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연구 검토 및 제 1단계 연구방향
본 연구소의 연구사업 제 1단계는 기존연구의 성향과 한계성에 대한 검토로부터 출발한다. 1989년 동유럽 체제전환 이전인 냉전기에 이루어진 연구는 '정치적' 접근이 대세였다. '동유럽'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념에 따라 구분된 ...
기존연구 검토 및 제 1단계 연구방향
본 연구소의 연구사업 제 1단계는 기존연구의 성향과 한계성에 대한 검토로부터 출발한다. 1989년 동유럽 체제전환 이전인 냉전기에 이루어진 연구는 '정치적' 접근이 대세였다. '동유럽'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념에 따라 구분된 진영으로서 정치적 성격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접근이란 '국가 중심적 접근'이기도 하였다. 이 당시 대표적 연구서들의 내용구성도 하나같이 단위국가별로 되어 있다(Mellor, 1975; Walters, 1988). 체제전환 이후 출간된 개정판의 경우에도, 비록 시장경제 작동, 내셔널리즘 부활 또는 폭력조직 출현 등의 새로운 주제들이 추가되어 있으나, 기본적으로 국가 중심적 접근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Crampton, 1994). 또 한 가지 특징은 국가가 주도하는 중앙통제식 계획경제이므로 체제의 비효율성과 저조한 생산성을 부각시키는 연구가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였고, 1989년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기도 하였다(Beyme, 1975; Hartmann, 1983; G. Swain & N. Swain, 1993).
냉전기의 연구서들은 국가단위로 분석을 전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간범위를 양차대전 사이 20년과 함께, 오랫동안 국민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주변 열강에 예속상태로 있었던 암울한 역사적 전통을 포함시켜서 사회주의 체제로 이어지는 부정적인 정치문화의 장기지속성을 그려내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서방학자의 시각에 따르면, 연구서의 제목에도 드러나듯이 동유럽은 (서)유럽이 아닌 '다른 유럽'이었다(Walters, 1988). 이러한 서술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탈냉전기의 대중적인 동유럽 입문서에도 계속되는 양상이다(Roskin, 1994).
이러한 관점은, 어느 정도 역사적 근거에 입각한 것이기도 하지만, 서방인들이 동유럽 역사와 문화 전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연구서들도 반영하거나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서유럽인들은 'East'이라는 용어를 '열등, 미신, 위험, 적대, 낙후, 부패, 불확실, 여성성' 등으로, 반면 'West'라는 용어를 '우월, 과학, 안전, 상냥, 근대성, 미덕, 합리적 이성, 남성성' 등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는 측면이다(Lemberg, 1993; Jahn, 1990; Hupchick, 1994). 이러한 내용은 연구자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서유럽과 동유럽의 관계를 중심 대 주변, 주체 대 객체, 긍정 대 부정의 공식으로 파악하는 일반적 인식을 확대재생산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한편 최근 연구에서는 국가단위보다는 남동유럽이나 중·동유럽 같은 지역을 단위로 하여, 비정치적인 영역의 전문적 주제라고 할 교육제도(Bassler, 2005), 복지정책(Inglot, 2008), 글로벌리제이션(Drahokoupil, 2008), 기술낙후 문제(Kovacs, 1995) 등으로 특수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러나 주제의 참신성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대한 종합적 이해의 욕구를 수용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내의 동유럽지역 연구는 학계의 자발적 필요보다 정부의 공산권 정보수집 및 대외정책의 차원에서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회과학 분야에서 이를 연구하는 학회가 전무하였고 동유럽연구가 별도의 특화된 영역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1980년대 초까지 이 분야의 기초지식 내지는 언어, 역사, 지리, 사회 등 지역연구의 선행조건이 전혀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산권에 관심을 갖는 사회과학자들이 비교정치학의 틀 속에서 기존 정치학의 방법을 동원하여 산출한 단순 연구물이 대다수였다. 이러한 연구방법론은 동유럽의 체제변혁 이후에는 거의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서, 이제 비교대상도 오히려 남미 등의 타지역 민주화과정 같은 것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이규영, 1996; 하용출, 1998).
이러한 인식속에서 본 연구소는 동유럽지역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을 극복하고, 역동적지역 지역단위로서 통합 유럽의 새로운 생장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동유럽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지식을 생산, 유통, 활용하는 학문적 허브의 역할을 하고자한다. 이러한 방향성의 정립하에 동유럽지역 전반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토대가 될 수 있는 기본 연구를 시발점으로 하여 점차적으로 연구의 주제가 발전적 지향성을 가질 수 있도록 연구 내용을 디자인 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소의 연구내용은는 1단계에서 기본과 토대를 구축하는 역사적 성격의 연구가 중심을 이루고, 2단계에서는 1단계 연구주제가 심화, 확대되어 보다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고, 3단계에서는 이러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세계적 연구소의 기준에 적합한 다학제적, 국제적 연구주제로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