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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지식인: 스페인 '떼르뚤리아' 사례 연구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기초연구지원인문사회& #40;창의주제연구& #41;
연구과제번호 2007-321-A00205
선정년도 2007 년
연구기간 1 년 (2007년 08월 01일 ~ 2008년 07월 31일)
연구책임자 김재선
연구수행기관 세계문학비교학회
과제진행현황 종료
공동연구원 현황 박채연(한국외국어대학교)
전용갑(한국외국어대학교)
이만희(한국외국어대학교)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떼르뚤리아(tertulia)’란 스페인왕립아카데미아(Real Academia Española)사전에 의하면 ‘담소를 나누거나 여가를 즐기기 위하여 자주 만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정의되고 있는 보통명사이다. 오늘날 이 명칭은 문인, 예술가, 과학자, 교수, 대학생 등 지식인 계층은 물론 도시와 농촌의 지방자치단체나 전국의 성당과 노인학교 그리고 심지어는 군대와 같은 폐쇄적인 조직에 이르기까지 주로 유사한 문학 예술상의 취향을 지닌 애호가들의 모임을 일컫는다.
    16세기 말에 귀족과 성직자, 문인,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태동한 떼르뚤리아가 역사적 발전과정을 통해 현재 일반인들에게까지 공유되는 하나의 광범위한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에서, 이 나라 지식인들의 집단적 논의가 사유화의 폐쇄적인 길로 빠지지 않고 현실의 시대적인 문제를 적극 반영함으로써 서서히 대중적 공감대를 획득해 나아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떼르뚤리아가 프랑스를 비롯한 독일, 오스트리아 등 인근 유럽 국가들의 ‘살롱문화’와 유사한 외형을 보이면서도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이나 예술적 취향의 사교적 성격을 뛰어 넘는 특유의 진지함을 지니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무적함대의 패배 이후 스페인이 걸어왔던 순탄치 않은 역사적 발자취에 기인한 바가 크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에서 ‘피레네 너머의 아프리카’로 전락한 이 나라의 지식인들은 떼르뚤리아를 고고한 한담이나 현학적 취향의 경연장이 아닌, 문학과 예술을 통해 국가의 위기 상황을 반추하고 근본적인 사회적 해결 방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진지한 담론의 장으로 발전시켜 왔던 것이다.
    떼르뚤리아에 대한 연구는 17세기 이후 스페인문학예술의 주요 흐름을 개별 작가나 작품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제도적, 집단적 노력의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시대와 지식인들의 담론 형성과정을 파악하는 데에 매우 유용한 패러다임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한 시기에 존재했었던 대표적인 떼르뚤리아의 성향을 파악하고 논쟁들을 정리하는 일은 곧 당대에 관심사로 부각되었던 문학예술 담론을 분류하고 이해하는 데에 매우 유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떼르뚤리아에 소속된 구성원들을 살펴봄으로써 각 역사적 시기에 그들이 행했던 문화적 역할 및 상호영향관계를 파악하고 해당 인물의 전기적 요소 및 작품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떼르뚤리아는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으나 일부에서는 유럽의 ‘살롱문화’로 포괄하여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떼르뚤리아는 다른 유럽국가의 ‘살롱’과 형태상 유사하면서도 스페인 고유의 사회전통과 역사적 상황으로 인해 무시할 수 없는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살롱’은 1610년 프랑스의 랑부이에 후작 부인에 의해 처음 세워진 이래 ‘살로니에르’라 불리우던 귀부인들에 의해 설립, 전수되는 전통이 있었으며 따라서 여기에는 섬세한 여성문화적 성격과 함께 오랫동안 순종적인 역할을 강요받았던 여성들이 사회규범과 체제를 타파하는 여성 해방의 진보적인 요소가 깃들여 있었다. 이에 반해 ‘떼르뚤리아’는 스페인 특유의 남성우월주의(machismo) 분위기가 강했으며 개중에는 심지어 귀부인이라 하더라도 여자들의 출입을 아예 금지시킨 떼르뚤리아도 존재했다.
    떼르뚤리아에 대한 연구는 그간 국내 스페인어권 문학 연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미개척 분야의 주제로, 무엇보다 학문적으로 선행연구차원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페인어권 전공학자들에 의해 이 언어권의 주요 작가와 작품, 경향 및 이론들의 소개와 연구는 적지 않은 성과를 이루었으나 아직까지 떼르뚤리아로 대표되는 집단적 동인활동 및 제도에 대한 관심은 미약했었다. 본 연구는 떼르뚤리아의 제도적 특성을 국내에 소개함과 동시에 이를 통해 시대적 상황의 변천에 따른 스페인 지식인들의 역할과 문학예술 담론의 형성 및 전개과정을 알아본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작업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변별되는 스페인의 독자적인 문화적 힘과 자생력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기대효과
  • 본 과제의 기대효과로는 첫째, 떼르뚤리아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주제로서, 무엇보다 선행연구적 가치와 연구 지평의 확대라는 일차적인 의미를 지닌다. 둘째, 스페인 문학을 보다 확장된 시각으로 이해한다. 즉 떼르뚤리아는 17세기 이후 이 나라 문학의 문학사적 발전과정을 다양한 제반 요소들(구성원들 상호간, 구성원과 사회적ㆍ역사적 배경 사이, 다양한 문학적ㆍ사상적 담론들 사이) 간의 ‘관계성’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셋째, 스페인 문학사 및 지성사의 주요 논의와 담론들을 떼르뚤리아와의 연관성 하에 살펴봄으로써,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작가와 지식인들이 행했던 공동의 노력과 대처방안을 알아본다. 넷째, 작가들이 소속되어 활동했었던 집단의 특성을 파악함으로써 개별 단위주체(작가, 작품, 경향)에 대한 이해의 폭을 한 층 더 넓힌다. 다섯째, 시대별로 명멸했던 수많은 떼르뚤리아와 참여자의 목록을 수집하고 주요 특징을 분류함으로써 소중한 자료적 가치를 확보한다. 여섯째, 복합적ㆍ중층적 연구를 통해 국내 스페인 문학의 연구방법론을 확장하고 다양화하는 데에 기여한다.
    본 연구는 자연발생적인 성격의 소규모 비공식적 단체로 출발한 떼르뚤리아가 어떻게 시대적 담론을 장악하며 사회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가에 주목한다. 자발적으로 떼르뚤리아를 구성한 스페인 지식인들의 토론 문화는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넘어 건강한 사회적 담론을 창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떼르뚤리아를 매개로 한 스페인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역할은 오늘날 인문학 부재 현상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에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될 가치가 있다. 우리 사회의 인문학은 세계화와 정보화를 표방한 물질주의 앞에 속절없이 무기력하거나 대학의 아카데미즘에 고립되어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근본적으로, 대중이 인문학을 외면한 결과라기보다는 지식인이 대중들을 외면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의 가치는 뛰어난 학술적 업적 못지않게 대중에게로 다가갈 수 있는 ‘소통의 방식’을 찾음으로써 비로소 완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페인의 떼르뚤리아에서 찾고자 하는 가장 큰 사회적 의미는 바로 이와 같은 ‘인문학의 대중화’와 ‘지식인의 적극적인 역할’이다. 본 과제의 연구 성과가 우리 사회의 인문학적 소통과 생산적인 담론 창출을 위한 하나의 사례적인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본 과제의 연구 성과는 대학(원)에서 교육과정을 통해 즉시 활용 가능하다. 현재 국내 학부와 대학원에 개설된 스페인 문학 교과 과정의 대부분은 작가와 작품, 문예사조 중심으로 다소 단편적으로 편성되어 있다. 이는 문학 연구 방법론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개별적인 개념 이해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만 개념들의 연계성을 파악하는 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학문적 기여도’에서 언급한 이유들로 인해, 본 연구의 성과들은 이와 같은 단점을 보완하고 대학(원)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떼르뚤리아의 역사와 성격, 사회적 영향력을 사례별로 담은 자료집을 발간하여 국내 대학이나 공식적인 인문학 연구기관 이외에 사설 인문학연구단체에 배부, 인문학의 저변확대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제도적, 정책적 대안 마련에 참고자료로써 활용되게 한다.
    이제 인문학은 대학 강단을 벗어나 사회 각급 단체로 능동적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다. 현재 스페인의 각급 학교 및 지방자치단체, 교회 등은 자체적으로 수 많은 떼르뚤리아를 조직하거나 지원하고 있다. 떼르뚤리아 제도의 특성과 기능을 국내의 유관단체에 소개함으로써 인문학의 저변확대에 기여한다.
    적지 않은 일반인들은 아직도 스페인을 19세기 서구 낭만주의자들이 본 ‘탬버린의 스페인(España de Pandereta)’으로 보고 있다. 즉 축제와 투우, 플라멩코가 이 나라의 이미지의 시작이자 끝인 경우가 많다. 떼르뚤리아에 묻어 있는 스페인의 진지한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특히 프랑스의 ‘살롱문화’와의 차이점을 언급함으로써 스페인의 문화적 독자성을 알린다.
  • 연구요약
  • 본 연구는 스페인의 ‘문학 떼르뚤리아’를 총체적인 시각에서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즉 떼르뚤리아의 역사적 전개ㆍ발달과정과 문학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조직의 특성과 사회적 파급효과,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적 수용 가능성까지를 고려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 과제는 떼르뚤리아의 태동과 역사적 발전 단계에 맞추어 17세기(황금세기) - 18세기(계몽주의) - 19세기말, 20세기 초(국가위기상황)로 구분하였으며, ‘떼르뚤리아가 중남미문학에 미친 영향’ 및 상기과제를 총체적으로 취합, 정리한 ‘통합과제’를 상정하였다. 따라서 본 과제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개의 세부 영역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제 1 연구과제> 황금세기와 떼르뚤리아의 태동/
    <제 2 연구과제> 계몽주의 시대 개혁세력의 산실로서의 떼르뚤리아/
    <제 3 연구과제> 국가 정체성 확립과 떼르뚤리아/
    <제 4 연구과제> 스페인 떼르뚤리아와 중남미문학/
    <통합과제>/

    개별과제는 1)시대 배경과 연구 대상 문학 떼르뚤리아를 선정, 분류하며, 2)설립 동기와 목표, 구성상의 제반 요소들을 조사한다. 또한 수집,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3)떼르뚤리아의 문학적 기능 및 의미를 살펴보고, 4)참여 지식인들의 역할과 사회적 파급효과를 분석할 것이다.
    통합과제에서는 개별연구과제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1)떼르뚤리아의 문학사적 의미, 2)떼르뚤리아의 제도적 특성과 사회적 역할, 3) 시대상황과 지식인의 역할을 고찰할 것이다.
    연구개시와 함께 <제 1과제>에서 <제 4과제>까지는 동시 진행한다. 개별 연구 과제는 참여 연구원들의 세부 전공을 고려하여 배분한 것이다. 해당 연구원들에게 각각 1인의 보조연구원을 배정함으로써 자료 수집 및 분류 작업을 보조하게 한다.

    <제 1 과제> ‘황금세기와 떼르뚤리아의 태동’에서는 스페인이 정치적 패권을 상실하고 쇠퇴기에 접어들었으나 문학사상 가장 찬란한 ‘황금세기’를 구가한 16세기 말과 17세기 떼르뚤리아의 태동 배경을 알아본다. 발렌시아의 ‘아카데미아 델 로스 녹뚜르노스’, 마드리드의 ‘아카데미아 셀바헤’, 그리고 로뻬 데 베가의 참석으로 유명한 ‘아카데미아 만뚜아나’ 등을 대표 조사 사례로 선정한다. 특히 로뻬 데 베가의 국민연극 형성 과정에 그의 떼르뚤리아 활동이 미친 영향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제 2 과제> ‘계몽주의 시대 개혁세력의 산실로서의 떼르뚤리아’에서는 당시 유럽의 계몽주의사상과 떼르뚤리아의 상관성을 분석하고 이 제도를 통해 스페인의 낙후된 전통을 개혁하고자 한 스페인 문인과 지식인들의 노력을 알아본다. 대표사례로는 ‘아카데미아 델 부엔 구스또’, ‘아카데미아 데 뜨리뽀데’, ‘떼르뚤리아 델 라 폰다 데 산 세바스띠안’ 및 ‘살로네스 데 올라비데’를 선정하였다.
    <제 3과제> ‘국가 정체성 확립과 떼르뚤리아’에서는 19세기말, 20세기 초 스페인의 정치적인 괴멸의 시기, 국가정체성 확립을 위해 노력한 98세대, 14세대, 27세대 지식인들의 주요 활동 공간이었던 떼르뚤리아의 역할과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98세대 지식인들의 요람이었던 ‘카페 레반떼’와 오르떼가 이 가세트가 주도했던 ‘카페 그랑하 델 에나르’, 그리고 27세대의 산실이었던 ‘마드리드 학생기숙사’와 ‘카페 히혼’을 대표사례로서 살펴볼 것이다.
    <제 4과제> ‘스페인 떼르뚤리아와 중남미문학’에서는 20세기 초 스페인을 찾은 많은 중남미 문인들이 거쳐 갔던 마드리드의 ‘보띠예리아 이 카페 데 뽐보’의 대표 사례로 선정하였다.
    이곳에 남아있는 중남미 문인들의 일화와 흔적을 통해 그들의 작품에 배어 있는 떼르뚤리아의 영향과 문학적 의미를 분석해 볼 것이다. 모든 연구원이 참여하는 <통합과제>에서는 개별연구과제의 성과를 바탕으로 스페인 문학에 떼르뚤리아가 기여한 요소들을 정리ㆍ분석하고, 이 제도의 구조적 특성 및 사회적 파급효과를 알아보며, 위기의 시대 스페인 지식인들이 보여주었던 성찰의 노력과 대처방안을 통해 이 나라 지식인사회의 전통과 교훈을 고찰해 본다.
  • 한글키워드
  • 스페인문학/ 지식인/ 떼르뚤리아/ 살롱문화/ 아카데미아/ 황금세기/ 계몽주의/ 신고전주의/ 98세대/ 27세대/ 14세대/ 로뻬 데 베가/ 국민연극/ 아카데미아 데 로스 녹뜨루노스/ 아카데미아 셀바헤/ 아카데미아 만뚜아나/ 과학논쟁/ 아카데미아 델 부엔 구스또/ 아카데미아 데 뜨리뽀데/ 떼르뚤리아 델 라 뽄다 데 산세바스띠안/ 살로네스 데 올라비데/ 국가정체성/ 오르떼가 이 가세트/ 마드리드 학생기숙사/ 카페 히혼/ 중남미문학/ 모데르니스모/ 우나무노/ 바예인끌란/ 페이호오/ 호베야노스/ 깜뽀마네스
  • 영문키워드
  • Spanish literature/ intelligentsia/ contemporaneity/ Tertulia/ salon/ Golden Age/ Ilustration/ Neoclassicism/ Lope de Vega/ Generacion del 98/ Generacion del 27/ Novecentismo/ Academia de los nocturnos/ Academia Selvaje/ Academia Mantuana/ Academia del Buen Gusto/ Academia de Tripode/ Tertulia de la Fonda de San Sebastian/ Ortega y Gasset/ Feijoo/ Jovellanos/ Campomanes/ Unamuno/ Valle-Inclan/ Cafe Gijon/ Residencia Madrid de los estudiantes/ Latinamerican literature/ modernismo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스페인 문학 떼르뚤리아는 16세기에 들어와 문학 아카데미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스페인 근대 아카데미는 멀리는 중세 이베리아 지역의 문학 회합의 전통과 가깝게는 밀라노와 나폴리 부왕령을 통해 교류가 이루어졌던 이탈리아 아카데미의 영향으로 시작되어 황금세기 스페인 문학계에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던 문학 활동이었다. 귀족의 저택에서 당시 대부분의 문학애호가들이 참가했던 문학 동호회의 성격을 가진 일반 아카데미는 시인이나 작가가 정기적으로 자신의 문학 작품을 발표하고 동료들의 비평을 들으면서 문학적인 훈련과 연습의 장으로 활용되어 스페인 황금세기 문학을 배태한 요람이 되었다. 스페인 문학 아카데미는 직접적인 영향 관계에 있었던 이탈리아 아카데미의 형식을 따랐지만, 엄격한 계서제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회장과 회합 장소 순환제와 같은 스페인적인 자유로움이 반영되어 독특한 아카데미 문화를 만들어 갔다. 그밖에 아카데미의 회칙과 회의록에 명시되어 있는 입회 기준과 입회 희망자에 대한 평가에서 각 지역의 문학적인 취향을 가늠할 수 있는 바, 문학 아카데미가 황금세기 문학 유파 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크 시대 문학 아카데미는 스페인 각 도시의 귀족들의 저택에서 당대 문인들과 문학애호가들이 참가했던 보편화된 문화 현상이었다. 당시 문학 아카데미는 회합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칙을 만들었고, 모임의 본질적인 측면이었던 회합 참석과 주제 발표에 대해서는 벌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아카데미의 주요 요소 중의 하나였던 ‘베하멘’이 청중에게 놀람과 충격의 효과를 제공하고 문학 아카데미에 음악과 춤을 비롯한 연극적 요소를 과감하게 도입한 것은 바로크 미학을 온전히 구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여성과 함께 시작된 프랑스의 살롱과 트렌토 공의회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여성을 영입한 이탈리아의 아카데미와 비교할 때, 스페인 바로크 문학 아카데미는 여성의 참여라는 부분에서는 강력한 보수성을 드러내었다. 예외적으로 후원자의 가족들이 여성 회원으로 영입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그 역할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17세기 말을 향해 가면서 여성들에 대한 문호를 조금씩 개방해 가지만, 프랑스 살롱과 같은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고, 다만 청중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이 사실은 당대 여성의 영입 문제는 토론 주제가 가벼워진다는 것과 오락적인 경향을 추구하는 흐름과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오히려 스페인 아카데미의 진지한 문학적 풍토를 반영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볼 수 있다. 스페인 문학 아카데미는 또한 직접적인 영향 관계에 있었던 이탈리아 아카데미의 형식을 따랐지만, 엄격한 계서제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회장과 회합 장소 순환제와 같은 스페인적인 자유로움이 반영되어 독특한 아카데미 문화를 만들어 갔다. 순환제 회장직과 별명의 사용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스페인 문학 아카데미는 문학 작품 발표와 비평에 있어서 필수적인 자유와 평등의 공간을 창조해 내는데 주력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하여 금서목록과 종교재판소로 대변되는 반종교개혁기 스페인의 사회 환경 속에서 스페인 문학이 최 전성기의 열매를 거둘 수 있는 문학적 토양을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는 왕립언어아카데미의 등장과 함께 사적인 문학 공간을 의미하는 떼르뚤리아란 용어가 대중화되는 시기이다. 당시 스페인의 문인과 지식인들은 이 공간을 통해서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을 접할 수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스페인 문학은 스페인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근본적 성찰에 집중하는데,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졌던 공간이 떼르뚤리아였다. ‘카페 리온(Café Lyon)’은 공화국 정부의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인들의 떼르뚤리아와 문인들의 떼르뚤리아가 열리던 장소였다. 유럽의 문학적 유행을 일방적으로 수용해 오던 중남미가 진정한 상호 영향관계를 쌓기 시작한 것은 모데르니스모를 전후한 시기부터이다. 스페인, 특히 마드리드의 문학 떼르뚤리아는 이러한 중남미 문인들이 문학적 교류의 현장이었다.
  • 영문
  • En España las tertulias literarias tienen antecedentes antiquísimos, pues en tiempos de los moros ya se reunían los aficionados a las letras a discutir y oír poemas en Sevilla, Valencia, Granada y otras ciudades. La academia moderna tiene su origen en Italia, por el florecimiento de los literatos en el siglo XVI o por la protección de los príncipes. Las academias literarias son una reunión aristocrática y jerarquizada de hombres relacionados con la literatura y las artes que, previa convocatoria, se reunían para discutir con fervor. En la Edad de Oro, casi todos los escritores de la época pertenecieron a una academia literaria. Las sociedades literarias de entonces fueron tan populares que casi todos los escritores participaron activamente como miembros. A comienzos de aquel siglo, las academias se habían convertido en verdaderas fábricas de producción de versos. En esos momentos, casi todas las academias se reunían en las ciudades. Estas actividades literarias urbanas forman parte de la estética barroca, centrada en la difusión ideológica, tanto política como religiosa. Esto nos ofrece buena información sobre los gustos literarios que conservaron las escuelas poéticas de cada ciudad de la época áurea española. Cada academia tenía algunas reglas para mantener su asociación, en donde se pueden observar los criterios literarios para aplicar a los nuevos socios. Con el fin de mantener las reuniones, cada academia redactó sus reglamentos y aplicó severas sanciones a los académicos que las infringían. Las academias celebraron a veces certámenes, en los cuales se hacían ‘vejámenes' al final de las reuniones criticando a los poetas y al mismo tiempo sus obras. Esto provocó efectos de sorpresa e impacto en el público barroco. A lo largo del siglo XVII, las academias literarias se empezaron a teatralizar con la inclusión de elementos parateatrales y musicales. En comparación con las academias italianas y las francesas, las españolas mostraron un fuerte conservadurismo al restringir la participación de las mujeres y aceptándolas sólo como parte del público. Sin embargo, las tertulias españolas crearon un ambiente libre e igualitario, a través del uso de los pseudónimos y el sistema de rotación de los cargos entre los académicos. Esto ayudó a la literatura española a consolidar la base literaria para cosechar los mejores frutos de su historia aunque se viviera bajo la censura simbolizada por el Índice y la Inquisición de la Contrarreforma española. En el siglo XVIII, el rey Carlos III fundó la Real Academia Española, así que la gente empezó a utilizar la palabra 'tertulia' en lugar de 'academia'. En aquel entonces, los literatos españoles pudieron saborear la filosofía de la Ilustración en las tertulias. A partir de finales del siglo XIX, los escritores y pensadores se agruparon en las tertulias como Café Gijón, Café Lyon, etc. Por ejemplo, en Café Lyon, se abrió una tertulia de los políticos quienes eran figuras importantes de la República. Durante muchos siglos, los escritores hispanoamericanos recibieron unilateralmente las modas literarias desde Europa, pero a partir de la época del modernismo, dos mundos se influyeron mútuamente. Las tertulias de Madrid desempeñaron un papel importante para este intercambio cultural y literario entre ambos continente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떼르뚤리아(tertulia)’란 스페인 왕립아카데미 사전에 의하면 ‘담소를 나누거나 여가를 즐기기 위하여 자주 만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정의되고 있는 보통명사이다. 오늘날 이 명칭은 문인, 예술가, 과학자, 교수, 대학생 등 지식인 계층은 물론 도시와 농촌의 지방자치단체나 전국의 성당과 노인학교 그리고 심지어는 군대와 같은 폐쇄적인 조직에 이르기까지 주로 유사한 문학 예술상의 취향을 지닌 애호가들의 모임을 일컫는다.
    16세기 말에 귀족과 성직자, 문인,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태동한 떼르뚤리아가 역사적 발전과정을 통해 현재 일반인들에게까지 공유되는 하나의 광범위한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에서, 이 나라 지식인들의 집단적 논의가 사유화의 폐쇄적인 길로 빠지지 않고 현실의 시대적인 문제를 적극 반영함으로써 서서히 대중적 공감대를 획득해 나아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떼르뚤리아에 대한 연구는 17세기 이후 스페인 문학예술의 주요 흐름을 개별 작 작품의 관점에서가 아닌 제도적, 집단적 노력의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시대와 지식인들의 담론 형성과정을 파악하는 데에 매우 유용한 패러다임을 제공해주고 있다. 한 시기에 존재했었던 대표적인 떼르뚤리아의 성향을 파악하고 논쟁들을 정리하는 일은 곧 당대에 관심사로 부각되었던 문학예술 담론을 분류하고 이해하는 데에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떼르뚤리아에 소속된 작가와 지식인들의 면면을 살펴봄으로써 각 역사적 시기에 그들이 행했던 문화적 역할 및 상호 영향관계를 파악하고 해당 인물의 전기적 요소 및 작품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또한 비공식적 제도로서의 떼르뚤리아의 특성과 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한 연구인지라 대중적 파급력이 있는 대안문화 조직의 기능과 역할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즉 떼르뚤리아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생성과 소멸을 거듭해왔으며 그들의 담론이 어떠한 경로로 사회 일반에 전달되었는지를 알아보는 일은 우리에게도 사회와 지식인의 관계에 대한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지식인적 전통에서도 문학과 역사, 철학 등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당면한 현실사회문제를 보다 근본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했던 노력은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엘리트적 파당화로 치닫거나 혹은 지나치게 대중 계도적으로 흐름으로써 튼실한 사회적 착근력을 지니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근자에 회자되었던 ‘인문학의 부재’현상이, 사실은 대중과의 소통을 외면하고 지나치게 강단에 안주해왔던 ‘인문학자들의 위기’일 뿐이라는 사회 일각의 비난은 겸허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떼르뚤리아는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으나 일부에서는 유럽의 ‘살롱문화’로 포괄하여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떼르뚤리아는 다른 유럽국가의 ‘살롱’과 형태상 유사하면서도 스페인 고유의 사회전통과 역사적 상황으로 인해 무시할 수 없는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떼르뚤리아에 대한 연구는 그간 국내 스페인어권 문학 연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미개척 분야의 주제로, 무엇보다 학문적으로 선행연구차원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페인어권 전공학자들에 의해 이 언어권의 주요 작가와 작품, 경향 및 이론들의 소개와 연구는 적지 않은 성과를 이루었으나 아직까지 떼르뚤리아로 대표되는 집단적 동인활동 및 제도에 대한 관심은 미약했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떼르뚤리아의 제도적 특성을 국내에 소개함과 동시에 이를 통해 시대적 상황의 변천에 따른 스페인 지식인들의 역할과 문학예술 담론의 형성 및 전개과정을 알아본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작업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변별되는 스페인의 독자적인 문화적 힘과 자생력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떼르뚤리아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주제이기에 본 연구는 무엇보다 선행연구적 가치와 연구 지평의 확대라는 일차적인 의미를 지닌다. 떼르뚤리아가 스페인 문학사와 넓게는 지성사 전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에 대한 연구가 아직까지 시도되지 않은 이유는 일정 정도의 학문적 숙성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즉 떼르뚤리아는 개별 작가나 작품 혹은 하나의 문학적 경향 등 단일한 주제에 대한 ‘집중적 시각’을 요구하는 연구방법론이 축적된 이후에나 가능한 ‘복합적ㆍ중층적 관점’의 연구대상이기 때문이다. 떼르뚤리아는 대중이 아닌 저마다 독자적인 주관과 가치관이 뚜렷했던 작가나 지식인으로 구성된 독특한 ‘공동체적 개념’이며, 따라서 집단 속에 내재된 다양한 ‘관계성’의 함의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즉 이 주제는 한 개인이나 개별 작품에 천착하기 보다는 구성원과 사회적ㆍ역사적 배경 사이의 문학적ㆍ사상적 담론들 사이의 관련성 등 다양한 중층 구조를 동시에 파악함으로써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 하에 떼르뚤리아 연구의 학문적 의미와 기여도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 스페인문학 연구의 미개척 영역을 탐구함으로써 선행 연구적 가치를 지닌다. 둘째, 스페인 문학을 보다 확장된 시각으로 이해한다. 즉 17세기 이후 이 나라 문학의 발전과정을 다양한 제반 요소들 간의 ‘관계성’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셋째, 스페인 문학사 및 지성사의 주요 논의와 담론들을 떼르뚤리아와의 연관성 하에 살펴보고, 작가들이 소속되어 활동했었던 집단의 특성을 파악함으로써 개별 단위주체(작가, 작품, 경향)에 대한 이해의 폭을 한 층 더 넓힌다. 넷째, 복합적ㆍ중층적 연구를 통해 국내 스페인 문학의 연구방법론을 확장하고 다양화하는 데에 기여한다.
    당초 귀족과 성직자, 작가와 지식인의 사적인 모임으로 출발한 떼르뚤리아는 문화예술적인 차원을 넘어 스페인의 지성사와 사회 전반의 인문학적 분위기 조성에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었다. 특히 스페인이 위기 상황에 처했던 시기에 떼르뚤리아는 무기력한 정부나 교회, 대학 등 국가의 공식적인 기관들을 대신하여 국가 정체성 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자연발생적인 성격의 소규모 비공식적 단체로 출발한 떼르뚤리아가 어떻게 시대적 담론을 장악하며 사회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우리는 그 열쇠를 스페인 지식인들의 진지한 성찰과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집단적 노력에서 찾는다. 떼르뚤리아를 구성한 스페인 지식인들의 토론 문화는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넘어 건강한 사회적 담론을 창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떼르뚤리아를 매개로 한 스페인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역할은 오늘날 인문학 부재 현상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에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될 가치가 있다. 인문학의 가치는 뛰어난 학술적 업적 못지않게 대중에게로 다가갈 수 있는 ‘소통의 방식’을 찾음으로써 비로소 완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떼르뚤리아에서 찾고자 한 가장 큰 사회적 의미는 바로 이와 같은 ‘인문학의 대중화’와 ‘지식인의 적극적인 역할’이다. 본 연구가 우리 사회의 인문학적 소통과 생산적인 담론 창출을 위한 하나의 사례적인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본 연구 성과는 대학(원)에서 교육과정을 통해 즉시 활용 가능하다. 현재 국내 학부와 대학원에 개설된 스페인 문학 교과 과정의 대부분은 작가와 작품, 문예사조 중심으로 다소 단편적으로 편성되어 있다. 이는 문학 연구 방법론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개별적인 개념 이해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만 개념들의 연계성을 파악하는 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학문적 기여도’에서 언급한 이유들로 인해, 본 연구의 성과들은 이와 같은 단점을 보완하고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또한, 공식적인 인문학 연구기관 이외에 사설 인문학연구단체를 통해 인문학의 저변확대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제도적, 정책적 대안 마련에 참고자료로서 활용할 수 있다.
  • 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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