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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조선인 종군간호부의 동원 실태와 정체성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0-327-A00013
선정년도 2010 년
연구기간 1 년 (2010년 05월 01일 ~ 2011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신영숙
연구수행기관 이화여자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일제 시기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조선에서도 종군간호부로 나간 상당수의 여성이 있었다. 일본적십자사의 구호간호부 또는 육군간호부로 종군한 이들은 당연히 여자군속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여성들이었지만, 식민지 여성으로 군인은 물론 간호부 안에서도 다층적으로 여전히 차별 받았다. 이들에 대한 연구는 한국근대사에서는 물론, 여성사에서조차 거의 이뤄진 바가 없다. 다만 한국근대간호사의 한 부분으로 아주 약간 언급된 정도가 전부이다. 그밖에 최근 강제동원의 한 부분으로 또는 일본군의 명부 속에서 임시간호부, 용인 등의 신분으로 채용된 종군간호부를 군'위안부'와 비교한 연구 등 소략한 것에 불과하다. 그 경우에도 종군간호부의 실체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제 종군간호부들의 동원 배경과 군대 안에서의 생활, 그리고 종전 전후 그들은 어떤 사회적 상황에 처하게 됐는지 등에 대해 연구하고자 한다. 이는 일제 시기 여성사 연구의 빠져있던 부분을 채워 넣는 것 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전시의 여자군속이라는 피해여성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구명하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당시 전쟁의 피해여성은 군위안부와 여자정신대만이 아니었음을 밝혀주는 데 분명 기여할 것이다.
    동시에 바람직한 한일 관계 또는 동아시아 사회를 지향하는 오늘의 시점에서 전쟁 피해에 대한 올곧은 역사인식은 그 시기를 극복하는 데 선행돼야 할 전제 조건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본 연구가 한일 관계사 정립에 또 하나의 디딤돌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피해에 대한 보상은 차치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인 종군간호부도 일제의 전시하 여성동원의 피해자였음을 밝혀내는 것이 한국근대여성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지금까지 종군간호부 피해자들도 세상에 그리 커밍 아웃한 바가 없다. 이 점은 특히 일본의 종군간호부에 비교해볼 때 더욱 그러하다. 이 연구가 그들의 커밍 아웃은 물론 여성 인권 및 명예 회복에도 일정한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는 이들 종군간호부의 정체성에 관련되는 문제로 이들이 전쟁협력자나 동조자라면 친일파로, 피해자라면 정신대나 군'위안부'로 사회적으로 오해 받을까 하는 두려움이 없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 기대효과
  • (1) 학문적․사회적 기여도

    본 연구는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여성의 동원 및 피해상황을 종군간호부를 통해 밝힘으로써 전쟁으로 인한 여성 피해 사실을 드러낸다. 때문에 본 연구의 활용 방안이나 기대효과는 우선 한국근대사와 여성사 연구의 심화와 일보 진전에 일정한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둘째, 한일간의 전쟁 피해를 둘러싼 과거사 극복 문제에 올곧은 역사적 인식 확대에 작으나마 기여함으로써 한일간의 정당한 교류, 협력 등 미래 전망에 시사하는 바를 얻도록 한다.

    (2) 교육과의 연계 활용

    끝으로 본 연구는 역사, 여성사 교육의 자료로서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역사 교육, 교양 교육 등에 전쟁과 (피해)여성 자료로 활용함으로써 전쟁과 평화, 젠더 문제 등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제고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 연구요약
  • 이번 연구에서는 먼저 종군간호부 동원의 배경으로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일제의 여성동원정책 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조건과 간호 교육 등을 고찰한다. 둘째, 종군간호부 동원의 과정과 노동 실태를 시간적 공간적 차이를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중국, 만주 등으로 동원된 간호부들과 남방전선으로 간 여성들의 실태가 당시의 전황과 함께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동원 당시의 과정에서부터 전장에서의 종군 간호와 일상 생활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한 그 실상을 조명해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제는 이들에게 취업에 자원한 여성들이라고 늘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과연 피해자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사실 규명에 따른 성격의 분석, 고찰이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종전 시기 이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귀환하였는지, 군위안부와 다른 점이 어느 정도 있었는지, 여자 군속으로 엄정한 지위와 대우를 받았는지 등 일본군과 일제(官)의 조선인 종군간호부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도록 한다. 그것 역시 종군간호부의 역사상 실체를 총체적으로 구명하고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주요 변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구호간호부, 육군간호부, 임시간호부 등 다양한 종군간호부의 정체성이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며 특히 군인 남성들과의 차별 뿐 아니라 일본 종군간호부 여성과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상의 연구 내용을 가목차로 상정해 본다. 물론 연구가 진행되면서 약간의 변화는 당연히 있을 것이다.

    < 가 목 차 >

    머릿말
    1. 종군간호부 동원정책과 사회적 배경
    1) 간호부 동원 정책과 간호교육제도
    2) 국내, 가족 사정 - 동원이냐, 자원이냐
    2. 종군간호부의 생활 실태- 무엇을 어떻게 수행했는가, 생활상
    3. 조선인 종군간호부의 정체성 - 일본인 간호부, 전문 간호부 등과 비교
    1) 적십자 구호간호부
    2) 육군간호부
    3) 간호생도, 임시간호원, 견습생
    맺음말

    위의 연구를 위한 방법과 자료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젠더사연구 관점을 가지고 생활사 및 구술사 연구 방법론을 원용한다. 문헌 자료들은 당시의 일제 당국이나 군병원 등 관계자료는 물론 기왕의 종군간호부들의 증언들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신문 잡지 등 종군간호부 관련 기사 자료들은 단편적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자료임에 틀림없다.
  • 한글키워드
  • 동원생활실태 등,일제의 여성동원정책,종군간호부,전쟁과 여성피해,간호교육제도
  • 영문키워드
  • Korean military nurses,Japanese forced policy of Korean women's,system of nurse's education,the realities of military nurses's lives,etc.,war and the damage of women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연구는 일본의 종군간호부와 비교하여 조선인 종군간호부의 동원 배경과 과정, 전장에서의 역할과 생활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을 가늠해본 것이다. 일본간호부들은 충군애국 또는 가계보조라는 의무를 큰 부담 없이 내면화하여 자신의 헌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부심을 갖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적십자사 구호간호부이지만, 육군, 해군 간호부의 지원도 그런 사회적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전쟁 분위기 속에 그들은 말 그대로 '백의의 천사'를 선망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 전장에 임한 그들의 생활은 너무나 엄혹하였고, 그들에게 요구된 역할은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대체로 16, 17세의 어린 소녀들에게 강요된 어머니, 또는 누이로써의 역할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폭격과 공습에 대처하는 것에서부터 부상병 간호, 사망자의 처리까지 실로 엄청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황군'의 간호부라는 명분 아래 내색도 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결국 하나에서 열까지 그들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맛보았으며, 지금도 그 상처는 가시지 않고 있다. 그래도 피해자 일부는 후세에 바른 역사 인식과 반전평화의식을 심어주는 사회운동 등에 힘쓰고 있다.
    한편 식민지 조선이나 대만의 간호부들은 일본 간호부와 또 달랐다. 이들을 적십자간호부, 육군간호부, 기타 임시간호부로 구분한다는 것이 그리 선명한 것은 작업은 아니다. 단지 일적간호부와 육군간호부로 구분한 것은 간호부 동원이나 모집의 주체에 따른 것이라 하겠지만, 그 역할이나 실제 전장의 생활에서는 그들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 그만큼 전장이란 조건이 혹독하였기 때문이며 그런 점에서는 모두가 다 피해자라 할 수 있다.
    일본인 간호부 또는 적십자구호간호부 등과 조선인간호부의 차별은 특히 임시나 단기로 종군한 기타간호부의 경우 자격, 임금과 근로 시간 등의 처우문제, 그리고 업무상의 차별 등에서 나타날 수 있다. 그들은 당연히 주사, 투약 등 환자 간호라는 본업과 빨래 등 보조 업무 상의 차별을 경험하였으며, 민족적 성적 계급적 차별을 알게 모르게 경험하기도 하였다.
    또한 육군간호부 안에서도 기타 임시간호부로 구분한 것은 여성 자신이 알고 응했는가, 교육을 받고 간호부를 한 것인가 등의 차이로 편의적으로 구분한 것에 불과하다. 기타 임시간호부가 교육도 없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간호부의 역할을 다해야 했던 것도 또 다른 제도적 강제동원의 피해라 할 수 있다. 당시 그들 사이에 별다른 차별을 느끼지 않았다 하더라도 종전 후 보상 등에서 아직도 그들은 큰 차별을 받고 있고, 귀국 후 모국에서의 상황도 힘들기만 하였다. 개인적인 처지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일본군의 협조자로, 또는 전쟁의 동조자로 친일파처럼 지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을 사회에 떳떳이 드러내기를 꺼려하고 있다. 이런 것도 그들의 생활에 적잖은 차별과 실생활의 어려움을 가중케 하는 피해인 것이다.
    전장에서 부상병을 돌보고 간호하는데 몸을 아끼지 않은 것은 친일 또는 전쟁 협조 여부를 떠나 그 때 그 곳에서 사람이 해야 할 도리였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당시에 부상병을 치료하여 다시 전장에 내보낸다는 것이 잘 한 일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면서 전후에 반전, 염전, 평화 의식이 싹트지 않을 수 없었다. 본 연구가 그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보듬고 치유하는 데 일조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영문
  • The Real Mobilization and the Identity of Korean Military Nurses during the Asia-Pacific War


    War nurse is a general term for "nurses sent to the battlefield to attend on wounded soldiers". During the second Sino-Japanese War and the Pacific War, the shortage of nurses were made up by new recruits from Japanese Red Cross and army volunteers, whose number and identities are not clear. One Japanese dictionary defined that nurses were called "angels in white" and nursing was one of honorable occupations for women.
    In principle, military nurses could be divided into two groups; the Red Cross relief nurses who had received trainings from institutions like the Red Cross, and nurses who were recruited into the army. But in this thesis, three groups are divided temporarily.

    1) Red Cross Relief Nurse : Nurses in this category had pride as female professionals devoted to the authority of the Japanese Emperor and nation. Their spontaneity was encouraged on an institutional level.
    2) Army Nurse : These nurses thought that their sacrifice as women in a patriarchical society was compensated by the opportunity to improve themselves. They considered themselves proud members of the military and faithful (second grade) citizens of the Japanese Empire.
    3) Temporary Nurse, Practical Nurse and Nurse Intern, etc. : These nurses were mobilized while in training. Many of them were inexperienced, but they could not resist the social imperative. Many temporary nurses (臨看) or hired women (傭人) were mobilized as reserve labor force. They were subject to discrimination at work and with regard to the social position, and had no guarantee for the status.

    Military nurses in colonial Chosŏn were female professionals of a modern, but largely patriarchical society. They supported their families and had the chance to improve their social status. This, in addition to the pressure from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motivated them to respond to the call for recruits without much hesitation.
    They also were mobilized under the name of "angels in white" and played a key role for the communication between Japanese doctors and wounded Chosŏn soldiers. There were widespread discrimination in favor of Japanese nurses or relief nurses in training (education), wage, working hour and job description. In addition to the regular works of caring the sick, such as injection and drug preparation, they had to do the washing and other chores and experienced discrimination on the grounds of nationality, gender and class. The situation was even worse for those who had previously been ordinary army employees, such as 'comfort women', before they were incorporated as the temporary nurses. All of them are the poor victimes during the second Sino-Japanese War and the Pacific War.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연구는 일본의 종군간호부와 비교하여 조선인 종군간호부의 동원 배경과 과정, 전장에서의 역할과 생활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을 가늠해본 것이다. 일본간호부들은 충군애국 또는 가계보조라는 의무를 큰 부담 없이 내면화하여 자신의 헌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부심을 갖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적십자사 구호간호부이지만, 육군, 해군 간호부의 지원도 그런 사회적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전쟁 분위기 속에 그들은 말 그대로 '백의의 천사'를 선망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 전장에 임한 그들의 생활은 너무나 엄혹하였고, 그들에게 요구된 역할은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대체로 16, 17세의 어린 소녀들에게 강요된 어머니, 또는 누이로써의 역할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폭격과 공습에 대처하는 것에서부터 부상병 간호, 사망자의 처리까지 실로 엄청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황군'의 간호부라는 명분 아래 내색도 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결국 하나에서 열까지 그들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맛보았으며, 지금도 그 상처는 가시지 않고 있다. 그래도 피해자 일부는 후세에 바른 역사 인식과 반전평화의식을 심어주는 사회운동 등에 힘쓰고 있다.
    한편 식민지 조선이나 대만의 간호부들은 일본 간호부와 또 달랐다. 이들을 적십자간호부, 육군간호부, 기타 임시간호부로 구분한다는 것이 그리 선명한 것은 작업은 아니다. 단지 일적간호부와 육군간호부로 구분한 것은 간호부 동원이나 모집의 주체에 따른 것이라 하겠지만, 그 역할이나 실제 전장의 생활에서는 그들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 그만큼 전장이란 조건이 혹독하였기 때문이며 그런 점에서는 모두가 다 피해자일 뿐이다.
    일본인 간호부 또는 적십자구호간호부 등과 조선인간호부의 차별은 특히 임시나 단기로 종군한 기타간호부의 경우 자격, 임금과 근로 시간 등의 처우문제, 그리고 업무상의 차별 등에서 나타날 수 있다. 그들은 당연히 주사, 투약 등 환자 간호라는 본업과 빨래 등 보조 업무 상의 차별을 경험하였으며, 민족적 성적 계급적 차별을 알게 모르게 경험하기도 하였다.
    또한 육군간호부 안에서도 기타 임시간호부로 구분한 것은 여성 자신이 알고 응했는가, 교육을 받고 간호부를 한 것인가 등의 차이로 편의적으로 구분한 것에 불과하다. 기타 임시간호부가 교육도 없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간호부의 역할을 다해야 했던 것도 또 다른 제도적 강제동원의 피해라 할 수 있다. 당시 그들 사이에 별다른 차별을 느끼지 않았다 하더라도 종전 후 보상 등에서 아직도 그들은 큰 차별을 받고 있고, 귀국 후 모국에서의 상황도 힘들기만 하였다. 개인적인 처지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일본군의 협조자로, 또는 전쟁의 동조자로 친일파처럼 지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을 사회에 떳떳이 드러내기를 꺼려하고 있다. 이런 것도 그들의 생활에 적잖은 차별과 실생활의 어려움을 가중케 하는 피해인 것이다.
    전장에서 부상병을 돌보고 간호하는데 몸을 아끼지 않은 것은 친일 또는 전쟁 협조 여부를 떠나 그 때 그 곳에서 사람이 해야 할 도리였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당시에 부상병을 치료하여 다시 전장에 내보낸다는 것이 잘 한 일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면서 전후에 반전, 염전, 평화 의식이 싹트지 않을 수 없었다. 본 연구가 그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보듬고 치유하는 데 일조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아시아태평양 전시기 일본의 종군간호부들은 충군애국 또는 가계보조라는 의무를 큰 부담 없이 내면화하여 자신의 헌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제 전장에 임한 그들의 생활은 너무나 엄혹하였고, 그들에게 요구된 역할은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대체로 16, 17세의 어린 소녀들에게 강요된 어머니, 또는 누이로써의 역할은 육체적 정신적 피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장에서의 폭격과 부상병 간호, 심지어 사망자의 처리에 이르기까지 실로 엄청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황군'의 간호부라는 미명 탓에 내색도 하기 어려운 처지였으며 때로는 나름대로 보람과 의미 있는 일로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말기에 가까울수록 전장의 어려움은 더 커가고 그들의 심신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고, 더욱이 종전 후 그들에게는 피해보상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전쟁에 의한 피해는 더 깊어갔다. 결국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그들은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맛보았으며, 지금도 그 상처는 가시지 않고 있다.
    식민지 조선이나 대만의 간호부들은 일본 간호부와 또 다른 처지였다. 이들을 적십자간호부, 육군간호부, 기타 임시간호부로 구분한다는 것이 그리 선명한 작업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만큼 이들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어쨌든 일본적십자 구호간호부와 육군간호부의 구분은 간호부 양성과 모집의 주체에 따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 역할이나 실제 전장의 생활에서는 그들 사이에도 큰 차이는 없었다. 그만큼 전장이란 조건이 혹독하였기 때문이며 그런 점에서는 모두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인 간호부나 구호간호부 등과 조선인간호부의 차별은 일상적으로 존재하지만, 특히 임시나 단기로 종군한 기타간호부의 경우 그 자격, 임금과 근로 시간 등의 처우문제, 업무 자체의 차별 등 여러 측면에서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여러 간호부 중에서도 기타 임시간호부를 별도로 구분한 것은 동원 당시 여성 자신이 알고 응했는가, 일정한 교육을 받고 간호부에 종사한 것인가 등의 차이로 편의적으로 구분한 것이기도 하다. 이들이 별도의 교육도 없이, 또는 자신의 의지와 전혀 무관하게 간호부의 역할을 다해야 했던 것이야말로 또 다른 강제동원의 피해라 할 수 있다. 당시 역할이나 생활에서 그들 스스로 별다른 차별을 느끼지 않았다 하더라도 종전 후 보상 등에서 아직도 큰 차별을 받고 있고, 귀국 후 모국에서 처하게 되는 그들의 상황도 힘들기만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처지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마치 일본군의 협조자인양 친일파처럼 지목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도 사회적으로 따가운 눈총을 의식하며, 자신을 사회에 떳떳이 드러내기를 꺼려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그들의 생활에 적잖은 차별과 실생활의 어려움을 가중케 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전장에서 부상병을 돌보고 간호하는데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은 것은 친일 또는 전쟁 협조 여부를 떠나 그 때 그 곳에서 사람이 해야 할 도리였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당시에 부상병을 치료하여 다시 전장에 내보낸다는 것이 잘 한 일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고, 때문에 전후에는 자연히 반전, 염전, 평화 의식이 싹트지 않을 수 없었다. 본 연구가 그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보듬고 치유하는 데 일조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본 연구는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종군간호부의 동원 실태와 정체성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일제 식민지 시기 특히 아시아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여성 피해의 또 다른 사실들을 드러냈다. 때문에 본 연구의 활용 방안이나 기대효과는 우선 첫째, 한국근대사와 여성사 연구에 심화를 기하고 보다 일보 진전하는 데 일정한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둘째,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종군한 간호부피해자들이 사회적으로 그 피해 사실을 인정받고 개인적으로는 남은 생애에 보다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본 연구가 활용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셋째, 한일간의 전쟁 피해를 둘러싼 과거사 극복을 위한 올곧은 역사적 인식 확대에 작으나마 기여함으로써 한일간의 정당한 교류, 협력 등 미래 전망에 시사하는 바를 얻도록 한다.
    끝으로 대중 여성을 포함한 일반인의 역사 교육, 교양 교육 등에 전쟁과 (피해)여성 자료로 활용됨으로써 전쟁과 평화, 젠더 문제 등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제고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종군간호부, 여자군속, 적십자구호간호부, 육군간호부, 임시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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