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가 이미지 존재론을 전개할 수 있는 것은 미시적 세계 이해에 대한 종래의 미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감성론(sensibilité)의 관점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베르그송의 이미지란 의식 존재 앞에 출현하는 세계상을 지성적 인식 도구의 틀로 파악해야 하 ...
들뢰즈가 이미지 존재론을 전개할 수 있는 것은 미시적 세계 이해에 대한 종래의 미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감성론(sensibilité)의 관점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베르그송의 이미지란 의식 존재 앞에 출현하는 세계상을 지성적 인식 도구의 틀로 파악해야 하는 대상으로 분리되기 이전의 색채와 형태를 지닌 감각적 덩어리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들뢰즈의 감성론에 대한 해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철학사에서 감각의 영역이 사유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미학이 학문의 영역으로 성립한 이후이며, 미학사의 초기에 우리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통해서 미적 판단이란 개념적 법칙을 벗어나는 비개념적인 측면을 본질로 하는 영역임을 받아들였다. 칸트의 ‘숭고die Erhaben’ 개념이 미적 판단이 결국 우리의 인식 능력에 대한 한계를 드러내고, 개념적 방식으로 파악되지 않은 감각적 세계를 대면하게 한다는 데 들뢰즈와 현대 미학이론이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개념적 형식에 근거한 표상적 사유의 무능력에 대한 감각의 복권은 전통적 인식 방식에 대한 전복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 방식을 보여주는 영화적 사유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인식론적 해명이 된다. 특히 이와 관련해서 들뢰즈는 라이프니츠를 재해석함으로써 그 방법론을 설정하는데, 라이프니츠의 미분법의 원리로 인식의 발생과정을 설명함로써 미분이 갖는 형이상학적 의미들에 천착한다. 들뢰즈는 미분을 통해 감각이 모호한 것에서 발생해서 명석한 것이 된다고 설명하는데, 이 점이 데카르트의 명석 판명함을 따르는 바움가르텐의 미학과는 다른 길을 들뢰즈에게 열어준다. 들뢰즈의 해석에서 명석-모호함은 그 자체로 감각의 본성으로 긍정되고 다른 인식능력들과 비교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감각의 명석함은 결핍이 아니라 충만한 실재성의 관점에서 사유될 수 있다.
들뢰즈는 이미지 존재론을 통해 영화 이미지를 철학적 사유의 근본 대상으로 만든다. 이것은 자신의 감각론의 관점에서 영화 이미지에 접근하기 때문인 동시에 들뢰즈가 이어받고 있는 베르그송의 이미지 존재론의 배경이 전통 철학의 이원론적 대립에서 벗어나는 전략을 취하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은 『물질과 기억』에서 존재론적으로 가장 먼저 존재하는 것은 바로 이미지이며, 의식이나 사물은 차후에 구성된 것이라는 관점을 취한다. 들뢰즈는 베르그송의 실재의 이해와 그 결과인 이미지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존재론과 영화 철학에서 이어받고 있다. 베르그송은 세계를 이미지들의 체계로 놓음으로써 물질적 이미지와 신체적 이미지의 관계를 ‘행동’이란 관점에서 새롭게 정립한다. 베르그송을 따라 우리는 생명, 정신, 물질 등의 모두 존재자들을 이미지로 부를 수 있고, 이때 이미지들은 정해진 자연법칙에 준해 서로 작용, 반작용을 되풀이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물질과 정신에 대한 전통적인 철학사의 입장을 유보하고, 우리에게 나타난 그대로의 즉자적 세계를 이미지라고 가정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무엇보다 이미지 존재론은 정신과 신체, 주체와 세계, 의식과 대상, 양과 질 등의 이분법 이전의 변화하는 실재로서의 직접적 세계를 드러내 놓는다. 변화하는 세계의 최소 담지자로서의 이미지는 세계를 공간이 아닌 시간의 함수로 파악하도록 한다. 따라서 이미지 존재론을 통한 즉자적 세계의 드러남은 전통적인 방식의 이원론에 대한 극복인 동시에, 존재에 대한 확정적이고 완결된 이해를 방해하는 변화하는 미시적 세계를 근원적 존재의 양태로 정립하게 해 준다. 이러한 이미지 존재론을 받아들이는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의 존재론은 잠재적 세계의 강도적 차이, 반복, 다양성을 그 구성요소로 하는 열린 체계로 정립된다.
이미지 존재론은 궁극적으로 세계를 ‘변화’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데 기반해 있고, 의식 존재가 변화를 실제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은 시간성의 관념의 형성으로 압축된다. 철학사에서 전통적으로 ‘시간’이 문제되어 온 것은 의식 존재가 변화를 다루는 방식을 통해 전체적인 세계 이해가 범주를 부여받기 때문일 것이다. 들뢰즈 역시 『차이와 반복』과 『시네마2: 시간-이미지』를 통해 시간론을 전개하고 있으며, 들뢰즈에게 주체·자아의 문제가 시간론과 관련해서만 정초되고 있다. 따라서 들뢰즈의 시간론에 관한 이해는 그의 주체·자아에 대한 해명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들뢰즈의 주체·자아의 문제는 『프루스트와 기호들』,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앙띠-오이디푸스』, 『카프카』, 『천 개의 고원』, 『푸코』, 『주름』 등의 여러 저작에서 사유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저작들이 다루는 대상이 보다 구체적인 현대사회의 문제로 근접해 가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