문의 시각에서 근대 지식의 형성 과정을 연구함으로써 근대적 지식체계 및 세계관 일반이나 분과학문 사이의 관련성을 부각하지는 못했다. 이와 더불어 인쇄매체의 등장과 그 의미에 대해서도 많은 선행 연구가 있었다. 그렇지만 주로 신문을 대상으로 연구가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신문, 교과서, 학술서, 잡지 등 다양한 매체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본 연구는 근대 인쇄매체 일반을 대상으로 분과학문이 제도화되기 이전에 형성된 다양한 지식, 개념의 존재 양상과 변모 과정을 연구할 것이다. 그리고 인쇄매체의 차이에 따라 지식담론의 성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비교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근대적 지식과 담론의 형성과정을 살피고자 하는데 첫째는, 한국 사회에서 근대적 지식과 개념, 담론이 형성되고 변용되는 과정과 특성을 내재적으로 살피는 방향이며, 둘째는 자기의식적이고 대상적인 관점에서 한편으로 당시 한국사회에 비추어진 서구, 일본, 중국의 근대적 경험과 다른 한편으로 일본, 중국, 서구의 눈에 비추어진 한국의 근대를 외재적으로 살펴보는 방향이 그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직접적으로는 한국의 근대적 형상을 객관화해볼 수 있는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 중, 일 세 나라에서 근대적 지식과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확인하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