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다산 정약용의 中庸講義補와 中庸自箴을 중심으로 그의 神 개념을 분석, 고찰하였다. 이 텍스트에는 ‘中和’, ‘中庸’의 철학을 중심으로 ‘天’, ‘天道’, ‘神’, ‘鬼神’, ‘上帝’ 에 대한 그의 독창적 사상이 정리되어 있다. 특별히 다산은 ...
본 연구는 다산 정약용의 中庸講義補와 中庸自箴을 중심으로 그의 神 개념을 분석, 고찰하였다. 이 텍스트에는 ‘中和’, ‘中庸’의 철학을 중심으로 ‘天’, ‘天道’, ‘神’, ‘鬼神’, ‘上帝’ 에 대한 그의 독창적 사상이 정리되어 있다. 특별히 다산은 中庸의 ‘愼獨’론을 통하여 자신의 神이해, 인간의 신성성, 인간과 神의 조우를 피력하였다. 이러한 그의 神개념과 愼獨에 관한 사상은 주자학적 사유와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조선사회 후기의 당쟁과 지방행정의 부조리와 악습을 극복하고 孔孟사상의 기반에서 인간과 사회의 좌표를 재설정하고자 한 것이었다. 나아가 이 좌표의 설정은 ‘궁극적 실체’, ‘절대가치’로서의 神이해가 기반이 된다고 보았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愼獨과 인간본성에 관한 것이다. 다산은 ‘아무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곳에서 자신의 마음을 단속하여 욕심이 싹트지 못하게 하는 것’ 이라는 주자의 신독론을 거부하였다. 다산사상에서의 신독은, 神(鬼神)의 실존을 분명히 인식하고 神이 자신을 감시함을 느끼고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러한 인간의 소극적인 자세가 신독의 시작이기는 하지만, 이 신독은 나아가 인간이 자신의 영명한 신성을 가지고 신의 의도와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순종하고 행동하는 적극적 실천으로 나아간다.
한편 이 실천에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해가 깊이 개입되어 있는데, 다산이 인간의 본성을 물성과 분리하여 이해한 것이다. 주자가 이해한 인간성은 物性과 원리(理)는 공유하지만 그 기질(氣)에서 다른 것인데, 다산은 이러한 주자학의 인간이해를 전면 부정하고 인간성을 물성과는 완전히 분리하여 신성에 가깝게 이해한 것이다. 즉 인간의 성은 영명하며 이 영명성이 있기에 인간은 神에 감응하고 神을 좇을 수 있는 것이다.
둘째, 鬼神과 上帝에 관한 이해와 인간과 신의 만남이다. 고대신앙에서의 鬼神은 하늘신과 땅신을 비롯하여 모든 사물에 깃든 신의 의미와 조상과 영웅 등 인간신을 포함하였다. 또한 上帝는 이 귀신 들 중 최고신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洙泗學의 귀신론 또한 이러한 귀신이해에 기반하였다. 그러나 주자에 이르러 이 귀신은 理氣의 원리로 변화되었다. 다산은 원리로서의 귀신론은 인간의 자기성찰과 수양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파악하였다. 그래서 다산은 이 ‘鬼神’을 원시신앙의 귀신론으로 돌려 놓는다. 이 회귀는 아마도 귀신의 작용이 줄 수 있는 순기능을 염두에 둔 것 같다. 하지만 민간의 귀신론이 갖는 역기능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다산은 이 귀신이 결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래서 귀신론과 신독론에 나오는 귀신의 이해는 때로는 상제의 작용으로, 때로는 하늘의 명령(天命)으로, 때로는 하늘의 도(天道)로 설명된다. 이 개념들이 중층적이고 다층적이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혼란을 주기도 하기만 다산이 목적한 것은 ‘하나의 神’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神 존재의 초점은 인간과의 만남에 있다는 것이다. 鬼神-上帝-天命-天道는 은미한 가운데서 인간과 만나며 자연의 흐름 속에서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바람 속에서, 물고기와 솔개의 生 속에서, 인간의 마음 속에서, 이 神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자신의 의도를 내비친다. 인간의 심성 속에 내재된 영명한 신성을 통하여 이 神은 지속적으로 인간을 자신의 뜻을 따라 유도한다. 인간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다산이 생각한 인간의 좌표는 전전긍긍하며 자신의 나약함을 시시각각 초극하며 이 神에게로 향하는 지점이다. 다산의 사상에서 이 神이 초월신이든 내재신이든 유일신이든 최고신이든 창조주이든 창조성이든 서구의 신이든 동양의 신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인간이 얼마나 이 神을 갈구하느냐이다. 하지만 이 희구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神도 인간을 만나기 위해 뱀이 허물을 벗듯 자신의 이름과 작용을 무한히 변화시키고 있으므로. 강림하는 신과 초극하는 인간의 만남, 이것이 바로 다산이 이해한 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