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자기와 타자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은 그가 먹는 음식의 산물이며, 먹는 음식으로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음식은 먹기 좋을 뿐 아니라 생각하기에 좋다.
오늘날 대도시를 중심으로 ‘민속요리’ ‘민족요리’ 등이 유행하고 있 ...
음식은 자기와 타자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은 그가 먹는 음식의 산물이며, 먹는 음식으로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음식은 먹기 좋을 뿐 아니라 생각하기에 좋다.
오늘날 대도시를 중심으로 ‘민속요리’ ‘민족요리’ 등이 유행하고 있다. 이들의 등장은 맥도날드, 켄터키프라이드 치킨, 피자헛 같은 패스트푸드점을 통해 진행되는 음식과 입맛의 세계화와 획일화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민속음식’과 ‘민족음식’은 지역(음식)문화의 진정성과 도덕적 우월성, 지역 정체성, 입맛의 주권선언, 문화민족주의 등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다른 한편 민속음식과 민족음식의 등장은 세계화와 소비사회가 만들어낸 소비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소비사회에서 음식은 영양학적 필요보다는 성, 계층, 민족, 종교 등을 나타내는 하나의 기호, 은유, 상징으로 소비된다. 소비사회에서 사람들은 민속음식을 통해 다양한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소비한다.
1980년대 이후 ‘토속음식’, ‘향토음식’, ‘전통음식’의 등장 또한 근대화와 소비사회의 등장, 세계화의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지난 반세기 한국사회에서 진행된 ‘압축적’ 근대화와 국가주의적 획일화는 탈전통, 탈지역화의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근대화와 한국사회의 사회․정치적 변화는 ‘지역문화’, ‘전통문화’에 대한 향수와 우리 것 찾기, 지역성과 지역정체성의 강화를 가져왔다. ‘토속음식’의 등장은 지역정체성과 전통문화와 고향찾기 라는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동안 음식은 학문적 대상이 되기에는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인류학에서 교환체계의 부분, 사회관계의 매개수단, 사회분류체계, 권력과 성, 우리와 타자를 구별하는 상징과 은유로서의 음식에 관한 논의가 있어 왔지만, 음식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본격적인 탐구의 주제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는 몸에 대한 사회과학적 관심과 담론, 역사연구에서 사람들의 생활사와 일상사에 대한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음식에 대한 연구를 주제별로 보면 1) 음식소비구조의 변동, 2) 식민지적 근대와 음식, 3) 세계화와 패스트푸드/슬로푸드 등으로 구분되며 사회학, 민속학, 역사학, 영양학 등에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음식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보적 단계이다. 기존의 연구는 각기 다른 학문분야에서 단편적으로 이루어진 형편이다. 하나의 음식이 생산, 유통, 소비되는 전체적 과정, 사회경제적 변화와 일상적 실천을 통해 음식이 사회문화적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 음식의 영향학적인 측면 과 사회문화적 의미와의 관계 등을 총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
‘토속음식’과 지역 정체성에 관한 본 연구는 고고학과 인류학, 영양학 연구자에 의한 다학제간 다년(2년)과제로 구성되어 있다. 음식, 즉 먹과 마시는 행위는 식품영양학적 문제이면서 사회문화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역사학(고고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학제간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
‘토속음식과 지역 정체성’에 대한 본 연구는 홍어와 새우젓이라는 특정음식이 사회, 역사적 조건의 변화 속에서 지역의 토속음식으로 만들어지며, 지역집단의 정체성의 표지로 작동하게 되는 전체적인 과정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연구와 구별되며 독창적이다.
홍어와 새우젓은 서남해안에서 많이 생산된다. 일반적으로 토속음식은 생산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른바 신토불이이다. 그러나 홍어가 호남의 ‘토속음식’으로서의 지역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적 위치를 획득하는 반면, 새우젓은 지역정체성과 무관하게 여겨지게 되는 배경을 생산, 유통, 소비 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데에 연구의 목적이 있다.
토속음식화에 생산 뿐 아니라 유통과 소비의 전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은 수입음식의 ‘토속화’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칠레산 수입홍어가 유통, 요리, 소비과정을 거쳐 ‘토속음식’으로 재정주(relocation)하게 되는데, 재정주화 과정에서 지역사람들이 체득한 조리법의 노우하우(knowhow), 음식선택과 맛의 기준, 소비와 관련된 민속전통, 식품영양학적 측면 등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요약하자면 분 연구는 홍어와 새우젓의 (고고학 및) 역사, 생산, 유통, 소비의 복합적이고 전체적인 과정 뿐 아니라 이와 관련한 민속 및 사람들의 일상적인 실천에 대한 학제간 연구, 미시적/거시적 관점, 문헌조사와 인류학적 현지조사, 식품영양학적 분석을 통해 ‘토속음식’과 ‘지방정체성’에 관한 이론화와 자료수집에 기여할 것이다. 음식의 사회문화적 구성에 관한 이론화에도 중요한 공헌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