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memorial museum)은 한 사회의 역사적 기억이 전승되고, 수용되며, 확대 재생산되는 대표적 현장이다. 기념관은 이와 같은 기능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에서 비롯되는 기념비적 효과 때문에도 집단기억 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최근 들어 우리 ...
기념관(memorial museum)은 한 사회의 역사적 기억이 전승되고, 수용되며, 확대 재생산되는 대표적 현장이다. 기념관은 이와 같은 기능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에서 비롯되는 기념비적 효과 때문에도 집단기억 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기념관 건립 붐이 일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몇몇 기념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충분한 사전 연구와 논의 없이 관 주도로 세워진 기념관은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많은 문제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은 더 많은 예산과 시간이 투입되고, 더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건립된 기념관들에서 나타난 결함들이 곧바로 개선되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기념관은 높은 수준의 역사연구, 축적된 설계경험, 안목 있는 큐레이터, 기념관이 세워질 지역과 기념하고자 하는 사건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구비될 때 비로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단기간에 마련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우후죽순처럼 이루어지고 있는 기념관 건축의 붐은 전문 학자들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근본적 수준에서부터 논의를 해나갈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도 줄을 서 있는 각종 기념관 건립 계획들은 우리의 연구와 논의를 좀 더 집약적이고 효율적으로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이미 성공작으로 평가받은 해외의 대표적 기념관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분석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게 요청된다.
본 연구에서 홀로코스트 기념관들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식민지배․전쟁․독재로 점철된 현대사의 경험들 때문에, 우리에게는 집단학살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부정적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러한 기억들을 공적인 장에서 적절하게 가공하기 위해서는, 그와 유사한 사건들을 기념하는 선행 사례들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둘째, 홀로코스트는 재현을 허락하지 않는 극한적 사건의 전형이면서도, 실제에 있어서는 그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후세대인들에게 가장 잘 전달되고 있다. 그러므로 성공작으로 평가받는 홀로코스트 기념관들에 대한 분석은, 기념관 건축의 물결 속에서 탄탄한 기본 개념과 효율적인 재현전략을 확보하려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시사점들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어떠한 사건이든지 그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동시대인들과 후세대인들에게 기억되기 위해서는, 재현과정에서 보편타당성이 철저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어떠한 사건이 특정 집단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집단기억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 되기 위해서는 배타적으로 전유되어야 한다. 그러나 배타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기억은 그만큼 더 소수의 기억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철저하게 의식한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를 자신들만이 겪었던 전대미문의 대참사로 묘사하면서도, 차별과 억압이 가져올 비극적 결과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세계사적 사건으로 설명함으로써 전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대표적인 홀로코스트 기념관들을 분석함으로써, 독특한 성격을 지닌 사건을 보편적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기념하기 위해 동원되는 재현의 전략들을 파악할 것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비극적 사건을 기념하는 데 필요한 기념관의 바람직한 모델을 학술적으로 탐색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 구체적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집단의 희생을 기리는 데 적절한 건축양식과 조형적 표현전략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념관 설계자의 건축철학과 기본 개념을 분석할 뿐만 아니라, 공모단계에서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기념관을 둘러싸고 전개된 일련의 공적 논쟁들을 검토해야 한다. 둘째, 희생자들을 영웅시하거나 순교자로 만들지 않고, 그들의 죽음을 그 자체로서 애도할 수 있는 기념의 방식을 모색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시공간을 관통하는 서사의 구조를 동선의 흐름과 연계지어 분석해야 한다. 셋째,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공간에서 필수적인 희생자와 관람객 간의 동일시 전략을 구성하는 특징적 요소들을 발견하고자 한다. 성공한 홀로코스트 기념관들의 공통된 특징은 방문객의 다양한 구성을 염두에 두고, 각 하위집단의 문화와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표현의 매체와 방법을 동원하는 다중관점 재현전략을 구현하고 있으므로, 그 전략의 구체적 내용을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