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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象數易學의 전개양상과 그 현재적 의미 연구 - 朱熹 <易學啓蒙>의 수용과 재해석을 중심으로-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_학술연구교수&amp; #40;인문사회&amp; #41;
연구과제번호 2009-353-A00021
선정년도 2009 년
연구기간 3 년 (2009년 07월 01일 ~ 2012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이선경
연구수행기관 성신여자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이 연구는 조선의 상수역학이 어떠한 문제의식 속에서 수용되어, 그 시대의 사상적 문제들과 조응하면서 정립되고 특색을 형성해 가는가를 고찰하고 그것이 갖는 현재적 의미와 전망을 연구해 보려는 것이다.
    본 연구는 전통시대에 있어서 학술이론과 생활문화, 사회제도 및 국가운영의 저변을 관통하는 중심축이었던 역학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어떠한 위상을 지니며, 어떠한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한다. 본 연구는 전통시대의 경학정신을 현대와 소통시킬 수 있는 효율적 매체가 상수역학이라고 판단한다. 이에 조선시대 상수역학의 필수원전인 주희의 <역학계몽>을 텍스트로 하여, 그것이 어떻게 수용되고 재해석되어갔는지를 연구함으로써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또한 <역학계몽>의 수용과 이해의 변천을 고찰하는 것은 한국상수역학의 자기정립과정을 살펴보는 것과 같다. 본 연구는 <역학계몽>에 대한 조선유학자들의 연구저작물 전반을 대상으로 하고, 그 외 상수역학관련 저작물들을 참고하여, 조선시대 상수역학사의 흐름과 맥락을 연구함으로써 향후 한국역학사를 엮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 기대효과
  • 1. 후속연구 및 학문적 담론의 활성화 : 조선후기 유학자들의 자연과학적 인식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조명되기 시작한 상수학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은 이제 조선의 상수역학에 대해 보다 다양하고 깊은 논의를 필요로 하는 시점에 있으며, 본 연구는 이러한 요구에 십분 부응하여 많은 후속연구 및 학문적 담론을 파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 한국역학연구의 역량축적 및 교육현장에로의 환류: 한국철학사상연구분야 가운데 한국역학은 기타 성리학이나, 실학, 양명학, 경학 등의 연구에 비하여, 현저하게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역학가운데에서도 상수역학에 관한 연구는 더욱 부족하다. 본 연구는 한국역학분야 연구의 기반을 다지는데 일조를 하는 한편, 대학의 학부와 대학원과정의 역학강좌로 곧바로 환류될 수 있을 것이다.

    3. 국제역학대회 발표를 통한 한국역학의 위상제고: 근래 동아시아 학술계는 날이 갈수록 국제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공동의 문화기반을 지닌 동아시아의 경우, 학술의 공통적 바탕위에 자국학술의 발전이 더욱 요청된다. 한국의 동양철학연구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족한 역학분야의 연구를 활성화하고, 그 결과를 국제학술대회를 통하여 발표, 투고함으로써 한국역학의 위상을 쌓아가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4. 교육적 기대효과 및 사회적 기여도: 교육대상자들의 상수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 역학에 대한 전문연구자들의 접근태도와 사회일반인의 접근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에 대부분의 역학수강생들이 갖기 쉬운 상수역학은 점술이라는 통념에 대하여, 상수역학은 자연과 세계에 대한 이론적 탐색이며, 의리학적 실천을 동반하는 것임을 인식시킴으로써 역학에 접근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조정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더 나아가 역학에 대한 사회일반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연구내용>: 조선 상수역학이론의 변천을 연구하여 한국상수역학사의 흐름과 특징을 규명함.
    <연구범위>: 조선유학자들의 <역학계몽>연구저작물 전반
    <연구방법>: 조선상수역학사의 전개를 주희상수역학의 수용・이해, 자기정립, 현실에의 대응이라는 3단계 가설을 적용하여 연구함.

    본 연구는 조선시대 상수역학의 전개를 크게 3단계로 분류한다. 조선전기가 주희상수학의 수용과 이해의 시기라면, 조선후기는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의 상수역학이 자기화하고, 독자적 특징을 형성하며, 그렇게 정립된 조선의 상수역학이 시대정신과 조응하며 응용되어 간다는 것이다. 조선전기의 <역학계몽>관련저술이 6편 남짓인데 비하여, 17-18세기에는 20여편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19세기에는 8-9편정도로 정리된다는 점에서도 이러한 가설은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설아래 1년차에는 조선전기 <역학계몽>관련 저작물을, 2년차에는 17-18세기 관련저작물을, 3년차에는 19세기 관련자료를 검토분석함으로써 한국상수역학의 흐름과 특징을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표이자 내용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추진전략으로 먼저 조선유학자들의 <역학계몽>연구저작물을 검토하여 해제를 작성하고, 상수역학이 그 시대정신 및 당대의 이학적 주제와 어떻게 조응하는지, 또 <역학계몽>의 서법(筮法)에 대한 이해는 어떻게 변동하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축으로 하여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1년차 연구의 주제는 '조선전기 주희 상수역학의 수용과 이해의 양상'이다. 연구개시와 동시에 먼저 국내자료와 국외자료를 수집하고 연구 대상물을 선정하는 작업을 실시한다. 국외자료의 경우 <역학계몽>에 대한 후대의 연구서 중 사상사적 영향이 뚜렷한 것을 중심으로 하고, 국내원전자료의 경우 조선유학자들의 <역학계몽>연구저작물 전반을 다루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년차에는 먼저 <역학계몽>이 중국사상사에 끼친 영향을 고찰하기 위하여, 전반기에는 중국 후대연구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1편의 논문을 작성하고, 후반기에는 조선전기<역학계몽>연구저작물을 검토하여 해제를 정리하고, 위에 제시한 연구방법에 의거, 연구를 진행하여 관련논문 1편을 작성함을 목표로 한다.
    2년차 연구주제는 '17-18세기 조선상수역학의 자기정립과 그 양상'이다.
    17-18세기는 주자학의 수용과 이해를 넘어서서 한국유학이 성숙하고 자기화한 시기이며, 동시에 사회변동과 함께 사상계의 흐름도 다변화되는 시기이다. 이시기에는 <역학계몽>관련 연구저작물도 그 양과 질에서 매우 풍부해짐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아래의 연구자료들은 한국역학의 특색을 고찰하는데 중요한 대상이 될 것이다.
    2차년도의 연구는, 이시기의 조선유학자들의 <역학계몽>연구가 조선전기의 경우와 어떻게 차별화되는가에 주목하고, 저작물의 개별적 특성은 무엇이며, 학파별 특색을 형성하는가 등의 문제에 유의하여 진행될 것이다.
    3년차 연구주제는 '18-19세기 상수역학은 현실과 어떻게 대응하였는가?'이다. 18세기-19세기로 이어지는 <역학계몽>연구의 사상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차이가 무엇인지 유의하여 살펴보고, 18-19세기 시대정신과 사상사적 과제들에 <역학계몽>연구가 어떻게 조응하는지 고찰한다. 또한 3차년도 전반기에 <역학계몽>연구저작물 검토와 해제를 완료하고, 후반기에는 전체연구를 총결하는 이론적 탐구에 주력하도록 한다. 연구초기에 설정한 가설의 정합성 여부를 검토하고 보완하여 한국상수역학사를 통한 작은 경학사를 구성하는 것이 이 연구의 최고목표가 될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연구가 한국학계와 한국사회에 어떠한 의미와 전망을 던질 수 있을 것인지를 모색할 것이다.
  • 한글키워드
  • 한유여(韓汝愈),한원진(韓元震),신후담(愼後聃),김교행(金敎行),역학계몽(易學啓蒙),이항로(李恒老),유휘문(柳徽文),배상열(裵相說),홍대용(洪大容),김구주(金龜柱),황윤석(黃胤錫),서명응(徐命膺),김근행(金謹行),상수학(象數學),상수역학(象數易學),최항(崔恒),소옹(邵雍),의리역(義理易),계몽(啓蒙),한국역학(韓國易學),주희(朱熹),유학(儒學),김해(金楷),정경세(鄭經世),이황(李滉),김굉필(金宏弼),역(易),송능상(宋能相)
  • 영문키워드
  • Yi Xue Qi Meng,ZHu Xi,Confucianism,Qi,Supreme Ultimate,Yin-Yang,Tai Ji,Shao Yong,YI Qing,Change,Image and number theory,Wu Xing,Five Agents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조선시대 상수역학의 필수원전인 주희의 『역학계몽』을 텍스트로 하여, 그것이 어떻게 수용되고 재해석되어 갔는지를 연구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유학자들의 『역학계몽』에 대한 저작물 전반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퇴계학파와 기호학파로 대별하여, 조선시대 『역학계몽』연구의 흐름과 특성을 고찰하였다.
    먼저 이황(李滉)의 『계몽전의(啓蒙傳疑)』는 조선의 『역학계몽』관련 저작 가운데 최초의 본격적 연구서로서 주희의 『역학계몽』보다 더 개방적인 상수학 저술이다. 이황은 주희가 부정한 한대역학의 점치는 법들을 모두 수용하고, 도교역학의 여러 문헌들을 활용한다. 그러나 이렇게 철저한 상수적 설명방식이 그의 성리학 이론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인사(人事)의 질서가 자연의 필연적 질서에 부합하기를 추구하였던 성리학자의 입장과 상수학을 통하여 자연의 법칙적 질서를 드러내기를 추구하였다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이는 후대 퇴계학파의『역학계몽』연구에서 상수와 의리를 밀착하는 방향으로 드러난다.
    퇴계학파의 『역학계몽』연구는 『계몽전의』를 중심으로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해가는 연구사의 축적을 통해 『역학계몽』이해의 완전성을 추구해 간다. 이는 퇴계학파 『역학계몽』연구의 특징이라 할 것이다. 다만 후대 퇴계학파의 『역학계몽』연구에서는 이학적(理學的) 관심이 뚜렷한 경우와, 이학적(理學的) 관심과는 별도로 도수적(度數的) 연구에 치중한 경우로 나뉨을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19세기 저작들에서 뚜렷이 드러나며 이는 퇴계학파 안에 내재하던 하나의 흐름이 19세기에 이르러 결실을 맺은 것으로 생각된다.
    기호성리학파의 『역학계몽』연구는 대체로 한원진을 중심으로 그의 동료, 문인들에 의해 연구되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퇴계학파의 『역학계몽』연구가 이황 『계몽전의』이후, 16세기말로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데 비하여, 기호성리학파의 『역학계몽』연구는 18세기에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그 이전과 이후에는 비중있는 연구저작들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상수학과 리학(理學)을 함께 다루는 경향이 두드러지며, 퇴계학파에서 순수하게 도수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연구경향의 흐름이 존재하는 것과 달리, 기호성리학파 내에서는 그러한 관심을 쉽게 찾을 수 없다. 기호성리학파의 『역학계몽』연구는 그들의 태극론을 살펴 볼 때, 그 성리학적 입장이 뚜렷하게 반영됨을 알 수 있다. 하도의 상수적(象數的) 태극을 리기지묘(理氣之妙)에 바탕한 리기론 및 인성론(人性論)과 연계하여 설명하는 것은 조선후기 기호학파 『역학계몽』연구의 독특한 풍토라 하겠다.
    하도(河圖)와 복희팔괘 형성에 관련한 논의는 매우 복잡한데, 조선의 유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 논란을 거듭한다. 이는 천지자연의 이치와 인간사의 예제(禮制)가 하나의 원리로 구축되어야 한다는 성리학의 진리관에 기인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기호성리학파의 『계몽』논의에서는 자연의 운행에 대한 도수론적 관심이나, 한대역학을 수용한 논의의 흐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호학파에 있어서 우주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홍대용, 김석문, 황윤석 같은 실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기호실학자들은 음양오행, 천간지지(天干地支)를 매개로 하는 전통적 과학원리에 입각해 자연을 탐구하기 보다는, 서양의 과학문물을 수용하여 전통과학의 체계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 영문
  • This study based on Zhu Xi's Yi Xue Qi Meng(易學啓蒙), the core text of the Image-Number theory examined how this text was accepted and reinterpreted during Chosun period.
    In this study I took the most literary works on Yi Xue Qi Meng by Confucian scholars of Chosun dynasty and differentiated the School of Toegye and Ki Ho School of Neo-Confucianism, and then, investigated the stream and characteristics of the researches on Yi Xue Qi Meng in Chosun period.
    First, 『Qi Meng Zhuan Yi, (啓蒙傳疑)』written by Yi, Hwang is the first full-scale research work on Yi Xue Qi Meng and it is the work of Image-Number theory even more open than Zhu Xi's Yi Xue Qi Meng. Yi, Hwang embraced fortune telling methods of Han dynasty which Zhu Xi had denied and utilized various sources from Taoist I-Qing. Yet, this kind of thorough way of The image-Number explanation does not conflict with his Neo-Confucian theory.
    The stance of Neo-Confucian scholar which pursues the social system accord with nature's inevitable order is not contradictory to his pursuit of revealing nature's order. This tendency is consistent in the study of Yi Xue Qi Meng of Toegye School of later generation. However, the ananlysis of Yi Xue Qi Meng diverges among theToegye School in later generation: some took an interest in axiological ethics based on Neo-Confucianism while others focused on mathematical research.
    The studies on Yi Xue Qi Meng by Ki Ho(畿湖) scholars were mainly performed by Han Won Jin and his colleagues. While the study of Yi Hwang(李滉)'s Qi Meng Zhuan Yi(啓蒙傳疑) performed by the researchers of Toegye(退溪) School lasted from the end of the 16th century to the 19th century, the Ki Ho(畿湖) scholars' study of Yi Xue Qi Meng were centered in the eighteenth century only. Then, hardly any significant work on this text is found before and after the 18th century.
    The Ki Ho scholars are remarkable in interpreting Tai Ji in He Tu(河圖) in the context of the theory of Li-Qi and the theory of human nature.
    In the study of Yi Xue Qi Meng, the Ki Ho School reveals their Neo-Confucian attitude in their theory of Tai Ji. They are remarkable in interpreting Tai Ji in He Tu in the context of Li-Qi and the theory of human nature.
    The debates on the formation of He Tu and Fu Xi(伏羲)'s eight trigrams are very complicated and Neo-Confucian scholars in Chosun dynasty had ardently disputed with this matter. This is due to their view of truth that the human rites and systems should be formed based on the principle of universe and nature.
    However, in the discussion of Yi Xue Qi Meng of Ki Ho school, mathematical approach on nature is hardly found. While scientific investigation of universe and nature among the Ki Ho school was performed by scholars of the Practical Learning, such as Hong Dae Yong, Kim Seok Mun, and Hwang Yoon Seok. Ki Ho Scholars of the Practical Learning embraced science and culture from the West and rejected traditional system of truth and science rather than investigating nature based on traditional principles as yinyangwuxing(陰陽五行).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조선시대 상수역학의 필수원전인 주희의 『역학계몽』을 텍스트로 하여, 그것이 어떻게 수용되고 재해석되어 갔는지를 연구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유학자들의 『역학계몽』에 대한 저작물 전반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퇴계학파와 기호학파로 대별하여, 조선시대 『역학계몽』연구의 흐름과 특성을 고찰하였다.
    먼저 이황(李滉)의 『계몽전의(啓蒙傳疑)』는 조선의 『역학계몽』관련 저작 가운데 최초의 본격적 연구서로서 주희의 『역학계몽』보다 더 개방적인 상수학 저술이다. 이황은 주희가 부정한 한대역학의 납갑설(納甲說), 비복설(飛伏說) 등을 모두 수용한다. 도교역학의 여러 문헌을 활용하고 8괘를 참동계의 납갑에 입각하여 상세히 설명한다. 그러나 이렇게 철저한 상수적 설명방식이 그의 이학적 관심이나 이론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소이연(所以然)과 소당연(所當然)의 개념을 통하여 인사(人事)의 질서가 자연의 필연적 질서에 부합하기를 이상으로 추구하였던 성리학자의 입장에서, 상수학을 통하여 자연의 법칙적 질서를 드러내기를 추구하였다는 것은 하등 모순이 아니며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이는 후대 퇴계학파의 『계몽』연구에서 상수와 의리를 밀착하는 방향으로 가시화되며, 퇴계학파 특유의 이학적 관점도 드러남을 볼 수 있다. 요컨대 주희와 이황의 상수학은 모두 그 바탕에 이학적 관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퇴계학파의 『역학계몽』연구는 『계몽전의』를 중심으로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해가는 연구사의 축적을 통해 『역학계몽』이해의 완전성을 추구해 간다. 이는 퇴계학파 『역학계몽』연구의 특징이라 할 것이다. 다만 후대 퇴계학파의 『역학계몽』연구에서는 이학적 관심이 뚜렷한 경우와, 이학적 관심과는 별도로 도수적(度數的) 연구에 치중한 경우로 나뉨을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19세기 저작들에서 뚜렷이 드러나며 이는 퇴계학파 안에 내재하던 하나의 흐름이 19세기에 이르러 결실을 맺은 것으로 생각된다.
    기호성리학파의 『역학계몽』연구는 대체로 한원진을 중심으로 그의 동료, 문인들에 의해 연구되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퇴계학파의 『역학계몽』연구가 이황 『계몽전의』이후, 16세기말로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데 비하여, 기호성리학파의 『역학계몽』연구는 18세기에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그 이전과 이후에는 비중있는 연구저작들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상수학과 리학을 함께 다루는 경향이 두드러지며, 퇴계학파에서 순수하게 도수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연구경향의 흐름이 존재하는 것과 달리, 기호성리학파 내에서는 그러한 관심을 쉽게 찾을 수 없다. 기호성리학파의 『역학계몽』연구는 그들의 태극론을 살펴 볼 때, 그 성리학적 입장이 뚜렷하게 반영됨을 알 수 있다. 하도의 상수적 태극을 리기지묘(理氣之妙)에 바탕한 리기론 및 인성론과 연계하여 설명하는 것은 조선후기 기호학파 『역학계몽』연구의 독특한 풍토라 하겠다.
    하도와 복희팔괘 형성에 관련한 논의는 매우 복잡한데, 조선의 유학자들은 특히 호방평 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보다 명쾌하게 정리해 나아감을 볼 수 있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이 문제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 논란을 거듭한 이유는, 천지자연의 이치와 인간사의 예제(禮制)가 하나의 원리로 구축되어야 한다는 성리학의 진리관에 기인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기호성리학파의 『계몽』논의에서는 자연의 운행에 대한 도수론적 관심이나, 한대역학을 수용한 논의의 흐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호학파에 있어서 우주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홍대용, 김석문, 황윤석 같은 실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기호실학자들은 음양오행, 천간지지(天干地支)를 매개로 하는 전통적 과학원리에 입각해 자연을 탐구하기 보다는, 서양의 과학문물을 수용하여 전통과학의 체계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후속연구 및 학문적 담론의 활성화
    조선후기 유학자들의 자연과학적 인식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조명되기 시작한 상수학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은 이제 조선의 상수역학에 대해 보다 다양하고 깊은 논의를 필요로 하는 시점에 있으며, 본 연구는 이러한 요구에 십분 부응하여 많은 후속연구 및 학문적 담론을 파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 한국역학연구의 역량축적 및 교육현장에로의 환류
    한국철학사상연구분야 가운데 한국역학은 기타 성리학이나, 실학, 양명학, 경학 등의 연구에 비하여, 현저하게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역학가운데에서도 상수역학에 관한 연구는 더욱 부족하다. 본 연구는 한국역학분야 연구의 기반을 다지는데 일조를 하는 한편, 대학의 학부와 대학원과정의 역학강좌로 곧바로 환류될 수 있으며, 본 연구자는 이미 교육현장에서 연구결과를 활용하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3) 국제역학대회 발표를 통한 한국역학의 위상제고
    근래 동아시아 학술계는 날이 갈수록 국제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공동의 문화기반을 지닌 동아시아의 경우, 학술의 공통적 바탕위에 자국학술의 발전이 더욱 요청된다. 한국의 동양철학연구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족한 역학분야의 연구를 활성화하고, 그 결과를 국제학술대회를 통하여 발표, 투고함으로써 한국역학의 위상을 쌓아가는데 기여할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하여 작성된 논문을 이미 국제역학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바 있다.

    4) 교육적 기대효과 및 사회적 기여도
    교육대상자들의 상수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 역학에 대한 전문연구자들의 접근태도와 사회일반인의 접근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에 대부분의 역학수강생들이 갖기 쉬운 상수역학은 점술이라는 통념에 대하여, 상수역학은 자연과 세계에 대한 이론적 탐색이며, 의리학적 실천을 동반하는 것임을 인식시킴으로써 역학에 접근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조정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더 나아가 역학에 대한 사회일반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역학, 상수역학, 상수학, 퇴계, 이황, 역학, 조선시대, 역학계몽, 계몽전의, 퇴계학파, 하도, 낙서, 복희팔괘, 문왕팔괘, 석합보공, 주희, 주자, 주역, 남당, 김귀주, 박치화, 김해, 정경세, 이휘일, 노경임, 소강절, 소옹, 유휘문, 최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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