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조선 초기(15-16세기)를 ‘유교적 법치국가의 확립기’로 규정, 『경국대전』을 비롯한 각종 법전 및 『조선왕조실록』을 분석함으로써 조선 초기의 법이념과 법제 그리고 실무에 관해 적지 않은 성과를 얻었으며, 결송유취보(決訟類聚補)의 번역을 부수 성과로 얻을 수 있 ...
본 연구는 조선 초기(15-16세기)를 ‘유교적 법치국가의 확립기’로 규정, 『경국대전』을 비롯한 각종 법전 및 『조선왕조실록』을 분석함으로써 조선 초기의 법이념과 법제 그리고 실무에 관해 적지 않은 성과를 얻었으며, 결송유취보(決訟類聚補)의 번역을 부수 성과로 얻을 수 있었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1)조선조의 법은 곧 왕의 명령이라는 점에서 법치(rule by law)가 인치(rule by man)의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왕의 지배는 왕의 명령과 행위를 제약하는 다양한 상위법적 원천―儒敎 經典, 역사서, 祖宗成憲, 民心, 先例 등―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人治라고 보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정치조직으로서의 조선왕조의 지배형태는 예치를 보조 원리로 삼고 있는 법치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다.
(2)조선왕조는 법의 제정 및 개정 작업에 있어 다른 어느 왕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일보한 수준에 있었다. 조선은 새로운 사상과 고려왕조 시기의 악폐에 대한 자각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왕의 절대적인 권한은 제한되고 견제되어야 하고, 힘은 분리되어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법체제를 정비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려왕조 말기부터 조선왕조 초기까지, 성리학을 연구했던 정도전과 그 동료들은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특히 정도전은 왕의 즉위 문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조선 왕조의 합법성을 선언하였다.
(3)조선 창업으로부터 경국대전체제의 안정화단계에 이르기까지 조선국가의 권력구조를 분장하고 왕권을 제약했으며, 安民이라는 유교적 민본주의의 목표를 실현토록 왕권과 신료들에 제약을 가했던 중요한 입헌 통치의 요소들―四書三經과 같은 헌법적 문서들 및 祖宗成憲과 같은 헌법적 관행들, 그리고 서연(書筵), 경연(經筵),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춘추관(春秋館)과 같은 입헌제도들―을 잘 확립해가고 있었다. 이런 요소들은 조선 초기의 제도적 장치들 및 권력구조와 맞물려 작용함으로써 조선 특유의 유교적 입헌군주제를 발전시켜가고 있었다. 특히 유교적 입헌주의 요소들을 임금의 성품과 덕성 그리고 지식으로 化肉身 시킨(incarnated) 제도적 장치들 및 임금과 신료들의 권력행사를 외부로부터 제어했던 권력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4)조선은 유학을 그들의 사회정치에 이행하기 위하여 헌법적 통치를 동원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형법이 죄형법정주의 보다는 강제적인 형벌이론을 보다 많이 나타내도록 하였다. 강제적인 형벌이론을 옹호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재판관의 재량을 제거함으로써 평등한 형벌 적용을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재판관들은 민주주의에서 유학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객관적이고 평등한 법률 적용을 계획하였다. 이는 단순한 권력 분립의 원칙이 아니었고 왕국의 최고 권력자인 왕의 백성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객관적이고 평등한 법률 적용에 관한 왕의 근심은 강제적 형벌이론에 의해 나타나게 되었다.
(5)조선의 민법은 결코 관습법에만 의존하지 않았고, 주로 각 문제에 대한 적용규정을 갖춘 성문법을 갖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 대전속록, 대전후속록, 각사수교, 대명률 등 여러 문헌들에 이미 민법에 관련된 규범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법령적 지위를 갖는 왕명이 수교의 형태로 많은 민법관련 문서에 산재되어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법규범이 오늘날 전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법(특히 가족법분야)을 이해하고 재해석하는데 기초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다만 본 연구는 세부적 법체계와 관련, 15-16세기의 법문서에 나타나 있는 형법 및 민법과 관련된 규정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는데 주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각 법조항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그 현대적 의미까지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한 시대적 변화로 인해 그 내용이 어떻게 수정되었는지 하는 문제와 더불어 앞으로의 중요한 연구과제로 남아있다. 이 연구를 수행하면서 갖게 된 또 하나의 과제는, 15-16세기를 중심으로 한 조선왕조의 법제와 실무에 대한 연구를 조선시대 전체로까지 연장․수행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법전의 번역과 중요사료의 추출 및 그를 통한 당시 법문화와 생활의 복원에 기여하고, 조상의 법 실행을 체계화하기 위한 것으로, 전통적인 법문화의 확인을 통한 미래 법문화 창조의 계기마련하고, 유교적 시민사회, 법치문화의 발굴을 통한 세계법질서의 구축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