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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전통사회의 지식인 ‘사(士)’에 관한 연구 : 한중일 삼국의 신사·선비·무사 개념의 형성과 그 문화가 각 사회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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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0-327-A00120
선정년도 2010 년
연구기간 1 년 (2010년 05월 01일 ~ 2011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임태홍
연구수행기관 성균관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중단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이 연구는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 지식인을 의미하였던 ‘사(士)’에 관해서 그 의미를 고찰하고 나아가 각 사회에 미친 영향을 분석, 비교하고자 한 것이다.

    여기에서 ‘동아시아’란 한중일 3국을 말하며, ‘전통사회’란 전근대사회를 의미한다. 다만, 연구 대상이 되는 시기는 근대 직전뿐만 아니라 직후의 시기도 포함하여 논의한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는 명청시대와 민국초기, 조선에는 조선시대와 그 직후, 그리고 일본에서는 에도시대와 명치초기에 걸친 기간을 포함한다. 이렇게 근대 초기까지 연구의 범위를 상정한 것은 ‘사’ 개념의 형성뿐만 아니라 그 영향도 함께 고찰하기 때문이다.

    부제목에서 ‘그 문화가 각 사회에 미친 영향’이라는 표현에서 ‘문화’란, ‘사’ 문화전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 개념이 정착되는 과정 중에 각 사회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의 이상형에 관한 논의들’을 의미한다. 이상적인 사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관한 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는 신사정신·선비정신·무사도 등으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다. 이들 정신은 어느 한사람이 정한 것이 아니라 각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문화’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사’ 개념은 사대부(士大夫)라는 전통적인 개념으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부를 수 있는 신사(紳士)·선비(士)·무사(武士)의 개념으로 정착하였다. 이러한 개념의 정착에는 중국 주자학의 영향이 크다. 다만 일본의 무사도는 주자학이후에 형성된 양명학의 영향도 크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의 개념과 이상형이 각 사회에 미친 영향은 1) 종교사상에 대한 영향, 2) 철학사상에 대한 영향, 3) 서구 지식의 수용에 대한 영향, 나아가 4) 근대 정치사상에 대한 영향으로 나누어 논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종교사상에 대한 영향은 19세기 중반에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신종교인 배상제교, 동학, 천리교를 대상으로 고찰한다. 철학사상에 대한 영향 고찰은 양명학, 퇴계학, 소라이학을 선정하여 그 안에 담겨 있는 ‘사’의 개념과 그 ‘이상형’을 살펴볼 계획이다. 서구지식의 수용에 대한 영향은 서구의 종교·과학·철학 등 문화를 동아시아 3국 사회가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받아들였는지를 상호비교하며, 정치사상에 대해서는, 주로 근대초기의 국가건설사상에 주목하여 이러한 사상에 미친 ‘사’ 인식의 영향을 살펴본다.

    3년간 다음과 같이 모두 6개의 주제를 중점적으로 고찰할 계획이다.

    1년차 기초토대연구
    <제1주제> 한중일 삼국의 ‘사(士)’ 개념 비교 고찰 : 신사(紳士)·선비(文士)·무사(武士) 개념의 형성과정
    <제2주제> 한중일 삼국의 근대 종교사상에 나타난 ‘사(士)’의 이상 : 배상제교·동학·천리교의 종교사상 비교를 중심으로

    2년차 심화연구
    <제3주제>전통시대 한중일 삼국 지식인 ‘사(士)’의 이상형 비교 : 신사 정신, 선비정신, 무사도 정신을 통해본 삼국인의 사유구조
    <제4주제>한중일 삼국의 유학사상에 나타난 ‘사(士)’ 개념과 그 이상 : 지식인상을 둘러싼 양명학·퇴계학·소라이학의 인식차이

    3년차 응용연구
    <제5주제> 사(士)에 대한 인식차이가 서구 지식의 수용에 미친 영향 : 서학(西學)·실학(實學)·난학(蘭學)의 사상내용과 구조 비교
    <제6주제> 사(士)에 대한 인식차이가 국가건설 사상에 미친 영향 : 근대초기 동아시아 국가건설 사상의 상호비교를 중심으로

    제1주제 ‘한중일 삼국의 사(士) 개념 비교 고찰’은 전체 연구의 서론적인 부분이다. 이 연구를 통해서 이 연구에 필요한 기본적인 개념을 정리할 예정이다. 제2 주제는 ‘사’의 개념이 종교사상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고자 하기도 한 것이지만, 전체 연구에서는 가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주제연구를 통해서 삼국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사’ 개념과 그 이상형의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제3주제는 근대 직전의 시기를 거치면서 ‘사’의 이상형이 각국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고찰한다. 제 4주제는 철학적인 분야에서 그러한 ‘사’의 이상형이 어떻게 논의되고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고찰하기 위한 주제이다.

    제5 주제는 근대 직전의 시기에 서구 지식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사의 인식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각 학문의 내용 비교를 통해서 살펴보는 것이다. 제6주제는 정치사상으로 눈을 돌려서 각 사회의 국가건설 사상이 사의 개념과 그 이상형으로부터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 기대효과
  • 동아시아 삼국 사회에서 ‘사(士)’라는 한자 표기는 서로 그 의미하는 바가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선비’라는 문사(文士)개념이 강한 반면에 일본에서는 ‘무사(武士)’ 개념이 강한 ‘사무라이(士)’를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신사(紳士)를 의미한다. 공통으로 같은 글자를 쓰고 있으나 그 글자가 뜻하는 바는 미묘하게 서로 다르다. 이 연구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계획하게 되었다.

    학계 일각에서는 이미 중국의 신사와 조선시대의 양반, 일본의 무사 그리고 영국의 젠트리나 프랑스의 엘리트층을 상호 비교하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 바 있다.(오금성, 1978:220) 그러나 그러한 개념에 대해서 종합적인 비교연구가 시도된 바는 없으며, 더구나 한중일 삼국만의 사(士)개념에 대한 연구도 전무한 실정이다.

    다만, 지금까지 두 개의 개념을 비교한 연구는 몇 건의 사례가 있다. 예를 들면, 저서형태로 호사카 유지의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2007)가 출판된 바 있으며, 논문형태로, 유용규의 「선비정신과 무사도의 상관관계」(2004), 윤영기의 「선비정신과 무사도의 비교연구」(1990)가 있었다. 그 외의 형태로 이어령의 「韓·日전통의 근간은 선비정신과 무사도」(2001), 신현승의 「조선 선비의 사도와 일본 사무라이의 무사도」(2009)가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학계에서 이루어진 선비와 무사의 비교연구를 중국의 경우까지 확장하여 비교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앞서 오금성의 지적 외에도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선비와 무사의 개념 형성에 중국의 영향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선비와 무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중국의 지식인 사정은 어떠한가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둘째, 선비와 무사를 비교한 결과, 양자의 문사적인 특징과 무사적인 특징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중국의 관료적인 특징이 강한 신사를 함께 비교한다면 선비와 무사는 또 어떠한 특징을 갖게 될 것인가, 좀 더 상세한 비교분석이 필요하다. 셋째, 해외 학계는 중국의 신사(gentry)와 일본의 무사(bushi)에 대해서는 연구도 많고 그 성과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선비(seonbi)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해외학계에 ‘선비’가 중국의 신사나 일본의 무사에 대응되는 개념이며 전근대시대 한국적인 지식인의 전형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전통시대 한국에도 일본이나 중국의 지식층에 해당하는 고유한 지식인 문화가 있었으며 그 문화는 신사나 무사와는 다른 개성과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어필할 필요성이 있다.

    이 연구는 한중일 삼국의 사 개념과 그 이상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분석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차이가 각 사회의 사상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하는 문제도 집중적으로 분석, 비교 고찰한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이점은 그동안의 연구에서 볼 수 없었던 점으로 ‘사’를 둘러싼 연구가 한 단계 더 비약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나아가 이 연구에 대해서 또 한 가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 연구를 통해서 한중일 사회의 ‘지식’과 ‘지식사회’의 서로 다른 특징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 사회가 앞으로 미래에 어떠한 경향의 ‘지식’들을 창출하게 될 것인지, 그들 사회가 형성하게 될 미래의 ‘지식사회’는 어떠한 특징을 갖게 될 것인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진단과 예측을 가능케 할 성과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왜냐하면 이 연구는 근대 직전의 수백여년 간에 걸쳐서 형성된 각 사회의 지식인 ‘사(士)’에 대한 개념과 이상이 각 근대사회의 종교사상, 정치사상, 철학사상 나아가 과학사상 등에 미쳤던 영향까지 고찰의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현대사회는 분명히 전통사회와는 어느 정도 단절되어 있지만 그 심층부에는 여전히 전통사회의 관념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심층부의 관념들과 경향을 드러내고자 하는 점이 이 연구의 최종적인 목적이며, 역시 가장 독창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 연구요약
  • <제1주제>
    조선의 ‘사’는 조선시대에 주자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오늘날의 선비개념으로 정착하였다. 일반적으로 ‘선비’는 벼슬에 나가지 않는 사람을 지칭하였으나, 벼슬을 하는 사람도 선비로 부른 경우가 있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에도시대에 이후에 주자학과 양명학의 영향을 받아 ‘사무라이’가 지식과 덕성을 갖춘 ‘무사(武士)’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중국에서 ‘신사’는 명청시대를 거치면서 정착되었다. 조선의 ‘선비’에 비하면 중국의 ‘신사’는 분명한 지배층이었으며, ‘관료’였다. 이러한 입장에서 한중일 삼국의 ‘사’ 개념과 그 형성과정을 고찰하고자 한다.

    <제2주제>
    배상제교, 동학, 천리교의 교조들은 각기 신비한 종교체험을 하였는데, 이 주제에서는 이들 세 사람의 ‘종교체험’에 주목하고자 한다. 홍수전은 자신의 종교체험 안에서 최고신 여호와의 아들로서 그리고 그 신이 보낸 ‘관료’로서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였다. 반면에 최제우는 스스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소개하기도 하고, 교사가 되는 소망을 가지기도 하였다. 한편 천리교의 나카야마 미키는 종교체험에서 ‘하늘의 쇼군(將軍)’으로 자임하였다. 이 연구는 바로 그러한 점에 주목하여 그들의 ‘사’에 대한 인식차이와 그러한 인식이 구체적으로 그들의 종교사상 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제3주제>
    이 연구는 신사․선비․무사의 이상형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 이상형을 서로 비교하여 동아시아 삼국인들의 사유구조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신사정신’, ‘선비정신’, ‘무사도’의 내용을 연구대상으로 한다. 이들 정신은 어느 한사람이나 한 시기에 정립된 것이 아니다.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논의함으로써 그러한 정신에 대한 정의가 이루어졌다. 그러한 다양한 논의들을 모아서 동아시아 전통지식인의 이상형을 규명하고 상호 차이점과 공통점을 비교분석할 예정이다.

    <제4주제>
    동양 삼국의 사 개념과 그 이상에 주자학이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이 주제는 그러한 주자학에서 파생된 양명학, 퇴계학, 소라이학을 선정하여 그 안에서 논의된 사의 개념과 사의 이상을 비교한다. 이 연구는, 주자학이 중국에서는 양명학으로, 조선에서는 퇴계학으로, 일본에서는 소라이학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각 사회의 지식인에 대한 개념과 이상이 그 사상내용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가설을 세워 ‘사’와 관련지어 논의를 진행한다. 특히 양명학이 갖는 ‘관료’학적인 성격, 퇴계학이 갖는 ‘선비’학적인 성격, 그리고 소라이학이 갖는 ‘무사’학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상호 비교를 시도할 계획이다.

    <제5주제>
    중국에서 ‘서학’이 현실세계에 적극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특히 태평천국 이후 양무운동이 시작되면서였다. 서양의 군함, 대포, 포술 등과 관련된 지식이 환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에 종교사상에만 주목하여 서양종교를 ‘서학’이라 불렀다. 종교사상이외의 과학지식은 주로 실학자들이 주목하였는데, 그들은 대개 도덕적인 수양을 위해서, 혹은 경세사상의 일부로 그러한 지식을 수용하였다. 일본에서 서구 지식은 ‘난학’이라는 이름으로 수용되었는데, 이러한 ‘난학’은 ‘실학’과는 달리 실생활에 바로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이 중시되었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과학지식이 철학이나 윤리와 결부되지 않았다. 이러한 몇 가지 점에 착목하여, 이 연구는 학술사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시도할 예정이다.

    <제6주제>
    서구의 근대 내셔널리즘과 접하면서, 19세기 하반기의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새로운 근대국가를 어떻게 건설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이 주제는 이러한 문제에 한중일 삼국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대응하고자 하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사의 개념과 그 이상형이 국가건설사상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조선의 경우는 ‘국방’의 개념이 경시된 점이나 도덕이 강조되고 있는 점을 주목하며, 일본의 경우는 외세를 잠재적인 ‘적군’으로 상정하고 ‘병법(兵法)’적인 입장에서 건국방략을 세우고 있음을 주목한다. 중국의 경우는 외국보다는 자국내문제에 집중적인 관심을 둔 점을 주목하여, 한중일의 국가건설사상을 분석해나갈 예정이다.
  • 한글키워드
  • 서구 지식,난학,민족주의,지식인,신사,무사,배상제교,천리교,국가건설,실학,서학,소라이학,퇴계학,양명학,무사도,선비정신,신사정신,동학,개념,선비,사,전통사회,한중일,동아시아
  • 영문키워드
  • Seonbi spirit,China and Korea and Japan,traditional society,intellectual,sa,shi,si,Gentry,Seonbi,Bushi,Bushido,East Asia,Yangmingxue,Toegyehak,Soraigaku,Silhak,Xixue,Rangaku,Western culture,state building,nationalism,Donghak,Taiping Hevenly Kingdom,concept,God Worshippers Society,Tenrikyo,Gentry sprit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 성과는 두편의 논문으로 정리되었다. 각 연구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논문 : 한중일 삼국의 ‘사(士)’ 개념 비교 고찰 - 선비․신사․무사 개념의 형성을 중심으로 >
    전체 내용은 Ⅰ. 머리말, Ⅱ. ‘사’의 기원과 의미, Ⅲ. ‘사’의 성격과 특징, Ⅳ. ‘사’의 미화, Ⅴ. 맺음말로 구성하였다. 선비(文士)․신사(紳士)․무사(武士)는 그 개념이 처음 생겼을 때, 지칭하는 대상도 미미하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미가 강해지고 그 대상이 세력화되었다. 선비의 경우는 고려시대(11세기경)에 학자들 사이의 ‘선배’라는 존경어로부터 시작하였으며, 무사는 헤이안 시대 말엽(10세기경) 동일본 지역의 무사들로부터 시작하였다. 한편 중국의 신사는 송나라 때의 사대부 전통을 이어받은 명나라 초기 향촌의 지식인들이 그 시작이었다.
    선비․신사․무사는 그 개념과 계층의 형성에 주자학이 깊은 영향을 미쳤다. ‘선배’ 개념이 ‘선비’ 개념으로 바뀌고 선비로서의 자긍심이 강했던 것은 바로 주자학자들의 자의식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였다. 일본에서도 에도시대 초기에 조선의 주자학, 특히 퇴계학이 전래되었는데, 덕목과 윤리를 강조하면서 새롭게 정립된 ‘무사’ 개념은 그러한 주자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중국의 신사 역시 기본적으로 주자학을 바탕으로 한 송대 사대부의 정신적인 영향을 받았다. 선비․신사․무사는 각 사회의 근대사회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조선의 선비는 고매한 도덕과 학문을 중시하였으나 문약한 지식인이었다. 조선 왕조가 몰락한 것은 조선 사회의 최고 지식인이자 리더였던 그들의 그러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였다. 일본의 무사는 양명학적인 실천을 중시하고 병법학과 서양의 실용적인 학문을 적극 수용하였다. 근대 일본이 제국주의로 무장하여 해외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발전을 거듭한 것은 그들의 무사적인 활약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신사는, 청나라 만주족이 강할 때에는 향촌의 권력을 공유하는데 그쳤으나, 그 세력이 약해진 청나라 정권이 사회 개혁을 추진하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그러나 결국에는 청나라를 전복하고 새로운 공화정부를 세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선비․신사․무사는 전통시대가 지난 뒤, 근대에 들어와서 그 의미가 재평가되고 미화되었다.

    <제2논문 : 한중일 삼국의 근대 종교사상에 나타난 ‘사(士)’의 이상 - 배상제교․동학․천리교의 종교사상 상호비교를 중심으로>
    목차는 다음과 같다. Ⅰ. 머리말, Ⅱ. 현실적인 신분, Ⅲ. 추구했던 이상, Ⅳ. 사상적인 지향, Ⅴ. 맺음말.
    이 논문은 근대 동아시아 삼국의 대표적인 신종교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배상제교, 조선의 동학, 그리고 일본의 천리교를 선택하여 각 종교 교리 가운데 내포되어 있는 지식인 ‘사(士)’의 이상적인 이미지와 사상적인 경향을 살펴본 것이다.
    특히 각 종교교단의 교조 즉 배상제회의 홍수전(洪秀全, 훙시우취엔, 1814-1864), 동학의 최제우(崔濟愚, 1824-1864), 그리고 일본 천리교의 나카야마 미키(中山みき, 1798-1887)의 사상을 중심으로 살폈는데, 그들의 신분적인 위상, 종교체험, 그리고 사상적인 지향 분석을 통해서 상호간의 차이점을 비교, 고찰하였다.
    이들 세 사람이 추구했던 이상은 각자가 어려운 환경에서 겪은 종교체험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홍수전은 하늘이 보낸 관리로서 신으로부터 칼과 도장을 받았으며, 최제우는 주문과 부적을 받아 그것으로 사람들을 가르쳐 신을 위하도록 하였다. 미키는 자기 자신이 하늘의 ‘쇼군(將軍)’이 되기도 하고, 또 그러한 쇼군을 섬기는 자가 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스스로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실용적이며, 현세이익적인 다양한 징표들을 만들어 제공했다.
    그렇다면 신분적으로도 이상적으로도 신사·선비·무사였던 세 사람은 각자가 만든 종교에 어떠한 사상을 담았을까 홍수전은 끊임없이 중국 내부로 관심을 돌리고 거기에 들어가 있는 악마적인 존재를 제거하고 평화를 이루는데 관심을 가졌다. 태평천국의 혁명 논리는 여기에서 나왔다.
    최제우는 교인들을 가르치고 수양시키는데 관심을 가졌다. 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익보다는 추상적인 사상에 집착하였다. 반면에 미키는 ‘인간’을 위한 구제를 선언하고 현실적인 이익을 제공하고자 하였으나, 그러한 이익은 오직 ‘우리 편’ 혹은 ‘일본’에만 한정된 것으로 ‘타자’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입장을 취했다. 아울러 그녀의 관심은 끊임없이 ‘외부’로 향했는데 그 외부는 정복하고 극복해야할 대상이었다.
  • 영문
  • There are 2 papers in this study as follows.

    [ Paper 1 : A Comparative Study on the Intellectual - Sa(士) in China, Korea, and Japan : Focused on the Concepts of Gentry, Seonbi, and Bushi ]

    When the concepts of the traditional intellectuals, Seonbi(文士), Gentry(紳士), and Bushi(武士), firstly formed in Korea, China and Japan, its subjects were petty affairs. Afterward, however, the concepts and the power of the intellectuals became more strong.
    In the case of Seonbi, it started from the word "Seon-bae(先輩)" which meaned senior among learned men in Korea. The term "Bushi" or "Samurai" was originated from "Bushi", the traditional soldier of Japan, in the end of Heian period. Gentry or "Shenshi(紳士)", the Chinese intellectuals, started from the intellectuals lived in the country of the early Ming dynasty. Neo-Confucianism had a deep effect on forming the concept and the class of the intellectuals, Seonbi, Gentry and Bushi in the old East Asian society.
    The collapse of Chosun dynasty was, to some degree, cased by the society's intellectual leaders or Seonbi who pointed to moralism and was eager to do moral training. On the other hand, Bushi of Japan regarded Wang Yang-ming's thought practice as important, and actively adopted the learning and the military knowledge of Western civilization. In China, when the Manchu - Qing regime was strong, Gentry holded power of country in common with Manchurian. After all, however, they played a decisive role in overthrowing Qing dynsty and establishing a new republican government. After the traditional ages, in Modern times the meaning of the Asian intellectuals, Seonbi, Gentry and Bushi, have been revaluated and idealized.


    [ Paper 2 : The Intellectuals' Ideals in the Traditional East Asian Societies - Focused on the Religious Thoughts of Donghak, Tenrikyo and the Society of God Worshippers ]
    The paper investigates the ideal image and the ideological tendency of the traditional intellectuals in the East Asian Societies by analyzing the religious thoughts of Donghak, Tenrikyo and the Society of God Worshippers, which were the representative religious bodies in Korea, Japan and China.
    In particular, this paper focuses on the founders' thoughts of the religious organizations, such as Choi Jewoo(崔濟愚, 1824-1864) of Donghak, Nakayama Miki(中山みき, 1798-1887) of Tenrikyo and Hong xiuquan(洪秀全, 1814-1864) of the Society of God Worshippers.
    The results obtained from the study are as follows:
    Choi Jewoo's father was a teacher in a rural village, and so Choi Jewoo also wanted to be a teacher. Afterward when he had religious experiences, in the trance state, he became a teacher. Consequently, his religious thoughts were based on the ideal teacher's stance.
    Nakayama Miki respected her father, who was a low-ranking warrior or bushi(武士). And when she experienced strange experiences, she became a high-ranking warrior or shogun(將軍). On this account, many of her religious thoughts were based on the ideal bushi's position.
    Hong xiuquan's father was a low-ranking local official, therefore Hong xiuquan wanted to be a high-ranking official since childhood. Later, he took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s only to failed. And so when he had religious experiences, he became an official appointed by God. And his religious thoughts, in many cases, depended on the ideal official's stanc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 지식인을 의미하였던 ‘사(士)’에 관해서 그 의미를 고찰하고 나아가 각 사회에 미친 영향을 분석, 비교하고자 한 것이다. 여기에서 ‘동아시아’란 한중일 3국을 말하며, ‘전통사회’란 전근대사회를 의미한다. 다만, 연구 대상이 되는 시기는 근대 직전뿐만 아니라 직후의 시기도 포함하여 논의한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는 명청시대와 민국초기, 조선에는 조선시대와 그 직후, 그리고 일본에서는 에도시대와 명치 초기에 걸친 기간을 포함한다. 이렇게 근대 초기까지 연구의 범위를 상정한 것은 ‘사’ 개념의 형성뿐만 아니라 그 영향도 함께 고찰하기 때문이다.

    부제목에서 ‘그 문화가 각 사회에 미친 영향’이라는 표현에서 ‘문화’란, ‘사’ 문화전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 개념이 정착되는 과정 중에 각 사회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의 이상형에 관한 논의들’을 의미한다. 이상적인 사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관한 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는 신사정신․선비정신․무사도 등으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다. 이들 정신은 어느 한사람이 정한 것이 아니라 각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문화’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사’ 개념은 사대부(士大夫)라는 전통적인 개념으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부를 수 있는 신사(紳士)․선비(士)․무사(武士)의 개념으로 정착하였다. 이러한 개념의 정착에는 중국 주자학의 영향이 크다. 다만 일본의 무사도는 주자학이후에 형성된 양명학의 영향도 크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의 개념과 이상형이 각 사회에 미친 영향을 1) 종교사상에 대한 영향, 2) 철학사상에 대한 영향, 3) 서구 지식의 수용에 대한 영향, 나아가 4) 근대 정치사상에 대한 영향으로 나누어 논할 계획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종교사상에 대한 영향은 19세기 중반에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신종교인 배상제교, 동학, 천리교를 대상으로 고찰한다. 철학사상에 대한 영향 고찰은 양명학, 퇴계학, 소라이학을 선정하여 그 안에 담겨 있는 ‘사’의 개념과 그 ‘이상형’을 살펴본다. 서구지식의 수용에 대한 영향은 서구의 종교․과학․철학 등 문화를 동아시아 3국 사회가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받아들였는지를 상호비교하며, 정치사상에 대해서는, 주로 근대초기의 국가건설사상에 주목하여 이러한 사상에 미친 ‘사’ 인식의 영향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구체적으로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이 6가지 주제로 나누어 3년에 걸쳐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제1주제 ‘한중일 삼국의 사(士) 개념 비교 고찰’은 전체 연구의 서론적인 부분이다. 이 연구를 통해서 이 연구에 필요한 기본적인 개념을 정리할 예정이었다.
    제2주제 ‘한중일 삼국의 근대 종교사상에 나타난 사(士)의 이상‘은 ‘사’의 개념이 종교사상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고자 하기도 한 것이지만, 전체 연구에서는 가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주제연구를 통해서 삼국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사’ 개념과 그 이상형의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판단하였다.
    제3주제 ‘전통시대 한중일 삼국 지식인 ‘사(士)’의 이상형 비교’는 근대 직전의 시기를 거치면서 ‘사’의 이상형이 각국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고찰할 계획이었다.
    제4주제 ‘한중일 삼국의 유학사상에 나타난 ‘사(士)’ 개념과 그 이상’는 철학적인 분야에서 그러한 ‘사’의 이상형이 어떻게 논의되고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고찰하기 위한 주제이다.
    제5주제 ‘사(士)에 대한 인식차이가 서구 지식의 수용에 미친 영향’은 근대 직전의 시기에 서구 지식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사의 인식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각 학문의 내용 비교를 통해서 살펴보는 것이다.
    제6주제 ‘사(士)에 대한 인식차이가 국가건설 사상에 미친 영향’은 정치사상으로 눈을 돌려서 각 사회의 국가건설 사상이 사의 개념과 그 이상형으로부터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고찰할 예정이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 연구는 원래 3년간 추진할 계획이었으나 1년만에 지원이 중단되어 2편의 논문만 발표하게 되었다. 각 논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논문: 한중일 삼국의 근대 종교사상에 나타난 ‘사(士)’의 이상 - 배상제교․동학․천리교의 종교사상 상호비교를 중심으로>
    선비․신사․무사는 그 개념이 처음 생겼을 때, 지칭하는 대상도 미미하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미가 강해지고 그 대상이 세력화되었다. 선비의 경우는 고려시대(11세기경)에 학자들 사이의 ‘선배’라는 존경어로부터 시작하였으며, 무사는 헤이안 시대 말엽(10세기경) 동일본 지역의 무사들로부터 시작하였다. 한편 중국의 신사는 송나라 때의 사대부 전통을 이어받은 명나라 초기 향촌의 지식인들이 그 시작이었다.
    선비․신사․무사는 그 개념과 계층의 형성에 주자학이 깊은 영향을 미쳤다. ‘선배’ 개념이 ‘선비’ 개념으로 바뀌고 선비로서의 자긍심이 강했던 것은 바로 주자학자들의 자의식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였다. 일본에서도 에도시대 초기에 조선의 주자학, 특히 퇴계학이 전래되었는데, 덕목과 윤리를 강조하면서 새롭게 정립된 ‘무사’ 개념은 그러한 주자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중국의 신사 역시 기본적으로 주자학을 바탕으로 한 송대 사대부의 정신적인 영향을 받았다.
    선비․신사․무사는 각 사회의 근대사회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조선의 선비는 고매한 도덕과 학문을 중시하였으나 문약한 지식인이었다. 조선 왕조가 몰락한 것은 조선 사회의 최고 지식인이자 리더였던 그들의 그러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였다. 일본의 무사는 양명학적인 실천을 중시하고 병법학과 서양의 실용적인 학문을 적극 수용하였다. 근대 일본이 제국주의로 무장하여 해외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발전을 거듭한 것은 그들의 무사적인 활약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신사는, 청나라 만주족이 강할 때에는 향촌의 권력을 공유하는데 그쳤으나, 그 세력이 약해진 청나라 정권이 사회 개혁을 추진하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그러나 결국에는 청나라를 전복하고 새로운 공화정부를 세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선비․신사․무사는 전통시대가 지난 뒤, 근대에 들어와서 그 의미가 재평가되고 미화되었다.

    <제2논문 : 한중일 삼국의 근대 종교사상에 나타난 ‘사(士)’의 이상 - 배상제교․동학․천리교의 종교사상 상호비교를 중심으로>
    이 논문은 근대 동아시아 삼국의 대표적인 신종교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배상제교, 조선의 동학, 그리고 일본의 천리교를 선택하여 각 종교 교리 가운데 내포되어 있는 지식인 ‘사(士)’의 이상적인 이미지와 사상적인 경향을 살펴본 것이다.
    특히 각 종교교단의 교조 즉 배상제회의 홍수전(洪秀全, 훙시우취엔, 1814-1864), 동학의 최제우(崔濟愚, 1824-1864), 그리고 일본 천리교의 나카야마 미키(中山みき, 1798-1887)의 사상을 중심으로 살폈는데, 그들의 신분적인 위상, 종교체험, 그리고 사상적인 지향 분석을 통해서 상호간의 차이점을 비교, 고찰하였다.
    이들 세 사람이 추구했던 이상은 각자가 어려운 환경에서 겪은 종교체험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홍수전은 하늘이 보낸 관리로서 신으로부터 칼과 도장을 받았으며, 최제우는 주문과 부적을 받아 그것으로 사람들을 가르쳐 신을 위하도록 하였다. 미키는 자기 자신이 하늘의 ‘쇼군(將軍)’이 되기도 하고, 또 그러한 쇼군을 섬기는 자가 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스스로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실용적이며, 현세이익적인 다양한 징표들을 만들어 제공했다.
    그렇다면 신분적으로도 이상적으로도 신사·선비·무사였던 세 사람은 각자가 만든 종교에 어떠한 사상을 담았을까 홍수전은 끊임없이 중국 내부로 관심을 돌리고 거기에 들어가 있는 악마적인 존재를 제거하고 평화를 이루는데 관심을 가졌다. 최제우는 교인들을 가르치고 수양시키는데 관심을 가졌다. 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익보다는 추상적인 사상에 집착하였다. 반면에 미키는 ‘인간’을 위한 구제를 선언하고 현실적인 이익을 제공하고자 하였으나, 그러한 이익은 오직 ‘우리 편’ 혹은 ‘일본’에만 한정된 것으로 ‘타자’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입장을 취했다.
    <활용 방안>
    이러한 연구 성과는 교육현장에서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며, 단행본 저서 형태로 출판하여 일반 사회의 독자들이 한중일의 지식인 사회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 색인어
  • 동아시아, 전통사회, 지식인, 신사, 선비, 무사, 한국, 중국, 일본 East Asia, Japan, Korea, China, intellectuals, traditional society, Gentry, Shenshi, Seonbi, Bu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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