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참여의 저하는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나타내는 중요한 징표이다. 민주주의는 정치 제도만의 문제라기보다 시민적, 사회적 성숙도의 문제이기에, 시민들이 정치 과정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면서 아래서부터의 참여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초 토양을 ...
정치 참여의 저하는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나타내는 중요한 징표이다. 민주주의는 정치 제도만의 문제라기보다 시민적, 사회적 성숙도의 문제이기에, 시민들이 정치 과정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면서 아래서부터의 참여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초 토양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8년 봄과 여름, 정부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결정을 계기로 분출되었던 시민운동, 즉 이른바 촛불시위는 대안적 정치참여 모델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고조시켰고, 특히 10대 청소년의 정치참여에 대한 흥미로운 관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비록 촛불 시위가 중·후반기로 전개됨에 따라 참여 주체의 성격이 상당히 변화하긴 했지만, 초기 촛불 시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중·고등학생들의 거리 문화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촛불 시위 현장에서는 연단에 선 수많은 청소년 연사들이 청중을 압도하기도 했고 창의적이고 기발한 구호나 의상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이렇듯 촛불 시위를 계기로 중·고등학생, 10대 중후반 청소년의 정치의식, 정치참여, 혹은 정치세력화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으며 무엇이 그들을 다른 세대와 구별되게 하는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즉 현재 10대의 정치참여는 소위 ‘질풍노도의 시기’라 표현되듯이 감성이 고조되는 생애 주기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특정한 사회, 문화, 정치적 경험이 만들어낸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촛불시위는 청소년 세대의 새로운 가치관과 행동 양식이 집약적으로 표출된 형태였다는 것이다.
소위 ‘2.0 세대론’은 이러한 시각을 잘 대변하는데, 386세대, 신세대, 그리고 88만원 세대에 뒤이어 나타난 이들은 386 세대의 자녀 세대로서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가족 환경에서 정치사회화를 거친 첫 세대이며 인터넷 공간 속에서 자유롭고 쌍방향적인 소통을 한껏 경험해 온 세대이다. 이러한 세대론은 10대 정치참여의 동인을 그들의 새로운 가치관과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이용, 특히 인터넷과 관련된 경험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청소년 세대는 개인주의를 추구하면서도 열린 공동체를 지향하며, 자기표현과 자아실현을 중시하는 탈물질주의적 가치의 소유자들이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로의 차이 인정하면서도 자유롭게, 수평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인터넷 미디어를 삶의 곳곳에, 깊숙이 배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유목민이라 칭해진다.
달튼 등(Dalton, McAllister, & Wattenberg, 2000)에 따르면 후기산업사회로 올수록 정당소속감이 해체되고(dealignment) 정치적 신뢰가 저하됨에 따라 선거 과정에 대한 참여는 뚜렷이 감소하지만, 시민들의 일시민들의 일반적인 정치적 관심도는 오히려 증가한다고 한다. 이러한 관심은 투표, 선거캠페인, 로비, 정치인 접촉 등 전통적인 의미의 정치 참여가 아니라, 청원, 서명, 시위 등 비제도적인 정치 참여로 분출되는데 이러한 경향은 젊은 세대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젊은 세대일수록 자기 존중, 표현의 자유, 삶의 질 등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선호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분출하기 때문이기도 하며(Inglehart, 1990), 청소년 세대의 경우 제도적인 정치 참여의 기회는 아직까지 주어지지 않았지만 정치의식은 매우 성숙되어 있고 사안에 따라 높은 표현의 욕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연구는 2008년 봄과 여름을 걸친 청소년의 정치 참여에 주목하면서, 그들의 이러한 정치적 행위가 동일한 역사적, 사회적 경험을 통해 형성된 정치적 가치와 인터넷 공간에서의 경험에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탐색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다시 말해서 제도적 정치 참여가 제한되어 있는 10대 청소년들이 어떠한 사회적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러한 가치들은 정치적 행동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들의 표현과 소통의 주된 매개체인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이 정치 참여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등을 규명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청소년 세대, 특히 중·고등학생들을 주된 분석의 대상으로 삼되, 미국의 동일한 연령 코호트와의 비교 분석 역시 수행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후기 청소년 세대와의 직접 비교가 가능한 미국의 만 14세 이상의 청소년들에 주목하여, 두 문화권에서 정치가치,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행위, 그리고 정치참여 간의 관계가 각각 어떤 양상으로 구축되는지 탐색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의 소위 '2.0 세대론'이 매우 특수한 한국적 경험이 반영된 결과인지, 아니면 좀 더 보편적인 가치 변화와 연령적 특성에 관련되는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