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전지구적 이주, 이동, 교류 상황을 염두에 둔 이동, 교류라는 관점은 문학연구에서의 논점으로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다고 본다. 텍스트 비평을 통해서 현재 상황에 대해서 언급할 수 있는 인식론적 토대 형성에 관여한다. 이동, 교류는 근대의 산물이다. 이와 같 ...
작금의 전지구적 이주, 이동, 교류 상황을 염두에 둔 이동, 교류라는 관점은 문학연구에서의 논점으로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다고 본다. 텍스트 비평을 통해서 현재 상황에 대해서 언급할 수 있는 인식론적 토대 형성에 관여한다. 이동, 교류는 근대의 산물이다. 이와 같은 이동, 교류를 주도 한 것은 남성이었고, 따라서 근대가 ‘남성’들의 세계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겠다.
그런데 남성들의 이동, 교류가 만들어낸 근대적 담론들은 근대의 세계관을 지배하는 행동 원리의 지침이 되었다. 오가이가 독일에서 낭만적인 시정을 느낀 것이나, 소세키가 런던에서 문명에 대한 쇼크를 받고 일본 근대 지식인의 자아를 그려냈다는 이야기들이 바로 그것이다. 수많은 외국체험 중에서도 유독 소세키, 오가이가 신화화된 문학사 ‘서사’에 대해서 한번쯤 의심해 볼 여지도 있을 것이다. 소세키와 오가이는 근대 초 지식인들이 공유하던 한문학의 깊은 교양을 쌓고 있었지만, 소세키와 오가이가 일본근대문학사에서 동시에 거론되는 이유 중에 하나로 유럽의 ‘제국’과 이동, 교류를 통한 교섭이 가능한 위치에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일본근대문학 담론이 ‘제국’과의 이동, 교류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문학사 기술 태도는 의심없이 수용될 수 있을까? 이들의 외국 체험 신화로 인하여 다양하고 개별적인 외국 체험의 예가 억압되거나 배제되는 것은 아닐까?
이와 같은 의문에서 출발하여 본 연구에서는 일본근대문학사에서 잘 드러나지 않던 한 여성 개인의 이동, 교류에 주목하여 중심 서사와 비교함으로써 남성들이 전제하는 근대와는 다른 양상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가 미야모토 유리코(宮本百合子, 1899-1951) 문학을 통해서 일본근대문학의 이동, 교류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미야모토 유리코는 관비 유학생이던 위의 두 대표적인 일본근대문학자와는 달리 부자인 아버지를 따라서 미국 여행을 하였다. 또 동성애적 관계가 있었다고도 일컬어지는 여성 친구와 러시아에서 장기 체류하였다. 이와 같은 유리코의 체험은 ‘개인적 체험’으로써 개인 작가 담론에 한정되어 등한시되었다. 그런데 작가 자신이 미국과 소련, 서유럽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생활과 교류를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학 속에 제국을 넘나드는 여성을 등장시키고 있었다는 점은 간과되어왔다.
이 연구에서는 그의 삼부작이라 불리는 노부코(伸子)(1924), 두 개의 정원(二つの庭)(1947), 도표(道標)(1947)가 일본-미국-소련-유럽-일본의 각 제국을 이동, 교류하는 장편 드라마였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여기서는 제국을 국가 지배 형태의 욕망적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유럽의 각 제국과 냉전체제를 주도한 두 강대‘제국’ 아메리카 합중국과 소비에트 연방을 염두에 두고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연구는 미야모토 유리코 문학의 글쓰기 전략을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관점에만 머물 경우, 놓치기 쉬운 문제들을 ‘제국’들과의 이동, 교류하는 점에 착안하여 고찰함으로써, 남성들의 이동, 교류와는 다른 경로를 확인하였다.
이른바 페미니즘이나 사회주의 등의 거대담론이 아니라 실제로 제국시대 일본 여성이 이동, 교류의 결과로서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 남성지식인의 담론을 적용하면서 그 차이와 공통항을 매개로 미야모토 문학을 정의한다면, 이는 거대 담론 연구를 넘어선 논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