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나오는 네트워크는 인간-비인간의 네트워크이고, 어떤 의미로 보았을 때 인간은 다양한 비인간을 어떻게 조직하고 통제하는가에 따라서 더 큰 권력을 가질 수 있다. 연구소, 기업, 정부조직, 군대 등 권력을 수반하는 조직들은 네트워크의 건설을 방해하는 저항세 ...
권력이 나오는 네트워크는 인간-비인간의 네트워크이고, 어떤 의미로 보았을 때 인간은 다양한 비인간을 어떻게 조직하고 통제하는가에 따라서 더 큰 권력을 가질 수 있다. 연구소, 기업, 정부조직, 군대 등 권력을 수반하는 조직들은 네트워크의 건설을 방해하는 저항세력을 무력화하고, 이를 장기적으로 지속시키며, 필요에 따라 권력이 공간을 가로질러 작동하는 기제를 만들고, 네트워크에 복속된 다수의 행위자를 잘 대변하며, 미래의 네트워크의 변화 가능성을 예측함으로써 권력을 유지·강화시킨다.
<1단계>에서는 분단질서를 행위자네트워크의 관점에서 인식하기 위한 첫 발걸음으로 각 주제영역의 공간을 설정하고 각 공간에서 세부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인간-비인간의 행위자와 번역의 과정을 경험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① 1차년도에는 경제·물질적 공간에서의 행위자네트워크와 정치·육체적 공간에서의 행위자네트워크를 살펴보고, ② 2차년도에는 상징·언어적 공간에서의 행위자네트워크와 기억·심성적 공간에서의 행위자네트워크를 살펴보고, ③ 3차년도에는 사회·지리적 공간에서의 행위자네트워크와 배제·차별의 공간에서의 행위자네트워크를 살펴보고자 한다.
번역은 행위자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과정이며, ‘번역의 중심’은 번역의 전략을 관장하는 지점이다. 이 번역의 중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위자와 조직이 그들을 이루는 부분과 조각들을 동원하고, 배열하며, 하나로 유지할 수 있는지, 또한 어떻게 부분과 조각들이 자신의 선호를 따라가다가 결국 행위자와 조직이 해체, 소멸되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막을 수 있는지, 따라서 어떻게 그들이 번역의 과정을 숨기고, 다양한 부분과 조직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종적 네트워크 대신 규칙화된 행위자로 보이게 할 수 있는지가 주요 연구 관심사이다.
<2단계>에서는 각 공간에 대한 세부적·경험적 분석을 토대로 총체적으로 분단의 행위자네트워크가 어떻게 ‘번역의 중심’, 권력으로 작동하는가에 대한 분석을 하는 것이 주요 연구 내용이다. 한편 이와 동시에 분단을 규정하는 학문과 담론의 지형, 수많은 분단 규정의 용어들과 개념들, 분류법들의 발생기원을 계보학적으로 추적하고자 한다. 이러한 계보학적 탐구는 학문의 담론과 개념, 분류법 역시 ‘번역의 중심’이 행하는 분단 네트워크의 효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의 과정은 질서를 만드는 과정이다. 한 행위자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이미 유지하던 네트워크를 끊어버리고, 이들을 자신의 네트워크로 유혹해서 다른 요소들과 결합시키며, 이들이 다시 떨어져 나가려는 것을 막으면서 이종적인 연결망을 하나의 행위자처럼 보이도록 한다. 이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이를 수행한 소수의 행위자는 네트워크에 동원된 다수의 행위자를 대변하는 권리를 갖게 되며, 이전에 비해서 더 큰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번역은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풀이해내는(치환하는) 것을 의미하고, 어떤 두 언어도 동일해질 수는 없다.
바로 각 행위자들은 일상에서 그러한 '차이'의 번역을 행하는 ‘일상의 정치’를 통해 번역의 중심, 권력에 대한 저항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일종의 브리콜라주(bricolage), 일상을 통한 번역의 전유라고 할 수 있다. <3단계>에서는 탈분단의 패러다임과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인간, 사물, 공간, 일상에서 작동하는 분단 행위자네트워크를 ‘흔들고’ 새롭게 재편할 수 있는 ‘일상의 정치’, ‘사물의 정치’를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