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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군주의 불교신앙과 그 정치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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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0-327-B00013
선정년도 2010 년
연구기간 1 년 (2010년 05월 01일 ~ 2011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부남철
연구수행기관 영산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이 연구는 유교국가 조선에서 군주들이 일부는 공공연하게 또는 일부는 은밀하게 유지하였던 불교 신앙의 정치적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의 군주라는 위치 때문에 조선조 군주의 종교적 신앙은 현실 정치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조선의 군주들은 특이하게도 건국초기 부터 자신의 신앙과 국가의 정책적 필요를 구분하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태조와 세종의 사례가 그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신앙의 차원에서는 불교를 믿었지만 국가재정의 확보를 위해 불교 사원을 압박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종교 경향을 정치에 반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에 대해 아무런 우호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수동적이었지만 불교를 이단으로 배척하는 유학자 관료들의 압력에서 불구하고 불교의 존재를 묵인했으며 불교적인 제도와 신앙의 형태가 정치권에서 존속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유교와 불교의 갈등 관계가 어느 정도 정돈된 조선 중기 이후에는 불교계를 국가 정책적인 차원에서 묵인 또는 관용했다. 불교라는 것이 유학자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심각하게 국가의 존립에 위협적인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불교를 이단이라고 하면서 배척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존재 자체를 완전히 부인하는 그런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 정책적 묵인하에서 불교는 존속하면서 일정 부분 종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국가적인 사업에 협조했다. 이 논문에서는 조선조 군주가 이렇게 했던 것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찾아보려는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는 유교가 유일적 통치이념으로 작동된 이념적으로 단순한 국가라는 편견을 극복하는 자료를 찾고 서술함으로써, 조선시대에도 이념적 종교적 다원성이 존재했으며, 정치가 유교적으로만 운영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려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조선조에 있어서 유교가 현실의 정치를 이념적으로 지도한 측면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여 현실 정치의 세계에는 이념적인 자율성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한다. 현실의 정치가 이념의 노예가 아니라 당면한 정치적 목적과 필요에 따라 이념과 종교가 선택된 측면도 일부 있었다는 점을 말하려고 한다. 연구자는 특히 그러한 조선시대 정치의 특성이 군주의 정치에 잘 나타난다고 하는 입장에서 조선시대에는 예민했던 쟁점이었던 군주의 종교 신앙의 문제를 분석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의 군주는 일반 유학자 관료들과는 달리 국정을 원만하게 운영해야 하는책임 때문에 현실 정치의 차원에서 필요하다면 이념 문제에 있어서도 매우 유연하게 결단을 내렸다. 연구자는 이 논문에서 조선조 군주가 개인적으로는 불교 신앙을 가진 사례가 다수 있었고,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신앙의 차원이외에도 분명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고한다.
  • 기대효과
  • 1) 이러한 연구는 조선시대에도 불교, 도교, 무교 등 다양한 종교가 존재했으면, 그러한 상황을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군주가 잘 이해하고 있었고 또 그런 상황을 정치적으로 선용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런 연구는 조선시대의 종교적 이념적 다양성 측면을 알리는 효과가 있다. 조선시대 정치라고 하면 유교의 이념에 구애되어 답답하게 정체된 것이 그 특징인 것으로 오해되었던 측면을 불식시키자는 것이다.
    2) 또한 이 연구는 영문으로 발표할 예정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해외의 한국학 연구자들도 조선시대 정치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3) 이 연구는 불교학 연구에 있어서 사회과학적 관점을 형성하는데 참고가 될 것이다. 정치사상 연구에 있어서도 불교와 정치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던 조선시대의 사례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정치사상 분야의 연구 영역을 확장한다고 할 수 있다.

  • 연구요약
  •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서술된다.
    1) 조선시대에 군주들의 불교 신앙이 어떤 형태로 유지되었는가를 보기 위하여 연구의 순서를 시대순서로 배열하였다. 우선 조선건국기, 조선전기를 보면, 고려의 유습이 있어서 불교가 여전히 다수의 신앙을 존속했고 군주들 역시 불교 신앙을 유지했다. 태조, 세종, 세조가 그런 사례다. 특히 세종의 경우는 내불당을 궁궐안에 두면서 불교 신앙을 유지하면서 유학자 관료들과 갈등을 관계에 처하기도 했다. 세조는 불경언해 작업을 주도하였다. 한편 유학자 관료들은 군주의 불교신앙을 비판하면서 유교적 제도를 만들어갔다. 이 시기에 있어서 군주의 불교 신앙 문제에 대해 군주와 관료가 극단적인 대결의 차원으로 그 갈등이 심화되지 않았던 것은 군주가 자신의 신앙과 국가 정책을 구분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군주는 자신의 신앙을 정책에 개입시키지 않았다. 바로 이러한 경향이 유교 국가 조선에서 군주들이 지속적으로 유지한 태도였다. 이 논문에서는 특히 이러한 군주의 태도의 정치적 의미를 집중적으로 조사한다. 시기적으로는 조선건국기, 조선전기를 연구자는 유교와 불교, 무교의 종교적 혼합시대로 규정하고 이 시기의 군주 정치를 불교와의 관련성에서 살펴본다.
    2) 조선 중기는 유교의 정치제도 정비되고 유교적 가치관이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군주는 과거의 전통을 유지하려고 했고 강경한 유학자 관료들은 자신들이 규정한 이단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공격했다. 또한 일부 군주는 이런 유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불교에 대한 억압 정책을 유지했으니 그 불교의 존재를 위협하는 차원까지 진행하지는 않았다. 이런 시기의 군주의 입장과 태도에 대해서는 군주의 억압과 묵인, 동원의 불교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한편 불교에서도 유학자 관료들과의 충돌을 피하고 나름대로 생존을 모색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부과하는 각종의 의무와 부담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으며 전쟁의 시기에는 승병의 형태로 참전하였다.
    3) 조선 후기에 있어서는 이러한 유교와 불교의 갈등 관계가 실질적으로 정리된 상황이었다. 유학자들도 불교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공격하지 않았고 불교계에서도 유학자들과 대결을 원하지 않았고 국가의 정책에 순응했다. 그래서 국가적으로도 불교에 대한 억압은 심하지 않았다.이런 시기에 있어서 군주들은 소극적인 수준에서 또는 은밀하게 불교 경전의 간행을 후원했고, 사찰을 건립하면서 자신와 왕실을 위한 신앙 활동을 유지했다.
    이렇게 하면서 조선의 군주들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불교 신앙에 의지했고, 그러한 종교적 우호감을 바탕으로 국가적인 필요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불교계를 동원했다. 또한 국가적으로도 일반 백성의 신앙의 형태로 존속하는 불교에 대해 방임함으로서 정치권의 개입 없이 자연스럽게 백성들의 종교적 갈등이 충족되도록 했다. 이렇게 온건하고 현실적인 군주의 종교 정책 속에서 조선에서 종교가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4)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연구자는 1) 조선 시대 군주의 현실적이고 유연한 종교인식, 2) 군주가 인식한 불교의 정치적 유용성 측면, 3) 권력의 정당성의 원천으로서의 유교와 동시에 불교를 함께 이용하였던 특징을 지적한다.
  • 한글키워드
  • 국가통합,이중적 종교정책,태조,세조,내불당,석보상절,법화경,유교적 종교비판,승병,서산,기화,고종,정조,묵인,현실주의적 정치,종교적 다양성,도교,유교,군주권,불교 신앙,조선조 군주,선조,중종,성종,왕사,국사,세종,유학자의 불교관,방임의 종교정책,권력의 정당성,억압
  • 영문키워드
  • Flexibility of Confuican religious policy,Buddhism,Korean Confucian culture,Rejection of Religion,legitimacy,Buddhism and national integration,Religions of Joseon,Korean studies,Joseon King,Joseon Dynasty,Confucian Kingship,anti-Buddhist policy,Confucian politics,belief,politcs and Buddhism,Confucian Scholar,Confucianism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유교국가 조선에서 군주들이 일부는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유지하였던 불교 신앙의 정치적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의 군주라는 위치 때문에 조선조 군주의 종교적 신앙은 현실 정치에 영향을 주었다. 조선의 군주들은 특이하게도 자신의 신앙과 국가의 정책적 필요를 구분하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신앙의 차원에서는 불교를 믿었지만 국가재정의 확보를 위해 불교 사원을 압박했다. 그러면서 유학자 관료들의 압력에서 불구하고 불교의 존재를 묵인했으며 불교적인 제도와 신앙의 형태가 정치권에서 존속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유교와 불교의 갈등 관계가 어느 정도 정돈된 조선 중기 이후에는 불교계를 정책적인 차원에서 묵인 또는 관용했다. 그런 정책적 묵인에 의해 불교계는 일정 부분 종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국가적인 사업에 협조했다.
    본 연구자는 조선시대가 정치적으로 유교만 있었던 이념적으로 단순한 국가라는 편견을 극복하는 자료를 찾고 서술함으로써, 조선시대에도 이념적 종교적 다원성이 존재했으며, 정치가 유교적으로만 운영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려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조선조에 있어서 유교가 현실의 정치를 이념적으로 지도한 측면은 있지만, 현실 정치의 세계에는 이념적인 자율성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한다. 당면한 정치적 목적과 필요에 따라 이념과 종교가 선택된 측면도 일부 있었다는 점을 말하려고 한다. 연구자는 특히 그러한 조선시대 정치의 특성이 군주의 정치에 잘 나타난다고 하는 입장에서 조선시대에는 예민했던 쟁점이었던 군주의 종교 신앙의 문제를 분석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군주의 불교 신앙 문제와 관련하여 이런 관점에서 서술하였다. 1)군주의 불교 신앙이 당면한 현실적인 정책적 목적 또는 이유 때문이라고 보았다. 2) 군주의 불교 신앙이 군주의 정치적 권위(권력의 정당성)의 원천으로 활용된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3) 일부 군주에게는 불교 신앙이 개인적인 필요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군주도 종교적 위안이 필요하였다는 관점이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2)번을 주목하고 있다. 그 결과 본 연구에서는 다음과 특징을 서술의 중심적인 내용을 서술하게 되었다. 1) 군주의 불교 신앙에 대해 조선의 군주들은 나름대로의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① 조선초기의 경향인데, 유교정치와 불교 신앙을 서로 모순적인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② 그 다음으로 조선의 군주들은 유학자 관료들이 이단으로 규정하는 불교와 그 제도의 폐지에 대해 "불교는 전통이다."라는 관점에서 그것의 변경에 대해 매우 보수적으로 대했다. ③ 또한 정치적인 방식으로의 대응인데, 조선의 군주들의 불교 신앙에 대한 유학자들의 비판에 대해 논리적인 대응을 하지 않은 방식을 취했다. 2) 이러한 근거나 합리화에 근거하여 조선의 군주들은 불교를 국가 정책적 목적에 활용하기도 했고, 불교계는 군주의 이런 요구에 대해 협력했다. 3) 이러한 군주의 불교 신앙 또는 불교에 대한 배려는 체제내의 통합과 안정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었고 그 결과 군주의 정치권위의 유지에 기여하는 점이 있었다.
    한편 조선의 군주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유교정치를 추구하고 유학자 관료들의 이념지향적인 요구와 충고를 수용하면서 동시에 불교와 같이 이념적으로 억압을 받은 집단에 대해서도 배려하고 정책적으로 활용했다. 이렇게 군주는 유학자 관료와는 달리 이념적으로 유연한 태도를 견지하였고 이런 마음의 상태에서 불교를 신앙으로 유지하거나 불교에 대해서 관용적으로 대할 수 있었다.
  • 영문
  • Joseon Kings’ personal belief in Buddhism and it Political Significance

    The officail idology of Joseon Dynasty(1392-1910) was Confucianism. But many Joseon Kings who had conviction to Confucian values as the state management theory also had the Buddhist beliefs personally. Joeson Kings’ Buddhist beliefs and practices were strongly criticized by the Confucian Scholar-officials as the undesirable behavior as the leader of a Confucian state. Despite of these criticism, Joseon kings did not give up their Buddhist beliefs.
    My paper consists of three parts. First, I explain the Joseon kings' theoretical defence of Buddhism and the the cases of Joseon Kings’ personal Buddhist belief and practices. Second, I focus on the Joseon kings' political authority and Buddhism as a sources of legitimacy. Third, I explain the flexible and realistic policies on Buddhism and Kings’ amicable response to Buddhism. Confucianism was regarded as the only source of the political authority of Confucian state Joseon King. But the fact that many Joseon people believed Buddhism could not be ignorable. Buddhism also could be the useful element to increase the people’s religious and political ties to Kings who believed in Buddhism.
    I think that the Joseon kings knew that this fact and used it politically. Confucianism was the dominant elements of the Kings’ political authority and the sources of the legitimacy of Joseon Dynasty. But the kings Buddhist beliefs and amicable policies to Buddhism have its political significance in that they contributed to the formation of people’ s friendly feeling toward the kings and the integration of national unit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유교국가 조선에서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군주가 유학자들이 이단으로 규정한 불교를 믿었던 것에 대해 그 정치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분석한 것이다. 유학자 관료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군주들은 불교 제도의 존속에 대해 여러가지 이유를 대면서 변호했다. 그것은 선왕의 결정이라거나 전통이라는 이유를 들어 불교에 관한 제도의 폐지에 있어서 소극적이었다. 일반 백성들이 다수 불교를 믿었던 조선초기에는 군주들이 적극적으로 불교 신앙과 유교정치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일부 군주는 유학자 관료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서 그것에 대해 대응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간을 끌면서 비판을 피하기도했다. 이렇게 조선의 군주가 불교에 대해 집착하거나 관용을 베풀었던 이유에 대해, 본 연구에서는 1) 불교가 일부 군주의 개인적 신앙이었다는 점을 밝히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고 조선초기 일부 군주에 국한 된 것이었다. 2) 그 다음으로, 불교는 군주의 정치권위를 정당화하는 요소로 동원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조선은 유교 국가였기 때문에 군주의 정치권위는 오직 유교의 정치 논리로만 정당화시킨 것 같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에 일반 백성들은 다수가 불교를 신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설득력을 얻기 위해 불교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는 것, 조선 이라는 새로운 왕조의 등장을 정당화했다. 3) 조선 군주의 불교 신앙은 또한 조선의 정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불교계가 고려시대와 같은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또 지속적으로 억압을 받기만 했다면 물리적으로 저항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군주들은 불교계에 대해 드러나지 않게 후원하고 이들을 배려했다. 이런 점을 불교계에서도 알았기 때문에 국가의 정책에 협력하고 전시에는 승병을 조직하여 자발적으로 참전하였다. 4)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조선의 군주는 이념적으로 유연했고 국가의 다양한 요소의 존재를 고려했으며 현실적인 정책을 전개했던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리고 이런 군주의 정책이 조선의 국가적 통합과 체제의 안정적 유지에 기여했다고 보았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는 조선시대 군주의 불교 신앙과 불교에 대한 관용정책을 분석하면서 그들의 유연하고 실용적인 통치 방식에 대해 서술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① 학술적으로 한국정치사상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연구 대상인 군주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조선시대 군주에 대해서는 그 성격에 있어서 유부단함과 이념적으로 모호함 등이 단점으로 거론되어 왔는데 본 연구는 군주의 이런 모습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했던 군주들의 정책결정이나 처신도 나름대로 그 상황에서 적합했던 대응 방식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강한 이념적 소신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맹자가 말한 바와 같이 소신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각오를 가졌던 지사(志士)였다. 이들은 대부분 이상적인 유교정치를 주장했는데, 이념적으로는 경직되고 배타적인 것이 문제였다. 물론 그런 태도가 그 시대에는 유학자들 사이에서는 모범적인 것이고 장점이 될 수 있으나 현실의 정치에서는 그런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었다. 조선의 군주들은 이런 유학자 관료들의 충고를 경청하면서도 한편으로 이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승려들을 배려하고 보살펴줌으로써 이들의 국가와 군주에 대한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경영의 기술이 있었다. 이러한 점은 최근에 세간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는 경영과 리더쉽 연구에 있어서 참고할 만한 사례로 소개될 수 있다. 또한 본 연구와 같이 조선 군주의 불교 신앙 문제를 분석하는 작업은 유교국가로만 알려진 조선시대의 이념적 다양성의 측면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지금까지 조선시대 연구에 있어서 특히 정치사상 분야에 있어서는 유교에 집중되었던 연구가 이제 불교나 그 외의 다양한 요소에도 관심을 갖게 하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② 본 연구 성과는 외국인에게 한국을 교육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본 연구는 영문학술지에 게재되기 때문에 한국학(Korean Studies)에 관심을 두는 외국학자들은 이를 참고할 수 있다. 이는 전문 학자들을 위한 것이고, 이와는 별도로 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조선시대의 역사와 유교정치를 소개하는 영문 소책자를 발간하려고 한다. 최근의 한류의 영향으로 외국의 일반 독자들은 조선시대의 사극을 많이 알고 있고 조선의 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킬 수 있으면서 동시에 조선시대 군주와 유학자 관료들의 생각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그런 자료가 필요한데, 본 논문의 내용을 그런 소책자를 만드는 자료로 활용하려고 한다.
  • 색인어
  • 군주, 불교 신앙, 정치적 의미, 불교와 유교, 전통으로서의 불교, 정도전, 불씨잡변, 기화, 이성계, 석왕사, 경국대전, 금산사 보리암, 정치적 권위, 권력의 정당성, 통치의 효율성, 정책의 유연성, 국가적 통합과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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