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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적에서 동반자로 :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적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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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명 인문사회분야지원심화연구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05-079-AS0011
선정년도 2005 년
연구기간 1 년 (2005년 09월 01일 ~ 2006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주경철
연구수행기관 서울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공동연구원 현황 박용희(서울대학교)
이용재(한국서양사학회)
성백용(서울대학교)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최근 한·중·일 3국은 ‘역사 전쟁’의 소용돌이에 점점 더 깊숙이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이 같은 사태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발걸음에 장애가 됨은 물론이려니와, 이제껏 쌓아온 선린우호 관계를 깨뜨리고 자칫 지역의 안정과 평화마저 위협하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국민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점점 더 긴밀하게 얽히고, 따라서 화해와 협력이라는 이상이 말 그대로 하나의 이상이기에 앞서 국가의 생존 전략으로 다가오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 같은 갈등의 해소는 진지한 성찰과 연구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취지에서, 오랜 동안 앙숙으로 지내다가 약 반세기 전부터 동반자 관계를 지향해온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는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사실 독일과 프랑스는 19세기 이래로 한 세기 반 동안 무려 네 차례나 전쟁을 치렀을 만큼 치열한 대립 관계를 유지했지만, 오늘날 유럽 통합의 두 견인차요 기둥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사이좋은 이웃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럼 가장 전형적인 이 숙적들을 오늘날 가장 모범적인 동반자로 변모시킨 동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물론 전후 평화에 대한 국제 여론이나 냉전 체제, 세계화 추세등 일련의 상황 요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열쇠는 역시 당사자들의 화해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양국의 역사학계, 지식인 사회, 시민사회 운동, 정치권, 이렇게 네 부문에서 펼쳐진 그러한 의지와 노력의 성공적인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것이다.
    먼저, 본 연구는 갈등의 시대에서 화해의 시대로 나아가면서 과거의 역사 속에서 문화적 교류의 기억과 지적 교감의 전통을 적극 발굴하고 재평가하려는 양국 역사학계 및 지식인 사회의 노력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본 연구는 이웃 국민들이 진정한 기억의 공동체요 문화의 공동체임을 자각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로소 화해로 가는 길이 열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확증하고자 한다. 아울러 본 연구는 국경을 초월하여 새로운 정체성과 연대를 추구한 시민사회 운동의 실천 사례에 주목할 것이다. 밑으로부터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반을 둔 시민사회 운동은 위로부터 강요되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맞서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하는 특별한 공간이거니와, 특히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접경 지역’에서의 시민사회 운동은 두 국민의 역사적·문화적 귀속성이 격렬하게 충돌했던 뼈아픈 경험을 딛고 독자적인 관용과 공존의 공간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을 끌 만하다. 끝으로, 본 연구는 라인 강 양편의 국민들 사이에 우애의 가교를 건설한 양국 정치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양국의 정치권이 보여준 진지하고 집요한 대화는 화해와 협력의 역사에 크고 작은 이정표들을 세워왔다. 특히 1963년 양국 정상이 서명한 이른바 ‘엘리제 조약’은 협상의 성사 과정, 논의된 쟁점 사안들, 향후의 결과 등 모든 면에서 두 해 뒤에 타결된 ‘한일협정’과 세밀히 비교 검토해볼 만한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거의 같은 시기에 국교를 정상화하고 40여년이 지난 오늘날 각각 ‘한일 우정의 해’와 ‘독일-프랑스의 날’을 선포한 동서양 두 이웃들의 현실이 이렇듯 다르게 나타난 이유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요컨대, 본 연구는 ‘역사 전쟁’에 대한 독일과 프랑스의 해결 노력이 다각적이고 현실적인 접근 방식에 입각해 있었고, 또 그랬기 때문에 눈부신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음을 구체적인 실례를 통해 보여줄 것이다. 이는 최근 한반도 주변에서 일고 있는 사태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데 귀중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노력은 이웃 국민들과의 갈등을 지혜롭게 극복해야 할뿐더러 타자를 향해 열린 정체성을 모색해야 할 현실의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름지기 타자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곧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타자와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우리 미래와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기대효과
  • 첫째, 본 연구는 동아시아에서의 역사 분쟁 해소를 위한 사회적 인식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일본의 교과서 기술 문제나 정치가들의 망언,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이 불거질 때마다 언론을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의 반응은 지극히 감정적인 성토로 일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가 보여주듯이, 이 같은 문제는 앞으로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며, 점점 더 심각한 현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합리적인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일반 대중의 성숙한 역사의식이 전제되어야만 할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이 반목과 대립으로 얼룩진 과거사를 뒤로하고 화합과 통합의 새 시대로 나아가기까지는 맹목적인 국가 이데올로기와 배타적인 민족사 서술의 폐해에 대한 자성이 큰 몫을 했다. 이 점에서 양국의 역사학계와 시민사회가 국민들의 화해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펼쳐왔는가, 그 결과 오늘날 양국 국민들의 서로에 대한 인식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는 작업은 동아시아의 역사 분쟁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본 연구는 균형 잡힌 역사 기술 및 의식의 함양에 기여할 것이다. 이웃나라의 진정한 화합은 두 국민이 오랜 교류의 전통을 지닌 기억의 공동체요 문화의 공동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때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한·중·일 세 나라 또한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려면 자국 문화의 독자성과 우수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풍부한 교류의 전통을 소중한 공동의 유산으로 자리매김으로써 국민들 사이의 유대 의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교류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재평가하려는 프랑스와 독일의 노력은 우리에게 귀중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셋째, 본 연구는 민간 교류의 활성화를 위한 교훈을 제시할 것이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서로를 잠재적 적성 국가로 인식하던 프랑스인들과 독일인들이 불과 20년 뒤에 이웃나라를 가장 신뢰할 만한 외국으로 생각하게 된 데에는 민간 차원의 활발한 교류가 큰 몫을 했다. 양국간 민간 교류의 사례는 다양한 방면에서 시민사회 단체들 사이의 협력과 연대를 촉진하는 데 본보기가 될 것이다. 아울러 본 연구는 학계, 문화계, 언론계 등의 다각적인 교류가 동아시아에서의 역사분쟁을 해소하는 지름길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넷째, 본 연구는 기억의 화해를 위한 문화사업의 진작에 기여할 것이다. 두 나라 국민들의 역사적 기억을 공동의 유산으로 삼기 위한 실천의 현장들, 이를테면 기념물과 유적지, 역사 관련 전시회, 기념 단체 및 사업, 특히 ‘기억의 시간과 장소들’을 기리기 위한 각종 행사와 축제 등은 한·중·일 세 나라의 중앙 및 지방 정부, 시민 단체들이 교류 협력 사업을 펴나가는 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다섯째, 본 연구에서 다루는 바 역사적 기억의 표상과 굴절, 이를 둘러싼 국민들 간의 갈등과 화해라는 주제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 만한 시사성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역사학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는 깊이를 겸비하고 있다. 또한 이 주제는 문자 기록만이 아니라 회화, 조각, 삽화, 만화, 영화 등 다양한 시각 자료에 의존하는 만큼 좀더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강의 방식 및 교재를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섯째, 본 연구는 국제적인 공동 연구 주제의 개발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불행한 역사적 경험이 오늘날까지 국민들 간의 진정한 화해에 걸림돌로 작용하거나 영토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분쟁이 세계 평화의 위협 요소로 잠재해 있는 국가들의 사례는 정치·외교학 못지않게 역사학의 매우 중요한 연구 대상이며, 또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에 이르기 위해서도 역사적인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는 국내 지역학 연구의 심화에 기여함은 물론이고 세계 여러 지역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토대로 한 국제적인 비교 연구의 주제로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주로 중세사 분야에 초점을 맞추어 과거 속에서 긍정적 기억들을 발굴하려는 양국 역사학계의 노력을 다룰 것이다. 본 연구는 양국간의 표면적인 갈등 이면에 오랜 역사를 거치며 두 국민들의 의식 속에 뿌리를 내린 갈등이 기억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억은 대부분 민족주의 시대의 국가 이데올로기에서 분비된 부산물이었다. 다시 말해 민족주의 시대의 현실에 비추어 자국 역사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것을 주변 국가와의 부단한 대결 과정으로 바라보는 편향된 역사관이 실제보다 과장되거나 때론 실재하지 않은 갈등의 기억을 빚어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는 19세기 초부터 뜨거운 쟁점이 되어온 민족사의 기원에 관한 논쟁과 아울러 대립과 투쟁의 기억들을 부각시켜온 기존의 역사 서술 관행에 대한 최근의 비판적 시각을 소개할 것이다. 또한 중세를 교류의 시대로 재조명하려는 양국 역사학계의 움직임을 통해서 편향된 기억들이 어떻게 수정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민족주의적 열정이 가장 격렬하게 분출했던 19세기 초에서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기간에 양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상대방의 문화를 동경했던 지식인들, 이른바 ‘프랑스 애호가’ 및 ‘독일 애호가’의 전통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전면적인 대결의 시대가 갈등의 기억들을 필요로 했다면, 새로운 연대와 통합의 미래는 대화와 교류의 기억들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지적인 대화와 교감의 역사에 주목함으로써 두 이웃나라가 궁극적으로 하나의 지적·문화적 공동체였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양국 지식인 사회의 노력을 살펴볼 것이다. 아울러 본 연구는 극한적 대결로 치닫던 시기에도 이렇듯 서로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잃지 않았던 지식인들의 전통이 살아 있었기에 거듭된 전쟁 때마다 거세게 밀어닥친 편견과 증오의 물결을 거슬러서 문화적 교류를 복원하고 국민적 화해를 앞당기는 일이 가능했음을 밝힐 것이다.
    세 번째 부분은 두 국민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동시에 그 틈바구니에서 가장 치열한 갈등의 현장이 되어온 한 접경 지역, 즉 라인 상류 지역의 시민사회 운동에 관한 것이다. 호전적인 국가 이데올로기가 팽배한 시대에 접경 지역의 문제는 그 전략적 중요성을 떠나서 국가 권력이 대내적으로 국민을 통합하고 동원하는 편리한 수단으로 이용되기 십상이며, 이 지역 또한 이 점에서 많은 역사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하지만 이 지역의 사례는 아래로부터의 자율적 연대와 자치는 물론 국경을 초월한 새로운 정체성의 추구로 나아갔다는 점에서도 각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본 연구는 특히 이 지역 시민사회 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이 두 국민의 화합과 미래지향적 관계의 정립에 어떠한 역할을 해왔고 또 어떠한 성과를 거두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본 연구는 흔히 이웃 국가들 사이의 분쟁 요인으로 인식되어온 접경 지역이 오히려 다원적인 문화 정체성을 포용함으로써 국민들 사이의 화해의 가교로 구실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국민적 귀속성으로부터 자유로운 대안적 귀속성을 모색하는 실험장이 될 수도 있음을 구체적인 사례 연구를 통해 제시할 것이다.
    끝으로 네 번째 부분에서는 화해의 움직임을 문서로 공식화하는 동시에 그러한 진전을 촉진하는 제도와 여건을 마련한 정치권의 대화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양국 정부가 맺은 우호조약의 내용과 성격, 갈등의 기억을 지우기 위한 공동 기념사업과 추모행사, 더 나아가 민관의 상호 교류사업 등이 어떻게 화해와 화합의 시대를 열어나갔는가 하는 점을 살펴볼 것이다. 특히 본 연구는 국가 배상 및 개인 피해자 보상, 전쟁 중의 반인륜범죄에 대한 반성, 문화재의 반환, 민간 차원의 교류 증진을 위한 방안, 그리고 양국 정부의 협상에 대한 당시 여론의 반응 등의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어 한일 국교정상화와 독일-프랑스 국교정상화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비슷한 시기에 타결된 두 이웃나라들의 외교적 협상의 성과가 서로 다르게 나타난 원인을 규명할 것이다.
  • 한글키워드
  • 프랑크 제국,베르덩 조약,독일 애호가,하인리히 하이네,역사전쟁,한일협정,엘리제 조약,국교정상화,초국적 정체성,국민 정체성,시민사회 운동,알사스-로렌,접경 지역,기억의 공동체,문화교류,문화적 공동체,국민감정,민족사,민족주의,기억의 장소,기억의 갈등,역사의식,스탈 부인,프랑스 애호가,샤를마뉴
  • 영문키워드
  • National Identity,Restoration of diplomatic relations,Treaty of Elysee,Conflict of Memory,Nationalism,National sentiment,Cultural Exchange,Frank's Empire,Transnational Identity,Civil Movement,Alsace-Lorraine,Border area,Heinrich Heine,Madame de Stael,Germanophiles,Francophiles,Treaty of Verdun,Charlemagne,Community of Memory,Cultural Community,National History,Place of momory,Historical consciousness,Historical Feud,Koreao-Japanese Agreement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1) 왕국(프랑스)과 제국(독일)의 한 뿌리 찾기.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가들이 오랜 동안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자국 역사를 해석하고 기술해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민족주의 역사학 전반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그동안 조금씩 변화가 있어온 것은 확실하며, 더욱이 유럽의 통합이 진척되면서 그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사실 중세에도 성직자 단체, 수도원 활동, 대학 교류, 상인들의 교역망 따위를 통해 두 나라 사이에는 끊임없는 교역과 소통이 이루어졌으며 공동의 기억들을 다듬어왔다. 공동의 기억들은 두 나라의 중세사를 대립과 분열보다는 대화와 교류의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재인식해야 할 당위를 제시하였으며 오늘날 양국이 동반자 관계로 발전하는 밑거름을 형성했다.
    (2) 스탈 부인의 독일문화 이해. 스탈 부인은 프랑스 계몽주의의 적저이자 그 해체자라 할 수 있다. 프랑스 문명은 계몽주의를 통해 유럽의 중심을 자처했고, 이에 따라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었다. 이는 곧 주변 국가들에 대한 오만과 무지로 귀결되었다. 이런 사상적인 움직임은 나폴레옹의 정치·군사적인 지배와 맞물렸다. 이런 상황에서 스탈 부인은 프랑스 중심주의를 해체하고 독일일 비롯한 유럽 각 문화의 특성과 장점을 이해하여 상호 유익한 관계를 맺기를 희망하였다. 이는 그 나라 자신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서도 유익한 일이었다. 이는 프랑스 혁명 이후 전개될 엄청난 정치적 변화와 동시에 유럽 사상계에 폭풍우처럼 몰아칠 낭만주의의 영향을 예고하는 일이었다. 스탈 부인은 이런 흐름을 예리하게 읽어낸 지성을 소유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한 국가의 독단을 벗어나서 평화롭고 우애로운 유대를 강화하는 가능성을 보여준 모범이었다.
    (3) 국경선을 넘어선 역사적 화해의 모색: 라인 상류 지역의 공존과 협력. 상류 라인 지역에서 추진되는 지역내 협력을 위한 움직임은 일견 민족을 넘어선 새로운 지역적 정체성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듯이 보이며, 또한 이런 지역적 연대를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 곧바로 유럽 차원의 통합으로 연결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단순히 희망의 차원을 넘어 현실화되는 측면을 보이고 있다. 물론 지역단위의 노력이 새로운 정체성의 형성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 지역의 지역정체성이 적어도 라인 강 어느 한편의 국민적 정체성이나 배타적 국민감정의 강화에 기여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이에 대한 강력한 방파제로 구실하리라는 사실이다. "상류 라인지역"은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가 실질적으로 화해와 번영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수 있다.
    (4) 엘리제조약과 독일프랑스의 화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승전국의 일원으로 독일을 분할 점령했던 프랑스가 전쟁 상태의 공식 종언을 선언한 것은 1951년에 들어서였으며, 50년대에 두 나라의 국민은 과거사의 앙금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여전히 서로를 잠재적 적성국으로 여기며 불신과 의혹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미소 냉전 체제의 성립 및 유럽 공동체의 모색이라는 급변하는 정세에 부응해서 두 나라는 한 걸음씩 평화 공존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1963년 1월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과 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 총리는 흔히 ‘엘리제조약’이라 불리는 독일프랑스 화해협력조약을 맺고 양국 관계의 신기원을 열었다. 두 나라는 뿌리 깊은 반목을 청산하기 위해 앞으로 (1) 모든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한 정책을 사전 조율하고, (2) 양국 정상회담을 연 2회로 정례화하며, (3) 인적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민관기구의 창설에 합의했다. 지난 수세기에 걸쳐 갈등과 대립을 거듭해온 양국 관계가 화해와 공존을 모색한 최근 반세기 만에 완전히 바뀌었다. 오늘날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연합의 화합과 번영을 이끄는 쌍두마차 역할을 하고 있다.
  • 영문
  • (1) From History of Conflict to History of Communication: Common Origin of the French Kingdom and the German Empire.
    The Middle Ages colored by the nationalism of the nineteenth century was in fact a myth brought forth by the political ideologies of the time. The myth has firmly taken root for over a century not only in the academic circles but also in the collective memories of the general public, by the help of academies' authority and the efforts of the 'priests of memory'. In fact, one can affirm the continuous flow of trade and communication between France and Germany through the networks of religious foundations, monasteries, universities and commercial companies, which resulted in the formation of common memories. The collective memories of the two countries testify their need to reconsider the history of the Middle Ages from the light of conversation and communication instead of antagonism and conflict, and hopefully to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a friendly relationship between them.
    (2) Mme. de Sta?l's Understanding of German Culture
    Mme. de Sta?l hoped that France would understand the character and quality of each nation and establish a good relationship among European countries. The first task was surely to de-construct the self-centeredness of the Enlightenment. She thought understanding other countries' cultures would be helpful to the harmonious development of Europe as a whole. Her literary life itself predicted the profound changes in the European political orders to come as well as the wide propagation of Romanticism after the French Revolution. Mme. de Sta?l's was able to read the flow of the period with her keen intelligence. Her case can be interpreted as an ideal model of an intellectual who tried hard to achieve the noble object of a peaceful and brotherly international cooperation.
    (3) Search for historical reconcilement across the frontiers: coexistence and cooperation in the "Oberrhein" region
    Today one observes two different movements concerning the fate of the European identity problem; the first one is the establishment of a common identity, especially propelled by the formation of the European Community; the second is to fortify the already existing national integration. Against these backgrounds, a quite remarkable phenomenon is to be found in Oberrhein region, where inter-regional cooperation movements are developing at a fast pace. It can be seen as the pursuit of common identity over the national frontiers, an interesting case which shows the possibility of transforming that inter-regional solidarity into the basis a whole European integration above the present dividing frontiers of nations. The past dream, as one observes, has almost come true.
    (4) Trait? d'Elys?e and the efforts of French and German governments toward reconciliation.
    The so-called trait? d'Elys?e, signed by Charles de Gaule and Konrad Adenauer in 1963, created for the reconcilement and coopera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marked the beginning of a new epoch. They agreed to; first, to examine and control foreign policies on important matters; second, the presidents would met regularly two times a year; third, various civil and official organizations would be formed for the improvement of communication and cooperation. The joint declaration of the two countries in commemoration of the 40th anniversary of trait? d'Elys?e included epoch-making contents. France and Germany agree to accept one member of Cabinet of the other country into her own Cabinet, and examine and control their policy on politico-military matters. Furthermore, they can send a common team to international athletic games, and allow common nationality to the people of the two countries. All these achievements are seen as good marks of the way to future European Communit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최근 한․중․일 세 나라는 ‘역사 전쟁’의 소용돌이에 점점 더 깊숙이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잘 알다시피 한중간에는 고구려사가 문제가, 또 한일간에는 역사 교과서 및 독도 영유권 문제가 최대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일 국교정상화 협정에 관련된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일제 피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 문제가 또 하나의 외교적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들은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발걸음에 장애가 됨은 물론이려니와, 그나마 현 단계에까지 이른 선린우호 관계를 깨뜨리고 자칫 지역의 안정과 평화마저 위협하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국민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점점 더 긴밀하게 얽히고, 따라서 화해와 협력이라는 이상이 말 그대로 하나의 이상이기에 앞서 국가의 생존 전략으로 다가오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 같은 갈등의 해소는 진지한 성찰과 연구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점들에서 한층 더 진전된 수준의 연구를 지향하고 있다.
    첫째, 본 연구는 두 국민 사이의 불화가 중세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통념이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에서 출발한다. 본 연구는 민족사의 기원을 둘러싼 양국 역사학계의 오랜 논쟁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두 나라의 중세사를 분열과 대립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기존의 통념이 과연 충분한 역사적 근거를 지닌 것인지 살펴볼 것이다.
    둘째, 본 연구는 19세기-20세기 초에 걸친 양국 지식인들의 지적․문화적 교류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는 이 시대의 양국 지성사를 주로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파악했던 기존의 시각을 교정해줄뿐더러 전후 양국 관계에 일어난 놀라운 전환의 배경을 설명해 줄 것이다.
    셋째, 국가 간의 역사 전쟁에서 어느 한쪽으로의 귀속이 불분명한 지역이나 양국 공동의 역사적 기억이 서려 있는 지역은 당연히 쟁탈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알사스-로렌은 이 점에서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 지역 시민사회 운동의 발전 과정과 그 성과들을 살펴봄으로써 흔히 분쟁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어온 접경 지역이 오히려 국민적 화해의 가교요 새로운 모델로 구실할 수도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넷째, 본 연구는 국가 배상과 개인 피해자 보상 문제가 프랑스-독일의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특히 본 연구는 양국의 협상이 이 같은 과거사 처리 차원을 넘어 우애와 화합과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어떠한 구상들을 담고 있었는가, 그리고 이런 구상들이 어떻게 실행되었고 시민사회의 교류와 우애를 촉진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가 하는 점들을 또한 눈여겨볼 것이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주로 중세사 분야에 초점을 맞추어 과거 속에서 긍정적 기억들을 발굴하려는 양국 역사학계의 노력을 다룰 것이다. 특히 19세기 초부터 뜨거운 쟁점이 되어온 민족사의 기원에 관한 논쟁과 아울러 대립과 투쟁의 기억들을 부각시켜온 기존의 역사 서술 관행에 대한 최근의 비판적 시각을 소개하고, 더 나아가 중세를 교류의 시대로 재조명하려는 양국 역사학계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논의할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민족주의적 열정이 가장 격렬하게 분출했던 19세기 초에서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기간에 양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상대방의 문화를 동경했던 지식인들, 이른바 ‘프랑스 애호가’ 및 ‘독일 애호가’의 전통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국 지식인들 사이의 정신적 교감이 거듭된 전쟁 때마다 거세게 밀어닥친 편견과 증오의 물결을 거슬러 문화적 교류를 복원하고 국민적 화해를 앞당기는 데 어떠한 구실을 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세 번째 부분은 두 국민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동시에 그 틈바구니에서 가장 치열한 갈등의 현장이 되어온 접경 지역, 즉 라인 상류 지역의 시민사회 운동에 관한 것이다. 국경을 초월한 새로운 정체성과 연대를 모색하려는 시민사회의 활동이 두 국민의 화합과 미래지향적 관계의 정립에 어떠한 역할을 해왔고 또 어떠한 성과를 거두었는가 하는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끝으로 네 번째 부분에서는 화해의 움직임을 문서로 공식화하는 동시에 그러한 진전을 촉진하는 제도와 여건을 마련한 정치권의 대화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양국 정부가 맺은 우호조약의 내용과 성격, 갈등의 기억을 지우기 위한 공동 기념사업과 추모행사, 더 나아가 민관의 상호 교류사업 등이 어떻게 화해와 공존의 국민감정을 일구어 나가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 결과의 활용 방안은 다음과 같다.
    (1) 한․중․일 간의 역사 분쟁 해소를 위한 사회적 인식의 토대 마련
    사실, 한․중․일 간의 역사 분쟁은 그저 학술적 차원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감정과 정치적 이해관계, 미래의 국가 전략 등이 복잡하게 얽힌 민감한 사안이며,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수긍할 수 있을 어떤 원만한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은 듯 보인다. 가령, 고구려사 문제이든 교과서 서술의 문제이든 간에 역사학자들이 어떤 실증적인 근거를 제시한다고 해서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문제는 실증적인 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실증적인 근거를 앞세워 정당화되기 마련이었던 자국중심적인 역사의식에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한․일 양국과 마찬가지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오랜 동안 서로 적대 관계를 유지해온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적 경험을 추적해보는 작업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리라 기대된다. 특히, 민족주의적 열기가 뜨거웠던 19세기, 그리고 20세기의 양차 세계대전 기간에 두 나라에서 제각기 과거의 기억들을 어떤 방식으로 표상하고 이용했는가, 그리고 이렇게 해서 구성된 ‘민족사’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양국의 역사학계와 시민사회가 어떠한 노력을 펼쳤는가, 그 결과 유럽 통합이라는 이상이 현실로 다가온 오늘날 양국 국민들의 서로에 대한 인식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는 작업은 동아시아에서의 역사 분쟁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데 타산지석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 균형 잡힌 역사 기술 및 의식의 함양에 대한 기여
    한․중․일 세 나라의 경우 또한 독일과 프랑스 못지않은 교류의 전통을 지닌 문화적 공동체이며, 그런 면에서 우리 자신이 어느 정도는 중국인이기도 하고 일본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역사 서술과 역사의식은 여전히 우리 문화의 독자성과 우수성 쪽으로 편향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수많은 문화 교류의 기억들 속에서 세 나라가 공유하는 유산을 찾기보다는 차별성과 독창성을 더 앞세우기 십상이다.
    본 연구는 역사적 기억의 편향성에 대한 대중의 경각심을 일깨움과 동시에 그 기억이 갖는 갈등과 화해 또는 배제와 통합의 기능을 환기시킴으로써 우리 자신부터가 스스로의 기억을 점검하고 반성하는 성숙한 역사의식과 이를 바탕으로 열린 정체성을 가꾸어나가는 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타자들의 경험을 소개함으로써 일반인들이 우리의 역사 문화를 좀더 폭넓은 안목으로 그리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반추하도록 이끄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유념하여 본 연구의 성과물은 학술 논문의 형태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도 공유될 것이다.
    (3) 민간 교류의 활성화를 위한 교훈 제시
    동아시아에서는 정부 부문의 접근이 민간 부문의 교류를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반일시위가 격화되어도 두 나라 정상이 만나 악수를 나누면 사태가 진정되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국가간의 관계가 외교관계와 동일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중․일 관계란 세 나라 정부 간의 관계이기에 앞서 세 나라 국민들 사이의 관계인 것이며, 이들 사이의 상호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한 외교상의 우호친선은 사상누각일 뿐인 것이다. 양국간 민간 교류의 사례는 동아시아에서 반핵, 평화, 환경, 인권 등 다양한 방면에서 시민사회 운동단체들 사이의 협력과 연대를 촉진하는 데 본보기가 될 것이다.
    (4) 기억의 화해를 위한 문화사업 방안의 제시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의 역사에서 특히 두드러진 점은 두 나라가 공유하는 기억의 유산들을 소중히 보존하고 기념하려는 정부와 민간 부문의 의식적인 노력이다. 문제는 이런 유산들을 민족사의 관점에서 또는 친일․사대와 같은 단순한 잣대로 재단하는 편협한 시각에서 탈피하여 동아시아 공동의 기억으로서 보듬고 열린 교육의 장으로 삼으려는 건설적인 태도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라인 강 양편의 국민들이 과거의 역사적 기억을 공동의 유산으로 보듬기 위한 실천의 현장들은 정부 및 자치단체의 문화사업 입안자와 시민 단체들이 교류 협력 사업을 펴나가는 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5) 역사 교육의 새로운 모델 제시
    본 연구에서 다루는 바, 역사적 기억의 표상과 굴절, 이를 둘러싼 국민들 간의 갈등과 화해라는 주제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 만한 시사성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역사학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는 깊이를 겸비하고 있다. 또한 이 주제는 문헌 기록만이 아니라 회화, 조각, 삽화, 만화, 영화 등 다양한 시각 자료에 의존하는 만큼 좀더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강의 방식 및 교재를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색인어
  • 샤를마뉴 대제, 독불 관계, 스탈 부인, 라인 상류 지방, 알자스-로렌, 엘리제조약, 과거청산, 유럽연합, 역사와 영토의 민족화, 국민정체성, 민족주의 역사학, 독일애호, 프랑스애호, 마리안느, 게르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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