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1861-1865)은 남부인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과거/역사이기도 하지만, 특히 작가 포크너(William Faulkner)에게는 그의 작품들에서 드러나듯 더없이 큰 흔적을 남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포크너의 작품들에서 작중인물들이 남북전쟁이라는 과거, 그 역사로부터 ...
남북전쟁(1861-1865)은 남부인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과거/역사이기도 하지만, 특히 작가 포크너(William Faulkner)에게는 그의 작품들에서 드러나듯 더없이 큰 흔적을 남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포크너의 작품들에서 작중인물들이 남북전쟁이라는 과거, 그 역사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은 아마 비평가들이나 독자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작가 개인적 차원에서도, 1861-63년 사이 남북전쟁에 참전하여 보병대와 기병대를 이끌며 여러 전투를 치룬 작가의 증조부(William C. Falkner)는 여러 면에서 요크나파토파의 전설적인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John Sartoris를 닮아 있다. 물론 포크너 픽션 속의 마을과 인물들을 현실 속의 그것들과 물리적으로 비교하며 남북전쟁의 의미를 형성해낼 수도 있겠지만, 전쟁(패배)의 도덕적 의미나 그것이 현재를 살고 있던 남부인의 정신세계와 남부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문학적/문화적 차원에서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가 작가에게 더욱 절실하면서도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본 연구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남북전쟁이란 과거/역사를 두고 남부작가들이 끊임없이 재창조해내고 있는 낭만적인 전쟁서사는 20세기를 들어선 남부인들의 상실감이나 무력감을 정신적/도덕적으로 보상하면서, 잃어버린 남부인의 자존심을 고무시키는데 일조하였다는 사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때문에 남북전쟁의 상처를 극복하는 한 제스처로서 “국가적 화해”를 모색하며 전쟁의 상흔을 달래기 위해 열심히 구실을 찾고 있던 시점에, 특히 남부입장에서 구질서와 남군의 “Lost Cause”에 대한 향수어린 문학성향은 전후 남부인들의 정신적 물질적 폐해를 해소하기 위한 중요한 문화적 방어기제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전후 남북전쟁에 대한 할리우드 필름서사들이나 당시 남부작가들의(Walter Whitman의 시나 저널들. Herman Melville과 Mary Chesnut의 일기 등이 보여주는 빼어난 기록들, 그리고 Margaret Michell의 Gone with the Wind 등) 전쟁서사와 비교해 볼 때, 포크너는 상당히 차별화되는 전쟁서사를 재현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20세기를 들어선 남부인들의 정신세계와 역사의식 그리고 문화형성에 핵심적인 화두가 되고 있는 남북전쟁이란 과거사를 포크너는 그의 작품들에서 어떻게 재현해내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또한 전쟁의 상실감을 남부인들은 어떻게 애도하고 있는가의 문제 그리고 남북전쟁의 도덕적 성찰과 더불어, 기억의 서사 그리고 역사적 서사로서 그의 전쟁서사는 어떤 의미를 형성해내는지도 추적한다. 신남부의 새로운 질서가 부상하면서 남부사회 전반에 변화의 물결을 직면하고 있던 작가 포크너가 남북전쟁을 어떻게 의미화하고 재해석하고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Flags in the Dust(1973, Sartoris 1929), The Unvanquished(1934, 1938), Absalom, Absalom! (1936)등에서 드러나고 있는 남북전쟁의 재현구도를 통해, 포크너는 구시대의 질서 즉 인간의 존엄성, 용기, 명예 등과 같은 “도덕적 질서”에 대한 낭만적인 향수뿐만 아니라, 그러한 과거의 유산을 어떤 비판적인 시선으로 재평가하고 있는지도 탐색할 것이다,
포크너 작품들에서 남북전쟁을 위시한 전쟁서사에 대한 연구는 미국 내에서도 그다지 폭넓게 진행되어오지 않고 있는 수준이며, 1980년대 이후 상당히 미진하게 조금씩 연구가 진행되어 오고 있다. 기존의 연구들로는 그의 전쟁서사의 낭만적인 글쓰기에 주된 관심을 보이며, 신화와 현실로서의 남북전쟁 그리고 전쟁의 탈신화성 등의 맥락에서 주로 작품들을 분석하는 정도로, 미국 내에서도 포크너의 전쟁서사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크너의 전쟁서사에 대한 국내연구는 거의 진척되지 않고 있음도 사실이다. 때문에 본 연구가 다룰 주제는 미국학계나 국내에서 더욱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부분임을 숙지하면서, 필자는 단순히 국내독자들에게 포크너의 남북전쟁과 그의 전쟁서사의 의미를 소개하는 차원을 벗어나, 과거와 현대성의 문제, 역사와 기억의 의미화와 시제(현재성), 그리고 개인과 역사의 관계성이라는 맥락에서 본 연구가 포크너 학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그 가능성을 여는 시발점이 되길 목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