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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도에 표현된 대마도 인식의 변천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신진연구자지원사업& #40;인문사회& #41;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06-332-B00592
선정년도 2006 년
연구기간 1 년 (2006년 07월 01일 ~ 2007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오상학
연구수행기관 제주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대마도는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 있는 섬으로 부산까지는 49.5km, 일본의 본토 후쿠오카까지는 138km 정도 떨어져 있다. 지형적으로는 산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경지는 일부 해안가에 있는 정도로 전체 면적의 3%에 불과하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대마도인들은 식량 확보를 위해 일찍부터 해외로 진출하였다. 특히 지리적으로 일본 본토보다는 우리나라와 가까워 우리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하게 행해졌다. 이에 따라 문화적으로도 일본 본토보다는 우리나라와의 친연성이 더 컸던 곳이다. 한 때 왜구의 본거지가 되어 조선 세종 때에는 이종무 장군이 이곳을 정벌하기도 했고, 임진왜란 이후 대일관계가 안정되면서 통신사가 거쳐가는 중요한 경로지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대마도를 어떻게 인식해 왔을까? 이에 대해서는 기존에 여러 연구들이 축적되어 있다. 다양한 사료의 검토를 통해 시기별로 대마도 인식의 흐름을 포착하는 연구들이 행해졌다. 이 과정에서 대마도에 대한 인식이 對馬故土意識, 對馬藩屛意識(속주의식), 대마구분의식 등으로 나타나는 경향들을 밝혀내었다. 특히 영토적으로는 일본에 속해 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조선의 국가질서 속에 의제적으로 편입된 兩屬관계가 조선후기까지 지속됨을 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는 문헌 사료를 활용한 연구들이고 지도를 분석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거의 없다. 특정 장소나 공간에 대한 인식은 지도와 같은 시각 자료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점을 고려할 때 대마도에 대한 인식의 변천도 지도를 통해 좀더 분명하게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제작된 지도들에 표현된 대마도의 이미지와 내용 등은 특정 시기에 형성되었던 대마도의 인식을 기초로 표출되기 때문에 이러한 지도의 이미지와 표현 내용의 검토를 통해 대마도 인식의 변천을 추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통시대에 제작된 지도는 정교한 측량에 의해 제작되는 현대지도와는 다르기 때문에 독해하는 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지도에 그려진 내용들이 현실세계를 즉각 반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은 과장, 왜곡되어지기도 하고 어떤 장소는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특정 지역의 인식은 당대의 사회적 조건, 과학기술의 수준, 개별 지역의 상대적 중요성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나타난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시대 제작되는 대부분의 조선전도에서는 대마도가 그려져 있다. 대마도의 정벌이 행해진 조선전기의 지도뿐만 아니라 조선후기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어 나타난다. 최근 일부 재야사학자나 정치인,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대마도 영유권 주장이 제기되면서 그 증거 자료로 조선전도를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마도가 조선전도에 그려져 있다고 해서 대마도 영유권 주장의 중요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을까?
    본 연구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대마도의 영유권 주장 이전에 조선시대 대마도 인식의 시계열적 변화상을 지도를 통해 파악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지도제작의 문화사적 관점에서 대마도가 지도에 표현되는 과정을 검토하고 표현된 대마도의 이미지는 어떠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가를 시계열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 기대효과
  • 1) 학문적으로는 먼저 고지도의 연구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다. 현재 한국 고지도의 연구는 주로 세계지도, 조선전도, 군현지도 등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고지도 연구의 폭을 확장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대마도와 같은 외국 지역을 그린 지도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연구함으로써 외국의 특정 지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이를 통해 한국의 고지도에 대한 이해도 한층 심화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최근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마도 영유권과 관련하여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일부 시민단체나 정치권 등에서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응하여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서고 있고 이의 중요한 근거로서 조선시대의 지도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엄밀한 학문적 연구 결과로서 제기되기보다는 다분히 감정적 대응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따라서 고지도에 나타난 인식이 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영유권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학문적 차원에서 규명됨으로써 영유권 논의의 지평을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2) 교육부분의 연계 효과를 들 수 있다. 최근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자국을 넘어 외국과의 교류와 협력이 증대되고 있다. 이와 아울러 국지적으로는 민족적, 종교적, 국가적 갈등과 분쟁이 격화되기도 한다. 특히 최근 한국과 일본은 독도문제, 한국과 중국은 고구려 문제 등을 중심으로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국가간의 공존을 추구하면서 한편으로 민족의 자존을 지키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자라나는 2세의 교육에서 더욱 중요하다. 과거 선조들이 우리의 주변 지역을 어떻게 인식하고 관계를 맺어 왔는가를 살펴봄으로써 미래의 교훈과 시사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초, 중등 교과 과정에서 이뤄지는 영토교육에서도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를 세 시기로 구분하여 매시기의 대마도 관련 지도를 분석하여 대마도 인식의 변천을 추적하였다. 즉, 조선시대 지도제작의 역사를 대일관계를 고려하여 임진왜란 이전시기를 조선전기, 임진왜란 이후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는 시기까지를 조선후기,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서구문명이 도입되는 시기를 개화기로 설정하여 각 시기별로 지도에 표현되는 대마도 인식의 특징을 파악하고자 했는데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1) 조선전기 지도의 분석 -
    여기서는 조선전기에 제작되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유형,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 유형의 세계지도와 정척·양성지의 [동국지도] 유형,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동람도」 유형과 같은 조선전도에서 표현된 대마도의 이미지와 내용을 검토하여 인식상의 특징을 파악한다. 아울러 조선전기 대일정책의 지침서와 같은 역할을 했던 [해동제국기]에 수록된 상세한 대마도 지도를 검토하고 이 지도의 제작과정과 지도에 표현된 대마도의 형태, 수록된 내용 등을 토대로 대마도 인식의 성격을 밝힌다.

    2) 조선후기 지도의 분석 -
    임진왜란 이후 제작되는 대마도 지도를 통해 대마도 인식의 특징을 밝힌다. 이를 위해 먼저 조선전도에 표현되는 대마도의 이미지를 통해 인식의 특징을 고찰한다. 조선후기에는 정상기의 [동국지도]와 같은 전기에 비해 훨씬 정확하고 사실적인 지도가 제작되는데 이러한 지도에 표현된 대마도의 이미지를 검토한다. 아울러 이 시기에는 대일관계가 안정되면서 통신사의 왕래가 빈번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최신의 대마도 지도가 조선에 유입되었다. 이러한 최신의 대마도 지도를 통해 대마도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었는가를 파악할 것이다. 또한 이성린의 [사로승구도], 이의양의 [대마도부중도]와 같은 회화식 지도도 대마도 지역의 인식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자료로서 분석될 것이다.

    3) 개화기 지도의 분석 -
    조선은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하면서 서양의 근대문명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 일본을 통해 근대적 지도제작의 기술이 도입되면서 실지 측량에 기반한 지도제작도 행해졌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측량지도가 유입되었고 이에 따라 근대적 측량에 기반하여 제작된 대마도 지도도 조선에 소개되었다. 이에 따라 이 시기에 제작되는 조선전도에서는 이전 시기의 전도에서와는 다른 대마도의 이미지가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은 개화기 조선전도에 수용된 대마도의 지도를 통해 대마도 인식의 성격을 파악할 것이다.
  • 한글키워드
  • 조선전도,대마도 지도,지명,통신사,영토문제,대마도 인식
  • 영문키워드
  • complete maps of Joseon,perception of Tsushima,maps of Tsushima,the official envoys,place names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조선시대의 대마도 지도에 표현된 대미도 인식의 변천을 파악한 것이다. 대마도는 지리적으로 일본보다는 조선에 가까워 일찍부터 우리나라와의 교류가 이루어져 왔다. 때로는 왜구의 소굴이 되어 세종 때는 대마도의 토벌이 행해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대마도는 조선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지도에 표현되었다. 대마도가 최초로 표현되는 것은 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볼 수 있다. 동서로 길쭉한 형태를 띠며 서쪽 부분이 만입된 모습이다. 조선전기 가장 대표적인 대마도 지도는 1471년 󰡔해동제국기󰡕의 대마도 지도이다. 이것은 조선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제작한 것으로 대마도의 지명이 상세히 표기되어 있다. 󰡔해동제국기󰡕의 대마도 지도는 이후 전도에 반영되어 1557년 제작된 󰡔조선방역지도󰡕에도 유사한 형태로 묘사되었다. 조선전기의 대표적인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와 경상도 지도에는 대마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러한 전통은 조선후기에도 지속된다.
    조선후기의 전도에서도 대마도는 계속 그려지는데 전기에 비해 좀 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17세기의 󰡔팔도총도󰡕나 18세기의 󰡔천하대총일람지도󰡕, 󰡔해동지도󰡕의 「대동총도」에 그려진 대마도 지도에는 조선전기와 달리 여러 개의 지명이 수록되었다. 󰡔해좌전도󰡕나 󰡔도리도표󰡕의 전도에는 대마도에 관한 기록이 함께 수록되기도 했다. 그러나 18세기에 제작된 정상기의 󰡔동국지도󰡕에는 조선전기 󰡔해동제국기󰡕에 수록된 대마도 지도의 형태를 따르고 있고, 세부적인 지명의 표기는 없다. 조선후기 대마도에 대한 인식이 심화되는 계기는 통신사 일행에 의해 새로운 대마도 지도를 수입하면서였다. 성대중은 1763년 사행에서 자세한 대마도 지도를 구입해 왔는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각국도󰡕에 수록된 지도로 추정된다. 이러한 새로운 정보의 유입으로 인해 규장각 소장 󰡔해동삼국도󰡕에는 전기와는 다른 정교한 형태의 대마도 지도가 수록될 수 있었다. 󰡔사로승구도󰡕나 이의양의 󰡔대마도부중도󰡕와 같은 회화식 지도도 대마도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개항 이후 일본의 지리지식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측량에 의해 그려진 정교한 대마도 지도가 조선의 전도에 수록되어 대마도를 실재에 가깝게 인식하게 되었다.
  • 영문
  • This is a study on the change in perception of Tsushima represented in maps of the Joseon dynasty. The exchanges with Tsushima in Joseon dynasty had continued although Joseon's conquest of Tsushima. Therefore Tsushima was significantly expressed in maps. Tsushima was first depicted in 󰡔Honil kangni yokdae kukdojido󰡕 . The shape of Tsushima extended east and west. The most representative map of Tsushima was in 󰡔Haedong Jegukgi󰡕. This map was made in Joseon dynasty, there were many place names. The map of Tsushima in 󰡔Joseonbangyok jido󰡕 was similar to that of 󰡔Haedong Jegukgi󰡕. There were maps of Tsushima in 「Dongnamdo] of 󰡔Sinjeungdonggukyeojiseungnam󰡕.
    Many kinds of the maps of Tsushima were made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re were many place names in these maps. Specially there were records in 󰡔Haejoajeondo󰡕 and 󰡔Doridopyo󰡕 about Tsushima. The map of Tsushima in Jeongsanggi's 󰡔Donggukjido󰡕 was similar to that of 󰡔Haedongjegukgi󰡕, and there were no place names in that. After importation of newly made maps of Tsushima, the understandings of Tsushima were deepened. In 1763, official envoy Seongdaejung got accurate map of Tsushima, the one of the maps in 󰡔Gakgukdo󰡕. Owing to new information of Tsushima, precise map of Tsushima in 󰡔Haedongsamgukdo󰡕 could be made. Also pictorial maps like 󰡔Saroseunggudo󰡕 helped to deepen understanding of Tsushima. After opening of ports, the elaborate map of map of Tsushima based on survey were made, and became to understand Tsushima in realit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대마도는 지리적으로 일본보다는 조선에 가까워 일찍부터 우리나라와의 교류가 일찍부터 행해졌다. 이에 따라 대마도는 조선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지도에 표현되었다. 대마도가 최초로 표현되는 것은 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볼 수 있다. 동서로 길쭉한 형태를 띠며 서쪽 부분이 만입된 모습이다. 조선전기 가장 대표적인 대마도 지도는 1471년 󰡔해동제국기󰡕의 대마도 지도이다. 이것은 조선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제작한 것으로 대마도의 지명이 상세히 표기되어 있다. 󰡔해동제국기󰡕의 대마도 지도는 이후 전도에 반영되어 1557년 제작된 󰡔조선방역지도󰡕에도 유사한 형태로 묘사되었다. 조선전기의 대표적인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와 경상도 지도에는 대마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러한 전통은 조선후기에도 지속된다. 조선후기의 전도에서도 대마도는 계속 그려지는데 전기에 비해 좀 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17세기의 󰡔팔도총도󰡕나 18세기의 󰡔천하대총일람지도󰡕, 󰡔해동지도󰡕의 「대동총도」에 그려진 대마도 지도에는 조선전기와 달리 여러 개의 지명이 수록되었다. 그러나 18세기에 제작된 정상기의 󰡔동국지도󰡕에는 조선전기 󰡔해동제국기󰡕에 수록된 대마도 지도의 형태를 따르고 있고, 세부적인 지명의 표기는 없다. 조선후기 대마도에 대한 인식이 심화되는 계기는 통신사 일행에 의해 새로운 대마도 지도를 수입하면서였다. 성대중은 1763년 사행에서 자세한 대마도 지도를 구입해 왔는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각국도󰡕에 수록된 지도로 추정된다. 이러한 새로운 정보의 유입으로 인해 규장각 소장 󰡔해동삼국도󰡕에는 전기와는 다른 정교한 형태의 대마도 지도가 수록될 수 있었다. 󰡔槎路勝區圖󰡕나 李義養의 󰡔對馬島府中圖󰡕와 같은 회화식 지도도 대마도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개항 이후 일본의 지리지식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측량에 의해 그려진 정교한 대마도 지도가 조선의 전도에 수록되어 대마도를 실재에 가깝게 인식하게 되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영유권 주장과 관련된 학술적 논의 제공
    최근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마도 영유권과 관련하여 시사점을 줄 수 있다. 현재 일부 시민단체나 정치권 등에서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응하여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서고 있고 이의 중요한 근거로서 조선시대의 지도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엄밀한 학문적 연구 결과로서 제기되기보다는 다분히 감정적 대응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따라서 고지도에 나타난 인식이 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영유권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학문적 차원에서 규명됨으로써 영유권 논의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 교육부분의 연계 효과
    최근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자국을 넘어 외국과의 교류와 협력이 증대되고 있다. 이와 아울러 국지적으로는 민족적, 종교적, 국가적 갈등과 분쟁이 격화되기도 한다. 특히 최근 한국과 일본은 독도문제, 한국과 중국은 고구려 문제 등을 중심으로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국가간의 공존을 추구하면서 한편으로 민족의 자존을 지키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자라나는 2세의 교육에서 더욱 중요하다. 과거 선조들이 우리의 주변 지역을 어떻게 인식하고 관계를 맺어 왔는가를 살펴봄으로써 미래의 교훈과 시사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초, 중등 교과 과정에서 이뤄지는 영토교육에서도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대마도 지도, 대마도 인식, 조선전도, 영토문제, 통신사, 지명, 지도제작 maps of Tsushima, perception of Tsushima, complete maps of Joseon, the official envoys, place names, map ma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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