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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인의 조선인식에 관한 연구-1910년대의 잡지 기사를 중심으로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_학술연구교수(인문사회)
연구과제번호 2006-353-A00011
선정년도 2006 년
연구기간 3 년 (2006년 09월 01일 ~ 2009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최혜주
연구수행기관 한양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일본의 조선진출은 개항 이후 정부관계자, 군관계자, 경제인, 언론인, 정치단체 등 다양한 세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들 가운데 ‘朝鮮通’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일제 침략의 첨병역할을 하여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나아가 대륙침략의 교두보 마련을 위해 적극 활동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밑거름이 된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재조일본인들의 위치와 역할을 조명하고 구체적인 동향을 파악하여 그들이 식민지 조선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재조일본인들이 일본의 조선정책이나 일본인의 조선관 형성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는 것은 식민지 조선의 상황을 이해하고 식민통치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하나의 단서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 분석하는 잡지 『東洋時報』,『朝鮮』,『朝鮮及滿洲』가운데에는 일본의 정관계, 군인, 언론인, 교육계, 법조계 등 대표적 지식인들의 담론이 담겨져 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각종 현안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표출한 것은 일본의 조선침략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는데 기여하고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 멸시감을 조성하는 역할도 했다. 따라서 당시 식민지 지배계층과 지식인이 조선문제에 대해 어떻게 인식했는지 그들의 다양한 주장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일반 일본인들의 조선 인식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뿐 아니라 식민정책 입안에도 적극 활용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재조일본인들의 교육 및 언론활동을 구체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그들이 일제 식민통치에 기여한 부분을 밝히는 것이다. 나아가 초보적인 단계에 있는 재조일본인 활동의 실체에 대해 실증적으로 접근해가는 작업에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 이와 관련한 주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재조일본인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 이후 거류민의 조직과 활동, 조선으로 이주하게 된 일본 측 배경 및 개항장 내 일본인 거류지의 양상을 설명해주는 연구가 주종을 이루었다. 거기에는 재조일본인들이 어떻게 조선의 식민지화의 첨병으로 활약하고 얼마나 조선인의 생명재산을 압박했는가가 서술되어 있다. 최근에는 재조일본인들의 내한활동과 관련하여 그들의 조선 연구와 조선 인식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재조일본인들의 구체적인 동향을 파악하여 그들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일제 식민지 정책의 본질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일제시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재조일본인들이 각 방면에서 한 활동에 대한 연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식민통치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연구되지 않은 잡지를 검토함으로써, 종래의 연구에서 누락된 부분을 보충해 재조일본인들의 사회사를 정리해 나가려고 한다. 본 연구는 한국사가 타율적이고 사대적이며 停滯的이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왜곡된 식민사학의 오류를 시정하여 요즈음 한일 간에 최대 현안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식민사학의 왜곡 내용을 바로잡고 그것을 교육현장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기대효과
  • 본 과제는 첫째, 근대 일본이 침략을 위한 방편으로 조선에 진출해서 어떠한 일을 해왔는지, 또한 식민지 조선을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았는지 밝힌 연구이다. 이것은 일본의 침략주의와 제국의식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시점을 제공하여 재조일본인의 활동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시켜 학계에 학문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둘째, 본격적인 재조일본인의 활동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국내에서 열람하기 어려운 자료가 많은 것이 학계의 실정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를 조사해야 한다. 이러한 자료조사를 통해 이루어진 본 과제에 대한 학문적 연구 성과는 이 분야의 연구를 앞으로 지속적인 계획을 갖고 추진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셋째, 본 연구 결과는 재조일본인에 대한 연구의 지평을 넓혀 식민사학에 대한 담론을 활성화하고, 더 이상 식민사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는 학계에 학문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본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활용한다. 1)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다른 재조일본인 관련 연구와 식민통치 관련 연구의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2) 본 연구를 위해 수집된 중요자료는 자료집으로 간행하여 앞으로 계속될 연구에도 활용하고, 일제의 식민통치의 실상을 밝히는 연구에 이용한다. 또한 중요자료의 원문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연구자나 대학 교육 일반인에게 제공하여 일제시대 연구의 지평을 넓힌다. 3) 재조일본인 활동에 대한 내용을 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도록 강의안을 만들어 교재로 출판하고, 대중이 볼 수 있는 평이한 개설서를 출판한다.
  • 연구요약
  • (1)《日本 東洋協會의 식민활동과 조선 인식》에서는 일본의 대륙진출과 식민지 확보를 위해 조선에 직접 진출한 일본 세력의 면모를 밝히기 위해, 먼저 동양협회의 결성 배경과 주요 사업, 구성원의 조선 인식 등을 통해 이 단체의 성격을 검토하였다. 동양협회는 일본의 식민지 연구단체 가운데 동아동문회와 함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단체이다. 집행부의 구성원은 내각의 장관, 총독부의 관리, 동아동문회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총독부의 철저한 지원과 밀접한 관계 속에 이 협회가 움직여 갔다. 그리고 동양협회는 식민지 경영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경성고등상업학교를 통해 조선 교육에 진출하였다. 경성고등상업학교의 촉탁강사진에는 滿鮮史學의 주창자 稻葉岩吉과 총독부의 촉탁으로 舊慣調査를 담당한 善生永助, 정체성론을 주장하는 河合弘民, 鈴木武雄, 四方博, 森谷克己 등의 식민사학자들이 망라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식민정책의 입안과 홍보에 활용한 동양협회의 기관지『東洋時報』에 나타난 조선 인식이 어떠한지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강연회와 시찰담에 보이는 조선 인식, 조선 통치문제, 조선 교육문제, 조선 이주문제 등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2)《잡지『朝鮮』에 나타난 일본인의 조선 인식》에서는 1908년 창간호부터 1911년까지의 기사를 분석하였다. 재조일본인이 창간한『朝鮮』은 조선인에게는 식민통치의 대변자로서 역할을 하고 일본인에게는 식민지 조선에 관한 정보를 전해주는 가교역할을 하였다. 이 잡지의 특징은 1)재조일본인의 이익을 대변하고 본국의 일본인들이 조선에 이주하는데 필요한 다양하고 신속한 정보를 제공하는 안내서 역할을 한 점이다. 주된 독자층은 재조일본인과 본국에서 조선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이었다. 2)통감부총독부 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사회문제 등에 대한 비평을 시도하여 재조일본인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정책과 반대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비판한 점이다. 본고에서는 먼저 일본의 유력 종합지『太陽』,『中央公論』,『日本人』의 조선인식 경향에 대해 1910년 전후의 기사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일본 정치인, 통감부 관리, 학자 등 주요 기고자를 분석하여 『朝鮮』잡지의 성격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일본인의 조선관과 조선 경영의 방법, 통감정치에 대한 논평과 ‘폭도’와 배일사상 문제인식, 명사탐방과 여행기 분석을 통한 일본인과 외국인의 조선관을 분석하였다. 조선통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첫째 조선인을 동화시키는 것, 둘째 일본인을 이주시켜 일본의 인구증가와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 셋째 만주와 중국에까지 그 지역을 확대시키는 문제였다.
    (3)《잡지『朝鮮及滿洲』에 나타난 조선통치론과 만주 인식-1910년대 기사를 중심으로》이다. 발행인 샤쿠오(釋尾旭邦)가 잡지『朝鮮』의 명칭을 『朝鮮及滿洲』로 바꾼 이유는 일본이 조선을 이미 식민지로 만든 후 다음 침략 목표인 만주에 초점을 두고 대륙침략을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만주일대를 시찰하고 나서 만주 경영과 중국 연구가 급선무임을 느끼고 조선을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도 만주 경영이 중요하다고 인식하였다.『朝鮮及滿洲』의「시사평론」이나 「주장」에는 정치문제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고 일본 정계의 움직임에도 민감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언론의 주장들이 식민정책 입안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했는지에 대해서 일본 정계의 움직임과 일본 정부의 대조선정책의 변화와 함께 검토하였다. 이 연구는 다음의 내용을 분석할 것이다. 1)무단통치에서 문화정치로 바뀌는 조선통치론의 변화양상에 대한 검토와 조선 개발, 조선 교육, 조선 헌법 문제에 대한 인식. 2)조선 역사, 유적조사, 인종학, 해부학의 비교 연구와 인종주의 문제, 동화론과 내선결혼 문제에 대한 인식. 3)3.1독립운동에 대한 인식. 4)만선철도, 만몽발전책, 만주경영에 대한 인식. 5)일본의 침략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필요한 중국진출에 대한 인식.
  • 한글키워드
  • 만주 경영,만주 인식,샤쿠오,조선침략,경성고등상업학교,조선급만주,식민주의,식민정책,조선 인식,3.1독립운동,조선 연구,식민사업,동화,조선 경영,동양협회,조선 이주,대륙침략,재조일본인
  • 영문키워드
  • Dong-yang Association,Japanese in Josen,Shakuo,the continental invasion,the study of Josen,colonialism,The Josen and Manchu,colonization,recognition of Manchuria,managiment of Manchuria,recognition of Josen,managiment of Josen,Keijo Higher Commercial School,assimilation,the invasion on Josen. the immigration to Josen,the 1919 Independence Movement,a colonial policy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1차년도에는「일본 東洋協會의 식민활동과 조선인식」에서 일본이 조선과 대륙침략의 일환으로 학교와 단체를 통해 교육과 문화사업에 진출하고 활동한 점에 주목하였다. 동양협회의 식민 활동은 다음과 같다. ①동양협회전문학교와 경성고등상업학교의 설립, ②《東洋時報》 발간, ③동양척식회사 설립, ④학술강연회, ⑤조선시찰단의 일본 견학이다.
    《東洋時報》에 나타난 조선관은 ①한일 양국은 인종적으로 동족이다. ②사상, 감정, 습관, 혈액을 모두 융화시켜야 한다. ③조선인은 사대주의적이다. 조선사는 상고에서 금일까지 완전히 독립한 적이 없다. ④조선은 停滯되어 있다. ⑤일본만이 악정에 시달려온 조선을 구제하여 식민 경영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2차년도는「잡지《朝鮮》(1908~1911)에 나타난 일본 지식인의 조선 인식」에서, 재조일본인이 창간한《朝鮮》잡지의 역할을 주목하였다.《朝鮮》은 1908년 창간되어 1911년 종간되기까지, 일본인의 조선 진출과 조선인 동화를 목적으로 재조일본인의 이익을 대변하고, 통감부의 정책을 옹호하기 위해 발행되었다. 그러나 재조일본인들은 통감정치에 대해 비판적이고, 한국개발에 기여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정책을 요구하면서 통감부와 대립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이러한 움직임의 선두에 선 것이 《조선》이었다. 《조선》에 나타난 조선통치와 일본인 이주문제에 대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①이토ㆍ소네통감의 통치방식과 통감부의 ‘한국본위주의’ 정책은 재조일본인의 이익을 무시했다. ②이토의 병합에 대한 점진주의를 공격하고 병합추진 분위기를 선도했다. ③동양척식회사의 무능과 태만을 비판했다. ④일본인의 조선이주는 제국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⑤이주에 필요한 각종 안내, 통계, 조선사정을 소개했다. 그리고 의병봉기와 이토 통감에 대한《조선》의 비판적 논조는 통감정치에 반영되어 이토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또한 동양척식회사에 대한 비판과 병합 이후의 식민경영에서 이주문제를 중시하고 무력통치를 강조하는 논조는 그대로 데라우치의 총독정치에게 반영되었다.
    3차년도는「잡지『朝鮮及滿洲』에 나타난 조선통치론과 만주 인식-1910년대 기사를 중심으로」에서, 식민통치기 재조선 일본인이 창간한 민간언론의 역할을 주목하였다.『朝鮮及滿洲』의 논설을 중심으로 조선통치의 문제점과 만주경영에 대해 살펴보았다.
    ①데라우치 총독의 무단통치 아래에서 일본인의 조선이주는 무리이며, 조선개발과 조선인의 동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②조선의 역사와 민족성, 조선사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고, 국어를 보급하여 언어동화를 이루고 교육을 통해 일본정신을 함양시킨다. ③3.1운동이 일어난 원인은 무단통치와 동화주의의 오류 때문이다. 조선에 있는 내지인들은 조선인이 아무리 소요를 일으키고 반항해도 절대로 독립할 수 없도록 분발해야 한다. ④조선병합 후의 만주경영은 일본제국의 ‘팽창’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식민지 경영의 책임이 있는 조선총독부와 관동도독부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⑤일본제국의 사명은 식민지 조선을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만주경영을 추진하고, 이를 발판으로 중국본토에 진출하여 ‘일본의 패업’을 이루는 것이다.
  • 영문
  • --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1차년도에는「일본 東洋協會의 식민활동과 조선인식」에서 일본이 조선과 대륙침략의 일환으로 학교와 단체를 통해 교육과 문화사업에 진출하고 활동한 점에 주목하였다. 동양협회의 식민 활동은 다음과 같다. ①동양협회전문학교와 경성고등상업학교의 설립으로 현지인 양성, ②<東洋時報> 발간과 학술강연회로 조선 연구 및 식민사상보급, ③동양척식회사 설립과 경제침탈, ④조선 시찰단의 일본견학으로 식민통치를 선전하였다.
    <東洋時報>에 나타난 조선관은 기본적으로 식민사관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일선동조론과 사대주의론, 정체성론을 주장하여 일본만이 악정에 시달려온 조선을 구제하여 식민경영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일선동화를 통해 조선인의 사상, 감정, 습관, 혈액까지도 모두 융화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2차년도는「잡지《朝鮮》(1908~1911)에 나타난 일본 지식인의 조선 인식」에서, 재조일본인이 창간한《朝鮮》잡지의 역할을 주목하였다.《朝鮮》은 1908년 창간되어 1911년 종간되기까지, 일본인의 조선 진출과 조선인 동화를 목적으로 재조일본인의 이익을 대변하고, 통감부의 정책을 옹호하기 위해 발행되었다. 그러나 재조일본인들은 통감정치에 대해 비판적이고, 한국개발에 기여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정책을 요구하면서 통감부와 대립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이러한 움직임의 선두에 선 것이 《조선》이었다. 《조선》에 나타난 조선통치와 일본인 이주문제에 대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①이토ㆍ소네통감의 통치방식과 통감부의 ‘한국본위주의’ 정책은 재조일본인의 이익을 무시했다. ②이토의 병합에 대한 점진주의를 공격하고 병합추진 분위기를 선도했다. ③동양척식회사의 무능과 태만을 비판했다. ④일본인의 조선이주는 제국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⑤이주에 필요한 각종 안내, 통계, 조선사정을 소개했다. 그리고 의병봉기와 이토 통감에 대한《조선》의 비판적 논조는 통감정치에 반영되어 이토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또한 동양척식회사에 대한 비판과 병합 이후의 식민경영에서 이주문제를 중시하고 무력통치를 강조하는 논조는 그대로 데라우치의 총독정치에게 반영되었다.
    3차년도는「잡지『朝鮮及滿洲』에 나타난 조선통치론과 만주 인식-1910년대 기사를 중심으로」에서, 식민통치기 재조선 일본인이 창간한 민간언론의 역할을 주목하였다.『朝鮮及滿洲』의 논설을 중심으로 조선통치의 문제점과 만주경영에 대해 살펴보았다.
    ①데라우치 총독의 무단통치 아래에서 일본인의 조선이주는 무리이며, 조선개발과 조선인의 동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②조선의 역사와 민족성, 조선사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고, 국어를 보급하여 언어동화를 이루고 교육을 통해 일본정신을 함양시킨다. ③3.1운동이 일어난 원인은 무단통치와 동화주의의 오류 때문이다. 조선에 있는 내지인들은 조선인이 아무리 소요를 일으키고 반항해도 절대로 독립할 수 없도록 분발해야 한다. ④조선병합 후의 만주경영은 일본제국의 ‘팽창’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식민지 경영의 책임이 있는 조선총독부와 관동도독부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⑤일본제국의 사명은 식민지 조선을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만주경영을 추진하고, 이를 발판으로 중국본토에 진출하여 ‘일본의 패업’을 이루는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가) 기대효과
    첫째, 근대 일본이 침략을 위한 방편으로 조선에 진출해서 어떠한 일을 해왔는지, 또한 식민지 조선을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았는지 밝힌 연구이다. 이것은 일본의 침략주의와 제국의식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시점을 제공하여 재조일본인의 활동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시켜 학계에 학문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둘째, 본격적인 재조일본인의 활동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국내에서 열람하기 어려운 자료가 많은 것이 학계의 실정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를 조사해야 한다. 이러한 자료조사를 통해 이루어진 본 과제에 대한 학문적 연구 성과는 이 분야의 연구를 앞으로 지속적인 계획을 갖고 추진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셋째, 본 연구 결과는 재조일본인에 대한 연구의 지평을 넓혀 식민사학에 대한 담론을 활성화하고, 더 이상 식민사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는 학계에 학문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2) 활용방안
    첫째,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다른 재조일본인 관련 연구와 식민통치 관련 연구의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둘째, 본 연구를 위해 수집된 중요자료는 자료집으로 간행하여 앞으로 계속될 연구에도 활용하고, 일제의 식민통치의 실상을 밝히는 연구에 이용한다. 또한 중요자료의 원문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연구자나 대학 교육 일반인에게 제공하여 일제시대 연구의 지평을 넓힌다.
    셋째, 재조일본인 활동에 대한 내용을 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도록 강의안을 만들어 교재로 출판하고, 대중이 볼 수 있는 평이한 개설서를 출판한다.
  • 색인어
  • 동양협회, 조선 경영, 조선 인식, 만주 경영, 만주 인식, 재조일본인, 샤쿠오, 대륙침략, 조선침략, 조선 이주, 조선급만주, 동화, 식민사업, 식민정책, 조선 연구 Dong-yang Association, managiment of Josen, recognition of Josen, managiment of Manchuria, recognition of Manchuria, Japanese in Josen, Shakuo, the continental invasion, the invasion on Josen. the immigration to Josen, The Josen and Manchu, assimilation, colonization, a colonial policy, the study of J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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