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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西周王朝의 성립과 族의 재배치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07-327-A00076
선정년도 2007 년
연구기간 1 년 (2007년 12월 01일 ~ 2008년 11월 30일)
연구책임자 민후기
연구수행기관 연세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이 글은 상주혁명과 서주봉건을 경계로 商의 氏 내지 族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를 추적하여 서주봉건이 族의 재배치라는 인적 측면에서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필자가 봉건의 人的 내지 족적인 측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여러 사료에 자주 보이는 서주시대의 상족의 활약을 통해서였다. 실례로, 魯에는 周族을 위한 周社이외에도, 商族을 위한 亳社가 있었는데, 춘추말년에 莒와 邾를 멸한 季氏가 그 승리를 기념하여 亳社에 俘를 바치고 있는 것은 季氏의 속하에 周族만이 아니라 商族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최근에 발견된 일련의 청동기는 商族이 周代에 독자적으로 청동기를 제조할 만큼 독자적인 조직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연구는 문헌자료와 출토자료에 나타나는 서주왕조의 성립과 그에 뒤이은 봉건이 족적 측면에서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기대효과
  • 만일 필자의 청동기 족휘를 중심으로 한 족의 추적이 소기의 성과를낸다면 다음과 같은 기대효과를 낼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서주초기정치사의 재조명이라는 측면이다. 만일 서주봉건의 본질이 商族의 족조직을 보존시킨 채 족단위로 분리하여 주족과 하나의 단위를 만들어서 전국에 재배치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족을 중심으로 한 은주혁명과 서주봉건의 또 다른 측면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실례로, 三監의 난은 商族의 족조직이 온전한 상태에서 그 지배자만 紂에서 武庚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며, 따라서 周公의 東征은 주로 상족의 족조직을 분산, 재배치하는 것이었다는 관점을 보다 확실하게 보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족의 관점에서 중국고대사를 재조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은 서주봉건을 ‘族’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고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종래 널리 행해진 노예제사회론과 함께 중국고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보다 풍부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즉, 중국의 국가기원을 논하면서 周代를 ‘封國연맹’의 단계, 商周사회의 기층단위를 ‘宗族’에 의한 ‘族落’, 혹은 아예 ‘氏族聯盟’이라고 정의하는 시각 등이 있었지만 이들 논의가 크게 주목받지 못한 상태에서 ‘族’을 중심으로 한 중국 고대사라는 시각을 다시 한 번 재조명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세째, 학제간 연구에서는 영역국가의 초기형성과정에 대한 중국적 양식의 실마리를 기대한다. 국가의 기원과 형성에 대해서는 수다하게 많은 설이 제기되어있지만, 실제 어떤 과정을 거쳐 고대 국가가 성립했느냐에 이르면 그리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이러한 관점에서 민족의 형성과 민족의 융합을 통한 중국 고대영역국가의 전단계에 대한 연구는 필자의 생각에 이제 막 시작되었으며 필자 역시 그 출발점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민족의 융합이라는 문제, 다시 말해 도대체 어떻게 서로 다른 족들이 점차 융합되면서 춘추말에 이르러 급속히 족을 벗어나 영역화되는가의 문제가 필자의 요즘 주요 관심사항이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商周革命의 본질을 族의 관점에서 재분석하고 殷商의 族들이 西周에 와서 어떻게 되었으며, 周族과는 어떤 관계에 있었는가를 분석하는 것은 영역국가의 초기형성과정에 대한 작은 실마리라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연구요약
  • 이 글은 상주혁명과 서주봉건을 경계로 商의 氏 내지 族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를 추적하여 서주봉건이 族의 재배치라는 인적 측면에서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통해 진행될 예정이다. 먼저, 氏 내지 族 단위로 商族을 파악하고, 그 商族이 어떻게 배치되었는가를 추적하기 위해서 필자는 우선 商과 西周시대의 청동기에 나타나는 族徽를 추적하는 방법을 사용하고자 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첫째, 西周시대 청동기에서 商族의 族徽를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
    둘째, 西周시대에서 분류한 商族의 族徽를 商代의 族徽와 비교, 검토가 필요
    세째, 商과 西周시대에 연속되는 商族의 族徽를 출토지를 중심으로 추적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내릴 결론을 현재의 시점에서 예상해보면 다음과 같다. 서주초기에 이루어진 봉건의 성격이 商族과 여타 다른 족들의 재배치에 있었으며, 그 방법은 《左傳》의 기사가 시사하는 것처럼 한 국가에 여러 성씨를 묶어 배치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이를 통해 이후 이들 족이 한 국가내에서 점차 족을 뛰어넘어 혼합되는 과정을 상정할 수 있지않나 생각된다.
  • 한글키워드
  • 서주왕조,봉건,족,족휘
  • 영문키워드
  • Western Chou dynasty,clan sign,clan,feudalism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商周혁명의 주력군은 오늘날의 섬서성을 중심으로 한 오르투스 유역의 姬姓의 周와 동성과 이성 邦君들의 연합집단이었다. 이들은 殷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연합집단은 ‘西土의 사람들’이라고 스스로를 불렀다. 따라서 殷周혁명은 동방의 ‘殷’ 중심의 연합집단이 지배하던 천하를 서토연맹의 구심점인 姬姓의 ‘周室’을 중심으로 재편하는 작업이었다. 그 구체적인 계기가 된 것은 삼감의 반란이었다. 商周혁명은 은족을 제압하여 삼감을 설치했지만, 여기에서 일어난 반란은 周에게 族의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요구했다. 周公의 2차에 걸친 東征과 그 결과는 이후 영역적 中國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周公이 그토록 강조한 것은 일국에 대한 많은 族의 分散 배치, 엄격한 동성불혼을 통한 족의 혼합에 있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族을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商이라는 단일 族의 국가형태는 동성불혼을 통해 주족의 패권 아래 여러 족이 융합하는 형태가 됨으로써 "족을 넘어선 영역적 공동체"의 맹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서주초기에 이루어진 봉건의 성격이 商族과 여타 다른 족들의 재배치에 있었으며, 그 방법은 한 국가에 여러 성씨를 묶어 배치하는 것이었다.
  • 영문
  • This article focus on the rise of Chou dynasty and rearrangement of clan. In the beginning of Chou dynasty, Chou and Shang's clans existed as ever. But after the rebellion of shang clan, the clan systems of the Western Zhou was becoming replaced with the system of clan's mixture. It is because of the fact that since the middle of Western Zhou the importance of relationship of brothers was started to become eclipsed by the relationships of father and son, husband and wife, and master and servant. Further more, brothers started to compete each other and even depended on other clans to defeat their elder or younger brothers, which eventually destroyed the boundaries among clans. As the result, ‘the age of clan’ was collapsed and replaced by ‘the age of state’ when people in a certain territory shared a same political fortun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商周혁명은 주족이 은족을 제압하여 삼감을 설치했지만, 여기에서 일어난 반란은 周에게 族의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요구했다. 周公의 2차에 걸친 東征과 그 결과는 이후 영역적 中國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周公이 그토록 강조한 것은 일국에 대한 많은 族의 分散 배치, 엄격한 동성불혼을 통한 족의 혼합에 있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族을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商이라는 단일 族의 국가형태는 동성불혼을 통해 주족의 패권 아래 여러 족이 융합하는 형태가 됨으로써 “족을 넘어선 영역적 공동체”의 맹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서주초기에 이루어진 봉건의 성격이 商族과 여타 다른 족들의 재배치에 있었으며, 그 방법은 <左傳>의 기사가 시사하는 것처럼 한 국가에 여러 성씨를 묶어 배치하는 것이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서주초기 정치사에서 봉건의 연구는 주로 군사와 그 결과로서의 정치에 집중되었다. 만일 필자의 청동기 족휘를 중심으로 한족의 추적이 소기의 성과를 내어 서주봉건의 본질이 商族의 족조직을 보존시킨 채 족단위로 분리하여 주족과 하나의 단위를 만들어서 전국에 재배치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인정받는다면 족을 중심으로 한 은주혁명과 서주봉건의 또 다른 측면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실례로, 三監의 난은 商族의 족조직이 온전한 상태에서 그 지배자만 紂에서 武庚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며, 따라서 周公의 東征은 주로 상족의 족조직을 분산, 재배치하는 것이었다는 관점을 보다 확실하게 보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 글의 목표가 서주봉건을 ‘族’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고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종래 널리 행해진 노예제사회론과 함께 중국고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보다 풍부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즉, 중국의 국가기원을 논하면서 周代를 ‘封國연맹’의 단계(高光晶, 《中國-國家起源及形成》, 湖南人民出版社, 長沙, 1998), 商周사회의 기층단위를 ‘宗族’에 의한 ‘族落’(王貴民, 《商周制度考信》, 明文書局, 臺北, 1989), 혹은 아예 ‘氏族聯盟’이라고 정의하는 것(陶希聖, 《中國政治制度史》(啓業書局, 臺北, 1973, 28-31쪽) 시각 등이 있었지만 이들 논의가 크게 주목받지 못한 상태에서 ‘族’을 중심으로 한 중국 고대사라는 시각을 다시 한 번 재조명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기원과 형성에 대해서는 수다하게 많은 설이 제기되어있지만, 실제 어떤 과정을 거쳐 고대 국가가 성립했느냐에 이르면 그리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이러한 관점에서 민족의 형성과 민족의 융합을 통한 중국 고대영역국가의 전단계에 대한 연구는 필자의 생각에 이제 막 시작되었으며 필자 역시 그 출발점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민족의 융합이라는 문제, 다시 말해 도대체 어떻게 서로 다른 족들이 점차 융합되면서 춘추말에 이르러 급속히 족을 벗어나 영역화되는가의 문제가 필자의 요즘 주요 관심사항이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商周革命의 본질을 族의 관점에서 재분석하고 殷商의 族들이 西周에 와서 어떻게 되었으며, 周族과는 어떤 관계에 있었는가를 분석하는 것은 영역국가의 초기형성과정에 대한 작은 실마리라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색인어
  • 西周, 封建, 族, 재배치, 族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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