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주제로 한 괴테, 하이네, 카프카, 트라이헬의 텍스트에서 기존의 신화가 어떻게 변형되는지 고찰하고자 하는 본 연구는 상호텍스트성의 관점을 끌어들여 텍스트들 간의 상호연관을 짚어냄으로써 각각의 텍스트가 기존 신화의 단순한 차용이 아니라 서 ...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주제로 한 괴테, 하이네, 카프카, 트라이헬의 텍스트에서 기존의 신화가 어떻게 변형되는지 고찰하고자 하는 본 연구는 상호텍스트성의 관점을 끌어들여 텍스트들 간의 상호연관을 짚어냄으로써 각각의 텍스트가 기존 신화의 단순한 차용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제의식과 관심사에서 비롯되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재활용'의 의미에서 해석되어야 함을 밝히고자 한다.
제1장에서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처음으로 소개한 헤시오도스를 비롯하여 아이스퀼로스와 오비드 등 고대의 작가들이 묘사하는 프로메테우스의 다양한 모습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또한 서구문학에서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그 큰 흐름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제2장에서는 네 작가의 텍스트들을 차례로 비교, 분석하며 텍스트 상호간의 연관과 그 의미를 천착하고자 한다.
괴테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창조자이자 인류를 대변하는 예술가로서의 측면이 전면에 부각되는 반면, 하이네의 프로메테우스는 사슬에 묶인 채 고통을 당하는 자로서 사랑의 고통에 신음하는 개인으로서의 예술가/시인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 괴테의 시에서 시적 주체는 프로메테우스의 형상과 동일시되고 있지만 하이네는 영웅적 행위와는 무관한 범상한 시적 주체의 과장된 고통을 프로메테우스의 그것과 대비시킴으로써 그 격차를 가시화하고 있다. 괴테가 인류 전체, 삶 전체의 차원에서 프로메테우스를 얘기하고 있다면, 하이네는 개인의 차원, 사랑의 차원이라는 더 작고 낮은 영역으로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끌어들이고 있다.
카프카의 프로메테우스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가 불가능해 보인다. 그의 "전설"에서는 신들을 배반하고 인류에게 불, 즉 문명을 가져다준 자의 면모도, 인간을 창조한 자로서의 면모도 언급되지 않는다. 사슬에 묶여 형벌을 받는 자로서의 프로메테우스이긴 하지만 언명되지 않는 과거의 "죄"로 인해 일방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자이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저항과 반역의 기미는 찾아볼 수 없다. 제우스가 아닌, 익명의, 다수의 신들이 있고, 신들이 보낸 다수의 독수리들이 있다. 그리하여 고통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는 고통을 모르는 존재, 즉 바위로의 변신을 꾀한다. 카프카는 또한 시간의 경과에 주목하며, 장시간 이유 없이 반복되는 것의 지루함에 대해 얘기하기도 한다. 카프카의 텍스트는 프로메테우스를 둘러싼 기존의 신화를 모두 뒤집어버리거나 아이러니하게 비틀고 있다. 서로 한 술 더 뜨는 식의 어이 없는 해석들이 차례로 나열됨으로써 신화의 해석 자체가 거의 우스개로 변한다. 블루멘베르크의 지적처럼 카프카의 텍스트는 "신화의 하나의 수용"이 아니라 "수용사 자체의 신화화"이다. 하지만 그의 텍스트 역시 기존의 신화와 신화 수용을 토대로 하고 있다. 정형화된 신화의 틀이 있고, 신화 수용의 역사가 있어왔기에 카프카는 20세기의 작가로서 주어진 신화의 틀을 뒤집거나 수용사 자체를 아이러니하게 주제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카프카는 더 이상의 해석을 불허하는 듯 보이는 그의 텍스트로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종언'을 고한 셈이다. 하지만 신화의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트라이헬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후로도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변화하는 시대를 되비추는 끝없는 변주를 계속하고 있다. 트라이헬의 시는 괴테의 프로메테우스를 다시 천착하고 있으며,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낙관적 믿음을 바탕에 깔고 있는 괴테의 시를 뒤집고 있다. 괴테의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나 다른 신들과 분명한 거리를 취하며 지상에서의 인간의 삶과 연대하고 있다면, 트라이헬의 프로메테우스는 거꾸로 인간의 삶, 인류 문명 자체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취한다. 인간을 빚어낸 창조자의 자긍심은 이제 창조의 결과물인 인간에 대한 역겨움과 혐오로 탈바꿈되고 만 것이다. 괴테의 프로메테우스가 근대적 개인 및 인간이 책임지는 삶과 문명의 출발점을 나타낸다면, 트라이헬은 근대적 인간에게 맡겨졌던 삶, 문명의 종착점이 과도한 생산 및 산업, 환경파괴와 전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3장에서는 네 가지 텍스트를 비교, 분석한 결과와 그 의미를 짤막하게 서술하고, 이를 토대로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미래에 대한 어떠한 전망을 열어줄 수 있는지 천착하고자 한다. 우리 시대를 적절하게 설명하고 문학적, 시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 어떤 새로운 측면을 끌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