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치 않게 내년 2005년도는 우리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산문가(散文家)로 손꼽히는 연암 박지원(燕巖 박지원: 1737-1805)의 서거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간 박지원에 대한 연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수행되었다. 첫째는 문학, 그 가운데서도 한문학(漢文學) 연 ...
우연치 않게 내년 2005년도는 우리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산문가(散文家)로 손꼽히는 연암 박지원(燕巖 박지원: 1737-1805)의 서거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간 박지원에 대한 연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수행되었다. 첫째는 문학, 그 가운데서도 한문학(漢文學) 연구의 일환으로 다뤄져왔거나, 둘째 역사학 분야의 실학(實學) 연구, 특히 북학파(北學派)의 이용후생(利用厚生)론을 중심으로 한 근대화(맹아)론을 뒷받침하는 차원에서 주로 이뤄져왔다. 1930년대 이후 본격화된 박지원에 대한 연구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근 70년 동안 ‘문학과 사상’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 와중에 그의 경세론(정치·경제·사회론)은 부분적으로 다뤄졌거나 혹은 부차적으로 언급되기에 십상이었다. 즉 박지원의 저술에 표현된 정치(학)적 사유에 대해 기존 국학 연구자들이 부분적으로 연구필요성을 제기하였지만, 정치학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박지원의 저술(<열하일기>를 위시한 문학작품들) 속에 나타나는 그의 정치적 인식을 다룬다.
본론에서는 성제(城制)와 벽돌 사용 등 문물제도를 서술한 <열하일기> 초입의 「도강록」, 군사적(국방적) 관점에서 만주 지역의 지리와 역사를 다루는 「일신수필」, 청나라 입장에서 티벹 및 조선에 대한 국제 정책을 서술하고 있는 「행재잡록」과 「반선시말」, 「황교문답」 , 그리고 중국의 관점에서 조선을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관점에서 관찰하고 있는 「동란섭필」, 북경의 지리서인 「황도기략」, 인문지리서인 「앙엽기」, 중국의 대북방정책을 관찰하고, 이를 차후의 대조선 정책 탐구로 전환하는 「막북행정록」 등을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독해한다.
그 결과 <열하일기>는 당시 중국의 정세, 문화, 과학, 지리, 국제정책, 국내정책을 기술한 ‘국제 정치경제 정보자료집’으로도 충분히 독해 가능한 텍스트임이 밝혀진다.
국제정치사상가로서 연암의 핵심은 당시 세계를 바라보는 눈(眼)에 있다. 나는 박지원의 '국제정치적 안목'을 '겹눈(重瞳)'이라는 개념을 통해 구체화하였다. 예컨대 박지원의 <열하일기> 서술 태도는 ‘북벌과 북학’이 교차하는 이중적 안목이 함께 존재하며, 이 결과 그의 저술 작업(곧 북학)은 중국의 정세에 대한 정탐과 분석(북벌)으로 이루어지며, 작가(박지원)는 일종의 ‘첩보원’으로서의 관점이었다. 특히 「동란섭필」을 위시한 후반부의 내용은 조선의 입장에서 중국을, 중국의 입장에서 조선을, 중국인의 입장에서 중국을 관찰하는, 시각을 전변시켜 가면서 상황을 파악하는 ‘다시각’(多視覺)적 국제정세 정찰보고서로서의 면모가 현저함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