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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Projects Detailed Information

일본의 우익사상의 기저에 대한 연구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gram 협동연구지원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Project Number 2005-042-A00089
Year(selected) 2005 Year
Research period 1 Year (2005년 12월 01일 ~ 2006년 11월 30일)
chief of research 홍현길
Executing Organization (구)가천길대학(폐교)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Cooperation researcher 김양희(인하공업전문대학)
호사카유지(세종대학교)
김채수(고려대학교)
Research Summary
  • Goal
  • 본 연구는 일본의 우익인사들과 그 단체들의 사상적 기저가 어떻게 형성되어 나왔고, 또 일본인들의 우익적 사고가 어떤 사상들을 기저로 하고 있는 지에 대한 문제들의 규명을 목표로 한다.

    (1) 1990년대로 접어들어 냉전체제가 해제되는 과정에서 일본의 경제가 침체기를 맞게 됐다. 일본의 위정자들은 침체된 경기를 회복시켜가기 위한 일환으로 특히 2000년대로 들어와서부터는 극단적 우경화 정책을 취해갔다. 그 결과 일본 수상의 야스쿠니 진자 참배, 일본의 우익인사들의 역사교과서 왜곡 기술, 일본정부의 독도영유권 주장 등의 문제들이 제기되어 현재 한일 양국간의 외교적 마찰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상황에 처해있다.

    (2) 1990년대 중반부터 현저히 드러난 전일본(全日本)의 우경화란 냉전체제의 해체로 인한 경제적 침체의 극복방안의 일환에 의한 현상만으로는 볼 수 없다. 1980년대로 들어와서 일본은 1970년대 이후 경제대국으로서의 부상과 미국의 신보수주의 정책 등을 배경으로 해서 이미 우경화의 노선을 취해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3) 한국과 일본은 10여년 전부터 글로벌시대로 진입해 들어와 이제 우리 한일 양국은 유라시아 대륙 서단의 「유럽연합」 등과 같은 지역적 연합체를 구축해 가야할 역사적 필연성에 직면해 있다.
    한편 한국은 글로벌 시대로 들어와서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글로컬 문화 현상의 하나로 파악해 볼 수 있는 한류열풍(韓流熱風)을 일으켜가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하다.

    (4) 이러한 점들을 감안해 볼 때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간에 일본의 극단적 우경화로 인해 야기된 한일 양국간의 심각한 외교적 마찰의 피해를 지혜롭게 대처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대처방안의 일차적 작업은 우선 무엇보다도 일본의 그러한 우경화의 원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총체적 파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그러한 총체적 파악의 일환으로 일본의 우경화를 주도해 가는 우익 인사들과 그 단체들의 사상적 기저, 더 나아가서 일본인들의 우익적 사고가 과연 어떤 사상들을 기저로 해서 형성되어 나왔는지에 대한 문제 규명을 목표로 하여 행해지게 된 것이다.
  • Summary
  • 본 연구는 전공분야가 다른 4인의 연구자들이 학제적 차원에서 일본의 우익사상의 근저를 규명하기 위해 행해진 것이다. 그 구체적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한다.

    (1) 아시아주의와 제국주의 사상에 대한 고찰

    가. 근대서구의 제국주의 세력들의 동진과 일본의 대응
    나. 일본 최초의 우익단체 겐요샤(玄洋社)의 결성과정과 우익활동
    다. 「고쿠류카이」(黑龍會)의 결성과 우익활동
    라. 일본의 아시아 맹주론과 우익의 해외활동

    (2) 국가주의 사상과 유교사상에 대한 고찰

    가. 제국주의 헌법과 교육칙어의 근본정신
    나. 일본주의와 국수주의
    다. 국체사상과 유교사상

    (3) 존황양이 사상과 신유(神儒)사상에 대한 고찰

    가. 미토한(水戸藩)의 『대일본사』편찬
    나. 후지다 유코쿠(藤田幽谷)의 『정명론』(正名論) 및 아이자와 세이시사이(会沢正志齋)의
    『신론』(新論, 1825)을 통한 존황양이와 일본의 국체사상 성립
    다. 미토학과 신유사상

    (4) 천황중심주의와 신도사상에 대한 고찰

    가. 우익단체의 결성과 메이지 정신
    나. 메이지 정신과 국학파의 천황사상
    다. 천황사상과 신도사상
  • Korean Keyword
  • 대일본제국헌법,미토학파,국가주의,아시아주의,일본우익사상,우익사상,우익,신도사상,천황사상,신유사상,존황양이사상,제국주의,교육칙어,일본우익단체,우경화,일본농본주의,우익낭인,국학파,메이지정신,메이지유신,천황,국체사상
  • English Keyword
  • Japanes right-wing organization,rightists' thought,Asianism,Great Japanese imperial constitution,emperor of Japan,a schoo of Mito,a school of national literature,getting rightish,Japanese physiocrat,right-wing rounin,Shintoism,Spirit of Meiji,imperialism,nationalism,imerial message on education,Revitalizing Reform of Meiji,Japanese rightists' thought,right wing
Research Summary
  • Korean
  • 일본 우익사상의 한 기저로서의 아시아주의는 자유민권운동을 통해 성립되어 조선에서의 갑신정변을 계기로 해서 성립된 국권신장을 통해 확립되어 갔다. 나아가 그것은 청일전쟁과 삼국간섭을 통해 대륙침략주의로 변질되어갔다. 자유민권운동과 국권신장운동을 주도해 갔던 세력들은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한론을 찬성했고 또 그가 일으킨 세이난(西南)전쟁을 지지했던 자들이었다. 아시아주의를 사상적 기반의 하나로 하는 일본의 우익은 대륙침략,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세계구축을 목표로 해서 아시아 대륙을 침략해 가거나 아시아국가들과의 우호관계 아니면 적대적 관계를 맺어가는 존재로 규정할 수 있다.
    교육칙어는 이퇴계의 유학을 기초로 한 일본 유학을 기반으로 일본의 고쿠타이(國體)사상을 구체화시켰다. 이와 같은 교육칙어를 일본인의 정신으로 주입시키기 위해 강력한 행사교육과 수신교육을 통해 55년간 시행한다. 그 결과 고쿠타이는 일본의 영원한 틀처럼 되어버려 일본인들은 그 틀을 벗으면 죽고 마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으며 결국 고쿠타이사상은 일본인들의 유전자에 각인될 정도로 일본인의 정신이 된다. 현재의 일본의 힘이 바로 고쿠타이사상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이러한 일본인들 속에는 고쿠타이사상을 옹호하려는 사람 역시 적지 않다.
    메이지유신은 천황과 신도와 신화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정체성 정립에 성공을 거둔 역사적 사건으로서, 이는 천황과 신을 중심으로 하여 위기를 극복한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이러한 예는 1929년 대공황 이후의 경제파탄과 사회퇴폐의 타계를 위해 천황의 친정 수립을 꾀하였던 2.26사건(1936), 근세 기독교유입에 대하여 '일본은 신국'이라는 말로써 선교사추방을 추진하였던 일, 중세 가마쿠라 시대 몽고 침입에 대한 '신풍(神風)' 의식, 고대 다이카 개신(大化改新, 645)에서 천황친정을 통해 국가체제를 구축하였던 역사에서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후기 미토학의 대표적인 저작인 『신론』과 『술의』가 민중의 힘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 막부를 비롯한 권력자의 존재는 천황에 대한 충효의 정신을 전제로 해서 비로소 인정할 수 있다는 것, 해외 침략을 해외 웅비라는 관점에서 긍정하고 있다는 것, 조선에 대해 멸시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 등을 고려할 때, 미토학은 존왕양이나 신도숭유(神道崇儒)에 의한 민심 통일, 그리고 민중의 힘을 강화함으로써 얻어질 군사력 강화 등의 언설에만 머무르지 않고, 메이지 일본의 해외 침략 사상의 근원이 되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 English
  • The Asianism, one of the bases of Japanese right wing thought, was come into being by the movement to build up the free civil rights. And the Asianism, established through the expansion of the state power and realized by Gapshin coup d'tat(1884), was changed into the invasionism for China continent through Sino-Japanese war and the three country's interference.
    People, leading the movement to build up the free civil rights and the expansion of the state power, agreed with the Saigo Takamori's assertion to invade Korea. And they uphold the Seinan War that Saigo started.
    Japanese right wing aimed at invading China continent and making new East Asian order centering Japan. So they can be defined the power, aiming at invading China continent to make new East Asian order centering Japan.
    The Royal message for education embodied Japanese Kokutai ideology through Japanese Confucianism based Korean SeongRi theory by Lee, Toigeoi. Japanese government carried out event and moral training education for 55 years to infuse the spirit of the Royal message into Japanese people's mind. Because of this, Kokutai ideology became like the eternal framework of Japanese ideology. Japanese people has felt at that period that they could not live out of Kokutai ideology.
    Some schoolers insist that Kokutai ideology became the base of Japanese present power.
    And Meiji Renovation was the historic affair, that succeeded to establish the State identity based Japanese Emperor and Shinto, Japanese traditional religion, and Japanese myth. Japanese overthrew State crisis through establishing her State identity. We can find similar facts through Japanese history. Japan overthrew State crisis several times through establishing the government, royal governing in person.
    The respect for Japanese Emperor was made by Mito study thorough Edo shogunate period. <Shinron> and <Suri>, representative works of latter Mito study, insisted that Japan has to strengthen the public power. And these works said that people could recognize Edo Shogunate and other authority when they had the spirit of loyaity and filial piety for Japanese Emperor. Studying about such references deeply, we can recognize that Mito study became the root of invasion.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1) 김채수 :일본 우익사상의 한 기저로서의 아시아주의는 자유민권운동을 통해 성립되어 조선에서의 갑신정변을 계기로 해서 성립된 국권신장을 통해 확립되어 나왔다. 그래서 그것은 청일전쟁과 삼국간섭을 통해 대륙침략주의로 변질되어 나갔다. 자유민권운동과 국권신장운동을 주도해 갔던 세력들은 사이고의 정한론을 찬성했고 또 그가 일으킨 세이난(西南)전쟁을 지지했던 자들이었다. 아시아주의를 사상적 기반의 하나로 하는 일본의 우익은 대륙침략,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세계구축을 목표해서 아시아 대륙을 침략해 가거나 아시아국가들과의 우호관계 아니면 적대적 관계를 맺어가는 존재로 규정될 수 있다.
    (2) 홍현길 :교육칙어는 이퇴계의 유학을 기초로 한 일본 유학을 기반으로 국체사상을 구체화 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교육칙어를 일본인의 정신으로 주입시키기 위해서 강력한 행사교육과 수신교육을 통해 55년간 시행한다. 그 결과 국체는 일본의 영원한 틀처럼 되어버려 일본인들은 그 틀을 벗으면 죽고 마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며 결국 국체사상은 일본인들의 유전자 DNA에 각인될 정도로 일본인의 정신이 된다. 현재의 일본의 힘이 바로 국체사상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이러한 일본인들 속에는 국체사상을 ?우르염? 옹호하려는 사람 역시 적지 않다.
    (3) 김양희 :명치유신은 천황과 신도와 신화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정체성 정립에 성공을 거둔 역사적 사건으로서, 이는 천황과 신을 중심으로 하여 위기를 극복한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이러한 예는 1929년 대공황 이후의 경제파탄과 사회퇴폐의 타계를 위해 천황의 친정 수립을 꾀하였던 2․26사건(1936), 근세 기독교유입에 대하여 「일본은 신국이다」라는 말로써 선교사추방을 추진하였던 일, 중세 가마쿠라 시대 몽고 침입에 대한 「신풍」(神風) 의식, 고대 다이카 개신(大化改新, 645)에서 천황친정을 통해 국가체제를 구축하였던 역사에서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4) 호사카유지 : 후기 미토학의 대표적인 저작인 『신론』과 『술의』가 민중의 힘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 막부를 비롯한 권력자의 존재는 천황에 대한 충효의 정신을 전제로 해서 비로소 인정할 수 있다는 것, 해외 침략을 해외 웅비라는 관점에서 긍정하고 있다는 것, 조선에 대해 멸시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 등을 고려할 때, 미토학은 존왕양이나 신도숭유(神道崇儒)에 의한 민심 통일, 그리고 민중의 힘을 강화함으로써 얻어질 군사력 강화 등의 언설에만 머무르지 않고, 메이지 일본의 해외 침략 사상의 근원이 되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초록에 언급했듯이 본 연구는 일본의 우익사상의 기저에 관한 연구이다. 그리고 현재의 일본 우익사상의 기저가 만들어진 시점을 메이지 시대로 보고 있다. 메이지 시대에 역사적인 사상적 흐름이 집대성이 되어 근현대로 이어지는 일본의 우익사상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본연구는 이런 관점으로 4명의 연구자가 공동연구를 했다. 연구 결과는 동아시아 일본학회의 학회지 <일본학연구>(2006.10)에 실렀고 2007년 3월에 더 2편에 논문을 추가해 보고사 출판사에서 <일본 우익사상의 기저연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본연구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우익사상의 형성과정, 교육칙어, 미토학이 우익사상에 미친 영향, 일본신도가 우익사상에 미친 영향 등을 4명의 연구자가 연구한 것이며 기존의 연구보다 역사적, 사상적 관점에서 상당히 입체적인 연구성과라 할 수 있다. 일본의 고래로부터의 종교인 신도이념을 토대로 에도시대의 미토학이 주자학의 이념으로 신도가 신봉해 온 일본의 조상들을 충효의 개념으로 추대하고, 천황에 대한 충효의 도리를 이퇴계 계열의 일본 유학자가 교육칙어로 만들어갔다. 그런 일본이 침략성을 갖게 되었고 국내에 우익단체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역사적 관점, 사상적관점, 그리고 메이지 시대에 우익사상이 정교화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토대를 굳게 만들어나간 사실을 본연구는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 결과는 특히 보고사에서 출간한 책 속에 잘 나타나 있으며 현재 전국의 대형서점에 깔렸다. 앞으로는 이 책을 교재 혹은 부교재로 하여 일본문화연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각 연구자들은 이 책을 자신이 맡고 있는 강의 등에서 교재, 부교재, 과제도서 등으로 활용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각 관련 학회에 기증하여 잘 활용되도록 노력을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한 분야를 연구하거나 강의하고 있는 교원들에게 이 책을 학생교육용으로 추천하고 있다.
  • Index terms
  • 우익, 국체(國體), 헌법, 교육칙어(敎育勅語), 유학(儒學), 미토학(水戶學)、신론(新論)、술의(述義)、조명수봉(朝命遵奉)、도막(倒幕), 아시아 주의, 일본의 우익단체, 일본의 우익사상, 신도(神道), 천황(天皇), 국가신도(國家神道),
  • Research Achievements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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