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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서구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작품 속에 나타난 이슬람세계의 이미지 변천 연구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기초연구지원인문사회& #40;창의주제연구& #41;
연구과제번호 2006-321-A00510
선정년도 2006 년
연구기간 1 년 (2007년 01월 01일 ~ 2007년 12월 31일)
연구책임자 김정명
연구수행기관 한국외국어대학교& #40;글로벌캠퍼스& #41;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서구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작품 속에 나타난 이슬람 세계의 이미지 변천 연구」라는 제목 하에 진행될 본 연구의 주된 목적은 서구 오리엔탈리스트들에 의해 변형되어 온 이슬람 세계의 이미지 변화를 역사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보다 객관적이고 폭넓은 이슬람 세계의 이해를 도모하는데 있다.
    오늘날 이슬람은 기독교, 불교와 더불어 세계 최대 종교 가운데 하나다. 특히, 이슬람 세계는 매년 15% 이상 인구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2025년에 이르면 전 세계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최대 단일 문화권으로 거듭날 것이고 전망되고 있다. 또한 이슬람 문화권의 핵심 지역인 중동은 세계 석유 매장량의 63.3%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이 수입하고 있는 석유의 약 8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향후 고유가 시대의 개막과 함께 오일 달러의 파워가 급증될 것이 전망되면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 지고 있다.
    이슬람 세계가 차지하고 있는 국제적인 비중에 비하여, 우리의 이 세계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서구 의존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90년대 이후 한국의 언론 매체와 학계 일각은 미국이 제시한 ‘문명 충돌’ 이론을 부지불식간에 반복 재생산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구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의 패권 전략 가운데 하나로 이슬람을 새로운 적대 세력으로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걸프전, 팔레스타인 문제, 9.11 테러, 이라크 전쟁 등 중요한 계기 때마다 문명 충돌의 불가피성을 강조해 왔다. 문명충돌론의 창시자 새무얼 헌팅턴은 이슬람 사회의 문화는 본질적으로 서구 자유 민주주의 체제와 양립할 수 없으며 양 문명간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는 “지난 1400년 동안 기독교와 이슬람의 관계는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고 단언했다.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은 부분적으로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는 있겠지만, 이슬람 세계와 서구 기독교 세계간의 총체적 관계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이슬람과 서구 양 문명간의 교류 역사는 ‘문명의 충돌’이라는 단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에는 너무도 방대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세 유럽 과학자들이 11-13세기 동안 선진 이슬람 문명과 접촉하면서 르네상스의 기틀을 다진 사례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당시 유럽 학자들은 철학과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아랍어를 익혔으며 심지어는 무슬림 학자들을 자신들의 정신적 스승으로 모시기도 했다. 그러나 헌팅턴은 이러한 사실을 완전히 무시한 채 자신의 편협한 잣대로만 과거를 해석하려는 오류를 범했다.
    본 연구는 서구인들의 망각 속에 묻혀버린 이슬람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재발견함으로써 ‘문명 충돌론’의 허구성을 밝히고자 한다. 이 주제와 관련된 이론적 작업은 이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에 의해 시도된 바 있다. 그는 1978년에 간행된 저서 ꡔ오리엔탈리즘ꡕ을 통해 서구의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난 이슬람 세계의 이미지를 고찰한 후, 오리엔탈리즘을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동양에 대해 권위를 갖기 위한 서양의 지배 담론”으로 규정한 바 있다. 본 연구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론적 통찰을 계승하는 하면서, 동시에 그 것에 내포된 한계와 문제점을 보완하는데 주력하고자 한다.
  • 기대효과

  • 1 년 동안 수행하게 될 본 연구 과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한국의 인문학 발전에 공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첫째,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론 가운데 취약점을 보완하고 보다 포괄적인 오리엔탈리즘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 사이드의 분석은 근‧현대에 한정되었으며, 중세 시기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또한 그가 규정한 오리엔탈리즘은 식민지 담론으로서의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한다. 본 연구는 12세기 이후 형성된 여러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을 통시적으로 검토해 봄으로써 그 연구 영역을 확대시키고자 한다.
    둘째, 서구와 이슬람 세계간의 관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9.11 테러 사태 이후, 한국에서도 이슬람 문명권에 대한 각종 연구 자료들이 나오고 있지만, 주로 서구와 이슬람간의 갈등과 투쟁을 강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서구와 이슬람의 관계가 반드시 부정적이기만 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특히 12세기 안달루스는 동‧서 문명 교류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다. 본 연구는 안달루스 번역운동을 소개하면서 중세 유럽인들의 긍정적 오리엔탈리즘과 부정적 오리엔탈리즘을 균형 있게 다루고자 한다. 이러한 균형적 접근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관계사를 보다 객관적이고 풍부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셋째,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허구성을 발견하고 아랍‧이슬람 세계에 대한 한국의 독자적인 입장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아랍‧이슬람세계는 한국에게 있어서 중요한 에너지 수입원이며 교역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지역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아직까지 서구에 의해 일방적으로 조작된 정보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서구의 오리엔트 담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진실성과 허위성을 가름할 수 있는 비판적 잣대를 하루속히 마련해야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점에서 하나의 대안적 모색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의 결과물은 다음과 같이 활용될 예정이다.
    첫째, 본 연구에서 다루게 되는 주제들을 나누어 최소한 논문 2편 이상을 등재후보 이상 학술지에 게재할 예정이다. 본 연구 주제는 아직 한국 학술계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진 바 없기 때문에, 국내 전문 학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연구 기간 종료 후,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일반 독자를 위한 단행본 출판을 기획할 예정이다. 단행본은 본 연구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을 보충한 후 출간될 것이며, 서구 이슬람학의 역사적 변천과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 연구요약

  • 본 연구 과제는 중세와 근대 시기를 거치면서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변환되어 왔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본 연구는 기본적으로 에드워드 사이드가 제시했던 오리엔탈리즘 분석 방법론을 적극 활용할 것이지만, 동시에 그가 간과했던 부분에 대해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 보고자 한다. 본 연구는 오리엔탈리즘의 역사적 변화를 통시적으로 고찰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만큼 다루고자하는 시간의 범위가 넓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본 과제는 다음과 같이 편의상 ‘중세 및 르네상스 시기’ 와 ‘17세기-19세기’ 등 두 시기로 나누어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첫째, 「중세 안달루스의 번역 운동과 오리엔탈리즘의 기원」으로 진행되는 연구 주제는 중세부터 시작하여 르네상스 시기까지 이르는 오리엔탈리즘의 발전 양상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연구를 통해 서구인들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미지는 그 기원부터 ‘긍적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모두를 내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아라비안 나이트와 낭만적 오리엔탈리즘」으로 진행되는 연구 주제는 17세-19세기 동안 프랑스와 영국에서 형성된 오리엔탈리즘의 특징적 모습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ꡔ아라비안 나이트ꡕ에 나타나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 마술 램프, 하렘의 공주, 환관 노예, 로맨스 등은 당시 유럽 독자들에 이슬람에 대한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이미지를 각인시켜 주었다. 이러한 사례는 서구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미지는 고정 불변적인 것이 아니고, 시대적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상기에서 언급한 두 가지 연구 주제의 내용을 각각 상세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 「중세 안달루스의 번역 운동과 오리엔탈리즘의 기원」

    안달루스(Andalus)란 오늘날 스페인 남부지역을 지칭하는데, 이 곳은 역사적으로 매우 특이한 지역이었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중세 기간 동안 이슬람과 기독교가 직접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문명의 경계선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원래 안달루스는 기원 전후 시기부터 로마의 영토였다. 그러나 5-8세기 동안 이 지역은 게르만족의 일파였던 서고트인들의 차지가 되었고, 당시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 소속의 기독교도들이었다. 8세기 무렵 안달루스는 또 한번 급격한 정치 및 사회적 격변을 체험했다.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서 급속히 팽창하던 이슬람 세력이 711년 이 지역을 정복하는데 성공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안달루스는 하루아침에 기독교 국가에서 이슬람 국가로 탈바꿈 되었고, 1492년까지 무려 800년 동안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남게 되었다.
    안달루스는 이와 같이 특수한 상황 때문에 중세 시기 동안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이 대결하는 각축장이 되었다. 양 문명은 이 지역을 세력 확장을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동시에 안달루스는 중세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과학, 철학, 의학 등을 교류했던 문화 소통의 중심지로 각광 받기도 했다. 당시 이 곳에 거주하고 있었던 무슬림, 유대인, 기독교인 학자들은 종교와 국경을 초월하여 상대방의 선진 문물을 배우는데 몰두했다.
    당시 서구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안달루스는 일종의 딜레마였다. 이곳은 이교도 무슬림들로부터 빼앗긴 영토인 동시에 선진 학문을 흡수할 수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12세기 무렵 안달루스가 ‘아랍어-라틴어 번역 운동’의 중심지로 떠올랐을 무렵에도 이러한 상황은 고스란히 지속되고 있었다.
    나) 「아라비안 나이트와 낭만적 오리엔탈리즘」
    17세기 이후 서유럽은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출현, 종교개혁, 산업 혁명 등 일련의 사건을 통해 급격한 정체성의 변화를 체험했다. 그리고 유럽의 자기 정체성 변화는 전통적 타자(他者)였던 이슬람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이 무렵부터 유럽인들은 이슬람 세계를 이성(理性)에 의해 억제되고 과학에 의해 고사되어 버린 숨겨진 본능의 해방구로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뇌리에 각인된 이슬람 세계는 이제 더 이상 종교적 적대 세력이나 학문적 보고가 아닌 낭만과 환상 그리고 에로스가 가득한 일종의 도피처였다.
    유럽의 새로운 ‘오리엔트 붐’은 17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1647년 쉬에르 뒤 리에르(Sieur du Rayer)에 의해 출간된 꾸란의 프랑스어 번역판을 계기로 프랑스에서는 동방 세계와 이슬람을 소개하는 각종 여행서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1670-1715년 동안 프랑스에서 나온 동방 여행서의 숫자만도 무려 169권에 달했을 정도였다.
  • 한글키워드
  • 이슬람,안달루스의 번역 운동,아라비안 나이트,에드워드 레인,클리뉘 수도원,오리엔탈리즘,리처드 버튼,낭만적 오리엔탈리즘,꾸란,에드워드 사이드
  • 영문키워드
  • Cluny Monastery,Islam,Translation Movement in Andalus,Quran,Edward Said,Orientalism,Arabian Nights,Edward Lane,Richard Burton,Romantic Orientalism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1. <서구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이슬람세계에 대한 이미지 변천 연구 : 중세 안달루스의 번역 운동을 중심으로 >
    중세 안달루스 지역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간과한 서구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간의 공존의 역사를 재조명하는데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안달루스(Andalusia)란 오늘날 스페인 남부지역을 지칭하는데, 이곳은 역사적으로 매우 특이한 지역이었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중세 기간 동안 이슬람과 기독교가 직접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문명의 경계선이었기 때문이다. 711년 안달루스는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급속히 팽창하던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정복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안달루스는 하루아침에 기독교 국가에서 이슬람 국가로 탈바꿈 되었고, 1492년까지 무려 800년 동안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남게 되었다. 중세 시기 동안 안달루스는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이 대결하는 각축장이었던 동시에, 양 문명이 과학, 철학, 의학 등을 교류했던 문화 소통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특히 12세기 무렵 안달루스에서 일어난 ‘아랍어-라틴어 번역 운동’은 서구와 이슬람 세계 간의 문화 교류를 촉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 <천일야화와 근대 유럽의 낭만적 오리엔탈리즘>
    18-19세기 유럽인들의 아랍세계에 대한 이미지 형성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천일야화』를 빼 놓을 수 없다.『천일야화』는 1704년 앙트완 갈랑(Antonie Galland)에 의해 프랑스어로 번역된 이후 오늘날 서구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언어들로 번역된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천일야화』의 열기는 영국에서 더욱 고조되었다. 1712년 최초의 영어 번역판을 필두로 19세기 대표적인 오리엔트 학자 에드워드 레인(E.W. Lane)과 리처드 버튼(Richard F. Burton)은 각각 1840년과 1855년에 영어 번역판을 선보였다. 당시의 영국은 한 마디로 ‘아라비안나이트의 세기’ (The Century of the Arabian Nights)라고 불릴 만큼 이 작품에 열광했다.『천일야화』의 등장은 유럽인들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환상적 이야기들은 당시 이성적 합리주의에 억눌려왔던 유럽인들에게 하나의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 영문
  • 1. <A Study on the development of Images about the Muslim World in the Works of Western Orientalists: Focused on the Translation Movement of Andalusia in the Medieval Ages>
    The twelfth century, to the Europeans, was the great period of translation and absorption from the Muslim world. Much of the knowledge available in Europe during the 1100-1150 was obtained by translations form foreign languages, chiefly Arabic. The center of translation for most of the period was in Andalusia, mostly in Cordova, Toledo, and Seville. Perhaps the most important work in this period was the Latin translation of the Quran (1147) by Robert of Ketton. Besides it, Medieval Christian thought owed a great debt to Muslim theologians and philosophers, especially Avicenna(Ibn Sina) and Averroes(Ibn Rushd) who were respected as the transmitters of Aristotle. By dint of the many translations of Arabic manuscripts, Europeans could have chances to discuss the Muslim world from scholarly points of view. In 12-13th centuries European orientalists were divided into two groups. First, negative orientalists, such as Franciscans and Dominicans, who regarded Muslims as the followers of a false prophet. They thought that it was their duty to deliver true messages of Christianity to the Muslim world. Second, positive orientalists, such as Latin Averroists, who respected Muslim scholars as the transmitters of Greek science and philosophy. They thought that the Muslim world was the land of their teachers where they should go to learn new knowledges.

    2. <Arabian Nights and Romantic Orientalism in Modern Europe>
    Throughout the eighteenth century and subsequent generations, the most important book, which has influenced on European attitudes toward Arabs and the Middle East in general, was the Arabian Nights. Antoine Galland(1646-1715), a French orientalist, was the first European translator of the Arabian Nights. He published the first two volumes of Les Mille et une nuits in 1704 and the twelfth and final volume in 1717. The Arabian Nights appeared in the English language in England in 1712, having been translated from Galland’s French version. After its publications, the book made a deep and lasting impression on European literature and sensibilities. The fantasy world of the Arabian Tales, with its genies, magic, flying horses and supernatural birds changed the Europeans’ images toward Muslim world. Thus, in the eighteenth century, the image of Arabs in Europe began to acquire new themes of exotic and erotic qualities. Especially, many sexual themes found in the Arabian Nights, such as incest, adultery, sadism, and so on, made Europeans think that the Muslim world is the "free region of adulter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1. <서구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이슬람세계에 대한 이미지 변천 연구 : 중세 안달루스의 번역 운동을 중심으로>


    본고의 목적은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기원과 그것의 다양한 양상을 12세기 안달루스의 번역운동을 기준으로 통시적으로 밝히는데 있다. 그리고 논리 전개에 있어서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가 출판한 저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비판의 준거로 삼고자 한다. 이 책에서 사이드는 18세기 이후 서구는 오리엔트를 정체적이며, 획일적이며, 자기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는 열등한 타자로 묘사함으로써, 식민주의적 침탈 행위를 정당화했다고 언급했다. 다시 말해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동양에 대해 권위를 갖기 위한 담론’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이드의 설명은 제3세계 학자들에 의해 많은 호응을 얻었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부정적 오리엔탈리즘’(Negative Orientalism)에 편중 되어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왜냐하면 이슬람과 서구 양 문명 간의 교류 역사는 장기적으로 다각적으로 진행되었고, 따라서 서구의 이슬람 세계 대한 반응과 태도도 끊임없이 변해왔기 때문이다. 사이드의 지적대로 동양을 어둡고 후진적으로 묘사한 부정적 오리엔탈리즘이 존재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동양을 밝고 풍요롭게 묘사한 ‘긍정적 오리엔탈리즘’(Positive Orientalism)이 존재한 것 역시 사실이다.

    2. <천일야화와 근대 유럽의 낭만적 오리엔탈리즘>

    본고의 목적은 우선 『천일야화』의 번역, 편집, 출판 등 일련의 과정 역시 근대 유럽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의 반영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천일야화』의 출현과 함께 유럽인들의 ‘이슬람 세계’라는 ‘타자’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논의하고자 한다. 이 같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본고는 ‘17세기 이전의 유럽인들의 오리엔탈리즘’과 ‘17세기 이후 새롭게 변화한 오리엔탈리즘’을 제 2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제 3장에서는 갈랑, 레인, 버튼, 마르드류스 등과 같은 인물들이 어떻게 자신들이 상상한 동방에 대한 이미지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천일야화』를 자의적으로 재구성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 4장에서는 『천일야화』가 몽테스키외, 앵그르, 제롬 등과 같은 유럽의 문학가들과 화가들에게 어떠한 성적 환상을 불러일으켰는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연구 결과

    이슬람 세계에 대한 담론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은 중세 이후 유럽의 지식인들 사이에 구체화 되고 정형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미지는 각자가 처한 시대적 상황이나 입장의 차이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각자가 지니고 있었던 ‘이해의 지평’의 차이에 따라 이슬람 세계를 해석하는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2세기 안달루스에서의 번역 운동을 계기로 유럽에서는 ‘긍정적 형태의 오리엔탈리즘’과 ‘부정적 현태의 오리엔탈리즘’이 동시에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 같은 두 가지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이 토마스 아퀴나스, 로저 베이컨, 단테 등의 예에서 보듯이, 한 개인의 내면에서 공존하는 현상은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초기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이중적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이 군사, 과학, 기술 등 제 분야에서 이슬람 세계를 압도하게 되는 17세기 과학혁명의 시대까지 장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한편 근대 유럽인들에 의해 과거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허구적 이미지가 더욱 이론화되고 고착화 되어 장기적인 생명력을 얻게 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무슬림들의 성(性)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근대 유럽에서 이 같은 허구적 상상력을 배태시킨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천일야화』의 등장이었다. 18세기 초 갈랑의 프랑스어 번역판 등장 이후 많은 유럽인들은『천일야화』에서 소개되고 있는 각종 기괴하고 선정적인 장면들이 당대의 이슬람 세계의 현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활용방안
    1. 논문 2편 작성
    (1) <서구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이슬람세계에 대한 이미지 변천 연구 : 중세 안달루스의 번역 운동을 중심으로>: 등재지 한국 이슬람 학회 제 18-1집(2008년 2월)에 게재

    (2)<천일야화와 근대 유럽의 낭만적 오리엔탈리즘>: 등재지 한국어와 아랍 문학 제12권 1호에 게재 예정(2008년 상반기)

    2. 이슬람 역사와 문화 강의 자료로 활용

    3. 추후 <오리엔탈리즘의 역사>란 제명으로 확대 수정하여 단행본 발간 기획.
  • 색인어
  • 오리엔탈리즘, 안달루스, 번역 운동, 다마스쿠스의 요한, 롤랑의 노래, 프란체스코 수도회, 도미니크 수도회, 토마스 아퀴나스, 로저 베이컨, 단테, 천일야화, 오리엔탈리즘, 앙트완 갈랑, 에드워드 윌리엄 레인, 리처드 버튼, 낭만주의, 에로틱 환상
  • 연구성과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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