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신사로서의 철학사는 불연속적 도약과 혁신의 논리를 내적으로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사유를 발생론적 전제로 하지 않는 새로운 사유는 없다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이다. 철학의 물음 자체와 씨름하는 철학자들이 철학사를 ...
인간의 정신사로서의 철학사는 불연속적 도약과 혁신의 논리를 내적으로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사유를 발생론적 전제로 하지 않는 새로운 사유는 없다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이다. 철학의 물음 자체와 씨름하는 철학자들이 철학사를 연구할 수밖에 없는 궁극적인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중세철학이라는 거대한 사유의 유산에 대한 연구가 극히 취약한 우리의 현실은, 철학사를 통해 철학을 연구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은 특히 근대철학 연구자들에게 심각한 불리함으로 작용하는데, 왜냐하면 근대철학을 예비하고 배태한 중세철학의 풍성한 토양을 이해함으로써 근대철학의 전모를 그 기원으로부터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 시야가 이러한 현실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철학의 중세철학적 발생 기원의 예를 우리는 자기인식의 문제를 둘러싼 중세의 지성론적 학설이나 유명론을 토대로 한 개별자 중심의 형이상학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중세철학과 근대철학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가장 확연한 예는 중세 후기 주의주의 전통의 영혼이론 특히 의지이론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강조되는 의지의 자유와 자기결정, 자기정립 등의 개념은 근대철학의 핵심에 있는 개별적 주체 혹은 주관성이라는 관념의 밑바탕을 이룬다. 이 논문의 궁극적 목표는 중세 후기 주의주의 전통의 이론적 정체성과 역사적 의의를 연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중세철학과 근대철학의 연속성을 밝히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궁극적인 목표 의식 하에서, 본 연구자는 이 전통을 성립시킨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초반의 이론가들에 대한 미시적인 문헌 연구를 진행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러한 연구 방식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겠지만, 정직한 문헌 연구의 토대 없이 근대의 맹아를 포함하는 거시적인 철학사의 문맥을 제시하는 것은 애초에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본 연구자는 이러한 전략 하에, 구알테루스 브루겐시스와 요한네스 페카무스에서 출발하여 귈렐무스 데 라 마레, 헨리쿠스 간다벤시스, 요한네스 페트루스 올리비를 거쳐 마침내 둔스 스코투스와 옥캄에 이르는 의지이론의 발전 과정을 연속 논문의 형태로 준비하고 있다. 제출된 논문(중세 후기 주의주의의 원천 I)은 이러한 연속 논문의 첫 번째 편으로서, 중세 후기 주의주의의 초석을 놓은 이론가인 구알테루스 브루겐시스 의지이론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이 논문이 직접적으로 목표하는 바는, 구알테루스 브루겐시스의 토론문제집을 토대로 의지의 개념적 규정, 의지와 지성의 관계, 의지의 자유 등에 대한 그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의 체계적 재구성은 단순히 학설사적(doxographisch) 관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중세 후기 주의주의의 이론적 정체성의 등장과 확립이라는 관점에서 구알테루스 이론의 역사적 의미를 온전히 평가하려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서, 이 논문은 토마스 아퀴나스 의지이론과의 비교, 헨리쿠스와 같은 후대 주의주의자에 대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지성에 대한 의지의 우위성이라는 테제, 주권적 능력으로서의 의지 규정 등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영혼이론 일반과 토마스의 초기 의지이론을 겨냥한 것이었던 바, 이렇게 생겨난 논쟁의 전선은 토마스의 후계자들과 구알테루스의 후계자들 사이에 계속 변형, 지속되며 의지 개념을 둘러싼 수많은 심리학적, 형이상학적 이론을 재생산해 낸다. 둔스 스코투스와 옥캄 의지이론의 등장은 이러한 논쟁의 문맥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거니와, 구알테루스를 다루는 이 논문을 통해 우리는 스코투스와 옥캄에까지 이르는 이후의 주지주의-주의주의의 논쟁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역사적인 전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구알테루스의 의지이론이라는 명확히 규정된 연구 대상을 지니면서도 더 포괄적인 이론적, 역사적 공간의 탐구를 예비한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일종의 ‘새로운’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