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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조선후기~한말 신용거래의 발달 - 於音과 換을 중심으로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기초연구지원인문사회& #40;창의주제연구& #41;
연구과제번호 2006-321-A00225
선정년도 2006 년
연구기간 1 년 (2006년 11월 01일 ~ 2007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고동환
연구수행기관 한국과학기술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조선후기 상업사연구는 최근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시장의 측면에서는 시전을 중심으로 한 都市市場에 대한 연구, 農村場市에 대한 연구, 船運을 기초로 한 浦口市場에 대한 연구, 나아가 대외교역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연구가 축적되었다. 이외에도 시전상인과 개성상인과 동래상인등의 사상, 그리고 공인, 객주와 여각, 보부상등 상인제집단에 대한 연구도 진전되었으며, 이러한 시장과 상인의 개별연구를 구조적으로 연계하는 시장권과 상품의 유통체계에 대한 연구까지 진전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후기 상업사연구는 상업을 구성하는 제요소, 즉 시장과 시장권, 상인집단, 유통체계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진전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상업사연구에서 해명을 기다리는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70년대 초기 상업사연구에서 先貸制형태로 상업자본에 의한 수공업에 대한 지배가 이루어졌다는 연구를 제외하고 상업자본의 동향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상업자본의 동향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시급히 해명되어야 할 과제가 상업거래에서 조선후기부터 광범하게 사용된 於音과 換 등 신용거래의 구체적인 실상에 대한 파악이다. 換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돈을 보내거나 자신이 현금을 직접 가지고 가기 어려울 때, 그것을 대신하는 신용행표였다. 또한 於音은 돈의 지불을 보증하는 신용행표로서 오늘날의 약속어음과 그 기능이 유사했다.
    換과 於音은 거래당사자사이이 일정한 신용을 토대로 유통되는 일종의 신용화폐였다. 이러한 신용에 토대를 둔 거래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18세기 이후 상업발달의 질적 지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브로델이 언급하듯이 근대적 화폐, 은행제도, 장기채와 공채 등 금융과 보험과 같은 신용을 기초로 전개된 상업거래는 물질생활과 시장경제, 자본주의라는 3층위에서 제일 상층을 차지하는 자본주의의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어음과 환을 중심으로 한 신용거래의 실태에 대해서는 북한에서 발행된 󰡔조선상업사󰡕의 개설적 언급이 거의 유일하다. 이 책에서는 개성상인이 남긴 부기책인 󰡔四介松都治簿冊󰡕과 북한 사회과학원에 소장된 󰡔他給長冊󰡕의 분석을 근거로 환과 어음이 18세기후반 광범하게 사용되었으며, 규모는 환거래규모에 비해 컸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이처럼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은 이를 밝혀줄 수 있는 자료의 공백때문이다. 특히 어음과 환의 유통실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인들이 기록한 장부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인데, 이들 자료가 개성상인의 부기장부외에는 아직까지 발굴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최근 연구자가 발굴한 각종 상인장부의 분석을 토대로 조선후기에서 한말에 이르는 시기에 거래된 어음과 환의 사용실태와 양상을 해명함으로써, 당시 신용거래의 수준과 성격이 어떠했는지를 해명하고자 한다. 조선후기 이래 상업발달을 시장과 상인, 유통체계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용을 바탕으로 한 거래규모를 해명함으로써, 조선후기 상업발달의 질적 측면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가질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이와 같은 상인들이 상품매매과정에서 기록한 장부를 분석하는 것은 신용거래의 구체상을 파악하는 것과 아울러, 앞서 상업사연구의 공백으로 지적되었던 상업자본의 구체적 실상에 대한 이해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그 연구의 의의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 기대효과
  • 본 연구가 제대로 수행된다면, 기왕에 축적된 조선후기 상업사연구의 공백을 메우고, 상업발달의 질적 측면을 해명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최근 조선후기에서 근대로의 이행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고, 이러한 논쟁이 사실이 어떠했는가라는 점보다는 이러한 사실을 어떠한 관점으로 보는가라는 관점의 차이가 큰 쟁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상업사에 대한 실증적 자료를 토대로 한 연구는 근대로의 이행논쟁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확보하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 연구요약
  • 조선후기 어음과 환에 대한 자료들은 북한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소장의 타급장책외에도,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他給長冊󰡕은 1902년(광무 6) 10월 24일에서 이듬해 2월 15일까지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기록한 장부로서, 어음의 발행과 지출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서울대 규장각에는 󰡔魚音冊󰡕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는 어음을 발행한 장부로서, 어음의 반쪽을 기록한 대장이다. 이외에도 어음관련자료는 일본 京都大學 河合文庫에 소장된 19세기 면주전 도중관련 자료에도 어음발행에 관한 자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토대로 조선후기이후 한말시기에 걸쳐 신용거래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본 연구의 첫번째 파트는 신용거래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 환과 어음, 그리고 부세수납과정에서 이루어진 外劃과 같은 신용에 기초한 거래양상을 제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換은 발행할 때마다 換居間이 있어 거간에게 구문을 지불하였으며, 환을 지급의무자에게 제시하였을 때, 지급의무자가 돈을 제때 지급하지 않은 경우에 환을 무효화하는 退換제도도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지불하는 것이 관례였고, 만약 지불되지 않았을 경우 발행인의 신용이 크게 떨어져 큰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환은 환에 표기된 금액을 단번에 전액지불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지만, 받는 자의 요구에 따라 몇차례로 나누어 받을 수도 있었다. 18세기 환거래는 서울, 전주, 강경, 강릉 등 대도시 중심이었지만, 국편 조사자료에 의하면 조사대상이 된 거의 모든 지역에서 환과 어음이 통용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於音은 어음에는 지급기일이 기입된 것도 있고 또는 그것이 기입되지 않은 것도 있었는데, 전자는 그 날짜가 되면 지급되는 것이고 후자는 요구불로서 언제든지 지급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대개 어음을 절단하지 않고 그대로 채권자에게 교부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어음은 배서 없이 양도되고 있었으며 누구든지 어음의 보유자는 채무자에게 지급을 청구할 수 있었다.
    환과 어음외에 조세수취과정에서 발생하는 外劃도 신용에 기초한 거래형태로 이해된다. 外劃은 원래 지방군수들이 징수한 세금을 국고에 납부하기 전에 일정한 금액을 제3자에게 인도하라는 명령을 의미한다. 외획제도의 운영에 중개인 구실을 한 상인인 差人이 있다. 차인은 지방에서 징수한 세금을 군수로부터 대여받아 지방에서 물품을 구입하여 서울로 수송하고 그의 판매대금으로 군수를 대신하여 세금을 국고에 납입하는 상인이었다. 그러므로 차인은 지방에서 징수한 세금을 대여받아 상업자금으로 운용한 뒤 국고에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재정자금을 일시 상업자금으로 운용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외획은 중앙과 지방, 그리고 지방과 지방의 자금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한 신용에 기초한 거래인 것이다.
    본 연구의 두번째 파트는 연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상인장부에 나타난 어음거래실태와 더불어 육의전도소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어음교환소의 기능을 했던 역인청의 기능을 분석하고자 한다. 장부는 일반적으로 入, 借入, 任入이라고 표시되고 內라고 표시된 것은 어음의 입금관계를 표표시한 것이며, 放, 貸去, 捧次라고 한 것과 內라고 한 것도 장부상의 출금관계를 표시한 것으로 이해된다. 연구의 핵심부분이므로 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결과는 제시할 수 없지만, 본 연구의 대체적인 목차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머리말
    2. 신용거래의 종류와 유통체제
    1) 換/ 2) 於音/ 3) 移貿와 外劃
    3. 환과 어음거래의 구체적 양상
    1) 상인장부의 분석:他給長冊과 綿紬廛會計帳簿
    2) 六矣廛 役人廳의 於音交換機能
    4. 맺음말
  • 한글키워드
  • 於音,상업,신용거래,六矣廛,外劃,換
  • 영문키워드
  • Bill,Exchange,6 licensed shop(육의전),commerce,credit dealing,Woewheuk(외획)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근대적 화폐, 은행제도, 장기채와 공채 등 금융과 보험과 같은 신용을 기초로 전개된 상업거래는 물질생활과 시장경제, 자본주의라는 층위에서 제일 상층을 차지하는 자본주의의 핵심요소이다. 이러한 신용에 토대를 둔 거래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18세기 이후 상업발달의 질적 지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준이다. 본 연구에서는 18세기 이후 개성상인을 중심으로 발행, 유통되었던 어음과 환이 구체적 유통실태를 고찰하였다. 대상인을 중심으로 유통되었던 어음과 환은 19세기이후 일반 상거래에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18세기 환거래는 서울, 전주, 강경, 강릉 등 대도시 중심이었지만, 19세기 환거래는 해주, 연안, 서흥, 경상도의 함안, 경기의 인천등 소규모 읍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환규모는 대체로 200냥에서 1,500냥 사이였다. 환은 주로 대상인들 사이에 유통된 신용환표이지만, 어음은 중소상인과 소생산자 사이에 널리 유통되었다. 그러므로 어음액면의 크기는 환액면의 크기보다 영세한 것이 보통이다.
    어음, 환은 일반 상거래 뿐만 아니라, 임금지불, 여행시 경비지출, 국제교역의 결제수단, 매관매직시의 지불수단, 조세상납 및 국가재정운용에서도 활용되고 있었으며, 심지어 죄수들의 속전납부나 강탈한 재물의 보관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었다. 이처럼 신용화폐의 유통은 매우 일반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음과 환이라는 신용화폐 유통의 일반화는 당연히 어음의 할인이나, 이를 담보로 한 금전대출업무를 담당하는 어음교환소의 출현을 필연화한다. 이와 같은 기능을 담당한 곳은 조선 최고의 상인들이었던 육의전 역인청이었다. 육의전 역인청에서는 어음의 교환, 할인, 담보대출 등, 비록 은행이라는 간판을 달지 않았지만, 은행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어음의 할인, 교환에 종사하는 거간층도 당시 서울에는 수백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또한 개항이후 외국 돈을 교환해주는 환전객주도 출현하였다. 개항이후 달러나 마르크, 엔화에 대한 교환시세도 형성되고 있었으며, 이 교환시세는 수시로 변동하였다. 외국 화폐의 교환은 서울뿐만 아니라 남한강 상류인 제천지역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바츨라프가 언급하듯이, 이와 같은 신용에 기초한 거래는 "한반도 전역에 걸쳐 이미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뛰어난 재정조직, 그리고 여인숙 주인연합회의 훌륭한 부기능력"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더구나 "여행객이 규칙을 어기거나 돈을 악용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는 언급에서 보듯이 전근대 사회의 공동체적 유대를 기초로 행해진 신용거래는 근대적 금융기관인 은행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었다.
  • 영문
  • The business of the bank was first confined to exchange operations to facilitate trade with Japan, but as time went on other departments of the banking business were added, and during the wars of 1893-5 and 1904-5 it was entrust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to conduct the National Treasury business for that Government in the Peninsula. But the most important part played by it in Korea lies in the fact that it acted in its earlier days as the depository of Customs duties and issued bank-notes in that connection, and in later days it acted as a de facto central bank of the country. The handling of the Customs duties by the Dai Ichi Ginko dates back to 1883, when an agreement relative to it was concluded between the bank and the Commissioner (von Mollendorf) of the Korean Customs. It was then that the bank issued notes, first on Korean currency, then on the silver yen or Mexican dollar, according to which money the Customs duties were payable in, thereby to facilitate their payment. In 1902 the bank issued notes on gold, the Customs duties, too, being made payable in gold, and this constituted the first bank-note on a gold basis in Korea, the Government of which, some years later, raised it to the position of the legal tender of the country. During that time, however, the Dai Ichi Ginko notes led quite an eventful career. But on the whole their circulation increased as the years went by, and this very increase in circulation often made them the object of misunderstanding. More than once they were subjected to persecution, official and otherwise, which much retarded their progress. But all this only served to heighten their credit after all.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근대적 화폐, 은행제도, 장기채와 공채 등 금융과 보험과 같은 신용을 기초로 전개된 상업거래는 물질생활과 시장경제, 자본주의라는 층위에서 제일 상층을 차지하는 자본주의의 핵심요소이다. 이러한 신용에 토대를 둔 거래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18세기 이후 상업발달의 질적 지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준이다. 본 연구에서는 18세기 이후 개성상인을 중심으로 발행, 유통되었던 어음과 환이 구체적 유통실태를 고찰하였다. 대상인을 중심으로 유통되었던 어음과 환은 19세기이후 일반 상거래에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18세기 환거래는 서울, 전주, 강경, 강릉 등 대도시 중심이었지만, 19세기 환거래는 해주, 연안, 서흥, 경상도의 함안, 경기의 인천등 소규모 읍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환규모는 대체로 200냥에서 1,500냥 사이였다. 환은 주로 대상인들 사이에 유통된 신용환표이지만, 어음은 중소상인과 소생산자 사이에 널리 유통되었다. 그러므로 어음액면의 크기는 환액면의 크기보다 영세한 것이 보통이다.
    어음, 환은 일반 상거래 뿐만 아니라, 임금지불, 여행시 경비지출, 국제교역의 결제수단, 매관매직시의 지불수단, 조세상납 및 국가재정운용에서도 활용되고 있었으며, 심지어 죄수들의 속전납부나 강탈한 재물의 보관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었다. 이처럼 신용화폐의 유통은 매우 일반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음과 환이라는 신용화폐 유통의 일반화는 당연히 어음의 할인이나, 이를 담보로 한 금전대출업무를 담당하는 어음교환소의 출현을 필연화한다. 이와 같은 기능을 담당한 곳은 조선 최고의 상인들이었던 육의전 역인청이었다. 육의전 역인청에서는 어음의 교환, 할인, 담보대출 등, 비록 은행이라는 간판을 달지 않았지만, 은행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어음의 할인, 교환에 종사하는 거간층도 당시 서울에는 수백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또한 개항이후 외국 돈을 교환해주는 환전객주도 출현하였다. 개항이후 달러나 마르크, 엔화에 대한 교환시세도 형성되고 있었으며, 이 교환시세는 수시로 변동하였다. 외국 화폐의 교환은 서울뿐만 아니라 남한강 상류인 제천지역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바츨라프가 언급하듯이, 이와 같은 신용에 기초한 거래는 "한반도 전역에 걸쳐 이미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뛰어난 재정조직, 그리고 여인숙 주인연합회의 훌륭한 부기능력"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더구나 "여행객이 규칙을 어기거나 돈을 악용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는 언급에서 보듯이 전근대 사회의 공동체적 유대를 기초로 행해진 신용거래는 근대적 금융기관인 은행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기왕에 축적된 조선후기 상업사연구의 공백을 메우고, 상업발달의 질적 측면을 해명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최근 조선후기에서 근대로의 이행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고, 이러한 논쟁이 사실이 어떠했는가라는 점보다는 이러한 사실을 어떠한 관점으로 보는가라는 관점의 차이가 큰 쟁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상업사에 대한 실증적 자료를 토대로 한 연구는 근대로의 이행논쟁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확보하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 색인어
  • 어음, 환, 외힉, 신용거래, 은행, 육의전, 환전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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