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세바스티엥 메르시에(1740-1814)는 앙시앵 레짐 말기부터 연극과 연극론, 시대 비평을 활발하게 써서, 여느 작가 못지 않게 당대에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뒤에는 계몽시대의 거물급 사상가들의 그늘에서 별로 빛을 보지 못하였다. 심지어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 ...
루이 세바스티엥 메르시에(1740-1814)는 앙시앵 레짐 말기부터 연극과 연극론, 시대 비평을 활발하게 써서, 여느 작가 못지 않게 당대에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뒤에는 계몽시대의 거물급 사상가들의 그늘에서 별로 빛을 보지 못하였다. 심지어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물론 그 사이 그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 대신, 그가 당대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데 비해서, 충분히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다행히 지난 10여년 동안 그에 대한 중요한 연구가 나오고 있다. 장 클로드 보네가 메르시에의 주요 저술 가운데 두 가지(Tableau de Paris와 Le Nouveau Paris)를 편집하고 해설한 책이 [메르퀴르 드 프랑스] 출판사 판으로 1994년에 나왔다. 이 중 앞의 작품(Tableau de Paris)은 프랑스 혁명 전 10년에 걸쳐 모두 열두 권으로 나온 것으로서 당대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뒤의 작품(Le Nouveau Paris)은 혁명기의 파리를 묘사한 작품으로 모두 여섯 권짜리였다.
이 연구에서는 주로 앞의 작품을 이용하려 한다. 제목을 우리 말로 옮기자면, ꡔ파리의 모습ꡕ 또는 ꡔ파리의 풍경ꡕ이라 할 수 있겠는데, 메르시에가 단순히 파리의 겉모양을 묘사하지 않고, 오히려 파리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의 본질에 대하여 문화적인 비평을 하고 있기 때문에 ꡔ파리의 풍경ꡕ보다는 ꡔ파리의 모습ꡕ이라고 옮기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였다. 아무튼 장 클로드 보네는 이 열두 권짜리 작품을 [메르퀴르 드 프랑스] 판으로 두 권에 편집하였는데, 첫 권은 1,900여쪽이고, 둘째 권은 2,060여쪽으로 이미 연구자에게 중압감을 주기 충분하다.
이처럼 메르시에의 작품집이 나오는 한편, 거의 같은 시기에 장 클로드 보네는 메르시에에 관한 논문 열여섯 편을 모아 ꡔ루이 세바스티엥 메르시에, 문학적 이단자ꡕ(Louis-Sébastien Mercier: un hérétique en littérature, Mercure de France, 1995)를 내놓았다. 이 논문집은 메르시에의 작품에서 연극론이나 풍속론을 분석하고, 당시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그를 어떻게 수용했는지 다루는 글을 싣고 있다.
이 논문집과 같은 시기에 옥스퍼드의 볼테르 재단(Voltaire Foundation)에서 발간하는 연속물(ꡔ볼테르와 18세기 연구(Studies on Voltaire and The Eighteenth Century)ꡕ) 326호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엔리코 루피의 논문(ꡔ문학과 정치 사이에서 루이 세바스티엥 메르시에가 꾼 세속적인 꿈ꡕ, Enrico Rufi, Le rêve laïque de Louis-Sébastien Mercier entre littérature et politique, viii+234 pp., Oxford: Voltaire Foundation, 1995)을 실었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로버트 단턴은 ꡔ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서 베스트 셀러ꡕ(Robert Darnton, The Forbidden Best-Sellers of Pre-Revolutionary France, W.W. Norton & Company, 1995)에서 메르시에의 ꡔ2440년ꡕ을 분석하고 본문의 일부를 영어로 옮겨서 제시하였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2003년 ꡔ책과 혁명ꡕ(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지금까지 소개한 메르시에의 저작 가운데 특히 메르시에가 혁명 전에 출판한 ꡔ파리의 모습ꡕ(Tableau de Paris)과 1771년부터 25판 이상 발간된 ꡔ2440년ꡕ, 그리고 메르시에에 관한 연구서를 중심으로 메르시에가 경험한 앙시앵 레짐 말기의 문화를 이해하려 한다. 다행히 메르시에는 우리에게 그의 눈을 빌려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파리에서 태어나고 파리에서 죽은 메르시에가 자신이 속한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는 문학공화국의 일원으로 활발하게 글을 내놓았던 메르시에가 검열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혁명 직전까지 검열제도가 비록 모든 인쇄출판물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 제도가 존재한다는 현실 자체는 언제나 글을 쓰는 사람에게 부담을 안겨주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국가보안법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는 시대가 왔지만, 그럴수록 그것의 존재를 더욱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있듯이, 검열제도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을수록 견딜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적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검열제도를 당시 사람은 어떻게 비판하고 개선하려 했는지 살펴보는 일은 특히 중요하다 하겠다.
메르시에가 보고 느끼고 겪은 것이 과연 얼마나 대표성을 가질 수 있을까? 파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개인이 얻은 경험을 어디까지 적용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