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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다인에서 사이버다인으로: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이중적 관점 -{제 49호 품목의 경매}, {인조인간은 전기 양을 꿈꾸는가?}, {터미네이터 2}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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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명 선도연구자지원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03-041-A00499
선정년도 2003 년
연구기간 1 년 (2003년 12월 01일 ~ 2004년 12월 01일)
연구책임자 강규한
연구수행기관 백석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과학기술이야말로 근대이후 인류의 역사를 주도해온 가장 막강한 견인차였을 뿐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미래를 이끌어갈 가장 강력한 동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라는 점 그 자체는 자명하다고 해도, 과학기술이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구체적인 양상과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없지 않다. 육체적 열등에도 불구하고 도구를 만듦으로써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환경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인간은 근대 이후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전에 힘입어 주어진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의 의지 실현과 욕망 충족을 최대로 구현하기 위해 그것을 변형·정복할 수 있는 단계까지 진전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주어진 환경을 자신의 의지와 욕망대로 새롭게 변화시켜나가게 했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은 인간을 낙원으로 인도하는, 즉 꿈의 영역을 실제에 구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이해될 소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인간의 삶을 계속 피폐화하여 결국 돌이킬 수 없을 재앙과 파멸에 봉착하게 만드는 어두운 악마적 힘이 과학기술의 가장 근원적 속성으로 파악될 가능성도 높다. 사실, 과학기술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이해야말로 지금까지 수많은 반문명(反文明) 주제의 문학작품들이 형상화해 온 과학기술의 이미지에 부합된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문학 텍스트가 과학기술을 '악의 화신'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하게 된 배경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엄연한 리얼리티를 자신의 내적 공간에서 수용하지 못하고 '타자'로 배제한 채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거리'에서 신랄하게 비판해 왔던 자체 내의 한계가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과학기술을 일방적으로 폄하하거나 터무니없이 찬양하는 대신, 인간의 잠재성을 최대치로 확대하여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을 가능성의 현시라는 관점과 인간의 무한한 잠재성을 정형화된 편협한 국면으로 축소하여 제한된 틀에서 가두어 버리고 말 위험성의 내포라는 상반된 관점에서 이중적으로 조망하는 텍스트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함부로 확대하기도 조심스러운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과 어우러지는 복합적 양상을 규명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삼는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과학기술의 대표적 결과물로서의 기계와 이것을 만든 인간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양자의 관계가 인위적 이분법으로 전락되기 쉬운 위험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기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곧 그것을 만든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일 수 있음을 확인하는 작업 역시 본 연구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주요한 과업 중의 하나이다.
  • 기대효과
  • 요요다인을 사이버다인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테미네이터 2}는 어떤 면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핀천의 문제제기를 헐리웃 식으로 수용한 결과물로 이해될 소지가 충분하다. 헐리웃 식으로 인간과 기계를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편협한 관점만으로 일관한다면 과학기술 문제의 총체적 접근에 도달하기란 그만큼 어렵다고 하겠다. 반면, {제 49호 품목의 경매}에서는 이면에 잠복해 있던 트리스테로의 부상, 즉 0과 1의 이분법이 와해되고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하게 될 것인가의 문제가 에디파가 자신의 몸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때와 같은 엄청난 진통을 경험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있다는 점은 이런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 가능성이 기계 또는 과학기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 가능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야말로 핀천 사유의 미덕이자, 이후 소재중심의 과학기술 헐리웃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통찰이라고 할 만하다. 이처럼 핀천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할 때 과학기술에 대한 새로운 열린 지평이 가능해진다고 하겠다.
  • 연구요약
  • 코넬 대학교 영문과에서 문학을 공부하기 이전, 같은 대학 공업물리학과에서 첨단 과학이론과 과학기술 원리에 관해 배울 수 있었다는 핀천(Thomas Pynchon)의전기적 사실은 그의 텍스트에 풍부한 문학적 전통뿐 아니라 우리 시대를 주도하는 과학과 과학기술에 대한 심오한 이해가 배어있는 것이 우연이 아님을 보여준다. 사실, 핀천을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영미작가의 반열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그의 텍스트에서 형상화되는 과학기술에 대한 통찰이야말로 그의 탁월성을 담보하는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특히 1963년 출간된 처녀장편 {브이}에서부터 {제 49호 품목의 경매}(1966년)를 거쳐 {중력의 무지개}(1973년)에 이르는 핀천 전성기의 세 작품은 우리 시대에 대한 과학기술의 영향력을 날카롭게 인지하고 그것의 복합적 양상을 생생하게 극화한 의미 깊은 텍스트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적 상상력이 큰 기둥으로 텍스트를 지탱하고 있는 이들 세 작품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요요다인(Yoyodyne)이라는 항공회사이다. 기계적 반복을 나타내는 '요요'와 힘의 단위를 나타내는 '다인'이 결합된 이 회사명칭은 과학기술이 생산해 내는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기계적 힘의 공포스러운 위력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제 49호 품목의 경매}에서 에디파가 회사 내 모든 것들이 단일한 색조와 일사불란한 정렬로 차이와 다양성이 사상된 채 동질화·획일화되어 있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상황은 요요다인으로 대변되는 과학기술의 위험성을 생생하게 극화하고 있는 셈이다.
    요요다인을 폐쇄적 구조로 닿아 놓게 만드는 것은 과학기술의 원리 그 자체에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작품의 후반부 에디파의 명상을 통해 0과 1의 조합으로서의 컴퓨터의 원리에 대한 사유가 개진된다. 이러한 컴퓨터의 원리는 {중력의 무지개}에서 영화와 미적분의 원리로 이어지면 과학기술의 본질적 원리를 대변하는 셈인데, 이러한 기계적 원리에 의해 에디파 자체가 0과 1의 패턴에 갇히는 결과가 초래된다.
    이처럼 과학기술이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와 동시에 다른 산문("Is It O.K. To Be a Luddite")에서 핀천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언명하고 있듯이 과학기술의 진보를 통해 더 많은 정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될 가능성이 시사되기도 한다. 확실히, {제 49호 품목의 경매}에서는 과학기술이 일방적으로 비판되거나 찬양되는 대신, 에디파가 자신을 옭아매는 0과 1의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가 진지하게 심문됨으로써 과학기술과 인간 사이의 복합적 관계가 생생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1968년 출간된 {인조인간은 전기 양을 꿈꾸는가?}는 컴퓨터가 더욱 발전된 진척된 과학기술의 양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0과 1의 조합이 무한히 확대되면서 기계가 거의 인간과 동일한 단계까지 도달한 미래를 묘사하면서 과학기술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격적인 SF 문학의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죽음이 코앞에 와있는 것처럼 공해로 인해 줄기차게 비가 내리는 2019년 L. A.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묘사하는 작품의 첫 장면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도달하게 된 암울한 미래사회를 한 장의 그림으로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반면, 과학기술의 결과 만들어진 인조인간이라는 기계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인조인간을 구별하여 처치하는 역할이 떠맡아진 비밀경찰 데커드가 인간-비인간의 이분법으로부터 이 이분법의 허구성을 인지하고 급기야 비인간으로서의 인조인간 레이철을 사랑하게 되는 눈뜸의 과정이 작품의 주된 플롯를 이룬다. 인간과 기계의 이분법이 와해되는 장면은 로이가 맞이하는 장엄한 최후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장엄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비인간 로이를 작품 내의 그 어느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경험을 올곳이 치러내는 셈이다.
    그러나, 유니콘이라는 희망의 요소가 없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작품의 마지막 장면까지도 데커드와 레이철이 온전히 결합할 수 있을 것인가는 미지수로 남게 된다. 결국, 인간과 기계가 완전히 일치, 조화될 수 있을 것인지는 해결되지 않은 채 의문으로 남게되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인조인간은 전기 양을 꿈꾸는가?}가 {브레이드 러너}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됨으로써 가장 최첨단 과학기술의 산물 중의 하나인 영화, 그 중에서도 SF 영화가 과학기술의 주제를 다루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은 특히 헐리웃을 중심으로 확대·계승되어 수많은 SF 영화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성공적으로 과학기술의 문제를 전면으로 부각시킨 작품이 바로 {터미네이터 2}라로 할
  • 한글키워드
  • 기계,이분법,인간중심,과학기술,{인조인간은 전기 양을 꿈꾸는가?},요요다인,토마스 핀천,사이버다인,{터미네이터 2},{제 49호 품목의 경매},헐리웃,이중적 관점,0과 1의 조합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과학기술은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이와 동시에 가공할 재앙을 가져오는 악마적 힘으로 묘사되어 오기도 했다. 과학기술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양극단의 이항대립이 아니라, 전적으로 찬양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될 수도 없는 복합적인 양상의 포착이다. 확실히, 과학기술은 인간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단인 동시에 인간의 잠재성을 제한된 영역으로 옭아매는 위협으로 여겨질 소지가 충분하다.
    ꡔ제 49호 품목의 경매ꡕꡔ인조인간은 전기 양을 꿈꾸는가 ꡕꡔ터미네이터 2ꡕ는 과학기술은 이중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ꡔ제 49호 품목의 경매ꡕ의 요요다인은 ꡔ터미네이터 2ꡕ의 사이버다인으로 연결된다. 요요다인에서 사이버다인으로의 발전은 지난 사반세기 동안 진행된 과학기술력의 급격한 신장을 상징한다. ꡔ터미네이터 2ꡕ로부터 과학기술력의 신장에 비례하여 과학기술의 문제를 조망하고 해결하는 것이 그만큼 어려워질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컴퓨터, 로켓, 영화 등은 모두 유동적 리얼리티를 정적인 점으로 치환하는 작동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계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의해 제작된 것들이라는 점이 기억될 필요가 있다. 인간의 관점이 기계의 작동원리에 이미 투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기계 자체가 아니라 과학기술에 투사되어 있는 인간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기계의 한계는 인간의 한계에서 연유하는 셈이며, 따라서 기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남으로써만 가능하게 된다고 하겠다.
  • 영문
  • Technology can be understood as a powerful means of materializing the ideal world. At the same time, it has been described as having an evil power to bring about disastrous outcome. What is important in the question of technology is not a simple binary opposition of two extremes but a complex reality of technology neither to be given up nor to be heavily depended upon. Obviously, technology can be understood as both an appropriate way to maximize human potential power and a perilous risk to confine and reduce the limitless human potentiality into a restricted narrow scope.
    The Crying of Lot 49, Do Androids Dream of Electronic Sheep and Terminator 2 confer on us the possibility of viewing technology from dual perspectives. In particular, Yoyodyne in The Crying of Lot 49 is succeeded by Cyberdyne in Terminator 2. The progress from Yoyodyne to Cybedyne signifies that the power of technology has immensely increased with drastic development of technology in the past quarter century. Difficulties in solving the technology-related problems in Terminator 2 testify to the difficulty of making a keen analysis and coming to a clear understanding of technology in proportion as technology becomes more powerful.
    Machines like digital computers, rockets, and moving pictures work under the principle of reducing fluid reality into static dots. Basically, however, machines are made by men. Human viewpoints have been projected onto the working principles of the machines. What really matters, therefore, is not the machines themselves, but the human viewpoints imposed on the technologies. The limits of machines arise out of the limits of humans, so that getting away from the limits of machines would be possible only by overcoming human limit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과학기술은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이와 동시에 가공할 재앙을 가져오는 악마적 힘으로 묘사되어 오기도 했다. 과학기술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양극단의 이항대립이 아니라, 전적으로 찬양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될 수도 없는 복합적인 양상의 포착이다. 확실히, 과학기술은 인간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단인 동시에 인간의 잠재성을 제한된 영역으로 옭아매는 위협으로 여겨질 소지가 충분하다.
    ꡔ제 49호 품목의 경매ꡕꡔ인조인간은 전기 양을 꿈꾸는가?ꡕꡔ터미네이터 2ꡕ는 과학기술은 이중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ꡔ제 49호 품목의 경매ꡕ의 요요다인은 ꡔ터미네이터 2ꡕ의 사이버다인으로 연결된다. 요요다인에서 사이버다인으로의 발전은 지난 사반세기 동안 진행된 과학기술력의 급격한 신장을 상징한다. ꡔ터미네이터 2ꡕ로부터 과학기술력의 신장에 비례하여 과학기술의 문제를 조망하고 해결하는 것이 그만큼 어려워질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컴퓨터, 로켓, 영화 등은 모두 유동적 리얼리티를 정적인 점으로 치환하는 작동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계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의해 제작된 것들이라는 점이 기억될 필요가 있다. 인간의 관점이 기계의 작동원리에 이미 투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기계 자체가 아니라 과학기술에 투사되어 있는 인간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기계의 한계는 인간의 한계에서 연유하는 셈이며, 따라서 기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남으로써만 가능하게 된다고 하겠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SF 소설이나 영화가 보여주듯이,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기계가 더 이상 인간의 도구로만 머물지 않고 인간과 사랑․우정을 나누거나 동일한 수준에서 맞설 수 있는 지위로까지 올라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해체적 방법론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인간과 기계 사이의 이분법의 와해에 초점을 맞추는 있는 새로운 경향이 대두하게 되었다. 이들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남과 여, 어른과 아이, 백인과 유색인의 이분법의 허구성이 노정되어 그 이분법의 확정성이 해체되었듯이, 인간과 기계 사이의 이분법도 폭력적 서열이 와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핀천 연구가이자 과학기술 문제 전문가인 헤일즈(N. Katherine Halyes)는 이러한 입장 대변하는 대표적인 학자이다. 이러한 관점이 기계와 과학기술의 문제에 함축된 주요한 면모를 포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계에 근원적으로 내재된 인간중심주의를 간과함으로써 인간과 기계 사이의 복합적, 역동적 관계를 놓치고 있다고 하겠다. 기계는 그것이 아무리 첨단 과학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인간 의지와 욕망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만든 인간의 관점이 이미 내재적으로 투사되어 있게 마련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작품의 이해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과학기술이 텍스트에 깊이 배어있는 핀천의 작품 특히 ꡔ제 49호 품목의 경매ꡕ와 이러한 문제의식을 SF 장르로 이어간 ꡔ인조인간은 전기 양을 꿈꾸는가 ꡕ와 ꡔ터미네이터 2ꡕ를 분석하는 본 연구에 의해 인간과 기계의 인위적 이분법의 위험성이 시사되고, 인간과 기계 양자를 동시에 포착함으로써 그 역동적 관계가 구체화될 수 있다면, 문학에 형상화된 과학기술의 주제를 한 차원 높게 진척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본 연구에 의해 과학기술을 일방적으로 비판하거나 터무니없이 찬양하는 대신 과학기술의 양면성을 이중적으로 파악하면서 과학기술의 근원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고, 이를 토대로 과학기술이 새롭게 조망되고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과 맺는 관계의 복합적 양상이 효과적으로 제시될 수 있다면, 이러한 성과는 과학기술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 색인어
  • 과학기술, 이항대립, 인간, 기계, 유동적 리얼리티, 정지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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