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서 냉전이 종식되고 유럽 연합 가입국이 점차 늘어나면서, 유럽인들 사이에는 “하나의 유럽”이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유럽 여러 나라의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 그리고 언어를 묶어 줄 공통된 가치와 이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진행 중 ...

최근 동서 냉전이 종식되고 유럽 연합 가입국이 점차 늘어나면서, 유럽인들 사이에는 “하나의 유럽”이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유럽 여러 나라의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 그리고 언어를 묶어 줄 공통된 가치와 이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진행 중이다. 다시 말해 유럽의 정체성이 무엇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이 때문에 유럽인들은 자신의 뿌리가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노력 중이며,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중세 시대-유럽인들이 하나의 언어와 종교를 가졌던-의 역사와 문화, 철학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중세 사상사 연구에 있어 오랜 기간 동안 간과되어 온 부분이 있는데, 바로 비잔틴 시대에 대한 연구이다. 철학이 탄생했고 찬란히 꽃을 피웠던 희랍에서는 중세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西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은 거의 천년 동안 융성했는데, 과연 비잔틴 시대에는 어떤 사상가들이 등장했으며 이들의 사유는 얼마나 독창적이었는가?
물론 비잔틴 시대 사람들의 사유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 그 후손인 희랍인들에게는 가치 있는 일이겠으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현대 한국인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은 동양적이라기보다는 서양적인 경우가 많으며,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를 믿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은 전통적인 가치와 신앙 그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현대 과학 기술 사이에 긴장을 야기하고 있다. 이를테면, 얼마 전 황우석 박사가 배아줄기세포의 복제에 성공했으나,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필요성 또는 윤리적 정당성에 대해서 찬반양론이 제기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인간이 어디까지 자연을 탐구해야 하며 과연 인간 자신이 창조주 역할을 할 수 있는가이다.
결국 인간 이성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에 관해 이 시점에서 새로운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비잔틴 철학 연구가 의의를 지닌다고 판단된다. 우리는 “희랍 고전 철학에 대한 비잔틴 철학자들의 이해 -신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 의지를 중심으로-”라는 연구를 통해 위와 같은 물음들에 답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본 연구는 비잔틴 사상가들이 희랍 고전 철학을 어떻게 수용하고 발전시켰으며, 자유와 필연의 문제에 관해서 어떤 입장을 표명했는지 밝히고자 한다.
다시말해 우리는 중요한 비잔틴 사상가들의 저작을 직접 분석함으로써 이들이 철학사적으로 이룬 업적이 무엇이며 이 업적은 철학사적으로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 밝히고자 한다.

1. 비잔틴 철학 연구는 서구의 사상적 전통이 무엇인가에 관해 학문적 담론을 활성화시킬 수 있으며, 많은 후속 연구를 파생시킬 수 있다.

비잔틴 철학에 대한 연구는 서구 정신의 기초가 된 희랍 고전 철학이 비잔틴 시대 이후 어떻게 계승되었고 어떤 점에서 변화 ...

1. 비잔틴 철학 연구는 서구의 사상적 전통이 무엇인가에 관해 학문적 담론을 활성화시킬 수 있으며, 많은 후속 연구를 파생시킬 수 있다.

비잔틴 철학에 대한 연구는 서구 정신의 기초가 된 희랍 고전 철학이 비잔틴 시대 이후 어떻게 계승되었고 어떤 점에서 변화했는지 밝혀 줄 것이며, 서방과 동방의 신학과 철학이 어떤 점에서 서로 달랐으며 동방의 철학이 서구 르네상스와 근대 철학 탄생에 기여한 바가 무엇인지 규명해 줄 수 있다고 보여진다. 또한 우리의 연구 결과는 “과연 중세가 암흑기였는가?”라는 물음을 다시 던짐으로써, 중세의 철학이 현대 서구의 사상과 어떠한 관련을 가지는지, 그리고 서구인들의 정체성은 무엇인지에 관한 학문적 담론을 활성화시킬 수 있으며, 많은 후속 연구를 파생시킬 것이다.
이 밖에도 비잔틴 사상가들의 논변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뿐 아니라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특히 스토아 학파와 회의주의) 및 신플라톤주의 철학과도 연관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본 연구는 고대 말의 철학 사상에 대한 연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서양 고대 철학 연구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너무 집중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의 여러 연구 성과물들은 헬레니즘 시대 이후의 철학도 훌륭하고 가치 있는 연구 대상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비잔틴 철학 연구는 그동안 도외시되었던 분야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2. 비잔틴 철학 연구는 학제적 공동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

비잔틴 시대의 사상가들이 어떻게 살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비잔틴 철학자들의 철학 논변을 분석해야 할 뿐 아니라, 이들의 신앙이 철학적 사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들은 어떤 시대적 환경 하에서 살았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연구가 성공하려면, 신학이나 중세사를 전공하는 학자들과의 공동 연구가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우리는 신학이나 중세사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세미나 혹은 심포지엄을 개최해서, 연구 성과물을 공유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3. 비잔틴 철학 연구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여러 현안들에 대한 해결의 단서가 될 수 있으며, 다양한 교육적 자료들을 제공해 준다.

현대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예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과 당면하고 있다. 가령 유전공학의 발전은 난치병이나 유전병 치료에 획기적 전환점이 되었으나, 배아복제의 성공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얼마 전 UN에서는 배아줄기세포 복제 연구 금지를 권고하는 성명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연구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또한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우리는 비잔틴 철학 연구가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성과 신앙 또는 자유와 필연이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고자 한 비잔틴 철학자들의 노력을 검토하는 일은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비잔틴 사상가들이 희랍 고전 철학을 어떻게 수용하고 발전시켰으며, 자유와 필연의 문제에 관해서 어떤 입장을 표명했는지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과연 비잔틴 시대에 철학이 신학으로부터 명확히 구별되었는지, 또한 비잔틴 철학이 희랍 고대 철학의 모방 ...

본 연구는 비잔틴 사상가들이 희랍 고전 철학을 어떻게 수용하고 발전시켰으며, 자유와 필연의 문제에 관해서 어떤 입장을 표명했는지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과연 비잔틴 시대에 철학이 신학으로부터 명확히 구별되었는지, 또한 비잔틴 철학이 희랍 고대 철학의 모방에 불과했는지 아니면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는지 밝히는 것을 우리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과거의 많은 학자들은 비잔틴 시대에도 철학이 “신학의 시녀”에 불과했다고 간주했다. 물론 실제로 몇몇 비잔틴 사상가들은 철학을 신학의 시녀로 간주했지만, 희랍 철학의 가치와 관련해서 모든 비잔틴 사상가들이 동일한 견해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가령 John Italos (c. 1025-82)는 철학을 수호하기 위해서 개인적 희생을 무릅쓰기도 했다. 그렇다면 비잔틴 철학의 의의가 단지 희랍 고전 철학의 문헌을 보존해서 서구에 전달해 준 점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비잔틴 철학의 가치를 지나치게 평가절하하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중요한 비잔틴 사상가들의 저작을 직접 분석함으로써 이들이 철학사적으로 이룬 업적이 무엇이며 이 업적은 철학사적으로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 밝히고자 한다.
하지만 비잔틴 철학의 역사는 거의 천년 가량 되며 그 동안 활약한 철학자들도 매우 많다. 따라서 우리가 몇 년 이내에 모든 철학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 기준을 통해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사상가들을 선별해서 연구하고자 한다.

첫째, 사상가들 자신이 철학을 신학으로부터 독립한 학문으로 간주하고 있는가?
둘째, 사상가들의 추론이나 논변이 철학적으로도 가치를 가지는가?
셋째, 이들의 사상이 동방 혹은 서방의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는가?

이러한 기준에 따라 우리는 다음 학자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1) John of Damascus

John of Damascus는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지의 작용에 대해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했기에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 좋은 것을 보면 자연히 그것을 원하게 된다고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John of Damascus는 우리가 어떠어떠한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는 의지작용이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의지의 문제가 중요하게 간주된 이유는 “만약 인간이 얼마 후 죄를 지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면 어째서 신은 인간을 그대로 창조했는가?”라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동방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의지력을 부여했는데, 이를 통해 인간은 올바른 일을 선택할 수도 있고 잘못된 일을 선택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John of Damascus는 인간이 자유 의지를 잘못 사용했기 때문에 죄를 저질렀고 이는 전적으로 인간 자신의 책임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신의 완전한 선함”과 “인간의 자유 의지 및 죄”를 양립 가능하게 만들고자 했다. 우리는 자유 의지와 선택, 합리성 등의 개념을 분석함으로써, 자유와 필연에 관한 John of Damascus의 입장을 해명하는 동시에, 그의 견해가 동방 및 서방의 기독교 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하고자 한다.

2) Michael Psellos

다음으로 우리는 Michael Psellos (1018-78)의 철학을 연구하고자 한다. 11세기 비잔틴 시대에는 서구의 르네상스를 방불케 하는 고전문헌 부흥운동이 일어난다. 당시 사상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Michael Psellos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신학, 수사학, 철학 뿐 아니라 자연과학에도 조예 깊은 교양인이었다.
Psellos는 신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 있는지 검토하기 위해서, 먼저 필연과 가능성 그리고 운명을 구분하는데, 이 중 필연은 자연 과학(가령 천문학)의 인과 개념을 지칭하는 한편, 운명은 “신의 섭리의 간접적인 (또는 2차적인) 결과”라고 정의된다. 또한 그는 인간의 행동이 한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섭리와 자연적 본성 그리고 자발적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필연과 운명이 일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더구나 신의 섭리가 인간의 자연적 본성이나 자발적 선택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신의 예지력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어떻게 양립 가능한가이다. 만약 신이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었다면 인간이 죄를 지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는 말인데, 어째서 인간의 잘못을 미리 막지 않았는가? 우리는 Psellos와 그의 제자들(특히 John Italos)의 철학 저술을 바탕으로 위와 같은 의문들에 답하고자 한다.

3) George Gemistos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