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과 일본어는 통사적인 측면, 어휘적인 측면, 문자 운용의 측면 등 다양한 측면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이는 단지 현대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언어사적으로도 동일한 양상을 나타내는 일이 많다. 특히 문자 운용의 측면에서 보면, 자국의 문자를 갖지 못하던 시기에 ...
한국어과 일본어는 통사적인 측면, 어휘적인 측면, 문자 운용의 측면 등 다양한 측면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이는 단지 현대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언어사적으로도 동일한 양상을 나타내는 일이 많다. 특히 문자 운용의 측면에서 보면, 자국의 문자를 갖지 못하던 시기에 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받아들여서 자국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이를 통해 외래문자인 한자를 정착시켜 사용하게 된 점이 유사하다. 중국의 문장인 한문을 구결이나 훈점과 같은 수단을 고안하여 자국어로 읽었을 뿐만 아니라, 한문으로 자국의 언어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한자와 한문의 수용은 한국어와 일본어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한자와 한문을 자국어로 읽으면서 정착시켜 나가는 과정, 즉 한문훈독의 과정을 고찰하는 것은 양언어의 역사를 고찰하는 데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양언어의 한자와 한문의 수용에서 나타나는 유사점과 차이점을 고찰하기에 앞서, 먼저 일본어를 대상으로 한자와 한문의 수용과 정착의 과정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사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일본어사 연구의 측면에서 가치가 있는 동종의 자료가, 일정한 시대적인 간격, 즉 언어적인 변화를 충분히 나타낼 수 있을 만큼의 차이를 두고 존재할 것이 필수적인 요건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는 이러한 요건을 만족시키는 귀중한 자료이다.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京都国立博物館 소장 『세설신서(世說新書)』는 중국 당나라 때 사본으로, 10세기 초기의 ヲコト점과 가나점이 찍혀 있어서, 당시 일본어로 한자와 한문을 어떻게 읽었는가 하는 한문훈독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한국, 중국, 일본을 통틀어 『세설신어(世說新語)』와 관련하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이다. 또 일본 國立古文書館 內閣文庫에 귀중서로서 소장되어 있는 『세설신어(世說新語)』는 중국 명나라 때 간행된 것으로, 17세기 중기의 훈점이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기입되어 있다. 훈점은 江戸時代 관학(官学)의 창시자였던 林羅山(1583-1657)의 아들인 林鵞峰(1618-1680)가 기입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 정통파 학문 담당세력들이 한자와 한문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두 자료는 자료의 혈통이 명백하여, 자료에 기재된 훈이, 당시 일본어에서 통용되던 훈으로써 신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두 자료에 나타난 한자와 한문 훈독을 비교, 고찰하여 그 변천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동일한 한자에 대한 일본어훈의 변천 양상을 살펴보고, 그 변천의 이유에 대해서도 고찰할 것이다. 특히 한자훈의 변천에 대해서는 일본어 문장 구조의 근간을 이루는 동사의 훈을 주축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또 동일한 한문을 일본어로 이해하는 한문훈독의 양상이 약 700년을 사이에 두고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그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지 고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현대 일본어에 이르기까지 일본어의 문자 체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한자가 일본어에 정착해가는 모습을, 자료를 통해서 실증적으로 검증하는 연구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자로서의 한자가 일본어 어휘로서 실현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국의 문자이며 문장이었던 한자와 한문을 수용함으로써, 문자 및 어휘적인 측면에서 더욱 풍요롭게 변화해가는 일본어의 사적인 변화 양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고찰대상으로 하는 두 자료의 가치가 대단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일본어사적인 연구 대상으로는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본 연구의 가치는 더욱 높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