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수잔 글라스펠(Susan Glaspell, 1876-1948)은 현대 미국 연극의 어머니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 여성작가들을 “셰익스피어의 누이들”(Shakespeare's Sisters)로 부르듯이, 때로 ‘수잔의 누이들’(Susan's Sisters)로 불리는 이후의 미국 여성 작가 ...
본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수잔 글라스펠(Susan Glaspell, 1876-1948)은 현대 미국 연극의 어머니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 여성작가들을 “셰익스피어의 누이들”(Shakespeare's Sisters)로 부르듯이, 때로 ‘수잔의 누이들’(Susan's Sisters)로 불리는 이후의 미국 여성 작가들에게 그녀가 미치는 영향 또한 막대하다. 그동안, 동일한 프로빈스타운 극단을 중심으로 맹활약을 했지만, 유진 오닐은 미국 문학의 거목으로 인정받은 반면 글라스펠은 오닐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자료나 각주에 등장하는 정도로 사장되었던 사실에 페미니스트들은 부당함을 제기해왔다.그리고 '글라스펠 프로젝트'라고 불러도 과장이 아닐 만큼, 글라스펠의 작품들을 발굴하고 그녀가 누려 마땅할 자리로 복귀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제 한국에서도 수잔 글라스펠은 꽤 알려진 여성 작가이며, 남녀의 글쓰기의 차이의 문제와 정전에서의 여성작가의 자리 회복문제와 관련하여 그녀의 희곡 『사소한 것들』(Trifles, 1916)은 많은 비평적 주목을 받고 상당부분 연구되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의 적극적인 발굴 작업 이후에도 글라스펠은 잠깐 주목을 받은 후 다른 작가에 비해 희곡 분야에서 여전히 소외되고 있다. 그녀가 쓴 희곡 작품이 14편에 이르지만, 글라스펠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가 『사소한 것들』에 집중되어있고, 그녀의 단편이 50편 이상이며, 소설 역시 9편 이상이나 되지만, 소설 분야에서도 『사소한 것들』과 관련있는 ‘A Jury of Her Peers’에 대한 연구만이 배출되었을 뿐이다. 희곡분야에서는 약 10년 전에 나온『가장자리』(The Verge, 1921)에 대한 소개 논문과, 『바깥』(The Outside, 1917)을 포함시킨 글라스펠의 희곡 작품에 대한 2-3편의 석사논문이 나온 실정에 불과하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글라스펠이 미국 연극에서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을 인식한 가운데 남성과 여성의 글쓰기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작가로서 좀 더 주목받아 마땅한 작가라고 확신하기에 본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를 위해 글라스펠의 최초의 3막극 작품인『버니스』(Bernice 1919)와 글라스펠의 마지막 3막극 작품인『엘리슨의 집』(The Alison's House, 1930)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한국 연구자들에게도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관심과 글라스펠이라는 작가에 대한 주의 환기를 도모하고 보다 적극적인 후속 연구를 촉구하는 것에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 글라스펠 연구에 관한 메리 팝케(Mary Papke)의 평가, 즉 “한때는 잊혀져있었다가, 이제는 너무도 칭송받지만, 하지만 여전히 너무나도 한정되어있는 작가“(a writer once so forgotten, now so celebrated and yet kept so very limited)(20)는 영미권만이 아니라 한국의 학계에도 적용된다. 하지만 영미권에서는 2000년 들어 글라스펠 연구의 제2 전성기에 돌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글라스펠은 새로이 주목받고 있다. 2003년에 ‘수잔 글라스펠 학회’(Susan Glaspell Society)가 건립되었는가 하면, 2009년 런던공연을 비롯하여, 글라스펠의 작품들이 새로이 연극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또한 2000년 이후 최근 출판된 글라스펠 관련 비평 서적의 제목만 보아도 다양한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글라스펠에 대한 학자들의 새로운 관심이 시작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낭만주의자, 페미니스트, 모더니스트”라고 글라스펠을 평가한 프리드만(Friedman)의 평가가 정리해주듯이, 글라스펠에 대한 주요 연구들이 이런 갈래로 진행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 가운데 물론 페미니스트들의 열정적인 연구노력들이 단연 독보적인 것 또한 사실이다. 본 연구는 기존의 페미니즘적 시각에서의 글라스펠에 대한 주요 논의를 기반으로 하여 국내에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두 작품『버니스』와 『엘리슨의 집』을 연구 대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글라스펠에 대한 기존의 논의가 중심에서 벗어나 변방과 변두리적 존재인 여성과 틀을 허무는 여성들을 담은 기존의 체제와 관습의 허물기와 부정/부인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본 연구는 이제 글라스펠의 작품 세계 전반에 걸쳐 기본을 이루는 ‘부재’의 미학을 기반으로 하되, 허물기보다는 만들기 작업을 중심으로, 살아있는 여성이 아니라 죽은 여성들을 부재의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글라스펠이 “사소하게” 다루어져서는 안 될 작가이며, 한 작품만으로 일괄될 수도 없는 작가(Bach 94)라는 평가를 유념해볼 때에도 『사소한 것들』이라는 한 작품만을 중심으로 한 논의와 연구는 폭과 깊이에 있어 한정되고 일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기존의 글라스펠 연구에 대한 보안 작업이자 보강 강화 작업으로서도 또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