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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Projects Detailed Information

세르비아니즘과 몬테네그로 독립 문제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gram 신진교수연구지원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Project Number 2004-003-B00178
Year(selected) 2004 Year
Research period 1 Year (2004년 07월 01일 ~ 2005년 07월 01일)
chief of research 김철민
Executing Organization 한국외국어대학교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Research Summary
  • Goal
  • 본 연구 과제의 목적은 세르비아니즘의 시각에서 바라 본 몬테네그로 독립문제를 현지에서 입수한 여러 1차 문헌들과 실증적 자료들을 통해 연구하는데 있다.

    1992년 4월 세르비아 공화국과 함께 신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구성하였던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 내전의 주범으로 세르비아가 지목된 이후로 같은 연방에 소속해 있다는 이유로 수 년동안 국제 사회로부터 가혹한 경제 금수조치를 받아야만 했었다. 또한 코소보에서 발생한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간의 민족 갈등을 계기로, 1999년에 일어난 코소보 전쟁에서 미국을 위시한 NATO군의 무차별적인 군사 공격과 국제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강요당해야 만했다. 이후,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의 연방을 파기하고 독립의 길을 선택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를 위한 여러 경제, 정치적인 조치를 단행해 나감으로서 또 다른 발칸유럽 분쟁의 불씨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이유가 몬테네그로의 독립을 향한 행보에 대해 국제 사회가 주목을 하고 있는 이유이다.

    무엇보다도 1990년대 초부터 말까지 계속해서 이어진 유고슬라비아 지역의 내전과 전쟁 그리고 몬테네그로 독립문제 대두는 국제사회에 이 지역을 주요 국제분쟁 지역으로 낙인 시켰다. 이후 서구의 여러 학자들은 이 지역내 민족갈등의 원인과 분쟁 요인으로서 극단적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한 형태인 세르비아니즘을 지목하여 왔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 지역 특히 세르비아의여러 학자들은, 세르비아인들에게 있어 세르비아니즘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민족의 생존권을 지켜주기 위한 주요 이념으로써 발전된 것이라 강조하면서, 유고슬라비아 지역에 대한 문화, 역사적 배경을 기초로 세르비아니즘 그리고 이에 따른 민족간 갈등과 분쟁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제기를 바탕으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현지에서 입수한 세르비아니즘 관련 이론들과 역사에 대한 자료 그리고 몬테네그로 독립문제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과 이론들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본 연구가 21세기 현재까지도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는 민족간 갈등이나 분쟁의 요인을 현지 학자들의 시각에 바탕을 두고 다룰 것이라는 점에 있어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 Expectation Effectiveness
  • * 본 연구과제 결과의 학문적 파급효과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세르비아니즘의 시각에서 몬테네그로 독립문제를 다루고자 한 본 연구과제는,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세르비아니즘과 발칸유럽 분쟁에 대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1차 문헌들을 토대로 한 연구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세르비아니즘에 대한 연구를 심층 깊게 다루는 최초의 시도가 될 것이다.
    둘째, 국내 최초로, 현재 이 지역의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는 몬테네그로 독립문제를 연구 사례로 선택함으로써, 국내 학계의 발칸유럽에 대한 연구 확대 그리고 유럽내 소수 민족문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셋째, 이와 더불어 현지 자료 조사와 해석등을 통해 지금까지 막연히 2차 문헌들을 통해서 세르비아등 유고슬라비아 지역내 분쟁들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소개되어 왔던 여러 국내외 문헌들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며, 발칸유럽내 여러 민족 갈등에 대한 앞으로의 국내 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과제를 위해 오랜 동안 수집해왔고 또 앞으로도 수집하게 될 여러 연구자료들과 연구 성과물들은 이들 지역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복잡한 민족문제와 내전 그리고 현지 언어 습득과 현지 조사의 현실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문 후속 세대 연구자들과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 본 연구과제의 연구 결과 활용계획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까지의 연구를 바탕으로 여타 다른 발칸유럽의 소수 민족들의 문화와 형성 배경 그리고 그 특징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데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무엇보다도 교육 현장에서 다변화된 사이버 세대를 맞이해, 수집한 자료들과 성과물들을 동영상과 더불어 파워포인트(Power Point)로 제작해 강의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현재 실시하고 있는 '발칸유럽 사회와 문화' 관련 사이버 강의에 본 연구과제의 자료들과 연구 성과물들을 첨가함으로써 학생들 스스로의 예습과 복습을 유도할 계획이다.
  • Summary
  • 본 연구주제인 '세르비아니즘과 몬테네그로 독립문제'는 내용면에서 대략적으로 크게 2개의 장으로 나누고, 두 번째 장은 대략적으로 역사적 시기에 따라 4개의 절로 나누어 연구 될 것이다.

    1. 우선 첫 번째 장에는 몬테네그로 독립을 둘러싼 세르비아인들과 몬테네그로인들간의 분쟁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 이론 작업으로 세르비아니즘의 기원과 그 특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세르비아니즘은 중세 세르비아 왕국과 당시 최대 전성기였던 스테판 두샨 왕(Kralj i Car Stefan Uros 4 Dusan, 1331-1355)시절의 영토·문화적 확대에 기초한 역사적 당위성을 그 기원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기원을 기초로 세르비아니즘은 나폴레옹 혁명전쟁의 여파로 19세기 중엽 이후 발칸유럽에 유입된 민족주의가 세르비아 민족들 사이에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정착되고 이와 함께 세르비아 근대 민족국가가 수립되면서 세르비아 민족주의 표출의 한 형태로써 발전되기 시작했다. 이 부분에서는 특히 세르비아 현지 학자들의 견해를 중심으로 세르비아니즘의 형성 과정과 배경 그리고 이론에 대해 분석하게 될 것이다.

    2. 두 번째 장에서는 앞서 연구된 세르비아니즘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바탕으로 몬테네그로 독립문제를 둘러싼 세르비아인과 몬테네그로인들간의 갈등과 분쟁을 역사적 순서에 따라 정리하게 될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특히 근대 이후 문테네그로 독립문제에 대해 당시 세르비아니즘에 젖어 있던 세르비아인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몬테네그로에 세르비아니즘을 확대해 가려 했는지, 반면 몬테네그로인들은 이러한 세르비아니즘 확대에 어떻게 저항하였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에 대해 현지 학자들의 주장들을 서로 비교해 설명하도록 할 것이다.

    2.1) 우선, 첫 번째 절에서는 근대시대부터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때까지 제기되었던 몬테네그로 독립문제와 이를 저지하려는 세르비아인들의 갈등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 제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몬테네그로는 니콜라왕을 중심으로 독립왕국을 유지시켜왔다. 하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이후 몬테네그로 왕국은 세르비아 중심의 최초 남슬라브족 왕국이었던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Kraljevina SHS)'하로 강제 편입되게 된다. 이후 몬테네그로는 2차 세계대전이전까지 세르비아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티토를 중심으로 한 파르티쟌 세력이 승리한 이후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하에서 6개 구성 공화국(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그리고 마케도니아 공화국)중 하나인 몬테네그로 공화국으로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2.2) 두 번째 절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붕괴 과정속에 세르비아와 함께 신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구성하게 되면서 겪게되는 여러 갈등과정을 소개하게 될 것이다.
    :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이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 위기와 더불어 몬테네그로는 매우 불확실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특히 1990년에 있었던 다당제 선거가 실시된 이후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해체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고, 이에 따라 몬테네그로도 자신의 진로를 결정지어야만 했다. 당시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의 회유와 불확실한 국제적 상황으로 인해 세르비아와 함께 1992년 신유고슬라비아 연방 형성에 가담하게 된다. 하지만 신유고슬라비아 연방에 가담한 이후 몬테네그로는 연방 구성국이었던 세르비아가 자신의 주도로 일으킨 유고내전(슬로베니아 내전과 크로아티아 내전)과 보스니아 내전 그리고 이후 1999년 3월에 일어난 코소보 전쟁등으로 인해 세르비아와 함께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로부터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외교적 고립을 받아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서구로부터의 고립은 몬테네그로인들에게 세르비아와의 연방형성과 유지에 대한 회의를 다시 한번 증폭시키게 하였고, 이러한 국내 분위기 속에서 1999년 8월 몬테네그로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된 밀로 쥬카노비치(Milo Dukanovic )대통령과 그 수뇌부는 코소보 전쟁이 끝난 직후 몬테네그로 독립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에 들어가게 된다.

    2.3) 세 번째 절에서는 1999년 독립문제 제기이후 2000년 10월 세르비아의 민주화 혁명때까지 몬테네그로의 독립문제가 어떻게 전개되었고, 세르비아의 반응은 어떠했는지에 대해 연구하게 될 것이다.
    : 몬테네그로 독립문제는 당시 세르비아의 실질적 권력자였던 슬로보단 밀로쉐비치(Slobodan Milosevic )의 세르비아니즘의 확대에 반발하였던 몬테네그로 대통령 밀로 쥬카노비치를 중심으로 제기되게 된다. 우선 쥬카노비치 대통령은 세르비아 정부에게 국명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아닌 '몬테네그로-
  • Korean Keyword
  • 밀로 쥬카노비치,몬테네그로,세르비아니즘,슬로보단 밀로쉐비치,세르비아,코소보
  • Research Achievements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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