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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자 제작 기술 연구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선도연구자지원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03-041-G00026
선정년도 2003 년
연구기간 1 년 (2003년 12월 01일 ~ 2004년 12월 01일)
연구책임자 방병선
연구수행기관 고려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한국 도자사 연구에 있어 제작기술은 양식과 더불어 중요한 테마로 자리잡아왔다. 도자사의 경우 문양과 기형 같은 내적인 양식 분석과 외적인 사회, 문화, 정치적인 배경에 대한 고찰이 연구의 주요 방법과 대상이었다. 여기에 다른 미술사 연구와 달리 고고학적 발굴에 의한 유구와 유물 분석을 필요로 하고 제작기술 자체에 대한 분석도 그 특성상 국내외 도자사 연구에 있어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간 국내외 도자사 연구에 있어 제작기술에 대한 연구는 고려청자에 대한 것이 먼저였다. 고려청자 발생 문제와 관련하여 굽의 형태를 중시하면서 굽을 어떻게 처리했는가의 성형 문제와 가마구조 문제, 상감 기법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이후 비색 유약에 대한 관심의 고조로 고려청자 유약에 대한 화학성분을 통한 분석이 실시되었다. 이미 1970년대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고려청자 유약에 관심을 두고 분석을 실시하였고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실험적 연구가 이루어져 우리 유약과 중국과의 차이점, 안료의 특성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졌다. 또한 국내 발굴 자료의 증가에 따라 가마구조와 갑발 등의 번조기술에도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방대한 연구 범위 탓으로 연구가 단편적이거나 상호 유기적인 체계를 갖추지 못하였고 분석 실험을 통한 고찰의 경우 재정적인 부담 탓인지 중국이나 미국에 비해 분석 수량에서 크게 미치지 못하였다. 또한 일부 연구의 경우 너무 화학적인 실험 분석에만 치우친 경향도 적지 않아서 보다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제작기술의 변천이나 그 원인을 고찰하는 연구가 요구된다.
    다음 조선시대 자기의 제작기술에 대해서는 분청사기와 백자로 나눌 수 있는데 해외 연구의 경우 고려청자에 비해서는 관심이 덜 집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분청사기의 경우 각 지역별 장식 기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발굴 자료에 대한 분석을 통해 분청사기 가마들의 특성이 지역별, 시대 별로 어느 정도 밝혀지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분청사기 태토와 유약에 대한 실험 분석도 그 수량은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고려청자와의 비교가 가능해지게 되었다. 다음 백자의 경우 시대 별 가마 구조의 변천이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가마의 원형을 제대로 알 수 없어 대개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의 가마 구조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성형이나 장식 기법에 대한 연구도 행해 졌으며 안료에 대한 중국측 연구의 원용을 통해 우리 것에 대한 유추 작업도 활발해졌다. 또한 1990년 후반 들어 백자의 태토, 유약, 안료에 화학성분 고찰이 일부 이루어지면서 이제 통시대적인 비교 고찰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방대한 문헌 연구를 통해 제작기술에 관련된 문헌 자료가 소개되었으며 과학적 분석 실험도 보다 다양하게 이루어졌으나 아직 중국이나 미국 등에서 행해진 동 시기 명・청대 자기의 제작기술 연구에 비하면 방법이나 축적된 데이터 양에서 크게 되진 형편이다.
    이와 같은 한국 도자 제작기술에 대한 연구 현황을 살펴볼 때 본 연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제작 기술 전체를 통시적인 안목에서 각 공정이나 재료 별 특성과 변천을 파악하고 이를 유기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한국도자의 제작기술을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원료에서 번조까지 총체적인 변천을 고찰하여 각 시대 별 제작기술의 도자사적, 사회적 의의를 파악하고 한국 도자사에서 개념이 모호한 부분을(사기, 자기, 도기, 연질, 경질 등) 보다 명료하게 정의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 기대효과
  • 본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학문적, 사회적 기여와 활용을 기대할 수 있다.

    첫째, 도자사에서 고고학적 범주로 여겨지던 가마 발굴 자료의 실험적, 문헌적 분석을 통해 한국 도자의 제작기술이 총체적으로 어떠한 변천 과정을 겪었는지를 파악하여 이의 도자사적, 사회경제적 의의를 제시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원료의 성분이나 가마 구조 혹은 장식 기법의 현상 파악을 넘어 제작 기술이 갖는 보다 미술사적 의미를 명쾌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지금까지 한국도자사에서 그 개념이 모호했던 부분에 대한 보다 포괄적이고 과학적인 정의가 가능해 질 것이다. 예를 들어 사기와 자기, 도기의 정의와 동일한 그릇에 대한 연질인지, 경질인지의 문제, 나아가 분청사기의 정의와 상감청자와의 차이, 조선시대 상감백자와 일반백자의 차이점과 유사점, 안료 정제와 사용법, 고려와 조선시대 가마 구조의 제작기술이 갖는 경제적 의미에 대한 유기적 관계를 파악함으로써 중국이나 일본 등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도출하여 동양 삼국이 갖는 도자사에서의 제작기술의 변천 과정을 비교 고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이러한 고려와 조선시대 제작기술 연구를 통해 오늘날 현대 도자사의 한 축을 이루는 전통 도자 산업의 전통 계승과 발전 문제에 대해 보다 가시적인 지표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특정한 색상(고려 비색이나 조선시대 유백색)과 강도를 내기 위한 원료와 안료의 정제 과정과 변천은 오늘날 도자 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도자 제작기술이 갖는 전통 계승과 이의 혁신을 위한 문제 제시와 해결 방안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넷째, 고려와 조선시대를 비교하여 각 시대가 갖는 기술 채택의 사회경제적 환경과 그 응용 범주를 파악함으로써 오늘날 제작기술이 지향하는 목표 설정과 그 사회적 인식의 문제를 다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왜 조선시대의 제작기술은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기술적 발전을 보이는 대량생산과 다채색 장식으로의 전환을 거부하고 고려시대와 차별을 보였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의 파악은 오늘날 한국도자사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 가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며 본 연구가 그 보조 자료로 충분히 활용, 가능할 것이다.

    다섯째, 본 연구에서 제시되는 실험 데이터와 도면 및 문헌 분석 자료는 기존의 연구 성과와 더불어 한국도자의 제작기술 발전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보는데 유효하게 이용될 것이며 앞으로의 연구 자료로 크게 활용될 것이다. 또한 본 연구에서 다루는 분석 대상은 재정적 한계 등으로 다 다루기는 어려울 것이나 앞으로 통시적인 연구에 기본 데이터로 활용될 것이며 이는 기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역사적 변천 파악이 곧 한 나라의 문화사적, 과학기술적 발전 방향의 설정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연구요약
  • 본 연구를 요약하면 다음 세 가지의 형태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분석 실험을 통한 고려와 조선시대 원료와 안료의 변천을 파악하고자 한다.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는 태토와 유약, 안료는 문헌에 기재되어 있는 것은 몇 가지 명칭에 불과하므로 이의 과학적인 분석이 요구된다. 이에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고려청자의 태토와 유약(비색의 발색과 중국과의 비교), 안료 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조선백자와(태토, 유약, 안료, 장식) 분청사기에(태토, 유약, 상감토) 대한 실험도 행해진 적이 있으나 이를 통합하여 분석한 사례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백자(상감백자, 청화백자)의 태토와 유약, 상감토와 청화, 철화, 퇴화, 진사와 같은 안료의 시대 별 샘플을 각 박물관이나 미술관, 연구소 등의 협조 하에 채취하여 성분과 강도 등을 분석하고자 한다. 성분은 기본적인 10가지 성분을(Si, Ca, K, Fe, Mn, Ti, Mg, Na, Al, 인) 주 데이터로 하여 전문 분석기관에(요업기술원 혹은 KAIST) 실험을 의뢰하고 그 데이터 처리와 해석을 보다 도자사적인 시각으로 각계 전문가와 함께 시도할 것이다.
    강도 실험 역시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각 시대 별, 종류 별 자기의 강도를 측정하고자 한다. 이러한 강도 실험은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활발히 진행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분청사기와 백자, 청자와 분청사기의 구별을 위한 표준치를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자료 수집과 샘플 수거를 위해 수 명의 연구보조원이 필요하며 실험 데이터의 분석과 활용 사례를 수집하고 실견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으로의 답사가 요구된다. 이러한 연구 방법을 통해 원료의 유기적 변천 과정과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조선백자의 특성을 보다 명확히 정의하고자 한다. 특히 논란이 되어 왔던 연질과 경질의 문제, 유약의 성분에 따른 색상 문제와 이의 제작 기술적 발전 과정과의 연계 상황을 심도 있게 고찰할 것이다. 또한 제작기술의 시대별 변천이 갖는 도자사적, 경제적, 사회적 의의를 중국과 일본의 사례 등을 참고하여 파악하고자 한다.

    둘째, 지금까지 행해진 고려, 조선시대 가마 발굴 보고서를 참조하여 가마와 갑발, 받침 등 번조 기술의 변천을 파악하고자 한다.
    가마 구조는 시대 별, 지역 별로 끊임없이 변화되어 왔다. 이는 도자사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과제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뇩?관요와 지방가마 등에 대한 단편적인 연구가 진행되어 왔으나 통시적인 연구는 그리 활발히 진행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의 변천을 파악하기 위해 지금까지 간행된 가마 발굴 보고서를 참조하여 도면 작성을 시도할 것이다. 이러한 도면 분석을 위해 약간 명의 연구보조원이 요구된다. 이들 도면 분석을 통해 보다 일목요연하게 그 변천을 밝힐 수 있으며 이와 더불어 번조 도구인 갑발이나 받침 등도 유물과 도면 분석을 시도하여 제작기술의 변천과정을 추적할 것이다. 또한 번조 기술이 갖는 경제적 의미와 사회적 성격, 교류의 성격과 역할에 대해서도 고찰을 시도할 것이며 중국과 일본 지역 가마와의 영향 관계도 참고가 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 지역의 보고서 수집과 가마 실견을 위해 해외 답사가 요구된다.

    셋째, 문헌과 유물 분석을 통해 원료정제와 성형, 장식 기법의 변화를 고찰할 것이다.
    성형과 장식은 문헌과 유물 분석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물레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어떤 기법으로 장식을 했는지, 시유는 어떻게 변천했는지, 안료는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국내외의 문헌 자료 분석과 유물 실견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이 또한 중국이나 일본과의 비교 고찰이 필요한 부분이므로 중국과 일본의 문헌자료와 유물 분석이 요구된다. 또한 동일한 안료가(철화, 상감 등) 시대 별로 어떻게 사용되었고 그 성분에는 변화가 없는 지, 안료를 사용한 최종 장식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도 파악할 것이다. 이 밖에도 회화나 조각, 기타 공예품 등에 나타난 장식 문양과 기법을 보조 자료로 활용할 것이다.

    위와 같은 세 가지 방법을 요약하면 결국 실험 의뢰와 데이터 분석, 도면 분석을 통한 비교 고찰, 유물분석과 문헌 조사 등이 본 연구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전문실험 기관에 대한 분석위탁과 자료 수집과 유물 실견을 위한 국내외 박물관의 답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러한 연구 방법을 통해 궁극적으로 한국 도자 제작기술이 갖는 도자사적, 경제적, 사회적 의미를 파악할 것이다.
  • 한글키워드
  • 경덕진,원료정제,청화백자,안료,유약,태토,분청사기,조선백자,고려청자,제작기술,한국도자,철화백자,경질,연질,고려백자,비색청자,번조,갑발,가마,상감청자,분원,물레,상감토,시유,산화동,코발트,장식,성형,산화철,상감백자,아리따,계단식 가마,산화염,환원염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우리나라 자기 제작기술 가운데 원료의 특성과 가마구조의 변천에 대해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먼저 원료의 특성은 실험 분석을 통해 살펴보았다. 실험분석은 전문기관에 의뢰하였다.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초기 청자의 태토와 갑발 안에는 일정한 성분의 철분이 들어 있으며 태토보다는 가마 안에서 그릇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갑발 안에 철분이 더 많이 들어 있었다. 또한 청자보다는 백자와 갑발의 흡수율이 높은 편이고 성분도 달라서 서로 다른 원료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청자를 구울 때는 가마 안의 불꽃의 분위기가 산소가 부족한 환원 상태여야 좋은 청자색을 낼 수 있는데 실험을 통해 보면 초기 청자를 제작하던 때는 그리 환원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초기 청자들의 제작시기인 10세기에는 아직 불을 때는 기술이 완벽하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끝으로 우리나라 청자가 어느 정도 높은 온도에서 구워졌을까를 실험해 보았다. 실험 결과 모두 1250도 이하로 그리 높은 온도로 구워지지 않았던 것을 밝힐 수 있었다. 이는 조선시대 백자에 비해 낮은 온도다.
    다음 우리나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친 가마 구조의 변천을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우리나라 가마는 측면에 출입구가 설치된 지상식의 경사진 등요의 형태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유지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시대 별로 살펴보면 먼저 고려시대는 불꽃이 가마 안에서 수평으로 이동하는 형식에 장방형의 경사바닥을 가진 구조로 아궁이에서 굴뚝까지 가마 내부에 아무런 보조 시설 없이 그대로 연결된 한 개의 방으로 구성된 등요였다.
    이러한 구조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바뀌었다. 먼저 조선 전기에는 가마 안에 기둥이나 턱이 설치되어 가마의 지붕을 받치거나 불꽃의 흐름을 지연시키기 위한 용도로 설치되어 가마를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려는 시도가 진행되었었다. 또한 마지막 칸을 초벌 전용칸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전 칸과 비교하여 경사도를 달리하거나 둔턱을 설치하였다. 이 경우 마지막 칸의 온도는 다른 칸에 비해 낮아질 수 있다. 특이한 것은 분청사기 가마의 아궁이는 상대적으로 깊고 짧았다. 굴뚝부는 마지막 칸의 하단부에 불꽃이 나갈 수 있도록 연도를 설치하고 석물 등으로 이를 개폐해서 불꽃의 양과 가마 안의 압력 등을 조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들어 18세기 대전 장안동 가마에는 각 칸에 장벽을 설치하여 아예 불꽃이 각 칸에서 충분히 순환한 후 다음 칸으로 전달되는 식으로 바꾸는데 성공하였다. 가마 바닥도 점차 굴뚝부로 갈수록 넓어지는 逆사다리꼴의 형태를 지니게 되었고 이러한 가마 형태는 조선 말기까지 지속되었다.
  • 영문
  • A Study on the Korean Ceramic
    Manufacturing Technique

    In this paper, the characteristics of body and saggar and the kiln were surveyed as a part of research of the Korean ceramic manufacturing technique.
    First, the shards of the body and the saggar from the early Koryo period kilns, the Seori and the Pangsandong, were analyzed by XRD, S.E.M. and Dilatometer to examine the chemical composition, the microstructure, the firing temperature, the absorption rate and the intensity. Their resulting was approximate to the previous one. But some data, such as the reduction rate and the firing temperature, seems very newer and more useful.
    For example, the average reduction rate of the shards was found below 20%. It meant that the reduction control within the kiln was not good. And the firing temperature of Pangsandong whiteware was measured above 1240℃; Pangsandong celadon, above 1180℃; Seori whiteware, above 1145℃; Seori celadon, 1180℃. All of them didn't reach to the 1250℃ contrary to our expectation.
    Second, the kiln structure was examined by surveying the published excavation report. The kilns of Koryo dynasty had the single chamber without any columns to support the arch roof inside the kiln. With the rectangular ground with slope of 11-20 degrees, the general Koryo kiln type was confirmed a climbing kiln with side stoke. And the firing process was supposed to be executed in the atmosphere of reduction with the horizontal draft flame.
    In 15~16th century, the kiln design was changed to set the some columns on the small rise inside the kiln to support the arch roof and to reduce the speed of flame spread for conserving the energy in kiln. It might be more effective method to control the firing and finally to improve the productivity. And the last chamber of kiln was exclusively used for the biscuit firing. Especially the firing mouth of Puncheng ware kiln was wider and deeper, but shorter than contemporary kilns. Chimney of kiln seemed to have stopper to control the flow of flame and the pressure.
    In 17th century kiln design happened to change in Daedori kiln and Junggakri kiln. Both had more columns inside the kiln on the small rise not only to support the arch but to divide and separate the chamber for the half-down draft. Finally potters of Jangandong kiln succeeded in making half-down draft kiln to install both walls and columns inside the kiln. It had divided chambers with trapezoidal ground.
    In conclusion the Korean kiln type changed from the single-chamber horizontal-draft climbing kiln to the divided-chamber half-down draft on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우리나라 자기 제작기술 가운데 실험 분석을 통한 원료의 특성과 발굴 보고서 분석을 통한 가마구조의 변천에 대해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먼저 실험 분석은 초기 청자 가마인 용인 서리와 시흥 방산동 2곳의 청자 도편과 갑발 등을 대상으로 화학성분이나 미세구조, 흡수율, 내화도 뿐 아니라 소성온도와 환원도 등의 실험을 시행하였다. 도편과 갑발 등의 성분이나 수축률 등은 이전의 연구 결과와 큰 차이는 없었지만 환원도는 방산동이나 서리 모두 20%를 밑도는 낮은 수치로 제대로 환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소성온도는 고려 초기 자기의 소성온도는 1250도 이하였음을 밝힐 수 있었다.
    다음 가마구조는 측면 출입구가 설치된 지상식 등요의 형태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유지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먼저 고려시대는 평염식에 장방형의 경사바닥을 가진 구조로 가마 내부에는 칸의 분리나 아치를 받치기 위한 기둥은 거의 설치되지 않은 단실등요였다.
    조선 전기에 들어서는 가마 안에 기둥이나 턱이 설치되어 아치를 받치거나 불꽃의 흐름을 지연시키기 위한 용도로 설치되었다. 또한 마지막 칸을 초벌 전용칸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전 칸과 비교하여 경사도를 달리하거나 둔턱을 설치하였다.
    조선 후기 가마는 전기보다 더 많은 수의 기둥을 아치 지지용 뿐 아니라 불꽃의 분산을 위한 의도로 설치하여 分炎의 효과를 증대하였고 기둥이 있는 부분에 계단식 둔턱을 만들어 단실요에서 분실요로의 보다 진전된 형태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후 대전 장안동 가마는 각 칸에 장벽을 설치하여 완전한 반도염식으로 불꽃을 바꾸는데 성공하였다. 가마 바닥도 점차 굴뚝부로 갈수록 넓어지는 逆사다리꼴의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半倒炎式分室斜低登窯 형태는 조선 말기까지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를 통한 연구결과와 활용방안을 논의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방산동과 서리의 초기청자 실험분석을 통해 환원도는 방산동이나 서리 모두 20%를 밑도는 낮은 수치로 제대로 환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방산백자가 1240도 이상, 방산청자가 1180도 이상이며 서리백자가 1145도 이상, 서리청자가 1180도 이상을 나타내어 고려 초기 자기의 소성온도는 1250도 이하였음을 밝힐 수 있었다.
    둘째로 가마발굴보고서 분석을 통해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불꽃의 흐름을 가상으로 표시한 가마 상상복원도를 작성하였다. 이는 당시의 가마와 번조 과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연질과 경질의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 실험을 의뢰하였으나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그 이유로 태토와 유약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경도 측정을 위한 시편의 획득이 어려우며 시유와 소성 조건, 소성 온도, 유약 두께 등의 변수에 따라 실험치가 달라질 수 있어 정확한 연질과 경질의 기준을 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초벌편이나 성형 상태에서 건조된 도편 등 강도 실험이 가능한 도편 수집에 발굴 당시부터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넷째, 갑발의 실험은 부위에 따른 편차가 태토나 유약에 비해 심하고 여러 차례 번조된 것이므로 환원도나 소성온도 결과는 기대만큼 커다란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따라서 추후 갑발에 대한 실험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결과치에 대한 해석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각 시편의 정확한 온도 측정은 실험 과정에서 최대한 오차를 줄이는 것이 관건임을 확인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실험기관에서 도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여기에 알맞은 실험 기기와 방법을 선택하여야 한다. 또한 보다 다양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가마의 각 칸 마다 시편을 수거하여 실험을 해야 하고 시편의 번조 상태가 가장 양호한 것으로 선별해야 한다.
    여섯째, 가마 구조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는 발굴 보고서에 기록 가능한 각종 데이터가 철저히 수록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발굴담당자와 발굴보고서 작성자 모두 어떤 데이터를 통해 무엇을 파악할 수 있고 번조 과정이 어떤 메카니즘으로 이행되는 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 색인어
  • 제작기술(manufacturing technique), 태토(clay), 유약(glaze), 갑발(saggar), 가마(kiln), 환원(reduction), 번조온도(firing temperature), 평염(horizontal draft), 반도염(half-down draft), 고려청자(Koryo celadon), 분청사기(Puncheong Ware), 조선백자(Chosun Porce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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