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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선린정책"과 멕시코의 석유국유화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박사후연수과정지원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04-037-A00039
선정년도 2004 년
연구기간 1 년 (2004년 11월 01일 ~ 2005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박구병
연구수행기관 서울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멕시코혁명과 혁명 후 체제의 변화과정을 다룬 기존 연구서들과 여러 일차 사료를 바탕으로,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선린정책"(Good Neighbor Policy)으로 대변되는 1930년대 미국의 외교정책이 이웃 나라 멕시코의 정치적 변화, 특히 석유산업이라는 기간 산업의 국유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이 시기 미국 외교정책의 특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여타 시기 미국과 주변국 사이의 국제관계와 비교, 고찰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과연 "북쪽의 거인"의 그림자 속에 묻힌 시련의 땅 멕시코가 "혁명의 절정"에 도달한 1930년대 말에도 이전과 비슷한 정치적 격랑을 겪게 되는지 살펴보면서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집권기의 미국과 까르데나스의 집권기 멕시코 사이의 국제관계의 특성을 검토하려는 것이 이 연구의 첫 번째 목적이다. 1930년대 양국의 관계는 "멕시코혁명의 완결" 또는 "새로운 중앙집권적 체제의 출발"로 여겨지는 라사로 까르데나스의 혁명 정책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 그러므로 1930년대 미국과 멕시코의 국제관계와 멕시코 현대사의 분수령을 이루는 정치적 변동을 연결 지어 넓은 맥락에서 파악하려는 것이 본 연구의 두 번째 목적이다.
    멕시코 현대사 전공자의 관점에서 볼 때, 1910년이래 멕시코가 겪은 "영원한 혁명"은 큰 관심거리이다. 까르데나스가 추진한 석유 및 철도회사의 국유화정책으로 공고하게 된 국가주도 관리체제는 1980년대 말에 이르러 급속히 탈각되었는데, 이런 측면에서 1980년대 말이래 멕시코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극복하려 한 카르데나스의 질서, 즉 국가주도의 관리경제체제의 형성을 1930년대 미국-멕시코의 국제관계 속에서 찾아보려는 것이 본 연구의 세 번째 목적이다.
  • 기대효과
  • 무엇보다 본 연구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국내의 이해와 관심을 제고함으로써 그동안의 특정 지역 편중 연구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 개선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중남미 또는 라틴아메리카라고 뭉뚱그려지는 일종의 광역 지명에 대한 비판적 검토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본 연구는 또한 세계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 증진에 기여할 것이다. 세계화는 단지 1980년대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열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지금도 국제적인 세력관계에 따라 유동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데도 연구자들의 역사적인 접근은 아직도 미비한 편이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세계화란 강대국에서 약소국으로의 일방적인 강제가 아니라 다층적인 과정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본 연구는 생소한 지역에 대한 소개를 넘어 서구 중심주의와 보편주의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우리 사회의 위계적, 서열적 사고방식을 극복하려는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의 물결이 몰아친 뒤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지리적인 거리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낯선 실체로 남아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에 좀 더 깊은 관심을 촉구할 것이다. 식민 시대를 경험하고 "저개발의 기억"을 간직하는 등 우리와 역사적 유사성을 지녔을 뿐더러 문화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동일한 어려움을 겪었을 법한 이 지역에 대한 연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본 연구는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실증적인 사례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최근 미국과 멕시코 양국의 관계는 세계화의 한 단면이기도 하거니와 동시에 1980년대 후반부터 가속된 경제적 지역주의나 지역통합, 즉 개방적인 세계 경제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텐데, 본 연구는 그 역사적 뿌리를 캐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 연구는 한국 현대사의 경험, 특히 늘 일방적인 시혜, 강제 및 종속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해방 후 한-미 관계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시사적일 수 있다.
  • 연구요약
  • 본 연구자는 박사후 연수과정을 통해 1930년대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제관계가 어떻게 멕시코 내부의 정치적 변화를 야기했는지 검토함으로써 더 심층적이고 폭넓은 차원의 지역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본 연구자가 다루려는 국제관계는 꽤 익숙한 주제이지만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관계는 여러 모로 독특하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제1세계와 제3세계가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특이한 사례, 그것도 무려 3,200km(2000mile)에 이르는 기나긴 국경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양자의 관계는 "불균등하면서도 결합된 발전"(uneven and combined development)의 유용한 실례(實例)가 될 것이다. 또한 불균등한 비대칭 속에서 강대국의 사정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멕시코의 지도자 까르데나스의 외교 전략을 고찰함으로써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일정한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본 연구의 핵심적인 질문은 바로 1790년대에서 1930년대에 이르는 일종의 "제국의 시대"(The Imperial Era)에, 특히 1898년 전쟁 이후 미국 정부가 견지했던 적극적 개입정책과 그에 따른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사이의 비대칭적 국제관계가 어떤 연유로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등장과 더불어 표변했는가 라는 점이다. 더욱이 1930년대 말 긴장과 조정의 국면을 거친 뒤 1940년대 말에 양국 관계가 '원상복귀'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루즈벨트의 집권기는 매우 특이한 시대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추론(The Roosevelt Corollary to the Monroe Doctrine)과 뒤이은 1910-20년대 "곤봉 및 달러 외교"의 논리를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미국의 뒷마당"이라는 일종의 원죄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제한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순응 또는 반발의 사례를 검토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외견상 판이한 모습을 보였던 "선린정책"이 어떤 맥락에서 도입되었는가 살펴볼 것이다. 또한 미국 내부의 정책 형성과정과 그것을 둘러싼 갈등을 탐색하고 미국의 정치적 결정이 멕시코의 정치적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과정에도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아울러 본 연구는 "선린정책"이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미묘한 시기 미국과 멕시코 양국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특히 멕시코에서 "혁명적 민족주의의 정점"으로 받아들여지는 까르데나스의 외국계 정유회사 유정 몰수(1938년 3월 18일)와 석유국유화 추진 과정에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관심을 쏟고자 한다.
    이를 통해 루즈벨트와 그 참모들의 “선린정책”은 이전의 개입 관행과 과연 어느 정도 다른 것이었는지, 본질에선 다를 바 없는 미국 주도의 아메리카 체제의 연장이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달리 말해 “선린정책”은 과거 관행으로부터의 결별인가 아니면 그것의 확대 재편인가? 과거 제국주의적 코드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환경 변화에 따른 전술을 채택한 것인가?
  • 한글키워드
  • 포르피리오 디아스,라사로 까르데나스,멕시코혁명,프랭클린 D. 루즈벨트,선린정책,석유국유화,1938년 3월 18일,스탠다드 오일 회사,먼로우 독트린,코델 헐,조셉스 다니엘스,멕시코 국영 정유회사(PEMEX),신자유주의적 전환,사투르니노 세디요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1898년 전쟁 이후 미국 정부가 견지했던 적극적 개입정책과 그에 따른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사이의 비대칭적 국제관계가 어떤 연유로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등장과 더불어 변모했는가라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멕시코에서 '혁명적 민족주의의 정점'으로 받아들여지는 라사로 카르데나스(Lázaro Cárdenas)의 외국계 정유회사 유정 몰수(1938년 3월 18일)와 석유국유화 추진 과정에서 비롯된 석유 위기 국면에 루즈벨트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면서 '선린정책'의 틀을 고수했는지 살펴보았다. 이런 와중에서 루즈벨트 행정부는 예의 개입 정책을 채택하지 않고 '선린정책'의 틀을 고수했다. 이 석유 위기의 국면은 1954년까지 지속되는 미국의 대 라틴아메리카 사태 비개입 관행을 유지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루즈벨트 행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미묘한 시기에 외견상 '선린정책을 고수함으로써 외교 정책 선언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30년대 말 긴장과 조정의 국면을 거친 뒤 1940년대 말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는 20세기 초의 비대칭적 관계로 원상복귀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루즈벨트의 집권기는 미국 외교사에서 매우 특이한 시대로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루즈벨트 정부의 '선린정책'은 과거 관행으로부터의 결정적 단절이라기보다는 그것의 개편, 달리 말해 과거 구사한 노골적인 제국주의적 관행을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바꿔 구사한 측면이 있었다.
  • 영문
  • As exemplified in a popular title 'the Mexican Revolution, 1910-1940,' many works have claimed that after 1940, the pivotal year, the institutionalized Revolution began to change its preceding radical orientation. By contrast, this article intends to explore coherent trends of reinforcing one-party rule that passed through the period between the late 1930s and the early 1940s, a more moderate and consolidating phase of Cardenas' decade.
    This article shows how Franklin D. Roosevelt's Good Neighbor policy affected the Latin American country's internal affairs by paying special attention to the Mexican expropriation policy of foreign oil wells and companies in March 1938. By 1919 Mexico was the world's second largest producer of petroleum. American, British, and French companies had all contributed huge amounts of capital to the effort of developing Mexican oil fields. The multinational oil enterprises that operated in Mexico soon came under severe criticism for their treatment of workers and their failure to adhere to Mexican laws and pay some Mexican taxes. In general, the workers were considered grossly underpaid, precipitating a large number of strikes in the early parts of the century. By the 1930s, the situation had reached a point of crisis. The government could no longer deal with the two unwavering sides of the labor issue. On March 18, 1938, the Mexican President Cardenas issued a decree that effectively nationalized the entire domestic petroleum industry. Despite the central issue of wages, the newly formed Mexican National Oil Company, Pemex was forced to lower wages across the board in the years following the confiscation.
    Good Neighbor policy became intimately involved with the wartime situation especially after summer of 1939. Because of its geographical proximity, vast natural resources, and a lack of appropriate protection of unguarded shores, unprotected oil fields and mines, Mexico became a main strategic concern for the U.S. defense project. It was plausible that the war would have a more direct impact on Mexico than on any other Latin American country. From the U.S. perspective, this possibility was very significant for several reasons: Mexico shared southern border with the U.S.; Mexico was the second largest Latin American country in population; Mexico had more questions at issue with the U.S. than any of others, especially culminated in oil expropriation dispute; finally other Latin American countries considered the U.S. approach toward Mexico as a yardstick of the reliability of the Good Neighbor policy.
    In addition, Mexico had a historical precedence of being victimized by the French invasion in 1861 and was the center of German espionage in Western Hemisphere during the World War I.
    The Cardenas regime was able to strengthen at least symbolically the economic independence by means of the expropriation of oil industry that was formerly controlled by foreign companies and took advantage of the wartime situation to avoid overall boycott of the Mexican oil products before the end of his and Roosevelt's presidential term.
    Before the Japanese sudden attack on Pearl Harbor in December of 1941, economic cooperation became a more important issue and the Mexican oil crisis seemed to be unravelled. In sum, Cardenas skillfully took advantage of the wartime situation to avoid overall boycott of the Mexican oil products after the expropriation.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As exemplified in a popular title 'the Mexican Revolution, 1910-1940,' many works have claimed that after 1940, the pivotal year, the institutionalized Revolution began to change its preceding radical orientation. By contrast, this article intends to explore coherent trends of reinforcing one-party rule that passed through the period between the late 1930s and the early 1940s, a more moderate and consolidating phase of Lazaro Cardenas' decade.
    This article shows how Franklin D. Roosevelt's Good Neighbor policy affected the Latin American country's internal affairs by paying special attention to the Mexican expropriation policy of foreign oil wells and companies in March 1938. By 1919 Mexico was the world's second largest producer of petroleum. American, British, and French companies had all contributed huge amounts of capital to the effort of developing Mexican oil fields. The multinational oil enterprises that operated in Mexico soon came under severe criticism for their treatment of workers and their failure to adhere to Mexican laws and pay some Mexican taxes. In general, the workers were considered grossly underpaid, precipitating a large number of strikes in the early parts of the century. By the 1930s, the situation had reached a point of crisis. The government could no longer deal with the two unwavering sides of the labor issue. On March 18, 1938, the Mexican President Cardenas issued a decree that effectively nationalized the entire domestic petroleum industry. Despite the central issue of wages, the newly formed Mexican National Oil Company, Pemex was forced to lower wages across the board in the years following the confiscation.
    Good Neighbor policy became intimately involved with the wartime situation especially after summer of 1939. Because of its geographical proximity, vast natural resources, and a lack of appropriate protection of unguarded shores, unprotected oil fields and mines, Mexico became a main strategic concern for the U.S. defense project. It was plausible that the war would have a more direct impact on Mexico than on any other Latin American country. From the U.S. perspective, this possibility was very significant for several reasons: Mexico shared southern border with the U.S.; Mexico was the second largest Latin American country in population; Mexico had more questions at issue with the U.S. than any of others, especially culminated in oil expropriation dispute; finally other Latin American countries considered the U.S. approach toward Mexico as a yardstick of the reliability of the Good Neighbor policy.
    In addition, Mexico had a historical precedence of being victimized by the French invasion in 1861 and was the center of German espionage in Western Hemisphere during the World War I.
    The Cardenas regime was able to strengthen at least symbolically the economic independence by means of the expropriation of oil industry that was formerly controlled by foreign companies and took advantage of the wartime situation to avoid overall boycott of the Mexican oil products before the end of his and Roosevelt's presidential term.
    Before the Japanese sudden attack on Pearl Harbor in December of 1941, economic cooperation became a more important issue and the Mexican oil crisis seemed to be unravelled. In sum, Cardenas skillfully took advantage of the wartime situation to avoid overall boycott of the Mexican oil products after the expropriation.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는 멕시코 석유 국유화 조치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을 중심으로 미국의 20세기 대 라틴아메리카 외교사 가운데 독특한 국면이라 할 수 있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선린정책'의 실제를 살펴보았다. 멕시코에서 '혁명적 민족주의의 정점'으로 받아들여지는 라사로 카르데나스(Lázaro Cárdenas)의 외국계 정유회사 유정 몰수(1938년 3월 18일)와 석유국유화 추진 과정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세계를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이런 와중에서 루즈벨트 행정부는 예의 개입 정책을 채택하지 않고 '선린정책'의 틀을 고수했다. 이 석유 위기의 국면은 1954년까지 지속되는 미국의 대 라틴아메리카 사태 비개입 관행을 유지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루즈벨트 행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미묘한 시기에 외견상 '선린정책을 고수함으로써 외교 정책 선언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루즈벨트 정부의 '선린정책'은 과거 관행으로부터의 결정적 단절이라기보다는 그것의 개편, 달리 말해 과거 구사한 노골적인 제국주의적 관행을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바꿔 구사한 측면이 있었다.
    무엇보다 본 연구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국내의 이해와 관심을 제고함으로써 그동안의 특정 지역 편중 연구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 개선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1997년 말 IMF 구제 금융과 혹독한 구조 조정의 한파가 몰아친 후 유사한 난국의 극복 사례를 알아보기 위해 멕시코의 경험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었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했다. 이는 줄기차게 선진국 대열의 진입을 염원해온 국가적 염원의 불가피한 결과였다고 하더라도 비서구 지역에 대한 실용적 접근은 물론 역사적인 연구는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 본 연구는 우리에게 하나의 당위로 다가온 세계화의 구체적인 사례를 확보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세계화의 물결이 몰아친 뒤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지리적인 거리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낯선 실체로 남아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에 좀 더 깊은 관심을 촉구할 것이다. 세계화는 이미 국가적 현안으로 떠올랐던 만큼 꽤 많은 연구자들이 분석한 바 있으나, 그 복잡하고 유동적인 메커니즘에 대해 체계적인 이해에 도달했다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세계화가 경제적 차원은 물론이요 정치·문화적 차원까지 수반하는 현상인데도, 연구자들이 종합적인 접근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화는 단지 1980년대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열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지금도 국제적인 세력관계에 따라 유동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데도 연구자들의 역사적인 접근은 아직도 미비한 편이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세계화란 강대국에서 약소국으로의 일방적인 강제가 아니라 다층적인 과정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본 연구는 1930년대 말 멕시코의 라사로 카르데나스 정부의 급진적인 대응이 강대국 미국의 팽창 전략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켰는지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본 연구는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가 늘 일방적인 지배-종속의 관계에 불과한 것인지 살펴보면서 이를 통해 세계화에 대한 바람직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또한 본 연구는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실증적인 사례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최근 미국과 멕시코 양국의 관계는 세계화의 한 단면이기도 하거니와 동시에 1980년대 후반부터 가속된 경제적 지역주의나 지역통합, 즉 개방적인 세계 경제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텐데, 본 연구는 그 역사적 뿌리를 캐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 연구는 한국 현대사의 경험, 특히 늘 일방적인 시혜, 강제 및 종속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해방 후 한-미 관계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시사적일 수 있다. 본 연구가 다루는 카르데나스의 사례는 약소국 멕시코가 ‘독수리의 발톱’ 아래에서 홀로 서기를 모색했을 때 과연 어떤 결과가 빚어졌는지, 강대국의 통제 아래에서 어느 정도까지 급진적인 정책의 추진이 가능할지 그 한계에 대해 이야기해 줄 것이다. 최근 이라크 전쟁이라는 미묘한 상황에 처한 우리는 약소국 멕시코가 제2차 세계 대전의 국면 속에서 어떤 정책을 통해 국익을 증진시켰는지, 단기적 혹은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다양한 각도의 물음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를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기본 인식틀을 마련해 줄 것이다.
  • 색인어
  • 프랭클린 루즈벨트, 선린정책, 멕시코, 라사로 카르데나스, 석유국유화, 스탠더드 석유 회사, 조셉스 대니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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