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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의 치료와 용서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기초연구지원인문사회& #40;창의주제연구& #41;
연구과제번호 2006-321-A00499
선정년도 2006 년
연구기간 1 년 (2007년 01월 01일 ~ 2007년 12월 31일)
연구책임자 손운산
연구수행기관 이화여자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의 논지는 상처 입은 자아의 온전한 치료 없이 진정한 용서가 일어날 수 없고, 자아가 치료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용서는 그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으며, 설령 용서가 이뤄진다고 해도 그것은 거짓용서 심지어 잘못된 용서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의 목적은 용서할 수 있는 자아가 될 수 있도록 자아의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첫째로 본 연구는 용서의 과정 보다 피해자의 상처를 치료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용서에 대한 가장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들 중의 하나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용서에 대한 심리 치료적 접근이다. 이것은 주로 용서의 과정에 관한 연구이다. 용서의 과정에 대한 많은 모델들 가운데서 엔라이트(Robert Enright)의 모델과 워딩톤(Everrett Worthington)의 모델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엔라이트의 모델은 용서에서 피해자의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framing)을 중요하게 여기며, 워딩톤의 모델은 용서 대상에 대한 공감을 용서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다. 엔라이트와 워딩톤의 용서 모델을 비롯하여 치료적 용서의 모델들은 용서 자체에 초점을 둔 모델이다. 즉 용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접근이다. 그러나 이 모델들은 용서하는 사람의 용서할 수 있는 능력(capacity for forgiveness)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아가 치료되고 용서할 수 능력을 갖기 전에는 피해자가 인지적으로 재구조화하기가 힘들고 가해자에 대한 진정한 공감도 힘들다. 치료적 용서의 모델들은 용서의 과정 자체가 용서하는 사람을 치료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하지만, 용서의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이 용서의 과정을 실천하게 되면 그에게 용서의 과정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다.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한 상태에서의 용서는 가해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해소시키고 긍정적 감정을 만들어 내는 기술에 지나지 않게 되며, 가해자의 입장을 이해하려고만 함으로 부당한 행위 자체를 묵과 혹은 묵인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피해자가 용서의 과정을 통해 가해자를 용서했다고 해도 자신은 여전히 자신의 치료되지 않은 상처로 고통을 당할 수 있다.
    두 번째의 목표는 피해자가 치료 받아야 하는 상처의 핵심을 수치심으로 보고 그것에 대한 이해와 치료의 길을 찾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상처이든지 그것은 자아의 전체 구조를 흔들어 놓고 훼손시킨다. 상처 입은 자아는 상처 입기 전의 자아와 전혀 다른 자아이다. 상처 입은 자아 혹은 훼손된 자아는 수치감을 갖는다. 죄책이 잘못된 행위(doing)에 관계된 것이라면 수치감은 망가진 존재(being)에 관계된다. 수치감은 내가 저지른 어떤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저지른 내가 문제라고 보는 태도이다. 이 수치감은 더 이상 자신을 소중한 존재나 가치 있는 존재로 보지 못하게 하고, 자신을 무능력하고 불충분한 존재로 보게 한다. 수치감은 언제나 낮은 자존감을 갖게 한다. 수치감은 또한 자신 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 가며 현실을 대면할 수 있는 능력도 약화시킨다. 수치스런 자아의 치료 없이 엔라이트 모델이 주장하는 인지적 재구성과 워딩톤이 강조하는 가해자에 대한 공감이 일어나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상처 입은 피해자의 수치감 치료가 어떤 형태의 용서에서든지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
    세 번째의 연구 목표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용서에 대한 연구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기 하는 것이다. 본 연구의 필요성은 우리 사회의 용서에 대한 관심에서도 나타난다. 최근에 용서와 관계된 드라마나 방송프로그램들이 자주 방영되고, 종교에서는 용서 치유 프로그램들(예를 들면, 내적치유세미나)이 운영되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용서는 무조건 좋고 필요하다고 보고 용서를 억지로 시키려고 하고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려는 것이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용서에 대한 학문적 논의들과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논의들은 주로 심리 치료적 용서에 관한 것들이다. 앞으로의 논의는 용서에 대한 다학문적 접근과 함께 우리 사회의 상황을 반영하는 정치적 혹은 사회적 용서에 관한 내용들을 포함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용서에 대한 연구와 실천은 우선 오랫동안 원한으로 고통당해 온 사람들을 어떻게 보살피고 그들의 상처를 어떻게 치료할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우리 문화에서 어떤 이유에서든지 가해를 입으면 그 자체가 수치로 여겨지기 때문에 용서와 관계된 치료에서 수치감의 치료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 기대효과
  • 첫째로 본 연구는 이제까지 용서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 연구에서 용서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 연구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피해 입은 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료하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함으로 용서는 어떤 기술이 아니라 피해 입은 한 사람이 치료받고 전적으로 새로워지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치료적 용서의 모델의 주장대로 용서가 곧 치료가 될 수 없다. 용서 보다 치료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치료가 곧 용서도 아니다. 치료되었어도 용서는 또 다른 문제이다. 넓은 의미에서 용서는 치료, 용서의 단계, 그리고 관계의 회복을 포함해야 한다.
    둘째로 본 연구는 용서에 관한 이야기들과 논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우리 사회에서 용서의 문제를 접근할 때 우리 민족이 가진 아픔과 상처의 치료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갖게 해줄 것이다. 우리 사회에 용서에 관한 이야기들과 논의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우리 사회도 이제 용서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룰 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많은 원한을 가진 민족이다. 그 원한이 사회적 갈등을 비롯하여 가족과 가족, 개인과 개인, 그리고 서로 다른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생해왔으나 원한은 풀어지지 않은 채로 쌓여왔다. 이 원한은 삶의 전반을 뒤틀리게 하고 사회의 건전한 발전과 개인의 정상적인 성장과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용서에 대한 다학문적 접근과 함께 무엇보다도 치료되지 않은 상처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우선 치료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문화에는 용서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다. 어쩌면 용서는 개인의 권리와 정의가 강조되는 사회에서 중요시 된다. 관계가 중요시 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용서보다 화해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침해들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화해를 통해 쉽게 덮으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화해의 조정자들은 있지만 용서의 조정자들은 없었다. 그 결과 부당한 침해들이 묵인되고 부당함에 대한 처리가 언제나 불분명 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원한과 앙금이 남긴 채로 억지로 화해하는 사례가 많게 되었다. 여기서 개인의 원한은 치료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고 수치스런 자아는 언제나 문제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본 연구를 비롯하여 용서에 대한 다학문적 접근과 실천적 방안들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
  • 연구요약
  • 1. 용서의 모델들과 문제점

    엔라이트 모델에 의하면 용서는 상처 입은 사람이 가해자에 대한 원한, 부정적 평가, 그리고 냉담한 태도를 버리고, 그 대신 그에게 동정심, 너그러움, 심지어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엔라이트 모델은 용서에 이르는 네 단계와 스무 개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이 단계들은 피해자가 자신의 상처와 가해자의 입장을 인지적으로 재구성, 즉 다르게 보는 과정이다. 워딩톤의 모델은 용서안하기(unforgiving)의 상태에서 용서하기의 상태로 바뀌는 과정이다. 피해자가 자신이 입은 상처, 그 상처에 대한 반응, 가해자의 상해 동기, 그리고 상처의 결과 등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원한, 고통, 증오심, 적대감, 분노 등의 감정을 경험하게 되고 이런 경험들이 용서안하기의 상태를 만들어 준다. 워딩톤은 공감을 용서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고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공감이 없으면 용서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엔라이트와 워딩톤의 공헌은 용서에 이르는 단계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데 있다. 또한 그들이 각각 강조하는 인지적 재구성 작업과 공감은 용서의 과정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두 모델은 용서하는 사람의 자아, 즉 상처 입은 자아는 인지적 재구성 작업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하다는 것을 간과했다.

    2. 상처, 수치심, 그리고 치료

    전통적으로 용서는 죄의 용서였다. 죄의 용서는 가해자에게 초점을 둔 접근이며 용서의 문제를 한 개인의 행위로 보는 관점이다. 수치심은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감정이기 때문에 죄책감보다 더 고통스럽다. 수치감은 낮은 자존감, 무가치함, 무능력을 동반하기 때문에 죄책감보다 더 고통스러우며 이런 모습이 드러날까 두려워 늘 민감해야 한다. 코헛(Heinz Kohut)의 입장에서 보면 대인관계에서 생긴 상처는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준다. 피해자는 자아구조에 심각한 흠(defect)이 생겼다는 경험과 함께 내적 공허감, 위협감, 부족함, 노출공포를 갖게 한다. 수치스런 자아는 자기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강한 자기 방어적 태도를 취한다. 외부의 부정적 평가에 민감해지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피한다. 수치스런 자아는 인지적 재구성을 힘들게 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을 힘들게 한다. 수치스런 자아는 늘 자신의 흠 있고 손상된 모습을 감추는데 급급할 뿐이다. 수치심의 치료는 안정된 공간에서 좋은 대상 경험을 통해 시작된다. 코헛의 입장에서 피해 입은 사람의 수치스런 자아는 자아의 상태를 공감적으로 조율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기대상(selfobject)과의 관계를 통해 치료된다. 코헛은 치료는 해석이 아니라 환자가 자기대상을 이용하여 긍정적 경험을 내면화함으로 일어난다고 본다. 이 내면화는 환자의 내적 나쁜 대상을 좋은 대상으로 바꿔 준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한 대상에 대한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며 그것을 받아들일 수 능력도 생긴다. 이것이 바로 클라인(Melanie Klein)의 입장에서 본 치료이다. 좋은 대상 경험은 환자 자신이 살아 있는 느낌(feeling real)을 경험케 해준다.

    3. 수치감의 치료에서 본 용서

    치료와 돌봄을 통해 피해자의 수치심이 치료되면서 위니컷(Donald Winnicott)이 말하는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능력”(ability to concern)이 생긴다. 좋은 대상을 통한 돌봄과 치료는 피해자에게 은총과 선물로 경험되면서 자신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것이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의 바탕이 된다. 대상관계이론의 입장에서 보면 용서는 용서 대상이 변했기 때문에, 즉 가해자가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기 때문에 가능해 지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사람이 그 대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짐으로 가능해 진다. 여기서 대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이란 클라인에 의하면 한 대상을 나쁜 면과 좋은 면이 동시에 있는 대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용서는 워딩톤이나 엔라이트가 주장하는 대로 공감을 통해 가해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 감정으로 전환시킴으로 가능해 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용서는 가해자의 부정적 모습과 긍정적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길 때 가능해 진다. 치료 즉 훼손된 존재에 대한 돌봄과 배려는 피해자로 하여금 내적인 긍정적 자원과 연결시켜 준다. 상해는 피해자로부터 그의 내적 긍정적 자원을 차단시켰지만, 돌봄 받은 피해자는 자신의 내면 혹은 과거의 긍정적 자원과 다시 연결할 수 있게 됨으로 아직도 원한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할 수 있는 자원들을 동원할 수 있게 된다. 이 자원들 가운데도 삶의 긍정적 경험들, 자신도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용서받은 경험, 한 인간을 인류애로 포용하는 능력 등이 포함된다.
  • 한글키워드
  • 공감,수치심,용서,치료,대상경험
  • 영문키워드
  • shame,empathy,healing,object experience,forgivness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제까지의 용서에 대한 논의들은 피해 입은 사람의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하지 않았다. 용서를 의무나 덕목으로 강조하는 종교는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더 배려했으며, 용서를 인지적 재구성으로 보는 용서치료자들은 피해 입은 사람의 인지적 재구성 ‘능력’을 고려하지 않았다. 용서의 도덕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도덕 철학자들은 상처가 피해자에게 주는 영향력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상처는 피해자의 자아 전체를 흔들어 놓음으로 그를 수치스런 존재가 되게 한다. 수치스런 존재는 자신을 부족하고 무가치하고 불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에 용서를 인지적으로 그리고 정당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피해자의 수치심이 먼저 치료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도덕적으로 정당한 용서가 힘들다.

    수치심의 치료는 좋은 대상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수치심은 나쁜 대상을 통한 결핍과 훼손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피해 입은 사람이 좋은 대상을 통해 존중받고 돌봄 받으면 그의 결핍이 채워지고 훼손이 치료된다. 치료된 자아는 나쁜 대상과 나쁜 대상 경험을 건설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수치심의 치료는 피해자를 그의 내적 및 긍정적 자원과 연결시켜 줌으로 그에게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준다. 수치심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 좋은 점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자신의 긍정적 자원을 동원하지 못한다. 그러나 수치심이 어느 정도 치료되면 피해자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고 자신 안에 있는 자원들을 동원할 수 있게 된다. 자원들 가운데는 지난날의 삶의 긍정적 경험, 과거에 용서받은 경험, 그리고 한 인간을 인류애로 포용하는 능력 등이 있다. 좋은 대상을 통한 배려와 치료는 피해자에게 은총과 선물로 경험되면서 그에게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것이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용서는 용서의 대상이 변했기 때문에, 즉 가해자가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기 때문에 가능해 지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사람이 그 대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짐으로 가능해 진다. 대상을 다르게 본다는 것은 한 대상을 나쁜 면과 좋은 면을 동시에 가진 대상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진정한 용서는 가해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 감정으로 전환하는 인지적 재구성을 통해 가능해 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해자의 부정적 모습과 긍정적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길 때 가능해 진다.
  • 영문
  • The discussions on forgiveness have not regarded the ability to forgive of the one who grants forgiveness. Religion, which emphasizes forgiveness as a duty or virtue, was concerned with the wrongdoer than the victim. The forgiveness therapists, who perceive forgiveness as the process of cognitive reconstruction, have not been concerned with the victim's 'ability' to reconstruct cognitively. The moral philosophers, who emphasize the moral ground of forgiveness, have little regard for the effect that wrongdoing did to the victim. Wrongdoing shatters one's total psychic structure and makes him or her shameful and disgraceful. The victim perceives him or herself as insufficient and unworthy, and does not have the full capacity to cognitively and morally exercise forgiveness. If the victim's shame is not properly treated, it is not possible to expect psychologically healthy and morally justifiable forgiveness.

    The healing of shame occurs through good object experiences. Since shame comes from deficiency and defect through bad objects, one's deficiency is filled and the defect is healed when the victim is respected and cared for through good objects. The recovered self obtains the constructive ability to deal with bad objects and bad experiences.

    The healing of shame connects the victim to his or her inner positive resources and creates the capability for forgive. Because those ashamed of him or herself think that they do not have any good quality in themselves, they are unable to mobilize their positive resources. However, when shame is cured up to some point, the victim perceives him or herself positively and is able to mobilize the inner resources. Among the resources are the positive experience of the past, the experience of being forgiven, and the ability to accept others as they are. The caring and healing through good objects are the experience of grace and gift for the victim. Those experiences help victim to respect and forgive others.

    Forgiveness is possible through the victim's ability to perceive the wrongdoer differently. Perceiving the object differently means one is able to see both the bad and good sides of the object. In this regard, true forgiveness occurs not through the cognitive reconstruction by transforming the negative feeling towards the wrongdoer to positive feeling, but through the ability to recognize both bad and good sides of the wrongdoer.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제까지의 용서에 대한 논의들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용서는 종교적으로 보면 의무나 덕목이다. 신에 의해 용서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둘째, 용서는 심리 치료적 입장에서 보면 원한을 극복하거나 해소하는 과정이다. 셋째, 용서는 도덕적 정당성에 기초하여 일어나야 한다. 도덕철학자들에 의하면 원한은 부당한 대우를 받은 인간이 자기를 보호하고 방어하는 도덕적으로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근거가 없는 용서는 정당하지 못하며 동시에 심리적으로 건강한 반응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은 용서하는 사람의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하지 않았다. 일단 상처를 입으면 자아에 손상이 생긴다. 손상 입은 자아는 자신과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전통적으로 용서는 죄, 즉 가해자의 잘못된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논의되고 실천되어 왔다. 피해자의 상처, 즉 수치심은 용서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수치심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 결핍, 결점, 부적절함, 무가치함 등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자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현실을 대면할 수 없게 만들고 도피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수치심의 치료가 용서에 우선되어야 한다. 본 연구는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본 연구는 용서치료자들의 용서에 대한 이해와 실천에 대하여 비판적이다. 최근의 용서에 대한 가장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들 중의 하나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용서에 대한 심리 치료적 접근이다. 이것은 주로 용서의 과정에 관한 연구이다. 용서의 과정에 대한 많은 모델들 가운데서 엔라이트(Robert Enright)의 모델과 워딩톤(Everett Worthington)의 모델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엔라이트의 모델은 용서에서 피해자의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framing)을 중요하게 여기며, 워딩톤의 모델은 용서 대상에 대한 공감을 용서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다. 그러나 피해자가 용서할 수 능력을 갖지 않으면, 인지적으로 재구조화하기가 힘들고 가해자에 대한 진정한 공감도 힘들다.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한 상태에서의 시도되는 용서는 가해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고 긍정적 감정을 만들어 내는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피해자가 용서의 과정을 통해 가해자를 용서했다고 해도 자신은 여전히 자신의 치료되지 않은 상처로 고통을 당할 수 있다.
    둘째, 수치심의 치료가 용서보다 먼저 일어나야 한다. 수치심의 치료는 안정된 공간에서 좋은 대상과의 경험을 통해 시작된다. 코헛(Heinz Kohut)의 입장에서 보면 수치심은 좋은 대상이 수치스런 자아의 상태에 공감적으로 조율하고 그를 이해함으로 치료되기 시작한다. 치료는 좋은 대상경험을 내면화함으로 일어난다. 이 내면화는 환자의 내적 나쁜 대상을 좋은 대상으로 바꿔 준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한 대상에 대한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도 생긴다.
    셋째. 수치감의 치료의 입장에서 용서를 다시 이해할 수 있다. 피해자의 수치심이 치료되면서 위니컷(Donald Winnicott)이 말하는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능력’(ability to concern)이 생긴다. 배려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으며 생기며 이것이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의 바탕이 된다. 대상관계이론의 입장에서 보면 용서는 가해자가 변했기 때문에 혹은 가해자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나쁜 대상이 좋은 대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가능해 진다. 상처는 피해자를 내적 긍정적 자원으로부터 차단시키지만, 돌봄 받은 피해자는 자신의 내면 혹은 과거의 긍정적 자원과 다시 연결할 수 있게 됨으로 아직도 원한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할 수 있는 자원들을 동원할 수 있게 된다. 이 자원들 가운데는 삶의 긍정적 경험들, 자신도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용서받은 경험, 한 인간을 인류애로 포용하는 능력 등이 포함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에서 죄, 즉 행위 보다 수치심, 즉 존재에 초점을 두고 용서를 연구하였다. 용서는 상처로 수치스런 존재가 된 피해자가 치료받음으로 가능해지는 것이지, 의지나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관점이다. 피해자의 수치심의 치료가 우선될 때,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도덕적으로 정당한 용서가 일어날 수 있다. 이 연구는 앞으로 용서를 연구하거나 실천할 때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공헌하게 할 것이다.

    첫째, 용서를 논의 할 때 먼저 피해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료해야 한다. 수치심이 치료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용서는 피해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며 가해적 구조도 변화되지 않는다. 용서에서 중요한 것은 가해자의 참회나 피해자의 빠른 용서 시도가 아니라 피해자의 회복, 즉 수치심의 치료이다.

    둘째, 용서를 수치심의 치료에서 볼 때 우리 민족의 원한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많은 원한을 가진 민족이다. 그 원한이 사회적 갈등을 비롯하여 가족과 가족, 개인과 개인, 그리고 서로 다른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생해왔으나 원한은 풀어지지 않은 채로 쌓여왔다. 이 원한은 삶의 전반을 뒤틀리게 하고 사회의 건전한 발전과 개인의 정상적인 성장과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용서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다. 용서는 개인의 권리와 정의가 강조되는 사회에서 중요시 된다. 관계가 중요시 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용서보다 화해가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침해들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화해라는 이름으로 얼버무리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화해의 조정자들은 있지만 용서의 조정자들은 적다. 그 결과 부당한 침해들이 묵인되고 부당함에 대한 처리가 언제나 불분명 하며, 원한과 앙금이 남겨진 채로 억지로 화해하는 사례도 많다. 수치심은 관계에서 더욱 문제가 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용서를 죄의 문제보다 수치심의 문제로 보고 접근하면 용서가 더 용이해 질 수 있다.


  • 색인어
  • 용서, 수치심, 치료, 대상관계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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