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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치의 이념과 유교 입헌주의: 예기 「왕제」, 「명당위」, 「월령」, 「문왕세자」를 중심으로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신진연구자지원사업& #40;인문사회& #41;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07-332-B00010
선정년도 2007 년
연구기간 1 년 (2007년 08월 01일 ~ 2008년 07월 31일)
연구책임자 최연식
연구수행기관 연세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동양사회를 폭력적이고 자의적인 권력이 행사되는 법치 부재의 사회로 인식하는 서양의 오랜 편견은 동양사회가 예(禮)라는 비제도적이고 우연적인 요소에 의해 지배되는 예치 중심의 사회였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예치를 곧 법치의 부재로 인식하여 예치 중심의 동양사회를 폭력적 전제주의 사회로 인식하는 서구의 동양사회관은, 사이드(E. Said)의 지적처럼, 동양을 서양의 ‘잔여 범주(residual category)’로 이해하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불과하다.
    이 연구에서는 동양의 예치, 특히 유가의 예치가 필연적으로 법에 의한 지배를 부정하고 그 결과 폭력적 전제정을 옹호하게 된다는 서구의 오랜 편견을 실증적으로 극복하려는 문제의식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우선 첫째로 유가의 예치 관념은 자의적 인치(人治)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안된 위계적 도덕주의의 소산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예치 관념은 인간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합리적인 관습과 규칙에 기초하여 치밀하게 짜인 윤리적 연결망으로 재편하려는 제도적 노력의 소산이었다. 이 점에서 이 연구에서는 유가의 예치란 예제화(禮制化)된 법과 법제화(法制化)된 예를 변증법적으로 소통시키는 새로운 질서를 지향했음을 밝히고자 한다.
    둘째로 이 연구에서는 유가의 예치 관념이 전제정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제권력을 도덕적 측면과 제도적 측면에서 제한하고자 했던 문제의식을 강조하고자 한다. 즉 예치의 원리가 작동하는 유교사회에서 군주는 예를 제정하고 준수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했지만, 동시에 예를 위반하는 군주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예는 군주를 규율하는 견제장치로 활용되었다. 통치 권력의 한계를 규정하고 그 자의적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 현대 입헌주의의 핵심이듯이, 이 연구에서는 예를 통해 군주의 권력을 제한하고자 했던 유교국가의 예치 이념을 ‘유교적 입헌주의(confucian constitutionalism)’로 규정하고자 한다.
    물론 예(禮) 관념을 중시하는 유가의 전통에서는 상대적으로 법 관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법 자체를 경시하는 경향도 존재했다. 특히 이러한 판단의 결정적 근거로 흔히 인용되었던 것은 공자(孔子)가 “법과 형벌로 백성들을 규제하면 백성들은 형벌은 면하게는 되지만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며, 덕과 예로 백성들을 인도하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 선한 데 이르게 될 것”(論語, 爲政 3)이라고 지적했던 대목이었다.
    그러나 공자가 일방적으로 법을 매도하거나 폄하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공자가 “군자는 덕(德)을 생각하고 소인은 처하는 곳을 생각하며, 군자는 형(刑)[법(法)]을 생각하고 소인은 은혜(이익)를 생각한다”고 했을 때, 그 주장은 그가 군자의 덕치와 법치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유가에서도 정치윤리와 가족윤리를 구분하는 발상이 존재했다고 할 때, 그것을 단순히 정치윤리는 법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고, 가족윤리는 예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이분법적으로 단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 연구에서 잠정적으로 설정한 가설은 적어도 유가의 전통에서는 예치의 영역이 보다 포괄적인 사회규범 및 규범의식을 규정하고 있으며, 법치의 영역은 구체적인 규범의 실천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예는 아래로는 서인들에게 해당되지 않으며, 형벌은 위로는 상대부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禮記, 曲禮上)는 예기의 경구가 단순히 예와 법이 적용되는 신분적 차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연구의 문제의식에 입각해서 예기의 이 경구를 재해석하자면, 예는 통치의 이념 및 구조와 관련된 문제영역인 반면에 법은 구체적 법령의 실천 및 집행과 관련된 문제영역으로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전근대 동양사회에서의 ‘예(禮)’는 단순한 의례(rite)나 의식(ritual)의 의미를 넘어서 통치 질서와 통치 규범을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 기대효과
  • 이 연구는 일부의 예론(禮論) 연구자들을 제외하면 정치학을 비롯한 사회과학계가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예기의 입헌주의적 의미를 정치학 연구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려는 연구이다. 우선 연구자는 이 연구를 통해 예기의 정치학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학계에 확산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조선 초기에 권근(權近)이 방대한 분량의 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을 저술한 이래로 예기는 조선 시대 내내 유교 통치학의 필수과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정치학계에서는 예기의 가치에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예기 연구는 한국정치사상사의 인식지평과 연구주제를 확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연구자는 이 연구를 통해서 예기뿐만 아니라 소위 삼례학을 구성하는 의례와 주례의 입헌주의적 의미에 대한 학계의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의례는 예기의 원형이기도 하지만, 소위 사례(士禮)라고 하여 지배층의 행위양식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그것의 상당부분이 향약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실행되었다. 이 점에서 의례는 지배층의 권력을 규정․규제하는 입헌주의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주례의 체제는 경국대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지방제도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유교사회의 중앙과 지방의 행정조직을 규정하는 원형이었다. 이 점에서 예기 연구는 유교사회의 입헌주의적 질서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연구자는 이 연구를 통해서 유교사회의 통치규범과 구조를 이해하는 각론들을 체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동안 유교사회의 통치규범과 구조들에 대한 각론적 연구들은 전통사회의 이념과 구조를 보여주는 일반화된 체계와 무관하게 파편적으로 시도되었다. 따라서 이 연구가 제시하는 유교사회의 이념구조와 조직구조에 대한 분석적 모형을 토대로 한 각론적 연구의 체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연구요약
  • 이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잠정적 목차에 따라 예기에 나타난 유교적 입헌주의의 구상을 분석하고자 한다.
    1) 서론: 문제의 제기
    2) 예, 법, 그리고 입헌주의: 개념적 고찰
    3) 예기 성립의 정치적 맥락과 의미
    4) 예기의 체제와 입헌주의적 구상
    5) 결론: 유교적 입헌주의의 한국적 함의

    첫째로 서론에서는 이 연구가 지향하는 문제의식의 소재를 밝히고자 한다. 유가의 예치와 법가의 법치라는 관념은 이분법적 대립의 관점에서만 파악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중첩된 문제이다. 이 점을 이 연구에서는 예의 법제화와 법의 유교화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서 풀어가고자 한다.
    둘째로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분석적 해명을 위해 그동안 각기 다른 문제의식에 입각해 설명되었던 예, 법, 입헌주의 등의 개념을 이 연구의 문제의식에 따라 새롭게 정의하고자 한다. 우선 이 연구에서는 예라는 개념의 핵심이 질서의식에 있다는 점, 즉 제도화되지 않은 사회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와 제도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 개념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이 연구에서는 법이 법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형해화된 제도로만 존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동양적 법의 정신에 담긴 도덕적 함의를 아우르는 동양의 법적 관행과 맥락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입헌주의의 핵심은 권력을 규제하는 것에 있다는 점을 근거로 동양의 유교문화에서는 권력을 통제하는 관념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입헌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하기 위해 유교적 권력규제의 양식과 그에 입각한 유교적 입헌주의의 이념을 고찰하고자 한다.
    셋째로 이 연구에서는 예기가 편찬된 하한선인 한대의 정치적 상황에 주목하면서, 예치와 법치가 교차되는 역사적 필연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예기에는 처음부터 단순히 도덕적 규범의식이 아닌 주대(周代) 이전의 종법적(宗法的) 봉건질서를 이상향으로 상정했던 공자의 정치적 또는 제도적 문제의식이 내포되어 있었으며, 게다가 진한 시대를 거치면서 법가적 문제의식이 가미되어 예기는 예와 법이 습합된 독특한 텍스트로 형성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넷째로 이 연구에서는 예기에 대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 예기의 편제와 그것에 담긴 헌정질서의 구상을 유교입헌주의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는 유향(劉向)의 편목분류에 따라 󰡔예기󰡕에 대한 텍스트 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특히 이 연구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관혼상제향사조빙(冠婚喪祭鄕射朝聘)이라는 8례에 관한 부분과 왕조례에 대한 기록과 해석을 담은 「왕제(王制)」, 「명당위(明堂位)」, 「월령(月令)」, 「문왕세자(文王世子)」 부분이다.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예기가 단순히 사회규범에 도덕적 준행에 관한 예론만으로 구성된 텍스트가 아니라 고대 중국의 국가제도 전반에 관한 체계적인 기록이 담겨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천자가 따라야할 엄정한 규범을 제시함으로써 최고 권력자에 대한 통제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헌정적 구상을 포함하고 있음을 입증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에서는 결론적으로 예기에 나타난 유교적 입헌주의 구상이 갖는 한국적 함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사실 조선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은 유교입국이라는 명분상의 선언을 맹목적으로 좇아 조선시대 예치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특히 한국정치사상사학계의 연구 관행은 성군(聖君)과 군자(君子)들의 유교정치와 그들의 유교실천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진행해 왔던 경향이 짙었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은 건국 초부터 정도전이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을 편찬한 이래로 끊임없이 국가체제의 법률적 정비를 시도하여 성종 대에 경국대전이 완성되면서 일단락을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체제의 법률적 정비는 행정적 제도적 측면에서 성취된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속에는 법치와 예치가 교차되는 긴장과 갈등이 내재되면서 조선 특유의 유교적 입헌주의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 한글키워드
  • 법가(法家),법치,입헌주의,예치,법제의 유교화,예의 법제화,유교의 법제화,법률적 추론,역자문화중심주의,예기(禮記),유교
  • 영문키워드
  • Confucianism,Confucianization of Law,Book of Rites,Constitutionalism,Rule of Law,Rule of Rites,Legalist,Legalization of Confucianism,Legalization of Rites,Legal Reasoning,reverse ethnocentrism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동양의 예치, 특히 유교의 예치가 필연적으로 법에 의한 지배를 부정하고 그 결과 폭력적 전제정을 옹호하게 된다는 서구의 오랜 편견을 실증적으로 극복하려는 문제의식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첫째로 유교의 예치 관념은 자의적 인치(人治)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안된 위계적 도덕주의의 소산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예치 관념은 인간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합리적 관습과 규칙에 기초하여 윤리적 연결망으로 재편하려는 제도적 노력의 소산이었다. 이 점에서 이 연구는 [예기]에 나타난 예치는 예제화(禮制化)된 법(法)과 법제화(法制化)된 예(禮)를 변증법적으로 소통시키는 새로운 질서를 지향했음을 밝히고자 한다. 둘째로 이 연구는 [예기]의 예치 관념이 전제정을 정당화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제권력을 도덕적 측면과 제도적 측면에서 제한하고자 했던 문제의식을 강조하고자 한다. 즉 예치의 원리가 작동하는 유교사회에서 군주는 예를 제정하고 준수함으로써 권력의 정당성을 스스로 확보했지만, 동시에 예를 위반하는 군주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예는 군주를 규율하는 견제장치로 활용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예를 통해 군주의 권력을 제한하고자 했던 유교국가의 예치 이념을 ‘유교입헌주의(confucian constitutionalism)’로 규정하고자 한다.
    유교입헌주의의 정전(正典)이라는 의미에서, [예기] 중에서 가장 주목되어야 할 부분은 천자의 권력에 대한 제한 규정이다. [예기]는 천자를 천하에 군림하는 지존의 존재로 설정했지만, 동시에 도덕규범과 법제를 준수하지 않는 자의적 권력 행사는 합리주의적 지식인들의 견제 대상이었다. 한대의 권력관계는 천자를 보편적인 존재로 인식시키려는 황권의 입장과 정치적 존재로 제한하려는 신권의 입장이 길항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점에서 [예기]의 유교입헌주의는 황권의 절대성을 부인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천자의 자의적 권력 행사에 대한 신하들의 견제를 허용하는 절충적 구조를 지향했다. 한대 이후 중국 사회가 거대 제국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면서 비교적 장기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권력의 길항을 허용하는 유교입헌주의의 소산이었다.
  • 영문
  • In the Confucian society where the principle of rule of rites had been working, the son of Heaven was the highest ruler who legislated and executed the rites. But at the same time the rites was utilized as a restraint apparatus to discipline the power of son of Heaven. The aim of this paper is to define the ideology of Confucian rule of rites which tried to restraint the power of the son of Heaven as Confucian Constitutionalism. The Book of Rites was established as a canon of Confucian Constitutionalism when the Confucian scholars of Han dynasty propelled to settle the ruling ideology of new gigantic empire. Therefore from that time on the Book of Rites had begun to be handed down as a Constitutional canon which combined the Confucianism and Legalism. From the Confucian Constitutional perspective, the Book of Rites had defined the son of Heaven as a highest ruler under Heaven, but his arbitrary power which did not conform to moral regulation and legal institution was the object of restraints from subjects. The Confucian Constitutionalism in the Book of Rites aims was an eclectic structure which permitted subjects’ restraints on the son of Heaven’s arbitrary power without denying the King’s power. From the ideological perspectives, the longevity of Chinese empire from the Han dynasty was the product of Confucian Constitutionalism which permitted the rivalry of powers between King and subject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예치의 원리가 작동하는 유교사회에서 군주는 예를 제정하고 집행하는 지존의 존재였지만, 동시에 예는 군주를 규율하는 견제 장치로 활용되었다. 이 글은 예를 통해 군주의 권력을 제한하고자 했던 유교국가의 예치 이념을 ‘유교입헌주의(confucian constitutionalism)’로 규정하고자 한다. 특히 유교입헌주의의 정전(正典)으로 확립된 [예기]는 새로운 거대 제국의 통치 질서를 확립하려는 한대의 정치적 문제의식이 가미되면서, 유교와 법가의 통치원리가 습합된 동양사회의 헌정 규범으로 전승되었다. 유교입헌주의의 관점에서 [예기]는 천자를 천하에 군림하는 지존의 존재로 설정했지만, 동시에 도덕규범과 법제를 준수하지 않는 자의적 권력 행사는 견제의 대상이었다. [예기]가 지향하는 유교입헌주의는 황권을 부인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의적 권력 행사에 대한 견제를 허용하는 절충적 구조였다. 이념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한대 이후 중국 사회가 거대 제국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면서 비교적 장기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권력의 길항을 허용하는 유교입헌주의의 소산이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유교의 예치가 필연적으로 법에 의한 지배를 부정하고 그 결과 폭력적 전제정을 옹호하게 된다는 서구의 오랜 편견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서 극복되어야 한다. 첫째로 유교의 예치 관념은 자의적 인치(人治)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안된 위계적 도덕주의의 소산만은 아니며, 오히려 예치 관념은 인간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합리적인 관습과 규칙에 기초하여 치밀하게 짜인 윤리적 연결망으로 재편하려는 제도적 노력의 소산이었다. 둘째로 유교의 예치 관념은 폭력적 전제정을 정당화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전제권력을 도덕적 측면과 제도적 측면에서 제한하고자 했다. 이 점에서 예는 군주를 규율하는 견제장치로 활용되었다. 통치 권력의 한계를 규정하고 그 자의적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 현대 입헌주의의 핵심이듯이, 예를 통해 군주의 권력을 제한하고자 했던 유교국가의 예치 이념을 ‘유교입헌주의(confucian constitutionalism)’로 규정할 수 있다.
    [예기]에 나타난 유교적 입헌주의의 구상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로 [예기]는 한대에 ‘예경학(禮經學)’으로 정립되는 과정에서 입헌주의적 구상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예기]는 단순한 개인의 사회적 규범을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통치구조와 규범을 규율하는 입헌주의적 구상을 담게 되었다. 둘째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 질서를 확립하려는 한대의 정치적 문제의식이 가미되면서, [예기]는 유교적 통치원리와 법가적 통치원리가 습합된 동양사회의 헌정 규범으로 전승되었다. [예기]의 내용에는 ‘예’를 도덕규범으로 인식하는 유교의 정신과 ‘예’를 질서로 인식하는 법가의 해석이 결합되어 있다. 유교입헌주의의 정전(正典)이라는 의미에서, [예기] 중에서 가장 주목되어야 할 부분은 천자의 권력에 대한 제한 규정이다. 한대의 권력관계는 천자를 보편적인 존재로 인식시키려는 황권의 입장과 정치적 존재로 제한하려는 신권의 입장이 길항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점에서 [예기]의 유교입헌주의는 황권의 절대성을 부인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천자의 자의적 권력 행사에 대한 신하들의 견제를 허용하는 절충적 구조를 지향했다.
  • 색인어
  • [예기], 유교입헌주의, 법의 예제화, 법의 유교화, 유교 국교화, 유교의 법제화, 예의 법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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