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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동북지방 부족민 연구: 19-20세기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신진연구자지원사업& #40;인문사회& #41;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09-332-A00015
선정년도 2009 년
연구기간 1 년 (2009년 07월 01일 ~ 2010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이옥순
연구수행기관 서강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이 연구의 목표는 중국, 미얀마, 방글라데시, 부탄과 국경을 맞대는 인도 동북지방 소수부족의 19-20세기의 궤적을 추적하여 ‘아시아의 잠재적 발칸’으로 여겨질 만큼 많은 분쟁이 지속되는 이 지역에서 ‘다수파-소수파 신드롬’의 근원과 현상을 규명하고 그 해결방안, 곧 다원적인 인도의 통합성과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인도에서 소수부족의 문제는 논쟁적이다. 인도 헌법은 인도의 다원적 특성을 고려하여 소수부족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 타자성을 인정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대우하고 그 정치적 힘을 고양하기 위한 소수파 정책은 동북지방에서 문제점을 야기한다.
    영토의 4분의 3이 산악지대인 동북지방에는 소수부족민이 많다. 부족민과 비(非)부족민의 구분은 인도 주류 문화의 수용여부로 판단한다. 1990년대 ‘인도인 프로젝트’는 인도에 635개 부족집단이 있고 그 중 213개 부족집단이 동북지방에 살고 있음을 알려준다. 2001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부족민의 50%가 이 지방에 거주하고 있다.
    동북지방에는 연방정부의 특별한 혜택을 받는 지정부족(ST)도 많다. 영국에서 독립한 뒤 인도 정부는 사회적으로 낙후한 집단의 증진을 위해 교육기관의 입학과 관직의 선발에 일정한 비율을 지정카스트(SC)와 지정부족에게 할당하는 지정제도를 도입했는데, 2001년 인구센서스는 인도 인구의 약 8%가 지정부족이고 그 중 약 30%가 동북지방에 있다고 밝혔다.
    동북지방은 지난 60여 년간 각 부족의 고유성과 아이덴티티를 내세운 분리주의운동이 지속되었다. 그 결과 1947년 아삼 주 1개이던 동북지방은 6개 주가 분리되어 7개 주가 되었다. 주 경계 안에서도 부족 간의 갈등은 지속된다. 1992-2001년에 정치적 분쟁으로 사망한 주민은 12,181명에 달했다. 이러한 현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이 연구는 이 질문의 답을 따라간다.
    오늘날 인도 동북지방은 Arunachal Pradesh, Assam, Meghalaya, Manipur, Nagaland, Tripura, Mizoram의 7개 주를 지칭한다. 주경계의 98%가 중국, 미얀마, 방글라데시, 부탄과 국경을 이루는 총 면적 255,088평방킬로미터(인도 영토의 7.7%)에는 38,495,089명이 거주하여 인도 총인구의 3.74%를 차지한다. 그러나 인구나 영토의 크기로 지역연구의 필요성을 판단할 순 없다.
    영국이 19세기에 자의적으로 ‘구성한’ 인도의 동북지방은 오늘날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변방이지만 인도-아시아와 몽골-아시아라는 두 개의 대(大)전통이 만나는 중간지대로서의 전략적 중요성이 높다. 특히 연전에 중국-버마-인도를 연결하는 도로의 복구사업이 시작되어 이 지역이 중국-인도 간, 주변국과 동남아 간의 교역과 교류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인종의 도가니인 동북지방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과 상생의 가능성을 테스트할 시금석과 같은 공간이다. 동북지방의 주민들은 인도 대륙의 인도-아리안계와 드라비다어를 쓰는 인도인과는 달라서 버마인/티베트인/중국인이나 타이와 비슷하다. 언어도 티베트-버마, 몽골-크메르계에 속한다. 정치적-행정적으로는 인도인이나 인종적-문화적으로는 몽골계인 이들에 관한 연구는 탈경계의 시대에 필요하다.
    영국의 식민정부와 독립한 뒤 인도 정부는 정치적, 군사적으로 민감한 변방의 특성을 고려하여 고립과 배제의 이념에 근거한 정책을 동북지방에 시행하였으나 부족민을 사회적 주변인으로 만들면서 적대감과 상호파괴를 야기하였다. 곧 부족민은 ‘그들과 다른 우리’를 강조하며 분리주의운동을 벌이며 부족문화의 생존이 포용정책에 근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동안 관련분야에서 변방 연구는 드물었다. 19-20세기 동북지방 부족민의 정치적 역정을 추적하며 국가의 통합이 변방과 소수파의 정체성을 인정하는데 달렸음을 증명할 본 연구는 이 지역이 주변국가와 동아시아를 연계하는 교역의 허브가 될 가능성이 대두된 즈음에 부족민이 국가의 경계를 초월한 지역개발의 동력이 될 가능성을 타진하여 미답인 지역연구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 기대효과
  •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 국내 연구 성과는 전무하다. 인도에서는 연구 축적이 어느 정도 있으나 대개 정치적인 견지에서 현상적인 분쟁을 다루었고 역사적인 접근은 드물었다. 사실 동북지방의 소수민족-부족민의 문제는 인도 정부와 동북지방의 지방정부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안이라 내국인도 자유롭게 출입하며 연구를 진행할 수 있지 않다. 더욱이 외국의 학자들은 물리적 접근이 어려워 학문의 대상으로 삼기가 쉽지 않다. 본 연구자도 천신만고 끝에 겨우 한 번을 다녀왔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본 연구는 이러한 물리적, 정치적 한계가 주는 연구의 제한과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는 국내학계의 선도적 연구라는 점과 인도와 중국이 만나는 이 지역의 연구가 장기적인 견지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국가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본 연구의 부수적인 결과는 강한 국가권력의 통제에 의해 단절된 변방 부족민의 문화의 생존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보편화되는 세상에서 나름의 정체성을 을 유지하는 변방 부족민의 연구는 학문의 본질적인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소수민족에 대한 위로부터의 통치방식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통해 인도가 선택한 사회통합의 방식과 정책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역에 진출한 기독교의 실상을 다른 각도에서 확인하는 효과도 있다. 아삼과 트리푸라 주를 제외한 5개 주는 기독교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동북지방 주민에게 기독교는 원시적인 신앙과 융합되어 많은 변형을 보이지만, 주류를 이루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에 대한 반발의 상징으로 발전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리나라 기독교계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 지역에 대한 연구는 사람들의 이동과 교류가 많아진 요즘 문명의 충돌을 생각하는 자료로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 결과물은 역사학적인 측면에서 이뤄진 인도에 대한 실증연구인 동시에 사회과학적 지역연구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지구촌에서 문명의 충돌과 물리적 분쟁의 가능성은 역사와 인문환경에 내포된다는 전제를 가지고 그 본질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 연구가 분쟁의 가능성을 축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부족민의 공존과 문화적 생존의 궤적은 국제정치나 국제 교류/교역과 관련된 종사자들에게 상생의 메시지나 방법론으로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연구의 주요 내용은 다음의 항목으로 나눌 수 있다.
    1) 영국 식민주의와 변경지대의 구성(가제)
    2) 인도 정부의 동북지방 마이너리티 정책(가제)
    3) 동북지방 부족민의 반응(가제)
    1)항은 현재의 동북지방의 상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19세기 영국의 통치방식에 대해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동북지방의 구성과 거기에 사는 소수민족-부족민에 정책과 제도를 살피는 동시에 이 지역에 대한 국가권력의 시각에 주목한다.
    2)항은 1947년 독립한 이후 인도 정부가 동북지방에 대한 고립과 배제정책을 지속하는 과정을 사회학적으로 탐색한다. 인도 정부는 이 정책이 부족의 정체성과 문화를 보존하는 가장 효과적인 기제라고 주장했으나 결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3)항은 정부의 동북지방에 대한 정책에 대한 부족민의 반응이다. 가장 중요한 반응은 아삼 1개 주에서 7개의 주가 분화한 것이다. 이 장에서는 한 부족의 성공이 다른 부족에게 분리주의운동을 고무하고 정치적 상상력을 제공하는 복잡한 의식을 따라간다. 역사적 접근과 사회학적 접근을 절충한다.
    1) 영국 식민주의와 동북지방의 구성
    동북지방이 인도 역사에 이름을 올린 것은 19세기 초였다. 버마에서 이주한 샨 부족(Shan)이 브라마푸트라 강 유역에 세운 아홈(Ahom)왕국이 버마의 침입을 받자 캘커타에서 육로로 동방의 진출을 모색하던 영국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영국은 버마를 격퇴하고 그 대가로 아홈 왕국의 일부를 할양받으면서 이 지역에 제국의 근거지를 마련했다.
    1873년에 제정되어 2년 뒤에 실시된 영국의 벵골동부국경법안은 부족민을 차별한 악법이었다. 미국의 인디언보호구역처럼 내선(Inner Line)을 규정하여 부족민을 그 안의 영토에 가두었다. 내선 안의 부족민은 ‘자기 영토’에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나 영국 정부가 규정한 영역을 넘어서 밖으로 나올 순 없었다. 다른 인도인(부족이 아닌)과 접촉할 수도 없었다.
    2) 인도 정부의 동북지방 마이너리티 정책
    지난 60여 년간 동북지방에 대한 인도 정부의 정책은 크게 4가지의 패러다임에 근거한다. 문화적 패러다임은 다양한 문화를 보존해야 한다는데 근거한다. 멸종할 위험성이 높은 “때 묻지 않은 부족을 경제발전이라는 ‘나쁜 늑대’로부터 보호하여 박물관에 보존해야 한다는 견지이다. 전략적 패러다임은 동남아와 동아시아의 중간지대로서의 이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인지하고, 인도의 안전보장을 담보하는 후론티어로서 여기는 것이다. 1970년대에 등장한 정치적 패러다임은 동북지방을 다원적 의회민주주의의 구성원으로, 정치적 대표로서 이해하는 입장으로 ‘문화적으로 정의된 지방’에 자율성을 준다는 의미이다. 개발 패러다임은 개발정책과 많은 자금을 지역에 투입하여 천연자원을 개발하고 인프라를 증진하여 지역에 만연한 불만과 분쟁을 축소하고 국가 통합을 기하려는 입장이다.
    3) 동북지방 부족민의 반응
    가장 주목할 반응은 아삼 1개 주에서 7개의 주로 분화한 것이다. 1963년, 나가 족이 먼저 나갈랜드라는 주를 구성하여 독자적 정체성을 추구하였다. 1970년, 마니푸르와 트리푸라가 각기 주정부를 구성하여 스스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기 시작하였고, 1972년에는 카시 족과 자인티아 족의 땅 메갈라야가 아삼 주에서 분리되었다. 1987년에는 연방직할령 아르나찰과 미조람이 독자적 주를 구성하였다.
    문제는 한 부족의 성공이 다른 부족에게 반정부운동의 원인으로 작동되고 정치적 상상력을 제공하는 점이다. 나가와 미조 부족이 주를 구성하자 아삼 주의 보도(Bodo) 족이 힌두문화에 물든 아삼 인(人)을 반대하는 운동을 펴며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소수부족의 분리운동은 점점 늘어가며 폭력적이다. 이들 지역에는 인구 10명 당 1명의 무장군인이 배치된 실정이다. 1992년 정치적 분쟁으로 인한 총 사망자는 492명(민간인 257명 포함)이었으나 2001년에는 1,380명(민간인 사망자 662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희생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 부족민의 비율이 낮은 아삼과 트리푸라인 것은 배제정책의 문제점을 시사한다.
  • 한글키워드
  • 소수부족,다수파-소수파 신드롬,지정부족,분리주의운동,변경지대,아삼,마니푸르,부족민,인도 동북지방,인도,인도-중국,보도 부족,메이테 부족,미조 부족,나가 부족,무슬림,힌두교도,이주민,부족보호구역,벵골동부국경법안,벵골,미조람,트리푸라,나갈랜드,메갈라야,아루나찰 프라데시,영국 식민주의,지정제도,마이너리티,19-20세기
  • 영문키워드
  • ST,Bengal,Tripura,Foreigner,Muslim,Hindu,Inner Lines,Nagas,Mizos,Meitais,Bodos,India-China,Non-tribe,Tribes,Northeast India,19-20th Century,Arunachal Pradesh,Assam,Meghalaya,Manipur,Nagaland,Mizoram,Reservation System,Bengal Eastern Frontier Regulation,Scheduled Tribes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인도의 변방인 동북지방에 거주하는 부족민의 19-20세기 역사를 추적하여 현재까지 많은 갈등과 분쟁이 지속되는 이 지역에서 부족민/비부족민의 갈등의 역사적 기원과 오늘날에 이르는 20세기 후반의 현상을 규명한다. 즉, 동북지방에서 부족민의 탄생하고 변화된 과정을 위로부터의 관점- 영국의 식민정부와 독립 후 인도 정부의 정책-과 아래로부터의 관점-동북지방 여러 부족민의 다양한 반응-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중국과 미얀마, 부탄, 방글라데시 등 여러 국가와의 접경지대로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중요한 동북지방의 지정학적 위치는 영국의 식민통치와 독립 이후 ‘델리’에 있는 인도 정부로 하여금 그곳에 사는 주민을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다른, 이른바 부족민으로 규정하고 ‘특별관리’대상으로 만들어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오랜 갈등과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 동북지방의 주민들도 독립 후에 변방과 마이너리티라는 이중의 소수자로서 중앙정부가 주는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도 ‘인도에 있는 외국인’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을 내세우며 ‘바라는 바’를 정부로부터 얻어내는 방식을 답습해왔다. 이 논문은 2세기에 걸친 동북지방 부족민의 정치적 역정의 탐구를 통해 특정한 문화와 지역의 생존이 차이를 강조하고 배제하기보다 포용정책에 근거해야함을 사례로 알려준다.
  • 영문
  • This paper studies the origin and development of the conflict of non-tribes versus the tribes in the Northeast of India, where the region come to be characterized by ethnopolitical insurgencies, through tracing the tribal history of the region. The study analyses, in other words, the creations and changes of the tribes in the 19-20 Century both from the view from above- the policies of the governments and from the view from below- the responses of the tribals. The Delhi Raj, either the British Colonial government or the Indian government after the independence, marginalized the people, creating specially controlled areas, for the administrative convenience with its geopolitical and strategically importance of the region, The responses of the tribes to the policies of the governments were double-minded in that accepting and utilizing the nomenclature called Scheduled Tribes given by the government at the same time proclaiming and practicing their identity as non-Indians. By examining the political process of the tribes in the Northeast this paper concludes that a survival of any culture depends on policies of tolerance rather than of exclusion or emphasis on difference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인도 동북지방 부족민의 19-20세기 역사를 추적하여 많은 분쟁이 지속되는 이 지역에서 부족민과 비부족민 간의 갈등의 기원과 현상을 역사적으로 규명한다. 곧, 동북지방 부족민의 탄생과 변화를 위로부터의 관점- 정부의 정책과 아래로부터의 관점- 동북지방 부족민의 대응-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동북지방의 지정학적 위치는 영국의 식민통치와 독립 이후 ‘델리’에 있는 인도 정부의 통치정책을 그곳 주민을 부족민으로 규정하여 ‘특별관리’대상으로 만들었다. 동북지방 주민들은 독립 후 변방과 마이너리티라는 이중의 소수자로서 중앙정부가 주는 혜택을 누리면서도 ‘인도에 있는 외국인’으로 자기정체성을 구성하고 무장투쟁을 통해 ‘바라는 바’를 얻는 방식을 답습해왔다. 2세기에 걸친 동북지방 부족민의 정치적 역정을 탐구한 본 연구는 특정한 문화와 지역의 생존이 차이의 강조나 배제보다 포용정책에 근거해야함을 사례로 알려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미 학술지에 출간된 본 연구 결과물은 역사학적인 측면에서 이뤄진 인도 동북지방에 대한 실증연구로 인도 지역연구의 한 기반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구촌에서 분쟁의 가능성은 역사와 인문환경에 내포된다는 전제를 가지고 그 본질에 대한 분석을 통한 동북지방 부족민에 대한 이 연구는 분쟁의 가능성을 축소하는데 참고할 수 있는 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상이한 부족민의 문화적 생존의 궤적을 다룬 본 연구는 국제정치나 국제교류, 교역과 관련된 종사자들에게도 상생의 필요성과 공존의 메시지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인도 동북지방 소수부족에 대한 국가 통치방식의 구체적 정보를 통해 인도가 선택한 사회통합의 방식과 인도의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로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강한 국가권력의 통제에 의해 단절된 변방 부족민의 문화의 생존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도 의미를 둘 수 있다. 이동과 소통이 빈번하고 글로벌화와 문화의 동질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오늘날 특정한 지역과 계층의 문화를 보존하는 방안에 참고할 수 있는 것이다.
    동북지방에 현존하는 기독교의 실상도 확인할 수 있다. 아삼과 트리푸라 주를 제외한 동북지방 5개 주는 기독교도가 압도적으로 많고, 동북지방 부족민에게 기독교는 원시적인 신앙과 융합되어 많은 변형을 보이지만, 주류를 이루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에 대한 반발의 상징으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 기독교계도 이 지역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므로 그 참고자료로도 이용이 가능할 것이다.
  • 색인어
  • 인도 동북지방, 부족민, 영국 식민주의, 19-20세기, 지정부족, 나갈랜드, 아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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