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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國民’과 ‘國民之母’사이에서’:근대 중국 여자사범학교의 탄생과 여교사의 지위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09-327-A00071
선정년도 2009 년
연구기간 2 년 (2009년 11월 01일 ~ 2011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천성림
연구수행기관 한남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1.연구 목적
    본 연구는 지난 100년 동안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여성교육의 확대와 발전이었음에 분명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경제, 학술 등 여러 영역에서 왜 여성은 남성보다 늘 낮은 지위를 점할 수 밖에 없었는지, 보이지 않는 차별, 즉 유리벽은 왜 21세기에 진입한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는 예로 사범대학 학생과 초중등 여교사는 여성의 비율이 훨씬 높지만 사범대학 교수 및 교과서 집필자는 거의가 남성이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본 연구자는 공교육이 시작된 초기부터 남성과 여성에 대한 교육 목적과 내용에 큰 차이가 있으며 이러한 젠더 차별은 고등교육으로 갈수록 더욱 강화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에 본 연구는 첫째, 교육과 문화에서의 젠더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인해 사료를 왜곡하거나 사실을 과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기왕에 출판된 사료를 여성의 시점으로 다시 읽고 아울러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진 자료들도 적극 발굴해냄으로써 역사의 진실을 보다 충실하게 복원해낼 것이다. 즉 본 연구는 둘째, 사료의 범위를 확대하고 여성의 시각으로 새롭게 읽기를 시도한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기존의 여성주의 역사학이 결여했던 실증주의를 보완하고 나아가 일반사가 결여했던 젠더(양성)의 시점을 보강함으로써 전체사를 지향한다. 비록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이는 학계에서 여성주의 역사학이 더 이상 고립되지 않고 나아가 사회적으로 진정한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2.연구 주제의 독창성 및 선행연구와의 비교
    통사류의 중국교육사에서 여성교육은 아예 언급도 되지 않거나 다루어졌더라도 그 비중은 10분의 1도 안 될 정도였다. 하지만 여성주의 역사학의 대두와 확대에 따라 1980년대 후반 이후로 중국여성교육에 대한 연구가 구미, 중국, 대만, 일본 등지에서 성행하기 시작했고 국내에도 1990년대 이후 학위논문(權賢珠, 「中國 近代女子敎育制度 成立에 관한 硏究」, 이대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2)과 전문논문(김유리,「청말의 여자교육 제도와 그 실상」『중국사연구』20, 2002)이 발표되었다.
    구미에서의 최근 연구는 197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여성문화’연구 및 1980년대 후반 포스트모더니즘과 탈식민주의 영향을 받아 여성을 역사상의 피해자 아닌 적극적인 행위자로 볼 것과 중국여성의 역사를 근대 페미니즘의 시점으로 재단하지 말 것을 주창한다. 그리하여 도로시 고, 수잔 만 등에 의해 17, 18세기 중국 여성 문인 및 가정교육에 대한 연구들이 잇따라 발표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여성교육을 제도사로서보다는 문화사로 그려내고자 하는 본 연구자의 문제의식에 많은 자극을 주었지만 대부분 극소수 신사층 여성의 삶에 한정. 여성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본 연구와 지향점이 다르다. 구미에서의 연구동향에 자극받아 叢小平은 2003년, 처음으로 여자사범교육에 대한 전문성의 논문을 발표했다.(「從母親到國民敎師-淸末民族國家建設與公立女子師範敎育」,『淸史硏究』2003-1) 아직까지 여자사범교육에 대한 연구로는 이 논문이 유일하다.
    이 논문은 문제의식이나 지향점에서 본 연구자의 그것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지만 다루는 시기가 淸末에 한정되어 있고 문화사의 시점이 약하다. 또한 사범교육의 결과인 여교사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결론적으로 말해 중국여성교육사는 1980년대 말 이후 중국과 대만,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지만 대부분 미션스쿨이나 유학에 관한 것이며 여자사범교육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이다. 더욱이 17,8세기 규방의 여교사를 제외하고 근대적 직업으로서 여교사에 대한 전문적 연구는 아직 없는 상태이다. 또한 중국여성교육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제도권 역사가에 의한 실증적 연구 그리고 여성주의 여성사가에 의한 전략적 연구로 대별해볼 수 있는데 양자의 시점이나 방법론이 너무 달라 혼란스럽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고증과 이론, 두 방면 모두에서 훈련된 연구자가 필요하다.
    중국에서의 여자사범교육의 탄생과 전개 그리고 여교사의 지위를 제도사뿐 아니라 사회사와 사상사를 결합하여 사회문화사적 각도에서 조명하고자 하는 본연구는 주제면에서도 방법론면에서도 중국근대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 기대효과
  • (1)학문발전 공헌도
    한국의 여성사연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해왔다. 1994년에는 『한국사시민강좌』가, 1996년에는 『역사학보』가 여성사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연구자 대다수는 한국여성사 전공자이지만 중국과 일본, 베트남, 인도 등 아시아여성 그리고 구미여성에 대한 연구자 또한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 중 대부분의 연구자가 집중해 있는 한국여성사의 경우 비교적 활기를 띠고 있어 그동안 여성사 연구의 한계로 거듭 지적되었던 자료 부족의 문제가 호구단자 ․ 일기류 등 고문서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극복되기 시작했고 여성문집 연구들을 통해 여성의 다양한 목소리를 드러내는 연구들이 시도되었으며 일상사 ․ 생활사에 관한 연구를 통해 다양한 계층의 삶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여전히 실증적인 면에서도 취약할 뿐 아니라 나열식 서술의 한계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여성이라는 협소한 범위로 제한하여 연구함으로써 일반사와의 접맥도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국에서의 중국여성사 수준은 더욱 열악하다. 구미는 물론 대만, 일본의 수준에 비해 20년 정도는 낙후해 있는 것 같다고 외국 학자들이 지적했을 정도다. 하지만 고등학교 세계사에 등장하는 유일한 중국 여성이 서태후 한 사람임을 감안한다면 이는 연구자의 자질 문제라기보다는 중국 여성에 대한 관심 자체를 차단하는 교과서, 나아가서는 여성사가 역사학의 한 분과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학계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본 연구가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첫째, 국내 중국여성사 연구의 수준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개설서를 제외하고는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중국여자사범학교 및 여교사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둘째, 본 연구의 결과물들은 교육사 자료로도 활용할 만하며 또 고등학교 세계사 및 2012년에 개설될 동아시아사의 내용을 훨씬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본 연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현실과의 접목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여성권한 척도가 늘 취하위권이며 특히 여성이 가진 능력에 비해 고위직으로의 진입이 어려운 나라이다. 여자사범교육에 대한 연구는 여성교육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왜 여성과 남성은 다른 영역에서 분리된 노동을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줄 수 있으며 따라서 그 해결전망도 비추어줄 수 있다.
    (2)활용방안
    a.교육과의 연계
    현재 우리나라에서 여성사를 정식 과목으로 개설하는 학과는 거의 없다. 기껏해야 몇몇 대학원에 개설된 여성학과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한국여성사나 서양여성사에 국한되어 있으며 중국과 일본의 여성사는 학생들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수요가 없어서라기보다 강의를 담당할 인력의 부족, 그리고 참고서 혹은 교재의 부족 때문이다. 여성사는 역사학의 기초 위에 여성학, 사회학 등 주로 서구에서 수입된 이론적 학문을 접목한 것인데 후자의 경우 비전공자라도 번역서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연마가 가능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한문과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에 대한 일정한 수준이 갖춰지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증과 해석이 갖추어진 여성사자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사료해독능력이 하루아침에 갖춰질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자료들을 통해 사료해독능력과 분석능력을 연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가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교재로 출판하여 여성학과의 여성사 수업에서는 물론 사학과, 역사교육과의 동아시아근현대사 수업에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인력양성이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b.사회적 기여도
    한국교육개발원의 ‘한국교육의 교육지표’ 등 통계자료에 의해 우리는 여교사가 승진이나 권력구조로의 진입에서 여전히 억압 받고 있음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또 이와 같은 학교의 성별 위계구조 속에 교육받는 학생들은 성별 위계질서를 문제시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여성의 지위 향상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초등학교의 초기 사회화 과정을 담당하는 일은 어머니로서 아이를 돌보는 일과 연속성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영원한 진리라기보다는 근대국가 프로젝트로 등장한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동서를 불문하고 共時性을 갖는 현상이었다. 근대 중국 여자사범교육과 여교사의 지위를 구미, 일본, 한국 등의 그것과 비교 연구함으로써 본 연구는 근대 이후 교육을 통해 오히려 강화되는 성별위계질서와 성별분업 현상의 원인을 구명함으로써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시해보려 한다.
  • 연구요약
  • 제1차 년도에는 「근대 중국 여자사범학교의 발생과 전개」(가제목)라는 제목으로 ①근대 이전 중국의 여성교육 ②교육구국론:민족주의와 여성교육론 ③여자사범학교의 탄생과 의미 ④민국시기 여자사범교육 등이 포함될 것이다. 연구할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여성의 사범교육이 공인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는데 여자가 가정 밖에서 공부하는 것이 풍속을 해친다고 하는 여론이 강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사범교육이 체계적․독립적으로 시행된 것은 1904년에 반포된 ‘奏定初級師範學堂章程’과 ‘奏定優級師範學堂章程’ 이후의 일이지만 이때까지도 여자교육은 가정교육의 범위에 포괄되어 독립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3년 뒤에야(1907년) 청정부는 「奏定女學堂章程」「奏定女子師範章程」을 반포, 정식으로 여자학당을 국가교육체계의 일부로 승인하는데 그것은 소학교육과 여자사범교육을 포괄했다. 청 정부가 여자사범학교를 세운 목적은 “여자소학당 교습과 蒙養院(유치원) 保姆 및 가정교육을 위한 賢母 양성”에 있었다. 미래의 국민을 가르치고 가정에서 자녀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최초의 여교사들이 맡은 임무였던 것인데 이는 일본의 ‘현모양처’교육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범학교 여학생들은 남학생에 비해 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수업은 적게 들었고 재봉, 수공, 음악과 미술 등 유아교육에 필요한 과목에 많은 시간이 배정되었다. 수업연한 또한 남자보다 1년 적은 4년이며 남자와 달라 고등사범과정이 없었다. 즉 여자사범교육의 특징은 남자에 비해 질이 떨어지며 실용적 성격이 보다 강하며 나아가서는 가계 보충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교육의 전체 과정을 살펴 보면, 교육의 이념과 목적, 명시적 교육과정, 교사-학생간 상호작용, 교육구조와 교육환경 등 모든 면에서 성별화된 이중적 차별구조가 내재해 있다.
    사범교육의 목적은 가정교육과 아동교육에 있었기 때문에 졸업자는 주로 유치원이나 소학에 근무해야 했고 결혼을 하거나 출산을 하면 대부분 직장을 그만두었다. 다시 가정의 어머니로 돌아가는 것이다.
    근현대 중국여성의 ‘국가’와의 관련을 젠더의 시점에서 파악할 경우 그 관련방식은 유가의 국가이념과 현처양모주의와 같이 모성성과 여성성에 의거하여 ‘객체’적․간접적으로 국가와 관계하는 경우, 그리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주체’적으로 국가와 직접 관계하려고 하는 의식과 행동으로 나눌 수 있다. 국가가 여자사범학교를 설립한 목적은 전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한편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세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고 남성중심의 사회가 주입시킨 것에 대항하여 그것을 재규정하기도 한다. ‘국민의 어머니’에서 ‘여국민’으로 성장하는 순간 진정한 의미의 신여성이 탄생하는 것이다. 1920, 30년대를 통해 영화나 잡지 등 대중매체나 출판물을 통해 대표적인 신여성으로 떠오르는 것은 여교사였다.

    제2차년도에는 「‘國民之母’에서 ‘女國民’으로:근대 중국 여교사의 사회문화사적 고찰」(가제목)이라는 제목으로 연구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①근대 중국 여성의 직업 세계와 여교사의 탄생 ②여교사의 노동조건 ③여교사의 일상생활과 사회적 지위 ④여교사를 바라보는 시선 등이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자료의 수집과 분석을 통해 내용은 다소 조정될 수 있다. 자료가 확보되면 대표적인 여교사 3~5명을 대상으로 사례연구를 해 볼 생각이다. 대체적인 연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최초의 여교사들은 개항장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던 미션계 여학교 출신들이었다. 그러나 1907년 청 정부가 ‘여자사범학당장정’을 반포함으로써 전문성을 지닌 여교사들이 각지에서 배출되게 된다.
    소학교 여교사의 절반 이상은 여자사범학교 출신이지만 중학교까지 합치면 여교사의 비율은 5-6%에 불과하다. 교사는 여공 등 육체노동자에 비하면 여성직업군 중 대우가 좋은 편이기는 하지만 노동조건은 열악했다.소학교 여교사의 평균 근속기간은 3년 8개월이고 20세 전후의 미혼이 가장 많았다. 모성보호법도 공문에 그쳤고 남녀교사의 임금차도 심하여 3:1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여교사는 사회개혁이나 정치참여가 가장 활발했던 직업이기도 하다.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여성당원들의 직업은 소학이나 중등교사인 경우가 많다. 국민의 어머니 아닌 여국민으로 당당히 서고자 했던 그녀들의 열망과 달리 사회적으로는 늘 선망과 우려가 얽힌 대표적인 '여성적 직업'으로 인식되었다.교사와 의사, 간호사에 여성이 많았던 것은 전근대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과 관련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하듯 남녀의 분리가 엄격했기 때문에 오히려 여교사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 한글키워드
  • 여자사범학교,여성의 지위,성별차이,현모양처,하위주체,여교사,국민국가형성,국민지모,행위주체,여국민,사회진화론,여성교육론
  • 영문키워드
  • subaltern,Female Teachers,the Forrmation of Nation State,Women ad the mother of the people,a good wife and wise mother,women's state,agency,gender difference,Women as the people,Social Darwinism,the Thought on women's education,the College of Education for Women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중국에서 여성교육은 민족주의의 산물이었고 여성의 최고학부로 등장한 사범교육은 조야 모두에서 여성의 사회진출과 차세대교육의 담당자로서의 절충적 여성상을 추구한 결과였다. 연구는 젠더의 시점과 실증주의적 역사학의 방법으로 근대 이전 여성교육의 실태, 20세기초 여성교육의 제도화와 사범교육, 여자사범학교의 교과과정, 사범학교의 젠더적 특징, 여성교사상, 신여성과 여성직업 등을 분석, 고찰하였다. 시간적으로는 20세기 전반(1900-1945)이며 특히 민국초기와 남경국민정부시기에 비중이 두어졌고 공간적으로는 사범학교가 설립된 전지역을 포괄하지만 사례연구에서는 천진, 북경 등 대도시에 초점이 맞추었다.
    1차년도:구미, 일본 등지에 유학하거나 견문한 지식인들에 의해 여자교육은 救國과 强種의 불가결한 수단이라고 하는 여론이 확산하면서 전통적 여자교육관은 빠르게 변화해갔다. 특히 여자는 천성적으로 교사로서의 자질을 갖고 있다는 구미의 性差심리학이 일본을 통해 중국에 도입되면서 여자와 사범교육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 되었다. 사범학교 여학생들은 남학생에 비해 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수업은 적게 들었고 재봉, 수공, 음악과 미술 등 유아교육에 필요한 과목에 많은 시간이 배정되었다. 이는 남자사범생의 교육과정이 상급진학을 위한 준비과정인 데 반해 여자사범은 졸업 후 곧바로 아동의 조기 및 초급 교육에 복무하게 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수업을 통한 교육의 젠더화, 즉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구분이 명확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업연한 또한 남자보다 1년 적은 4년이며 남자와 달라 고등사범과정이 없었다. 즉 여자사범교육의 특징은 남자에 비해 질이 떨어지며 실용적 성격이 보다 강하며 나아가서는 가계 보충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교육의 전체 과정을 살펴 보면, 교육의 이념과 목적, 명시적 교육과정, 교사-학생간 상호작용, 교육구조와 교육환경 등 모든 면에서 성별화된 이중적 차별구조가 내재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여성교육사에서 사범교육이 차지하는 위치는 지대하다. 먼저 소학교와 함께 최초의 정규 여자교육기관이었을 뿐 아니라 여자중학이 성립하는 민국시대까지 줄곧 여자의 최고학부이자 여학생이 비율이 가장 높았던 곳이다.
    2차년도:여자사범교육 자체가 남자사범교육과 다른 계통이었던 것처럼 직업으로서 교사 또한 남성과 여성의 경험이 다르다. 본고는 젠더의 시점으로 민국시기 여교사의 발전상황 및 그 사회노동의 참여와 수준, 경제수입 등 방면에서 그들의 사회경제지위 상황을 고찰하고 나아가 그것이 초래한 다양한 사회상을 분석한다. "學而優則仕"라고 하듯 전통사회 중국에서 학문의 목표는 관료가 되는 것이었다. 존사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가르치는 직업은 관도에서 실패한 지식인들에게 남겨진 마지막 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사가 대표적인 여성직업이 되었던 것은 중국뿐 아니라 18세기 이후 구미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중국에서 가장 빠른 발전을 보인 것은 이러한 전통 관념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것이 교직, 특히 초등교육에서의 여성화를 부추겼다. 민국시기가 되면 사범교육은 여자교육의 대세가 되었고 여교사는 가장 선망 받는 직업이 되었다. 그러나 여교사는 압도적 다수가 소학교에 근무하였다. 1928년 27개 각현에 등록된 소학교원은 모두 9885명, 그 중 여자는 969명으로 약 10%였으며 1935년의 조사에 의하면 약 23%이다. 여교사의 출신과 학력은 다양했다. 사범학교 출신이 가장 많지만 심지어 소학 출신도 있었고 보수도 일률적이지 않아 최고 80원에서 단지 숙식제공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소학교 여교사의 평균 근속기간은 3년 8개월이고 20세 전후의 미혼이 가장 많았다. 다른 여성직업에 비해 교서들은 가장 활발하게 정치,사회활동에 참여했는데 이는 사범학교를 통해 훈육받은 책임의식과 국가주의의 산물일 것이다. 마치 전근대 시기 유가적 지식인의 우환의식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이는 사범교육이 결국 국가주의의 산물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교사를 향한 사회적 시선에는 존경과 함께 그녀들의 책무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가득했다. 여성이 가르치는 직업에 종사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충격이었지만 여성의 대표적 직업으로서의 여교사의 확대는 중국의 사회문화 변혁에 기여하였다.
  • 영문
  • Eduction in China has for many centuries been a basic factor in nation and society.
    But, the education of male and the education of female are differentiated sharpley.
    In this study I examined the birth and growth of women's normal school in modern China and the status and condition of female teachers during about a century from the opening of Chinese ports to foreign countries to the founding of the People' Republic of China. More specifically, this study inspected the types and conditions of female teachers's work, social recognition of their work and the social change resulting from the increased entry of women into public affairs.
    The women's education issues were regarded as the most important social problems at the close of 19th century and the early 20th century in China. Women teachers were considered a typical and elegant job, even if women teachers mean the feminization of education.
    Yet, in other parts, the feminization of education was the result of Chinese male intellectuals avoid to be teachers. Traditionally they have pursued the high-ranking official.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젠더의 시점과 실증주의적 역사학의 방법으로 근대 이전 여성교육의 실태, 20세기초 여성교육의 제도화와 사범교육, 여자사범학교의 교과과정, 사범학교의 젠더적 특징, 여성교사상, 신여성과 여성직업 등을 분석, 고찰하였다. 시간적으로는 20세기 전반(1900-1945)이며 특히 민국초기와 남경국민정부시기에 비중이 두어졌고 공간적으로는 사범학교가 설립된 전지역을 포괄하지만 사례연구에서는 천진, 북경 등 대도시에 초점이 맞추었다.
    1차년도:구미, 일본 등지에 유학하거나 견문한 지식인들에 의해 여자교육은 救國과 强種의 불가결한 수단이라고 하는 여론이 확산하면서 전통적 여자교육관은 빠르게 변화해갔다. 특히 여자는 천성적으로 교사로서의 자질을 갖고 있다는 구미의 性差심리학이 일본을 통해 중국에 도입되면서 여자와 사범교육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 되었다. 사범학교 여학생들은 남학생에 비해 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수업은 적게 들었고 재봉, 수공, 음악과 미술 등 유아교육에 필요한 과목에 많은 시간이 배정되었다. 이는 남자사범생의 교육과정이 상급진학을 위한 준비과정인 데 반해 여자사범은 졸업 후 곧바로 아동의 조기 및 초급 교육에 복무하게 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수업을 통한 교육의 젠더화, 즉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구분이 명확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업연한 또한 남자보다 1년 적은 4년이며 남자와 달라 고등사범과정이 없었다. 즉 여자사범교육의 특징은 남자에 비해 질이 떨어지며 실용적 성격이 보다 강하며 나아가서는 가계 보충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교육의 전체 과정을 살펴 보면, 교육의 이념과 목적, 명시적 교육과정, 교사-학생간 상호작용, 교육구조와 교육환경 등 모든 면에서 성별화된 이중적 차별구조가 내재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여성교육사에서 사범교육이 차지하는 위치는 지대하다. 먼저 소학교와 함께 최초의 정규 여자교육기관이었을 뿐 아니라 여자중학이 성립하는 민국시대까지 줄곧 여자의 최고학부이자 여학생이 비율이 가장 높았던 곳이다.
    2차년도:여자사범교육 자체가 남자사범교육과 다른 계통이었던 것처럼 직업으로서 교사 또한 남성과 여성의 경험이 다르다. 본고는 젠더의 시점으로 민국시기 여교사의 발전상황 및 그 사회노동의 참여와 수준, 경제수입 등 방면에서 그들의 사회경제지위 상황을 고찰하고 나아가 그것이 초래한 다양한 사회상을 분석한다. “學而優則仕”라고 하듯 전통사회 중국에서 학문의 목표는 관료가 되는 것이었다. 존사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가르치는 직업은 관도에서 실패한 지식인들에게 남겨진 마지막 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사가 대표적인 여성직업이 되었던 것은 중국뿐 아니라 18세기 이후 구미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중국에서 가장 빠른 발전을 보인 것은 이러한 전통 관념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것이 교직, 특히 초등교육에서의 여성화를 부추겼다. 민국시기가 되면 사범교육은 여자교육의 대세가 되었고 여교사는 가장 선망 받는 직업이 되었다. 그러나 여교사는 압도적 다수가 소학교에 근무하였다. 1928년 27개 각현에 등록된 소학교원은 모두 9885명, 그 중 여자는 969명으로 약 10%였으며 1935년의 조사에 의하면 약 23%이다. 여교사의 출신과 학력은 다양했다. 사범학교 출신이 가장 많지만 심지어 소학 출신도 있었고 보수도 일률적이지 않아 최고 80원에서 단지 숙식제공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소학교 여교사의 평균 근속기간은 3년 8개월이고 20세 전후의 미혼이 가장 많았다. 다른 여성직업에 비해 교서들은 가장 활발하게 정치,사회활동에 참여했는데 이는 사범학교를 통해 훈육받은 책임의식과 국가주의의 산물일 것이다. 마치 전근대 시기 유가적 지식인의 우환의식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이는 사범교육이 결국 국가주의의 산물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교사를 향한 사회적 시선에는 존경과 함께 그녀들의 책무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가득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교재
    아직까지 국내에는 중국여성교육사나 직업사를 다룬 전문 연구서나 논문이 없다. 본 연구는 사범학교 및 직업으로서의 여교사에 초점을 맞추기는 했지만 중국근대여성교육 관련 사상사와 제도사 논문을 보완하여 저서로 출판한 뒤 대학원 수업 또는 학부의 중국여성사 수업에서 활용할 계획이다.
    (2)교육과의 연계
    현재 우리나라에서 여성사를 정식 과목으로 개설하는 학과는 거의 없다. 기껏해야 몇몇 대학원에 개설된 여성학과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한국여성사나 서양여성사에 국한되어 있으며 중국과 일본의 여성사는 학생들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수요가 없어서라기보다 강의를 담당할 인력의 부족, 그리고 참고서 혹은 교재의 부족 때문이다. 여성사는 역사학의 기초 위에 여성학, 사회학 등 주로 서구에서 수입된 이론적 학문을 접목한 것인데 후자의 경우 비전공자라도 번역서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연마가 가능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한문과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에 대한 일정한 수준이 갖춰지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증과 해석이 갖추어진 여성사자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사료해독능력이 하루아침에 갖춰질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자료들을 통해 사료해독능력과 분석능력을 연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가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교재로 출판하여 여성학과의 여성사 수업에서는 물론 사학과, 역사교육과의 동아시아근현대사 수업에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인력양성이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3)학문적 기여도
    1990대 들어와 이후 한국의 중국근현대사연구가 정치사, 혁명사 중심에서 미시사, 일상사로 관심을 확대하면서 여성사 연구도 활발해지고 주제와 영역이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여성을 둘러싼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졌으며 2002년에는 중국사학회 주체로 ‘여성을 통해 본 중국사’라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렸고 2006년에는 동양사학회가 ‘아시아 역사상의 여성:경제활동을 중심으로’라 제목으로 워크샵을 개최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때를 전후해 오히려 여성사연구자가 감소하고 있다. 본 연구가 포괄하고 있는 근대 이전 여성교육의 실태, 20세기초 여성교육의 제도화와 사범교육, 여자사범학교의 교과과정, 사범학교의 젠더적 특징, 여성교사상, 신여성과 여성직업 등의 주제들은 중국여성사와 중국교육사뿐 아니라 일반사와의 접목도 가능하며 한국에서의 중국근현대사연구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4)사회적 기여도
    한국교육개발원의 ‘한국교육의 교육지표’ 등 통계자료에 의해 우리는 여교사가 승진이나 권력구조로의 진입에서 여전히 억압 받고 있음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또 이와 같은 학교의 성별 위계구조 속에 교육받는 학생들은 성별 위계질서를 문제시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여성의 지위 향상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그러나 초등학교의 초기 사회화 과정을 담당하는 일은 어머니로서 아이를 돌보는 일과 연속성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영원한 진리라기보다는 근대국가 프로젝트로 등장한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동서를 불문하고 共時性을 갖는 현상이었다. 근대 중국 여자사범교육과 여교사의 지위를 구미, 일본, 한국 등의 그것과 비교 연구함으로써 본 연구는 근대 이후 교육을 통해 오히려 강화되는 성별위계질서와 성별분업 현상의 원인을 구명함으로써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시해보려 한다.

    그러나 초등학교의 초기 사회화 과정을 담당하는 일은 어머니로서 아이를 돌보는 일과 연속성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영원한 진리라기보다는 근대국가 프로젝트로 등장한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동서를 불문하고 共時性을 갖는 현상이었다. 근대 중국 여자사범교육과 여교사의 지위를 구미, 일본, 한국 등의 그것과 비교 연구함으로써 본 연구는 근대 이후 교육을 통해 오히려 강화되는 성별위계질서와 성별분업 현상의 원인을 구명함으로써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시해
  • 색인어
  • 여자사범학교 (normal female school) 북경여자고등사범학교(Beijing Women's Higher Normal School) 여교사(female teachers) 여국민(female citizens) 국민지모 (the mothers of the nation) 性別분리 (segregation of the sexes) 母敎(maternal education) 유교전통(Confucian tradition) 여성문화( women's culture) 자매애(sisterho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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