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의 문장종결형식은 통시적 변천의 과정에서 심한 융합(coalescence)을 겪게 되어, 형식과 의미(기능) 사이에서 1대 1의 대응관계를 발견하고 기술해 내기가 어려워진다. Palmer(1986:18)가 한 형태소가 시제와 상 및 서법 모두를 담당하기도 한다고 주장하고, 언어 형 ...
국어의 문장종결형식은 통시적 변천의 과정에서 심한 융합(coalescence)을 겪게 되어, 형식과 의미(기능) 사이에서 1대 1의 대응관계를 발견하고 기술해 내기가 어려워진다. Palmer(1986:18)가 한 형태소가 시제와 상 및 서법 모두를 담당하기도 한다고 주장하고, 언어 형식과 의미 사이에서 1대 1의 대응관계를 찾으려는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까지 한 것은 바로 이런 융합 현상 때문이었다.
국어학계에서는 morphemic zero, 무음(zero)의 변이형태를 광범위하게 인정하여 형식과 의미 사이의 철저한 1대 1의 대응관계를 기술하고자 노력한 일도 있었다(서정수 1976:89-93, 98-118, 김차균 1985:5). 그 전제는 아마 국어는 선어말 형태소와 종결어미가 발달하여 일반적으로 한 형태소가 한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Palmer(1986:18)의 주장은 국어에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현대국어 ‘-었-’이나 ‘-겠-’이 지니고 있는 의미나 기능을 보아도 그러한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중세국어에서 ‘-니라, -니가’ 등으로 종결되는 문장은 명사문이 발달한 것이다. 이 사실은 양주동(1943/1965:267-270), 河野六郞(1951:54, 60), 김완진(1957:59-65), 이기문(1972:20-23) 등을 통해서 충분히 밝혀졌다. 그러나 중세국어 시기에는 ‘-니-’가 [규정ㆍ확정ㆍ원칙] 등을 나타내는 선어말 형태소로 문법화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숭녕(1961/1981:239, 244-245), 허웅(1975:882-891), 이인모(1976:16), 고영근(1981:10, 30, 93) 등에서 그러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니-’의 문법적 기능이나 의미는 뚜렷하지 않다. ‘-니-’의 의미를 [규정ㆍ확정ㆍ원칙] 등으로 간주한 것은 충분한 구조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대체로 동명사 어미 ‘-ㄴ’이 지닌 의미가 ‘-니-’에 계승되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에 말미암은 것이다.
‘-니-’의 시제 표시 기능 역시 분명치 않다. 김완진(1957:47-48), 나진석(1971:245-255), 허웅(1975:882, 915-922), 이인모(1976:181-240) 등에서 ‘-니-’가 동사 어간 뒤에서는 과거를 나타내며 그 밖의 환경에서는 시제와 무관하다고 간주해 왔으나, 그러한 견해가 논리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고영근(1981:11-12)은 ‘-니-’ 또는 ‘-니라’의 시제 표시 기능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직설), -더-(회상), -리-(추측), -Ø-(不定)’ 등의 서법 요소가 시제 표시를 겸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여기서는 무리하게 ‘-Ø-’를 설정한 것이 또 문제이다.
‘-니-’를 둘러싼 언어 형식의 의미나 문법적 성격을 밝히기가 이처럼 어려운 것은 두 가지 사실에 말미암는다. 첫째는 ‘-니-’가 융합에 의해 형성된 문법 단위라는 것이고, 둘째는 중세국어 이후 ‘-니-’가 뚜렷한 문법적 기능을 보여 주지 않는 사실이다. ‘-니-’에서 뚜렷한 문법적 기능을 발견하기 어려운 현상 때문에 공형태(김영욱 1995)를 인정하기도 하나, 이 글에서는 다른 관점을 택할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니라’ 구문에 남아있는 명사문적 흔적을 구조적인 측면에서 확인하되, 후기중세국어의 ‘-니-’는 선어말 형태소임을 입증하고, ‘-니-’의 양태 표시 기능과 청자에 대한 태도 표시 기능을 확인하고, '-니-' 구문의 시제 또는 동작상은 '-니-'가 지닌 양태적 기능에 따른 부수적 결과물로 처리하였다.
서술문의 ‘-니-’는 명제 내용의 실현성 또는 사실성 여부에 대한 화자의 [확인]과 청자에 대한 [說諭]의 태도를 드러낸다. 전자는 양태 기능이고 후자는 화용 기능이다. [說諭]의 기능은 [확인]의 기능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서술문의 화용적 기능은 명제 내용의 사실성에 대한 청자의 인지를 요구하는 것인데, 명제 내용의 사실성을 확인하는 것은 청자에 대한 요구의 힘을 더 유표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의문문의 ‘-니-’는 명사문을 구성하는 흔적을 보여 줄 뿐 그 밖의 다른 문법적 기능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의문문의 '-니-'를 공형태로 처리하는 것은 유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
'-니-'는 간접 인용문, 내포문, 접속문에서 쓰이지 않으며, 명령문, 청유문, 감탄의 성격을 띤 서술문에도 쓰이지 않는다. 그것은 '-니-'의 언표내적 효력이 [설유]라는 사실로써 해명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논문의 연구 결과는 현대국어 '-니-'의 문법적 성격 또는 의미를 밝히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국어 문장종결형식의 '-니-'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느-'에 청자 존대의 '-이-'가 결합한 '-니-'이고, 다른 하나는 단독으로 선어말 형태소 자격을 가지는 '-니-'인데, 이 논문의 연구 결과는 후자의 성격을 밝히는 데에 유용한 논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