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젠더의 시점과 실증주의적 역사학의 방법으로 근대 이전 여성교육의 실태, 20세기초 여성교육의 제도화와 사범교육, 여자사범학교의 교과과정, 사범학교의 젠더적 특징, 여성교사상, 신여성과 여성직업 등을 분석, 고찰하였다. 시간적으로는 20세기 전반(1900 ...
본 연구는 젠더의 시점과 실증주의적 역사학의 방법으로 근대 이전 여성교육의 실태, 20세기초 여성교육의 제도화와 사범교육, 여자사범학교의 교과과정, 사범학교의 젠더적 특징, 여성교사상, 신여성과 여성직업 등을 분석, 고찰하였다. 시간적으로는 20세기 전반(1900-1945)이며 특히 민국초기와 남경국민정부시기에 비중이 두어졌고 공간적으로는 사범학교가 설립된 전지역을 포괄하지만 사례연구에서는 천진, 북경 등 대도시에 초점이 맞추었다.
1차년도:구미, 일본 등지에 유학하거나 견문한 지식인들에 의해 여자교육은 救國과 强種의 불가결한 수단이라고 하는 여론이 확산하면서 전통적 여자교육관은 빠르게 변화해갔다. 특히 여자는 천성적으로 교사로서의 자질을 갖고 있다는 구미의 性差심리학이 일본을 통해 중국에 도입되면서 여자와 사범교육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 되었다. 사범학교 여학생들은 남학생에 비해 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수업은 적게 들었고 재봉, 수공, 음악과 미술 등 유아교육에 필요한 과목에 많은 시간이 배정되었다. 이는 남자사범생의 교육과정이 상급진학을 위한 준비과정인 데 반해 여자사범은 졸업 후 곧바로 아동의 조기 및 초급 교육에 복무하게 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수업을 통한 교육의 젠더화, 즉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구분이 명확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업연한 또한 남자보다 1년 적은 4년이며 남자와 달라 고등사범과정이 없었다. 즉 여자사범교육의 특징은 남자에 비해 질이 떨어지며 실용적 성격이 보다 강하며 나아가서는 가계 보충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교육의 전체 과정을 살펴 보면, 교육의 이념과 목적, 명시적 교육과정, 교사-학생간 상호작용, 교육구조와 교육환경 등 모든 면에서 성별화된 이중적 차별구조가 내재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여성교육사에서 사범교육이 차지하는 위치는 지대하다. 먼저 소학교와 함께 최초의 정규 여자교육기관이었을 뿐 아니라 여자중학이 성립하는 민국시대까지 줄곧 여자의 최고학부이자 여학생이 비율이 가장 높았던 곳이다.
2차년도:여자사범교육 자체가 남자사범교육과 다른 계통이었던 것처럼 직업으로서 교사 또한 남성과 여성의 경험이 다르다. 본고는 젠더의 시점으로 민국시기 여교사의 발전상황 및 그 사회노동의 참여와 수준, 경제수입 등 방면에서 그들의 사회경제지위 상황을 고찰하고 나아가 그것이 초래한 다양한 사회상을 분석한다. “學而優則仕”라고 하듯 전통사회 중국에서 학문의 목표는 관료가 되는 것이었다. 존사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가르치는 직업은 관도에서 실패한 지식인들에게 남겨진 마지막 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사가 대표적인 여성직업이 되었던 것은 중국뿐 아니라 18세기 이후 구미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중국에서 가장 빠른 발전을 보인 것은 이러한 전통 관념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것이 교직, 특히 초등교육에서의 여성화를 부추겼다. 민국시기가 되면 사범교육은 여자교육의 대세가 되었고 여교사는 가장 선망 받는 직업이 되었다. 그러나 여교사는 압도적 다수가 소학교에 근무하였다. 1928년 27개 각현에 등록된 소학교원은 모두 9885명, 그 중 여자는 969명으로 약 10%였으며 1935년의 조사에 의하면 약 23%이다. 여교사의 출신과 학력은 다양했다. 사범학교 출신이 가장 많지만 심지어 소학 출신도 있었고 보수도 일률적이지 않아 최고 80원에서 단지 숙식제공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소학교 여교사의 평균 근속기간은 3년 8개월이고 20세 전후의 미혼이 가장 많았다. 다른 여성직업에 비해 교서들은 가장 활발하게 정치,사회활동에 참여했는데 이는 사범학교를 통해 훈육받은 책임의식과 국가주의의 산물일 것이다. 마치 전근대 시기 유가적 지식인의 우환의식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이는 사범교육이 결국 국가주의의 산물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교사를 향한 사회적 시선에는 존경과 함께 그녀들의 책무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