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 전시기 일본의 종군간호부들은 충군애국 또는 가계보조라는 의무를 큰 부담 없이 내면화하여 자신의 헌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제 전장에 임한 그들의 생활은 너무나 엄혹하였고, 그들에게 요구된 역할은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대체 ...
아시아태평양 전시기 일본의 종군간호부들은 충군애국 또는 가계보조라는 의무를 큰 부담 없이 내면화하여 자신의 헌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제 전장에 임한 그들의 생활은 너무나 엄혹하였고, 그들에게 요구된 역할은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대체로 16, 17세의 어린 소녀들에게 강요된 어머니, 또는 누이로써의 역할은 육체적 정신적 피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장에서의 폭격과 부상병 간호, 심지어 사망자의 처리에 이르기까지 실로 엄청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황군'의 간호부라는 미명 탓에 내색도 하기 어려운 처지였으며 때로는 나름대로 보람과 의미 있는 일로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말기에 가까울수록 전장의 어려움은 더 커가고 그들의 심신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고, 더욱이 종전 후 그들에게는 피해보상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전쟁에 의한 피해는 더 깊어갔다. 결국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그들은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맛보았으며, 지금도 그 상처는 가시지 않고 있다.
식민지 조선이나 대만의 간호부들은 일본 간호부와 또 다른 처지였다. 이들을 적십자간호부, 육군간호부, 기타 임시간호부로 구분한다는 것이 그리 선명한 작업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만큼 이들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어쨌든 일본적십자 구호간호부와 육군간호부의 구분은 간호부 양성과 모집의 주체에 따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 역할이나 실제 전장의 생활에서는 그들 사이에도 큰 차이는 없었다. 그만큼 전장이란 조건이 혹독하였기 때문이며 그런 점에서는 모두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인 간호부나 구호간호부 등과 조선인간호부의 차별은 일상적으로 존재하지만, 특히 임시나 단기로 종군한 기타간호부의 경우 그 자격, 임금과 근로 시간 등의 처우문제, 업무 자체의 차별 등 여러 측면에서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여러 간호부 중에서도 기타 임시간호부를 별도로 구분한 것은 동원 당시 여성 자신이 알고 응했는가, 일정한 교육을 받고 간호부에 종사한 것인가 등의 차이로 편의적으로 구분한 것이기도 하다. 이들이 별도의 교육도 없이, 또는 자신의 의지와 전혀 무관하게 간호부의 역할을 다해야 했던 것이야말로 또 다른 강제동원의 피해라 할 수 있다. 당시 역할이나 생활에서 그들 스스로 별다른 차별을 느끼지 않았다 하더라도 종전 후 보상 등에서 아직도 큰 차별을 받고 있고, 귀국 후 모국에서 처하게 되는 그들의 상황도 힘들기만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처지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마치 일본군의 협조자인양 친일파처럼 지목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도 사회적으로 따가운 눈총을 의식하며, 자신을 사회에 떳떳이 드러내기를 꺼려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그들의 생활에 적잖은 차별과 실생활의 어려움을 가중케 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전장에서 부상병을 돌보고 간호하는데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은 것은 친일 또는 전쟁 협조 여부를 떠나 그 때 그 곳에서 사람이 해야 할 도리였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당시에 부상병을 치료하여 다시 전장에 내보낸다는 것이 잘 한 일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고, 때문에 전후에는 자연히 반전, 염전, 평화 의식이 싹트지 않을 수 없었다. 본 연구가 그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보듬고 치유하는 데 일조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본 연구는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종군간호부의 동원 실태와 정체성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일제 식민지 시기 특히 아시아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여성 피해의 또 다른 사실들을 드러냈다. 때문에 본 연구의 활용 방안이나 기대효과는 우선 첫째, 한국근대사와 여성사 연구에 심화를 기하고 보다 일보 진전하는 데 일정한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둘째,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종군한 간호부피해자들이 사회적으로 그 피해 사실을 인정받고 개인적으로는 남은 생애에 보다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본 연구가 활용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셋째, 한일간의 전쟁 피해를 둘러싼 과거사 극복을 위한 올곧은 역사적 인식 확대에 작으나마 기여함으로써 한일간의 정당한 교류, 협력 등 미래 전망에 시사하는 바를 얻도록 한다.
끝으로 대중 여성을 포함한 일반인의 역사 교육, 교양 교육 등에 전쟁과 (피해)여성 자료로 활용됨으로써 전쟁과 평화, 젠더 문제 등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제고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