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1910년대 고소설 시장의 성격과 독서경험을 이야기와 서술기법을 기준으로 하여 타진해 보았다.
서술자는 텍스트 내적 자아일 뿐 소설가 그 자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어떤 장(場)에서도 한 인물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서술자 ...
이 연구는 1910년대 고소설 시장의 성격과 독서경험을 이야기와 서술기법을 기준으로 하여 타진해 보았다.
서술자는 텍스트 내적 자아일 뿐 소설가 그 자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어떤 장(場)에서도 한 인물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서술자 분석을 통해서 소설가의 일면성, 소설 시장의 성격 변모를 제한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다. 대상 텍스트의 서술자는 오락적 독서와 유흥 문화에서 성장하여 한글 소설 시장으로 진입한 새로운 유형이었다. 재담적 서술자의 성격은 19세기 유흥 문화와 관련된 소설 문장에서 개발되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오락적 독서에서 소설 창작의 기량을 키워서 당대 현실을 취재하는 서술자는 관습성을 숙지하면서도 소설가로서 전문성을 견지하기 시작하는 모습으로 이해된다. 서술자에게서 읽을 수 있는 소설가는 스스로 즐거움과 재미를 위해 소설을 쓴다는 통속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유행에 민감하면서 의론의 면에서는 신문 사건의 논조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그러한 서술자의 시선에 포섭된 여성 이야기는 전대 판타지를 많은 부분 배제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여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나 성적 욕망, 주유(周遊)의 욕망 등을 제거하고 있으며, 미모와 도덕성에 대한 독자/서술자의 자족적이며 수사적 문장들을 윤리적 인물평으로 대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의 활동 범위를 좁혔고 그녀들이 집을 나서는 것은 ‘경험’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불가항력적 축출이며 그 귀환이 목적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울거나 좌절하는 것, 윤리적 의지를 갖는 것 정도였다. 전대의 여성 이야기에서도 정절은 강박과 같은 윤리적 기준이었지만 그 외에도 하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 인정받고 싶은 욕망, 펼치고 싶은 자질 등에 대한 많은 판타지들이 형상화되었다. 그렇다면 이 시기 여성 이야기는 전대의 여성 판타지에 대한 퇴행적 성격으로 규정되어야 하는가.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서술자의 성격으로 볼 때 이해조는 소설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예상 가능한 성격의 소설가였다. 기존 연구에서 그의 한문학적 토대를 많이 주목했지만, 시정에서 자라난 소설가라는 임화의 설명이 적절하다. 유흥 문화에 익숙했고 그가 접한 한문 문화 역시 오락적이었다. 한문 문장과 한글 소설의 간극은 국어 확정과 신문 매체의 국어 담론화 과정에서 배태된 한글 사용에 대한 당위성에 힘입어 구어적 문예 양식과 그것을 수용한 전대의 <남원고사>나 판소리와 관계된 소설들에서 전범을 획득하며 좁혀갔다. 그것이 소설가가 등장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었다면, 그 이상의 것은 소설 시장 자체의 견인력이 작동한 결과였다. 소설 시장에서 존재했던 여성 이야기와 독자, 여성 이야기 서술 관습이 또 다른 여성 이야기 탄생을 유도하였다. 유학(留學)하는 주인공을 통해 근대의 지향점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기에는 대척점에 있는 전근대에 대한 비판적 성격이 취약하며, 재자가인의 만남을 구성하기 위해서라기에는 전대 전기와 서술 초점이 다르다. 그보다는 여성 이야기에 대한 독서 요구에 반응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야기를 서술하는 시선은 여성의 욕망과 판타지를 제약하는 방향을 택하였다. 일정 부분 승계하고 일정 부분 부정하면서 확장⋅재편되고 있었던 소설 시장에서 ‘新’이란 이와 같이 복합적이었다.
연의각은 기존의 흥부전 텍스트, 특히 경판본과 친연 관계를 보이고 있으며, 이해조라는 20세기 초의 작가가 개입되어 있다. 이해조는 애국계몽적 신소설로 출발하였으나 1910년대 이후 통속화되었다는 학계의 상식화된 평가가 있다. 그러나 그가 애초에 통속적 지향이 있으며 서울을 중심으로 한 근기(近畿) 유흥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것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신문기자로서의 이력이 유행과 독자의 성향에 민감한 사람임을 방증한다. 그리고 기존 작품들에서 활용한 모티프들이 고소설이나 야담, 연행문화에서 차용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1910년이라는 기점과 무관하게 그가 19세기 통속소설 시장에서 성장해 온 소설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실들에서 볼 때 이해조가 1910년대 이후 통속화되었다는 기존 평가와 일제하 ‘검열’을 의식하여 다시 구소설 출판이 활기를 띄었다는 의견은 어느 정도 수정되어야 한다. 20세기 초 통속소설 출판 시장은 19세기 출판 시장의 성장을 토대로 확대되고 있었다. 그리고 구소설 출판은 소설 독서에 대한 독자들의 열망에 부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했고, 새로운 기획으로 콘텐츠를 공급할 만큼 출판 관계자들의 역량과 자금 사정이 뒷받침되지 못했던 영세한 시장 조건과도 관련되어 있다. 이에 더해 ‘한글 소설’에 대한 기본 관념과 요구가 ‘통속’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전반적 소설 시장의 감성 구조도 작용하고 있었다. 분명 새로운 독자와 새로운 작가가 탄생하고 성장하고 있었지만 1910년대 통속소설 시장의 경향은 19세기의 연장선에서 확대․변모․성장하고 있었다. 또 하나 구소설 출판의 성행은 20세기 초 매체 환경의 변화를 따라 통속 문화의 급성장이 기반에 있었다. 무대의 콘텐츠와 신문 연재, 출판이 연동하고 있다는 것이 연의각 서술에서도 발견된다. 독자의 정서적 공감과 공분, 슬픔의 장면으로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추구하고, 서술자가 서사와 인물에 대해 명확한 평가를 내리며, 묵독하여 의미를 추구하는 독서가 아니라 낭독/청각적 경험을 추구하고, 서사적 환상이 아니라 독자의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계하려고 하는 재담/연행 언어가 특징적이라는 것은 통속소설로서 연의각이 의식하고 있는 독자의 성격을 암시한다.
‘이야기’분석과 달리 텍스트의 서술기법에 주목하여 장면화와 서술자의 진술, 재담 및 연행 요소가 독자들에게 주는 독서경험에 대해 논의하였다. 장면의 선택과 강조하는 언술, 수용하는 유행 요소 등은 주제적 요소가 구성되는 바탕인 그들의 경험적 현실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우애’라는 주제는 가난-약자의 편에서 강자-악인을 징벌하는 장면화를 거쳐 서술자의 언명으로 강화․구현된다. 이것은 우애 좋은 형제의 모습으로 우애를 주제화하는 것과는 차별화되어야 한다. 윤리 규범의 강제력과 구속, 동질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 ‘빈/부’라는 주제는 빈자의 편에서 부를 획득하고 부자의 부를 박탈하는 전도적 양상으로 구현된다. 이것은 빈/부의 문제가 그 시기 매우 갈등적으로 인지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제비를 매개로 하고 있으나 뒤바뀐 흥보와 놀보의 위치는 전체 부의 상승을 꿈꿀 수 없었던, 한정된 물질적 부만이 상상되었던 공동체에서 가능한 서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연의각은 통속 소설 독자의 사회적 상상력을 매우 명징하게 보여주는 텍스트로 보인다. 거기에 더해 주제적 접근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이 소설의 축제적 요소일 것이다. 조선후기 유행했던 언어 형태인 재담 언어가 지향하는 사물과 욕망과 이미지의 세계는 현재의 규범적 기준이나 체계성으로 포획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오랜 시기 연구자들은 의미를 지향했지만 향유층․독자들은 놀이를 지향했다는, 텍스트를 대하는 자세의 차이를 이 텍스트에서도 확인한다. 물론 재담 요소나 연행 요소들도 소설의 한 구성 요소가 되면서 전체 서사적 의미 지향 내에 배치되기는 한다. 그 이전부터 부분의 독자성이라고 하거나 단위사설, 삽입 가요 등 독자적 성격으로 이해되었던 부분이다. 이 부분들에서 핵심적인 것은 언어 감각을 활용한 놀이 효과이다. 현대의 소설에서는 그런 놀이 효과를 기대하는 감성적 요구가 크지 않다. 놀이 효과를 담당하는 다른 미디어, 매체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다양하지 않았으나 계급을 가로지르는 도시의 대중이 형성되고 있던 시기에 통속 소설은 현재 다양한 대중 매체가 대중에게 주는 감성구조들을 종합적으로 담당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