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가 근대 경제학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시장을 맡겨야 한다는 그의 이론은 최초의 체계적인 경제 이론이었을 뿐만 아니라, 막 산업혁명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기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던 당시 ...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가 근대 경제학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시장을 맡겨야 한다는 그의 이론은 최초의 체계적인 경제 이론이었을 뿐만 아니라, 막 산업혁명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기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주장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을 제외하면, 그가 국부론을 출간하기 전 3년 동안 프랑스에 체류하면서 중농주의자 케네(François Quesnay)로부터 "자유방임주의" 경제사상을 전수받았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는 이는 별로 없다. 몽테스키외와 볼테르가 영국에 체류하면서 로크의 정치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아 프랑스에 계몽사상을 꽃피웠다면, 아담 스미스는 프랑스에서 수입한 경제 사상을 토대로 “고전경제학”을 정립했던 것이다.
따라서 현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담 스미스의 경제사상뿐만 아니라 그 원조라 할 수 있는 “중농주의”를 역사적 차원에서 심도 있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중농주의는 서양근대사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할 주제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수립에 결정적인 단계를 이루는 이른바 “이중혁명”, 즉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의 발생과 진행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혁명 전 프랑스에서 억압적이고 비효율적인 절대주의 체제의 개혁을 요구하는 일군의 엘리트 집단이 형성되었을 때, 중농주의는 계몽사상과 함께 그들의 이론적 무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프랑스혁명의 기원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계몽사상에만 주목했지, 중농주의는 경제 문제에 국한된 개혁 방안의 하나로 취급하면서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단지 경제학계에서 극소수의 연구자들만이 관심을 보였을 뿐이다. 이러한 연구의 부재는 심각한 학문적 공백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유용한 정보와 교훈을 줄 수 있는 역사적 선례를 모른 채 하며 내팽겨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본 연구는, 첫째, 1750년대 이후 나타난 중농주의의 이념이 무엇이며, 당대 유럽을 풍미했던 계몽사상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그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 어떤 정책적 수단들을 고안해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케네를 비롯해서 미라보,메르시에, 구르네, 르트로느, 튀르고, 뒤퐁 드 느무르 등 중농주의자들의 저작을 분석․고찰할 것이다.
둘째, 그들의 경제 이념과 정책이 구체제의 절대왕정에 어떻게 반영되고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라베르디, 튀르고, 칼론 등에 의해서 추진되었던 일련의 개혁 조치들을 두루 고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만도 별도의 연구가 필요한 방대한 주제이기 때문에, 그 개혁 조치들의 구체적인 내용과 진행 과정을 상세하게 고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차후의 연구 과제로 넘어가는 징검다리로서, 절대왕정이 고수했던 중상주의와 1750년대 새로이 등장한 중농주의가 마주쳤던 주요 대립 지점들을 파악하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중농주의가 추진하고자 했던 개혁 조치들이 절대왕정의 운명에 어떤 작용을 가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프랑스혁명의 진로를 결정했는지 추적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