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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공간 속의 조선인과 일본인, 상극과 융화의 흔적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전문연구인력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05-075-A00008
선정년도 2005 년
연구기간 3 년 (2006년 01월 01일 ~ 2008년 12월 31일)
연구책임자 윤소영
연구수행기관 한서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한국근현대사 연구 가운데 그동안 일제 강점기 35년간에 대한 접근은 지배자인 일제와 피지배자인 조선인의 대립구도를 기축으로 파악하여 조선인의 삶은 주로 '저항'의 관점을 벗어나지않았다.
    본 연구는 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일제시대의 문화를 조명하고자 한다. 즉, 일제시대는 조선인만으로 구성된 시대가 아니라 일본인과 함께 살아갔던 특이한 시대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제시대는 제국주의 지배국가와 식민지 종속국가의 갈등 뿐 아니라 양자의 異文化의 만남과 상호영향, 대립, 각각의 전통문화와 서구문화, 각각의 일본적,혹은 한국적 변용양태 등이 중층적으로 존재했던 시기였다. 본 연구는 양국인이 교류한 여러 사례를 통해서 이러한 혼재성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검출하고 이를 분석하여 일제시대 한일문화의 상극과 융화의 흔적을 밝히고자 한다.
    본 연구의 방법은 일제시대, 시간과 공간을 같이 살아간 조선인과 일본인의 삶과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 이유는 첫째, 일제시대의 민중은 정책 결정의 객체로서의 수동적인 면만 갖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문화를 만들어내는 주체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둘째, 일제시대에 조선의 개항장과 도시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일본에서 유행한 영화나 대중잡지는 조선에도 이입되어 공유되기도 했다. 이 외에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을 여행하고 여행기를 남겼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일제시대의 역사를 단지 지배와 저항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으며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일제시대 연구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제국주의국가와 식민국이라는 관계 속에서 만난 일본인과 조선인이 같은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살아갔는지의 실상을 밝힘으로써 일제시대의 또 다른 삶의 모습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 본 연구는 일제시대의 새로운 문화로 유행하기 시작한 일본인의 조선여행기, 대중잡지와 신문 사회란, 광고 등에 실린 일본인과 조선인의 상호인식, 문학, 일본인의 일제시대에 관한 회고록, 일본과 조선에서 동시대, 혹은 계기적으로 유행한 대중문화 등을 검출하고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당대의 문화현상이 총독부의 정책과는 어떻게 부합하는지, 혹은 부합하지 않는지, ‘양국인이 만들어간 일제시대의 문화의 실체’는 무엇인지를 밝히게 될 것이다.
  • 기대효과
  • 첫째, 본 연구는 그동안 저항논리의 관점에서 민족운동사나 친일파 문제에 중점이 두어졌던 일제시대사의 연구관심을 넓혀 ‘저항’인가, ‘친일’인가로 규정할 수 없는 일제시대의 또 다른 문화의 공간이 있음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일제시대 연구가 필요함을 제기하는 연구가 될 것이다.
    둘째, 대립과 반목을 극복한 새로운 근대 한일관계사 연구의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한국근대사는 한편으로 한일관계사이기도 하다. 그 한일관계사는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국으로서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대립과 반목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은, 이러한 역사적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서로의 근대사가 가진 굴절과 상처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선진문화는 중국에서, 한반도에서 일본 섬으로 전해져갔다. 근대시기는 이러한 관계의 역전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서구의 왜곡된 문명관을 절대적 가치로 삼고 살아간 일본인과 일본인에 뒤이어 이러한 문명관을 받아들인 조선인들의 냉혹한 지배와 피지배의 논리, 우월감과 열등감으로 점철된 심상세계가 존재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양국의 혼재된 문화가 존재하기도 했던 시대였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로에게 아픈 역사였고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고 오리엔탈리즘적 가치관에 갇혀서 살았던 시대임을 인식함으로써 일제시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관점이 한ㆍ일간에 공유된다면, 단지 일제시대의 아픔이나, 메이지 시대의 상처가 가득한 영광을 되새김으로서 자국의 정체성을 모색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ㆍ일 양국 각각의 오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시점이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가 역사학자로서 한일관계사연구에 있어서 ‘반일’과 ‘친일’을 넘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데에 기여하게 되길 소망하며 그러한 점에서 사회적 기여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셋째, 본 연구주제에서 다루는 많은 일본어자료 중 중요자료를 정리하고 원문, 사진, 그림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연구자나 대학 교육, 일반인에게 제공하여 일제시대 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 연구요약
  • 1차년도 연구는 <<일제시대 일본인의 조선여행기에 보이는 조선인식>>이다. 종래의 외국인의 조선여행기에 대한 연구는 주로 서양인의 여행기가 다뤄져 왔다. 본 연구는 그동안 주목되지 않은 일본인의 조선여행기를 주제로 하여 일본인의 시선을 매개로 조선이 어떻게 포착되고 묘사되었는가, 그 여행계층은 어떠하며, 여행기 속에서 나타난 조선인식은 어떻게 이해되고 굴절되었는가, 시기별 특징은 어떻게 유형화할 수 있는가를 분석할 것이다.
    2차년도 연구의 주제는 << 일본인의 조선인 차별관 ‘요보(ヨボ)론의 계보>>이다. 일본인의 朝鮮觀에 대해서는 그동안 주로 대표적인 지식인이나 정치가의 사상에서 소위 조선관 만을 추출하여 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단지 특정 지식인의 경우 뿐 아니라 일반인의 삶 속에서 양국인의 상호인식이 어떠했는지도 분석되어야만 일제시대를 살아간 조선인과 일본인의 심상세계를 보다 잘 관찰을할 수 있을 것이다. 2차년도 연구에서는 일본인의 조선인 차별관을 표상하는 ‘요보(ヨボ)’라는 호칭에 주목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요보’라는 범칭에 내재한 조선인차별관의 형성과 전개과정, 그 내용을 일본인의 조선여행기, 신문 잡지 기사, 문학작품에서 사례를 발췌하고 검토하여 자료로 정리하여 이의 사용례와 그 의미, 사용주체, 시기별 변용과정, 혹은 고착화되어 어떻게 확산되었는가를 검토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조선인은 이를 어떻게 이해, 혹은 비판, 순응했는지도 아울러 살펴봄으로서 일제시대 일본인과 조선인의 굴절된 문명관과 자기인식을 비교하고 분석해 보고자 한다.
    3차년도 연구주제는 <<일제시대 대중문화를 통해 본 내선융화(일체)의 실상연구>>이다. 일제시대의 대중문화 연구는 최근 주목되는 분야이지만 주로 국내자료를 중심으로 설명되고 있기 때문에 동시대의 일본의 대중문화와의 관련성에 유의하는 관점이 필요하다.3차년도 연구에서는 1920년대부터 1940년대 해방이전까지 대중문화 속에서 ‘내선융화’ 혹은 ‘내선일체’론이 실제로는 어떻게 존재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주로 일본과 조선의 신문, 잡지의 사회란, 여행기, 광고, 조선과 일본에서 동시에 유행한, 혹은 시간차를 두고 유행한 대중문화, 한국인과 일본인의 회고담 등을 통해 ‘내선융화’와 ‘내선일체’의 구호가 현실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 한글키워드
  • 도시,지식인,회고담,내선일체,내선융화,대중문화,포스트 콜로니얼 연구,옥시덴탈리즘,오리엔탈리즘,요보,일제의 잔재,일본관,조선관,조선여행기,조선인,일본인,일제시대,여객선,철도,광고,잡지,신문,편견,근대,융화,상극,굴절,경성,문명관,민중
  • 영문키워드
  • marks,vestiges of Japanese imperialism,occupation,Koreans and Japanese in the Japanese,Yobo,reminiscences,advertisements,magazines,newspapers,a understanding of western civilization,Occidentalism,conflict,propitiation,modern cities,books of travel in Korea,post colonial studies,pop culture,Orientalism,assimilation,a view of Japanese,a view of Korean,mutual understanding between the Korea and Japan,the populace,intellectuals,a railway travel,railroad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일제 강점기 조선은 한국인만의 시공간이 아닌 다양한 계층의 일본인들이 왕래하거나 조선에서 생활을 영위하기도 한 독특한 시대였다. 특히 러일전쟁 기부터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에 관심을 가졌으며 일본인 여행자는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이 시기에는 일본인을 주대상으로 한 일본어로 기술된 조선 여행 관련 기록물이 다양하게 출간되었다. 이러한 기록은 일본인의 시선을 통해 근대조선이 어떻게 포착되고 묘사되었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하는 자료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차년도 연구성과는 <러일전쟁 전후 일본인의 조선여행기록물에 보이는 조선인식>이다. 일본으로부터의 도항자가 증가하는 러일전쟁 전후부터 1910년경까지 일본인의 조선여행관련 기록물을 대상으로 하여 이러한 기록물의 저자는 어떠한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조선을 어떻게 여행하고 무엇을 주목했는지를 살펴보았다.
    2차년도 연구성과는 <호소이 하지메의 조선인식과 제국의 꿈>이다. ‘대일본제국’의 시대에 ‘조선문제’를 자신의 삶의 중심에 놓고 고민해간 호소이 하지메의 사상과 활동의 궤적을 살펴보았다. 3.1운동은 호소이의 생애의 큰 전환점이었다. 즉, 이를 계기로 자신의 일생을 ‘조선문제’에 투신할 것을 결의했던 것이며 이후 사이토 총독의 식민정책 자문역을 수행하면서 내선융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실천논리는 ‘조선민족’을 인정하되 그보다 더 큰 범주로서의 ‘국민’의 틀을 제시하여 조선민족을 ‘대일본제국’의 ‘국민화’하려는 전략으로 제시되었다.
    3차년도 연구성과는 <식민통치표상공간 경주와 투어리즘>이다. 일제강점기에 경주가 고적관광지로 부상하는 과정에 작용한 식민당국의 기획은 무엇이며 일본지식인의 경주여행에서 나타난 조선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어떠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나아가서 경주와 조선의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전승되었는지를 검토함으로써 일제강점기 경주고적관광의 식민성을 살펴보았다. 경주에서 조선 문화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일본지식인들은 이를 ‘동양’ 의 보편문화의 관점에서 해석하며 조선인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대신 발견해주는 일본의 ‘스승적인 역할’을 드러내는 한편 과거에는 번성했지만 현재에는 쇠퇴한 조선의 모습을 대비시킴으로서 일본에 지배당할 수 밖에 없는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완성해내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일본지식인의 역할은 ‘동양’ 속에서 ‘일본제국’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고 서양과 대결하여 동양의 맹주이자 수호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의 소산이었다.
  • 영문
  • <first paper> "Korea" represented in the Japanese travelogues and guidebooks(1905~1910)
    Korean society under Japan's colonial domination can be best characterized in "contact zones," in which Japanese and Koreans shared living space on a daily basis. The Japanese settlers in Korea numbered 42,460 in 1905 and reached 171,543 by the late 1910s. Countless Japanese also traveled to Korea and penned travelogues and guidebooks that introduced Korean customs and manners to the home audience. By examining these texts published during 1905 and 1910, this paper explores how Japanese viewed colonial Korea. It showed one side of the period with biased imperialistic views. Some of the dominant modes of describing colonial Korea are the heroic portrayal of Japan's conquest and the subsequent reconstruction of "Japanized" Korea. Meticulous historical retrieval of Japan's victories over the Korean peninsula provided evidence supporting Japan's present conquest while cosmetic reconstruction of Korea.
    <second paper>Hosoi Hajime's Recognition of Joseon and the 'Dream of Empir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Hosoi Hajime's (1886-1934) ideas and works related to 'Joseon Issues' during the time of the Japanese Empire.In his great efforts to incorporate 'Joseon Issues' into his own life, Hajime's knowledge and activities concerning these issues can be summarized in three points: 1) He identified himself as a son of the Empire of Japan; he regarded the growth of Japan as his own growth. 2) Based on his ideals, he dreamed about and also pursued strategies for managing 'the Empire of Japan' more effectively, in order to achieve its grand aims. He believed that it was necessary for Japan to dominate Joseon in order to establish the Empire of Japan in Asia. To better serve this end, he suggested a broader category of 'People' and a smaller category of 'Joseon People' 3) His strategies were put into practice after the Great Kanto earthquake of 1923. The crucial reason for that tragedy, he believed, was hatred between Japanese and Joseon people, and it was regarded as an important event which might bring on the collapse of 'the Empire of Japan'. He appealed to the Japanese to treat Joseon people favorably, encouraging deep understanding of Joseon without discrimination.
    <third paper>Kyeongju, a symbolic space of Japanese colonialism and Tourism-Focused on Japanese Travelogue and Discourse in 1910's to 1920's
    Tourism has begun in the modern era. As for Korea, tourism fully began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which was in the early 1910's. Specifically, tours to historical places were widely advertised as images of the colonized Josun Dynasty.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focused on Kyeongju, which was a capital city of the Silla Dynasty from its early colonial era. This study examines how tours to Kyeongju historical places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reflects its colonialism by reviewing the plan of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in the process of focusing on Kyeongju as a historical tourist place, how Japanese intellectuals’ interest in Josun's traditional culture through Kyeongju tours can be interpreted, and how the traditional culture of Kyeongju and Joson Dynasty were succeeded .
    Plans of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to excavateand preserve Kyeongju's historical places and to make Kyeongju a tourist spot are as follows: First,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imitated other Western imperial nations that excavated, analyzed and re-organized ‘primitive’ colonized cultural assets to display the ‘civilized nations’'s 'advance science’ and power. Second, Japanwanted to prove that they dominated the ancient Silla to reinforce historical justification of Japan's colonization of the Josun Dynasty. Third,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wanted to use the fact that they tried to preserve Josun's traditional culture as propaganda to promote Japan's generosit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일제시대는 조선인만으로 구성된 시대가 아니라 일본인과 함께 살아갔던 특이한 시대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제시대는 제국주의 지배국가와 식민지 종속국가의 갈등 뿐 아니라 양자의 異文化의 만남과 상호영향, 대립, 각각의 전통문화와 서구문화, 각각의 일본적,혹은 한국적 변용양태 등이 중층적으로 존재했던 시기였다. 본 연구는 양국인이 교류한 여러 사례를 통해서 이러한 혼재성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검출하고 이를 분석하여 일제시대 한일문화의 상극과 융화의 흔적을 밝히고자 한다.
    1차년도 연구의 주제는 <일제시대 일본인의 조선여행기에 보이는 조선인식>이다. 먼저 <일본어잡지 『朝鮮及滿洲』에 나타난 1910년대 경성>을 작성하여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9권 1호,2006.5>에 게재했다. 이 논문에서는 1910년대 경성에서 살아간 일본인과 조선인의 모습과, 재경일본인의 일본인과 조선인에 대한 인식을 고찰했다. 그 결과 먼저 1910년대 일본인의 경성여행담의 시선은 ‘조선의 미개한 현주소’를 확인하고 번화한 일본인 거류지를 통해 제국주의국가 일본의 지위와 ‘문명국’으로의 위상을 새삼 자각하는 패턴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연구에 이어 <러일전쟁 전후 일본인의 조선여행기록물에 보이는 조선인식>(한국민족운동사연구51집,2007년6월)을 게재했다. 이 논문에서는 러일전쟁 후 조선이 ‘관광지’로서 일본인에게 새로운 <문화>로 소개되는 현상이 존재했음을 주목하여 조선총독부, 혹은 관변에서 발행한 조선여행안내서와 이주안내서, 개별적인 여행자가 잡지에 기고한 여행담, 단행본으로 간행된 여행기를 주제로 하여 이 시기에 일본인의 조선인식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고찰했다.
    2차년도 연구주제는「일본인의 조선인 차별관 ‘요보(ヨボ)’론」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조선인을 경멸하는 호칭이었던 “요보”의 함의가 일본인에게 어떻게 인식되었으며 이를 포괄하는 일제시대의 일본인의 조선멸시인식을 고찰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연구를 수행하기 위하여 주목한 인물이 다카사키 소지가 ‘조선멸시론자’의 대표자로 간주한 호소이 하지메[細井肇,1886-1934]이다. 호소이는 일제시대 '굴지의 조선통'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그에 대한 연구는 미미했다. 본 연구에서는 그의 조선활동과 그 인식을 연구하여 논문<호소이 하지메(細井肇)의조선활동과 ‘제국의 꿈’>(한국근현대사연구,45집,2008.6.30)으로 완성했다. 이 논문에서 호소이는 조선멸시론자였으나 3.1운동 후 일본인이 조선인에 대한 차별적 태도를 불식해야 하며 조선에 대한 깊은 이해를 촉구하고 일본인들이 ‘호조상애’하는 정신으로 조선인을 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 지향점은 일본을 맹주로 하여 일본의 ‘仁義’정치가 이루어지는 ‘대일본제국’ 의 건설이었다는 점을 밝혔다.
    3차년도 연구주제는 ‘일제시대 대중문화를 통해 본 내선융화(일체)의 실상 연구’이다. 근대의 대중문화 중 일본인과 조선인이 폭넓게 참여하고 공유한 문화가 '관광'이었다. 그리하여 일제시대의 '관광'은 주로 조선총독부 당국이나 철도국, 일본인에 의해 기획되고 운영되었으며 여행지를 찾는 이들은 상층부의 지식인이나 관료 중심에서 1920년 전후에는 일반인들과 수학여행 학생층으로 다변화되고 이에 일본인의 식민지 조선 여행이 확대되면서 콜로니얼리즘의 독특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분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식민지 조선에서 '관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관광명소는 어떻게 선정되고 개발되었으며 여기에 총독부 당국이나 관계한 일본지식인들의 의도는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이와 아울러 이곳을 여행한 일본인과 조선인은 각각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를 검토함으로써 일상에서 '내선융화'가 어떻게 스며들고 있었는지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다음 두 편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여 게재했다.
    (1)『여행과 관광으로 본 근대』(공저,두산동아,2008,12,개인 수록 논문: 「관광명소의 탄생과 숙박시설」
    (2)「식민통치 표상 공간 경주와 투어리즘」(동양학(단국대학교 동양학 연구소),45집,2009년2월)
    이 외에도 일본학을 전공하는 연구자와 연계하여 <조선공론>영인본과 해제집 출간, 일본잡지 <모던일본>조선특집호 두권 완역(1939년판과 1940년판) 등의 성과를 내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접근은 단순히 일제의 지배와 한국인의 저항이라는 구도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실증하여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일제시대의 문화연구가 이루어져야 함을 환기한 것이다. (1)일상생활에서의 일제의 정책 선전, 생활환경이 일본화하거나, 일본어와 한국어가 혼용되는 언어환경, 교육의 배후에 있는 식민당국의 의도 등의 식민지적상황은 지배와 저항을 넘어서 부지불식간에 사람들의 내면에 스며들어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였다. 벚꽃명소를 여행하는 조선인에게 그곳은 일본정신, 일본문화의 산실이라기 보다 '봄의 화려한 명소'라는 의미로 존재했으며 관광지에서 일본식의 여행문화의 적용도 사람들에게 저항 없이 수용되었다는 점을 언급하여 인간의 일상이 반드시 이념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주장하였다.

    (2) 일제강점기의 하나의 시대상은 일본이 그야말로 '대일본제국'을 지향하여 꿈을 꾸었던 시대라는 점이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일본의 유명지식인이 조선을 여행하거나 조선에 이주하여 조선을 주제로 한 많은 글을 남겼고 이러한 자료는 타자를 통해 본 식민지 조선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시사를 던진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자료에 의하면 당시 '대일본제국'은 '내지'로 불린 일본과, 조선, 대만, 만주, 그리고 북중국지역까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조선을 이야기하는 일본지식인의 언설에는 이와 같은 점이 상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앞으로 일제강점기의 조선측 지식인의 언설에서도 단순히 일제에 대한 저항과 친일을 넘어서 이와 같은 점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3) 일본인이 조선인을 차별하는 용어인 <요보>에 대해 학계에서 처음으로 그 함의와 활용사례에 대해 밝힘으로써 <요보>가 조선멸시를 표상하는 개념임을 밝혔다. 그러나 일본인과 조선인의 관계가 항상 일본 지배자-조선 피지배자로서의 구도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장면에서는 보다 중층적인 갈등구조가 존재했으며 일본이 한국을 일방적으로 지배구조 하에 예속시키는 것은 용이하지 않았음을 주장했다.

    2. 이 연구를 수행하면서 국내외의 학술대회에서 다양한 연구교류를 할 수 있었다. 특히 2차년도 연구에서 일본에서 개최된 아시아학 학술대회 발표나 한양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주최 학술대회, 역사민속학회 주최 학술대회에서는 잇달아 근대여행과 재조일본인 문제, 식민성의 구체적인 양상 등에 대해 최근 많은 연구관심이 쏠려있음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와같은 문제의식 하에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와의 발전적인 연구교류가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3. 3년의 연구를 기반으로 앞으로의 연구에서도 산적해있는 많은 일본어자료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일제강점기의 시대상과 사상을 복원해내는 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

    4. 이 연구기간 동안에 수행한 일제강점기 출판된 일본어자료집 간행은 이미 학계에서 의미있는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자료와 연구관점이 널리 공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3년간의 연구교수지원은 자신에게 위의 같은 연구를 활발히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고 그 과정에서 <일본어자료 번역자료집> 등을 발간하면서 개인의 연구 역량이 상당히 강화되는 중요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활동 덕분에 2009년 3월부터는 천안에 위치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재직하게 되어 현재 <일본신문기사를 통해본 3.1운동 관련 자료집> 발간 준비를 위해 번역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의 독립운동 연구 역시 일본어자료의 활용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지만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는 그와 같은 연구 인력이 부족한 편이다. 앞으로 본인의 역량을 살리면서 자료분석과 일제강점기 연구를 계속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동안 지원해주신 학술진흥연구재단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색인어
  • 일제강점기, 재조일본인, 콜로니얼리즘, 식민성, 식민지문화, 여행기, 관광, 고적, 러일전쟁, 문명, 야만, 1910년대 경성, 요보, 조선멸시론, 호소이 하지메, 세정조, 대일본제국, 내선융화, 경주, 야나기 무네요시, 기노시타 모쿠타로, 조선급만주, 조선연구회, 수학여행, 금강산, 온천, 벚꽃관광, 조선총독부 철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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