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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 귀송>작가들의 탈(脫)내셔널리즘 ― 전후일본의 민족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 ―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amp; #40;박사후국내연수&amp; #41;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1-354-A00187
선정년도 2011 년
연구기간 1 년 (2011년 07월 01일 ~ 2012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박이진
연구수행기관 한양대학교&amp; #40;ERICA캠퍼스&amp; #41;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수의 과제 【<외지 귀송>작가들의 탈(脫)내셔널리즘】은 전후일본에서 강화되었던 내셔널리즘의 희생양으로서 존재하는 식민지(외지)출신 일본 작가의 자기인식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해서, 일본인이라는 국민적 연대의식 속에서 자신을 이질적이고 이단적인 존재로 밖에 느낄 수 없었던 <외지 귀송>작가들의 아이덴티티 분열을 고찰해 보겠다. 이는 아시아 각국으로 침략하여 팽창되었던 전전의 일본제국에서 패전 후 일본열도로 실질적인 국토 범위의 축소와 함께 일본인의 순수혈통을 강조하며 진행되었던 전후일본의 국민국가 재건이 그 구성원에게 가했던 은폐된 폭력성을 확인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또한 이는 고정 불변의 이데올로기로서 고착되어 온 ‘민족’ 개념에 대한 재고의 시각을 제시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패전 후 폐허가 된 일본에서 비참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던 일본인들은 <폐허의 암시장파(焼け跡の闇市派)>라는 말을 통해 세대적 공유의식을 표한 바 있다. 자신이 직접 겪은 고베 대공습과 동생의 죽음을 작품화 한 『반딧불의 묘(火垂るの墓)』(1968년)의 작가 노사카 아키유키(野坂昭如)가 지칭한 <폐허의 암시장파>는 노사카처럼 폐허 속에서 소년기를 보낸 세대들의 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폐허의 암시장파>는 원폭과 식량란 등으로 황폐했던 혼란기를 극복해 왔다는 시대감각을 공통항으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동시대적 감각을 향유했던 세대들은 모두 이 <폐허의 암시장파>에 적극 공감하게 된 것이다. 즉, ‘전후파’라 불리는 작가들은 넓은 의미에서 이 세대에 속한다.
    <외지 귀송>작가는 이러한 <폐허의 암시장파>로 표현되는 세대 중에서도 특히 자신들의 체험이 다른 전후파와는 다르다는 의식에서 스스로 구분을 요하던 작가들을 가리킨다. 식민지 조선출신이었던 이쓰키 히로유키(五木寛之)에 의해 지칭된 <외지 귀송파(外地引揚派)>가 자신들의 ‘원체험’으로서 전제한 것은 바로 패전을 식민지에서 경험했다는 것이다. 만주・조선 등지의 식민지에 살다가 패전으로 인해 일본(내지)으로 귀국조치를 받게 된 귀송자(引揚者)로서의 경험이 다른 전후파와의 절대적인 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세대적, 경험적 차이를 공유하는 <외지 귀송>작가들은 자신의 고향을 일본열도가 아니라 만주나 조선이라고 인식했다. 패전 후 연합국에 의해 귀송 사업이 추진되면서 강제 귀국조치에 따라야 했던 이들은 일본을 자신들이 돌아가야 할 조국, 고향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식민지출신의 일본인들을 대하는 내지일본인들의 태도도 따뜻하지 만은 않았다. 내지인들도 먹고 살기 힘든데 왜 돌아왔냐는 냉대와 식민지출신임을 멸시하는 시선이 외지 귀송자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외부인, 이질적 존재로 각인시켰던 것이다. 패전 직후 ‘일본으로 가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우리는 모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마치 주술처럼 되뇌이며 귀송길에 올랐던 어른들의 태도를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기록들이 다양한 ‘귀송 수기’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일본이라는 곳은 식민지출신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고향, 어머니의 고향일 뿐으로, 자신이 태어나고 또는 자라왔던 삶의 터전으로서의 고향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은 패전 시, 그 상황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던 세대와 그것을 움직일 수 없는 현실 그 자체로밖에 생각지 못했던 세대 간에 인식차이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소위 식민지체험이라는 ‘체험’으로서의 식민지 체재가 아니라, 유소년기라는 성장기를 식민지에서 보내며 그곳을 고향이라 생각했던 <외지 귀송>작가들은, 당시 권력층으로서의 민족적 우월감이나 지배 대 피지배라는 식민지 구조를 사고할 수 없던 세대였다. <외지 귀송>작가들의 존재론적 사고의 저변에 공통하고 있는 ‘뿌리없는 풀(根無しの草)’로서의 아이덴티티 인식은 이러한 원체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본 연수의 과제는 이러한 <외지 귀송>작가들이 갖고 있던 귀속(belonging) 문제와 아이덴티티(identity)의 분열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일본인이라는 폐쇄적 개념 아래 두지 않고 일본 내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존재로 규정하면서 대항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를 탐색해 보려 한다. 이에 본 연수의 과제는 일본인이지만 식민지출신인 작가들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일본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민족 내셔널리즘을 넘어서는 선에서 재해석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 기대효과
  • 본 연수 과제는 식민지출신 일본인이 전후일본으로 귀송되면서 발생된 제문제를 되짚어 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따라서 본 연수 과제 【<외지 귀송>작가들의 탈(脫)내셔널리즘】의 연수 결과는 다음과 같은 점에 의의를 둘 수 있다.
    ◉ 귀송 사업이 갖는 의미를 일본 내에서 이질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출신 일본인의 모습을 통해 살펴본다. 이 작업으로 전후에 존재하는 외지출신 작가들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식민주의가 낳은 균열로서의 전후일본상을 조명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 <외지 귀송>작가들의 경계성을 명학하게 함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폐쇄적인 국가, 민족 개념을 넘어서는 대안적 아이덴티티를 제시하는 관점의 확보이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현재 일본문학뿐 아니라 한국문학, 세계문학에서도 주의를 모으고 있는 ‘월경’이라는 화두가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 좀 더 다각적인 시각으로 접근해 볼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 다문화세계의 시대에 고정 불변의 이데올로기처럼 인식되어 온 민족 개념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하고 이러한 문제를 끊임없이 사고해 온 작가들의 연구를 통해 민족 문제를 상대화하는 실천적 방법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 궁극적으로 본 연수는 그동안 국내 일본문학 연구에서 외면해 온 전후 현대문학의 연구에 선구적인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한국의 일본문학 연구에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이다. 또한 아직 일본 국내에서는 연구되지 않은 <외지 귀송>작가들의 아이덴티티 문제를 한국에서 연구하여 일본의 연구자에게 발신할 수 있다.
    ◉ 이번 연수 과제의 결과는 폐쇄적 민족 내셔널리즘을 극복하기 위한 문제를 <외지 귀송>작가의 귀속문제와 아이덴티티의 분열과 관련해 봄으로써 현재 시점에서 ‘월경(越境)’의 가치와 그 방법론을 모색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또한 본 연수 과제의 결과는 전후의 상황을 바라보는 상대적인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 귀송 사업은 <외지>의 일본인을 <내지>로 불러들이는 사업임과 동시에 <내지>의 외국인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사업이기도 했다. 재일조선인들의 귀항도 귀송 사업의 하나였던 것으로, 일본과 한국의 간극을 살게 된 재일코리안의 존재는 이때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이렇게 순수 혈통의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민족의식을 부추기며 전후일본의 국민 재통합이 진행되는 가운데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차별의식이 더욱 심각해져 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후일본 내에서 이루어졌던 귀송 사업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를 통해 보다 설득력 있는 비판을 위한 관점을 확보해서 식민지주의 비판에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본 연수 과제를 통해 피식민지 국가의 국민들만이 피해자였다는 사고의 틀을 벗어나 식민주의는 식민국의 일반인들에게도 정신적으로 물적으로 많은 피해를 안겨대 주었다는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따라서 식민주의의 폭력성을 다각적인 면에서 인식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외지 귀송파’ 중 만주, 조선의 경험이 다른 작가들의 비교분석을 통해 조선식민지가 갖고 있던 특수성도 가시화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에 본 연수 과제의 결과를 식민지 지배담론의 분석을 위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본 연수 과제의 결과물은 학술연구논문과 저술 등으로 가시화하여 학술 활동을 촉진하는 자료로 활용하고자 한다. 우선 2011년 하반기에서 2012년 상반기에 걸쳐서는 조선출신 <외지 귀송>작가들 중 이쓰키 히로유키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시켜 학술연구논문으로 발표하겠다. 그리고 본 연수 과정이 끝나서도 지속적으로 연구를 진행시켜 2013년 정도에는 귀송 작가들에 대한 단행본도 계획하여 본 연수 결과물을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 연구요약
  • 본 연수 과제인 【<외지 귀송>작가들의 탈(脫)내셔널리즘】을 고찰하는 작업을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론을 취한다.
    ① 먼저 귀송자들의 기록을 분석하여 그들에게 귀송이란 어떤 의미였는지 고찰한다. 귀송자들의 수기는 역사적 근거의 불확실성이나 수난담에만 치중된 서술 등의 이유로 학문적 연구의 대상에서는 제외되어 왔다. 더구나 귀송과정을 다룬 수기의 대부분이 1945년 8월을 기준으로 그 전후의 기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식민지에서의 생활상을 분석할 수 없다는 것이 결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그들이 일본에 도착해 느낀 첫인상은 무엇이었고 이후 어떤 위치에 놓이게 되었는가에 관한 정보는 확인할 수가 있다. 이러한 내용은 일본을 낯선 이국땅처럼 느꼈던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간의 분명한 시각차를 반영하기도 하면서, 귀송자들의 눈에 비친 전후일본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된다. 또한 ‘귀송 소설’(川村湊)로서의 성격을 지닌 <외지 귀송>작가들의 피란을 소재로 하고 있는 소설을 살펴 귀송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규정하고자 한다.
    ② 귀송을 겪은 식민지출신 작가의 원체험을 조사하고 그것이 문학적으로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가를 분석한다. 우선, 외지출신 작가가 말하는 그들의 원체험이란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지 귀송파의 발상’이라는 특성과 관련이 있다. 첫째, 외국 및 민족, 인종의 관계에 대한 강한 관심. 둘째, 지리적 방랑성과 인터내셔널한 경향. 셋째, 고향의 부재로 인한 ‘뿌리없는 풀’로서의 인식. 이러한 점들이 원체험으로서 식민지와 강대국에 대한 경계의식으로서 강하게 인식되었다. 이러한 ‘외지 귀송파의 발상’(五木寛之)에 착안해 그들의 민족관, 국가관, 자아인식을 구체화하여 <외지 귀송>작가들의 아이덴티티를 고찰한다. 그리고 그러한 원체험이 어떤 구조를 통해 작품화되고 있고 또 어떤 특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면밀히 살펴 <외지 귀송>작가들만의 문학 풍경을 스케치해 보겠다.
    ③ <외지 귀송>작가들의 아이덴티티가 갖는 경계성을 분석해 전후일본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균열’을 살핀다. 식민지출신의 작가들은 식민지에서의 일을 자신과 관련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특성이 있다. 귀송자들에 대한 전후일본 사회의 관심도 1951년을 기점으로 자취를 감춘다. 구식민지 체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터부시되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이러한 커밍아웃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와서이다. 중국과 일본의 국교수립으로 중국에 남아있는 재외일본인들의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등장하면서 비로소 귀송자들의 존재, 식민지 역사, 전쟁의 패전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가시화되었다. 암묵적 금기가 풀린 것이다. 이때부터 일본 내의 귀송자들의 수기가 다시금 국민적 이야기로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미 30여년의 세월을 고향을 찾지 못한 채 살던 <외지 귀송>작가들은 식민지에서의 일본인이라는 입장이 가졌던 폭력성에 대해 인지할 수 있었다. 또 중국, 한국의 급격한 사회변화와 발전으로 자신들이 기억하는 고향은 더 이상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외지 귀송>작가들이 유대인 문제를 자신들의 입장에 비유하며 강한 공감대를 표했던 것은 그들에게 민족이라는 문제가 무엇보다도 풀기 힘든 과제였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이에 그들의 대항 의식은 어떠한 형태로 실천되고 또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는가를 살펴 민족 내셔널리즘을 넘어서는 대안적 태도를 제시해 보겠다.
    본 연수 과제는 식민지출신 일본인 작가의 시선에서 보인 전후일본상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따라서 노스탤지어와 같은 과거 식민지에서의 기억이 그들의 자기인식에의 변화와 함께 발전된 양상과 그 특성을 밝혀 보겠다. 본 연수 과제는 전후일본 사회의 이면을 조망하면서 민족 내셔널리즘의 한계를 <외지 귀송>작가가 갖는 아이덴티티의 경계성을 통해 살펴보는 내용을 담을 것이다.
  • 한글키워드
  • 식민지. 귀송(인양). 전후일본. 탈내셔널리즘. 경계,민족 내셔널리즘. 월경.
  • 영문키워드
  • colony. repatriate. post-war Japan. ethnic nationalism. Post-nationalism. borderless.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전쟁과 식민지사라는 역사를 배경으로 전쟁 전후의 시기에 걸쳐 활동해 온 일본 작가들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은 전쟁을 둘러싼 지식인으로서의 발언이나 식민지정책에서의 역할이 우선적인 추궁의 대상이 된다. 일본민족으로서의 역사적 공동책임 의식을 묻는 것이다. 식민지체험을 갖고 있는 작가일 경우 식민지에서 영위했던 지배민족으로서의 의식 여부를 둘러싼 비판은 더욱 가중된다. 식민지 통치라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사실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침략자와 피침략민이라는 대립 구조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받은 귄터 그라스가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면서(Beim Hauten der Zwiebel)』를 통해 밝힌 소년시절의 경력은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그라스가 열일곱 살에 나치 무장친위대에 입대하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밀란 쿤테라 역시 프랑스로 망명하기 전에 대학에서 제적을 당한 후 군인으로서 체코 전쟁에 가담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당시 자신은 천황을 위해 죽자고 다짐하기도 했다고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충분한 역사인식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개인의 과거사를 이야기해 왔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책임의식과 상관없이 이러한 기억들이 다루어지는 수난사로서의 이야기들도 있다.
    근년에 문제가 되었던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요코 이야기(So Far From the Bamboo Grove)』는 저자의 왜곡된 역사기술이 원인이었다. 당시 11세였던 소녀 요코의 작위적인 기억에 바탕을 한 이 이야기는 그녀의 아버지가 731부대의 고위 간부였을 가능성 등이 제기되면서 문제의 소지가 더욱 불거지기도 했다. 그녀의 기억 방식에 있어서의 무책임성에는 분명 잘못이 있다. 또 귀송 사업으로 인해 당시 요코와 같이 피란의 길에 올라 일본으로 가게 된 외지일본인들의 체험기가 ‘전쟁 피해자’로서의 일본인이라는 이미지 형성에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현재까지도 일본 스테디셀러로서 재간되고 있는 후지와라 데이(藤原てい)의 『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流れる星はいきている)』는 ‘수난담’으로서의 국민적 이야기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대로 된 역사인식에 대해 비판을 하는 시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국민적 이야기 속에 나타나 있는 외지출신 일본인들의 아이덴티티에 관해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성도 있다고 본다.
    외지출신 일본인들은 자신의 과거사를 감추고 ‘순수 일본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목숨을 건 피란길 끝에 도착한 일본의 첫 인상이 낯설고 이질적인 장소 같았다고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대외적으로도 그들의 이야기는 수난담만이 강조되어 왔다. 민족 내셔널리즘의 강화를 위해 이들의 개인사는 중요하지 않은 부수적인 문제로 간과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귀송 사업’이라는 귀국조치가 내재하고 있는 폭력적 의미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귀국조치 명령으로 식민지에서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던 ‘귀송자’들은 철저히 비전투원으로서의 일반인을 가리키던 말이다. 식민지정책과 관련된 일본인 관료로서 귀송선을 타고 돌아간 사람들, 그리고 군관계자의 경우에는 ‘복원자(復員者)’나 ‘복원병(復員兵)’이라 불렀다. 이들은 일반인과 다르게 귀국 후 적절한 보상과 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또 귀송자들은 자신의 근거지와 재산을 모두 버리고 규정에 따라 1천 엔씩의 돈만을 갖고 귀송선을 탔다. 남의 땅에서 얻은 재산이기에 당연히 그대로 두고 가야한다는 연합군의 조치였다. 이는 당시 재일조선인들을 비롯해 귀국조치를 받은 재일외국인에게도 동일하게 내려진 명령이었다.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에게 모든 재산권을 박탈당한 채 단돈 1천 엔만 허용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이런 시각은 제한적인 사실만을 조명했다고 볼 수 있겠다.
    본 연구 과제는 몇 가지 의미 있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선은 귀송 사업이 갖는 의미를 일본 내에서 이질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출신 일본인상을 구체적인 텍스트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일본에서도 귀송은 민족 수난사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어 민족 내셔널리즘 형성의 재료가 되었다. 식민지출신 작가들이 갖는 정체성이 문제시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식민지출신이라는 과거를 감추며 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이 문학적으로 형성해 놓은 고향상실감, 그리고 국가, 민족에 대한 대항 의식은 지금껏 전후일본의 미군점령이라는 한계적 시야 속에서만 언급되었다. 그러나 본 연구 과제는 그들의 원체험을 선명히 하고 그 원체험이 그들의 문학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분석해 보겠다. 전후일본에 존재하는 외지출신 작가들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과거의 식민주의가 낳은 균열로서의 전후일본상을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대 일본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월경(越境)’의 문제를 <외지 귀송>작가들의 경계성을 통해 살펴본다. 여기서 말하는 경계성은 여러 의미에서의 경계넘기이다. 일본 국민의 내셔널리즘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수행한 ‘국어’라는 언어 내셔널리즘의 경계를 넘어 활동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다와다 요코, 쓰지 히토 나리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자국어의 경계를 넘음으로써 국가 간의 지형적 경계도 넘고 있는 월경 작가들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이러한 경계넘기는 세계를 무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국경, 민족의 경계넘기라는 여러 의미에서의 월경은, 문학의 장르간의 경계넘기와도 관련이 있다. 최근의 이러한 경향의 문학적 풍토를 제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작가들의 대부분이 <외지 귀송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이 가장 영향을 받은 일본 작가로서 거론하여 화제가 된 아베 고보(安部公房). 그는 관념적 순수소설의 문단 풍토에 쉬르레알리즘 수법을 도입해 대중적 아방가르드 문학의 절정을 이루었다. 또한 순수소설, SF소설, 라디오극본, 시나리오, 희곡 등의 장르적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였다. 역시 순수소설로 시작했으나 광고카피, 번역, 작사, 극본, 시나리오 등의 창작을 통해 엔터테인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쓰키 히로유키(五木寛之). 일본판 『백경』이라는 호평을 받은 『고래의 신(鯨神)』으로 등단해 일본 관능소설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우노 고이치로(宇能鴻一郎)는 사가 시마쇼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에서 귀송된 히노 게이조(日野啓三)는 외지출신으로서 일본어 구사에 있어서의 한계를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외지출신 작가들의 작품 대부분이 유려한 일본적 표현이 불가능한 원인으로서 원체험을 들고 있다. 그들의 원체험이 순수소설 창작에의 한계와 연동되어 그 돌파구를 대중성 있는 각종 분야로 이행함으로써 찾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들 <외지 귀송파>의 공통적인 특색으로서 작품 내에 외부인을 등장시켜 그 외지인의 시선으로 일본을 묘사하고 있는 것 역시 그들의 원체험과 깊이 관련이 있다. 이러한 풍토가 현대 일본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민족, 국가적 경계넘기, 문학 장르간의 경계넘기라는 패러다임의 근간을 제공한 <외지 귀송>작가들의 문학사적 지형을 새롭게 그려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며, 일본 내에서도 이러한 연구는 아직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 한일관계는 일본 정치 지도자의 야스쿠니 참배 문제나 역사 망언,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을 둘러싸고 좋지 않은 마찰을 빗고 있다. 반면에 이러한 정치적 기류와는 달리 문화교류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류가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한국에서는 일본 소설이 독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이와 같은 문화 교류의 긍정적 측면은 정치적인 현안으로 고착된 냉각 상태를 완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의 민족 내셔널리즘의 분석과 더불어 그 민족 내셔널리즘이 낳은 배타적인 태도를 넘어서려는 <외지 귀송>작가들의 실천에 대한 고찰은 현재 시점에서 더욱 중요시된다. <외지 귀송>작가들은 국가적 역사의 과오를 민족이라는 굴레 때문에 평생 ‘원죄’로 짊어져 왔다. 그로 인해 일본, 일본인이라는 틀 속에서 안주하며 외부에 대한 경계를 만드는 자세를 버리고 그 내부에서 끊임없이 일본, 일본인을 상대화해 온 <외지 귀송>작가들의 자기인식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후일본 문학자들에 대한 한시적 시각에 의한 연구 자세에서 벗어나 일본을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시야를 획득함은,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안목의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본 연구 과제의 현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영문
  • Post-nationalism of the repatriated writers from the former Japanese colonies : Criticism of Ethnic nationalism in post-war Japan

    This research focuses on the self-perception of Japanese colonial origin, the victim of reinforced nationalism in postwar Japan.
    In other words, Post-nationalism of the repatriated writers of the identity confusion I'll try to investigate.
    These research task will be to verify that the citizens have been held in Japan before and after the reconstruction of the country had concealed its members to the violence. And as far as the time of the stock on the concept of the whole nation adhere will be presented as fixed and unchanging ideolog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수의 과제 【<외지 귀송>작가들의 탈(脫)내셔널리즘】은 전후일본에서 강화되었던 내셔널리즘의 희생양으로서 존재하는 식민지(외지)출신 일본 작가의 자기인식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해서, 일본인이라는 국민적 연대의식 속에서 자신을 이질적이고 이단적인 존재로 밖에 느낄 수 없었던 <외지 귀송>작가들의 아이덴티티 분열을 고찰해 보겠다. 이는 아시아 각국으로 침략하여 팽창되었던 전전의 일본제국에서 패전 후 일본열도로 실질적인 국토 범위의 축소와 함께 일본인의 순수혈통을 강조하며 진행되었던 전후일본의 국민국가 재건이 그 구성원에게 가했던 은폐된 폭력성을 확인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또한 이는 고정 불변의 이데올로기로서 고착되어 온 ‘민족’ 개념에 대한 재고의 시각을 제시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패전 후 폐허가 된 일본에서 비참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던 일본인들은 <폐허의 암시장파(焼け跡の闇市派)>라는 말을 통해 세대적 공유의식을 표한 바 있다. 자신이 직접 겪은 고베 대공습과 동생의 죽음을 작품화 한 『반딧불의 묘(火垂るの墓)』(1968년)의 작가 노사카 아키유키(野坂昭如)가 지칭한 <폐허의 암시장파>는 노사카처럼 폐허 속에서 소년기를 보낸 세대들의 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폐허의 암시장파>는 원폭과 식량란 등으로 황폐했던 혼란기를 극복해 왔다는 시대감각을 공통항으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동시대적 감각을 향유했던 세대들은 모두 이 <폐허의 암시장파>에 적극 공감하게 된 것이다. 즉, ‘전후파’라 불리는 작가들은 넓은 의미에서 이 세대에 속한다.
    <외지 귀송>작가는 이러한 <폐허의 암시장파>로 표현되는 세대 중에서도 특히 자신들의 체험이 다른 전후파와는 다르다는 의식에서 스스로 구분을 요하던 작가들을 가리킨다. 식민지 조선출신이었던 이쓰키 히로유키(五木寛之)에 의해 지칭된 <외지 귀송파(外地引揚派)>가 자신들의 ‘원체험’으로서 전제한 것은 바로 패전을 식민지에서 경험했다는 것이다. 만주・조선 등지의 식민지에 살다가 패전으로 인해 일본(내지)으로 귀국조치를 받게 된 귀송자(引揚者)로서의 경험이 다른 전후파와의 절대적인 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세대적, 경험적 차이를 공유하는 <외지 귀송>작가들은 자신의 고향을 일본열도가 아니라 만주나 조선이라고 인식했다. 패전 후 연합국에 의해 귀송 사업이 추진되면서 강제 귀국조치에 따라야 했던 이들은 일본을 자신들이 돌아가야 할 조국, 고향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식민지출신의 일본인들을 대하는 내지일본인들의 태도도 따뜻하지 만은 않았다. 내지인들도 먹고 살기 힘든데 왜 돌아왔냐는 냉대와 식민지출신임을 멸시하는 시선이 외지 귀송자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외부인, 이질적 존재로 각인시켰던 것이다. 패전 직후 ‘일본으로 가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우리는 모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마치 주술처럼 되뇌이며 귀송길에 올랐던 어른들의 태도를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기록들이 다양한 ‘귀송 수기’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일본이라는 곳은 식민지출신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고향, 어머니의 고향일 뿐으로, 자신이 태어나고 또는 자라왔던 삶의 터전으로서의 고향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은 패전 시, 그 상황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던 세대와 그것을 움직일 수 없는 현실 그 자체로밖에 생각지 못했던 세대 간에 인식차이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소위 식민지체험이라는 ‘체험’으로서의 식민지 체재가 아니라, 유소년기라는 성장기를 식민지에서 보내며 그곳을 고향이라 생각했던 <외지 귀송>작가들은, 당시 권력층으로서의 민족적 우월감이나 지배 대 피지배라는 식민지 구조를 사고할 수 없던 세대였다. <외지 귀송>작가들의 존재론적 사고의 저변에 공통하고 있는 ‘뿌리없는 풀(根無しの草)’로서의 아이덴티티 인식은 이러한 원체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본 연수의 과제는 이러한 <외지 귀송>작가들이 갖고 있던 귀속(belonging) 문제와 아이덴티티(identity)의 분열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일본인이라는 폐쇄적 개념 아래 두지 않고 일본 내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존재로 규정하면서 대항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를 탐색해 보려 한다. 이에 본 연수의 과제는 일본인이지만 식민지출신인 작가들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일본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민족 내셔널리즘을 넘어서는 선에서 재해석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연구결과
    본 연구 과제와 관련해 현재까지 진행해 온 연구 성과로 2편의 논문을 작성하여 모두 학술논문으로서 전문 학술지에 게재하였다. 그 제목과 내용을 요약해 서술해 둔다.
    (1) 귀환자(引揚者)의 ‘전후’ -전후일본의 균열지점-
    본 논문은 전후일본사회에서 통합되어 가는 귀환자들의 ‘전후상’을 고찰하여 전후일본의 민족내셔널리즘을 재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귀환사업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을 검토하고, 귀환자들이 전후일본사회 속에서 느꼈던 실존적 존재의식을 살펴보았다. 특히 일본현대문학의 대표 작가이기도 한 아베 고보가 만주에서 일본으로 귀환되어 온 후 의식하기 시작하는 자아 정체성을 ‘이단자’라고 규정하고 있는 의미를 분석의 예로 들어 보았다. 패전후 일본은 국민의 재정비에 의한 신일본국 건설을 위해 전력을 다해 왔다. 여기서 귀환사업은 민족 대통합의 근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식민지의 귀환자들이 겪었던 피난의 여정을 기록하고 있는 ‘귀환 체험담’은 전쟁의 희생자인 일본민족의 수난사로서 기능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귀환자들은 식민지의 침략자였던 일본인의 위화감을 자각하고 있음과 동시에 이방인과도 같은 전후일본사회에서의 피차별자로서의 자화상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귀환자의 의식에는 외지 식민지출신 일본인과 본토의 순수일본인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며 실존적으로 혼란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귀환자들이 느꼈던 위화감은 국민국가 재건을 위한 전후일본의 통합이데올로기 속에서 재단되게 된다. 영원한 희생자라는 공적 기억이 유포됨에 따라 그들의 실상은 묻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귀환자들의 ‘전후상’을 재검토함은 전후일본의 민족내셔널리즘에 내재하는 <균열>을 가시화하고, 이를 통해 일본의 단일민족 신화가 이룬 위업을 해체하여 그 허상을 밝히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2) 아베 고보의 ‘만주표상’ -귀환자의 노스탤지어-
    본 논문은 일본작가 아베 고보의 ‘만주표상’이 형성된 과정을 추적한 것으로, 이전까지 선행론에서 지적되어 오던 ‘패전을 통한 고향상실감’이라는 논리구도를 좀 더 확장시켜 아베고보의 전후일본에서의 인식 변화에 착안하여 고향상실자의 시점이 형성된 구도를 고찰하였다.
    1948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는 아베 고보는, 자신이 유소년기에 보냈던 만주를 무대로 한 소설을 데뷔작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패전으로 만주에서 일본으로 강제 귀송 조치에 따라야 했던 아베 고보는 실제 자신의 출신 때문에 아이덴티티상의 균열을 겪게 된다. 전후일본 사회에서 만주일본인이라는 출신이 갖는 이질감을 자각했던 아베는 만주에서는 일본인이라는 지배민족이었던 자신의 과거 사이에서 극심한 저항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과거 자신의 고향에서 침략자이자 식민자였던 만주일본인이 갖는 위화감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인식하게 되는 아베는, 같은 일본인 사이에 벌어지는 복수극을 그린 『굶주린 피부』라는 작품을 통해 내적 갈등(혼란)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계획한 복수가 성공한 듯해도 스스로를 향한 자괴감은 일본인이라는 출신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을 다시금 상기시키게 된다. 결국 아베 고보는 식민지주의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감을 폭력성을 통해 묘사, 풍자하게 되고, 식민지의 풍경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존재인 피식민자의 입장을 사자(死者)로 그려내게 된다. 『변형의 기록』이 그것으로, 이 작품은 과거 만주와 전후일본의 피식민자의 입장을 이중적으로 투영한 것이기도 하다. 아베 고보는 전후일본의 미군점령의 현실을 식민지주의라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직시한 것으로 이와 동시에 만주에서의 일본인이 갖고 있던 존재감을 보다 선명하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만주를 고향이라고 여길 수 없는, 고향 상실자로서의 위치감각을 인지하게 된다. 『탐정과 나』에서 묘사되듯이 건조한 날씨와 회오리치는 모래 바람처럼 황량하고 메마른 만주의 표상은 실제 만주의 풍토를 이루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침략자 일본인이라는 사실관계 때문에 오는 죄책감에 그리움이 넘치는 정겨운 기억으로 고향 만주를 표현할 수 없었기에 형성된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활용방안
    ‘외지 귀송파’ 중 만주, 조선의 경험이 다른 작가들의 비교분석을 통해 조선식민지가 갖고 있던 특수성도 가시화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에 본 연구 과제의 결과를 식민지 지배담론의 분석을 위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본 연구 과정이 끝나서도 지속적으로 연구를 진행시켜 귀송 작가들에 대한 단행본도 계획하여 본 연구 결과물을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 색인어
  • 식민지주의, 전후일본, 귀송, 귀환, 민족 내셔널리즘, 월경, 아베 고보, 탈내셔널리즘, 아이덴티티 분열, 국민국가 재견, 고향, 식민지체험, 귀속의식, 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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