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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불교에서 용수의 연기관에 대한 중도적 해명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_시간강사& #40;인문사회& #41;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1-35C-A00337
선정년도 2011 년
연구기간 1 년 (2011년 09월 01일 ~ 2012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남수영
연구수행기관 중앙승가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인도불교에서 중관사상을 확립한 용수의 연기관을 중도의 개념을 통해서 해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근본중송>의 귀경게나 제24장 18송의 내용 등을 고려할 때, 용수의 연기관은 중도의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설명할 때 더욱 정확하게 규명될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국내외의 상황을 살펴보면 많은 학자들이 용수의 연기관을 언급할 때, 주로 상의성의 개념에 의존하거나 문맥상의 필요에 따라 중도를 언급할 뿐, 중도의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용수의 연기관을 설명하고자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므로 본 지원자는 중도의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용수의 연기관을 해명함으로써 용수의 중관사상을 더욱 분명하게 밝혀보고자 한다.
  • 기대효과
  • 본 연구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효과가 기대된다.
    가.용수의 중관사상을 더욱 분명하게 해명함으로써 인문학 및 정신문화의 발전에 기여한다.
    나.모든 사물의 상호의존성과 무실체성을 강조하는 용수의 연기관을 현대사회의 심각한 사회 문제인 소외와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이론으로서 제시하고 대학의 교육현장에서 활용한다.
  • 연구요약
  • 본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탐색하고 고찰한다.
    가.용수의 저술과 그에 대한 주석서들을 자료로 해서 용수의 중도적 연기관의 양상을 정립한다.
    나.용수의 중도적 연기관의 기원을 초기불교의 경전들 속에서 탐색한다.
    다.상의적 연기와 중도적 연기의 관계를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중도적 연기에 의한 상의적 연기의 포용이라는 측면에서 정립한다.
  • 한글키워드
  • 중도,상의성,용수,연기,인도불교,근본중송
  • 영문키워드
  • Nagarjuna,codependentness,dependent-origination,middle-way,Indian-Buddhism,Mulamadhyamaka-karika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자는 본 연구에서 ①‘중론이 주장하는 연기는 상의성의 의미이며, 중론의 목적은 여러 법의 상의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이라고 하는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의 견해와 ②‘상의성의 연기와 팔불연기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③‘팔불은 동시적이고 상대적인 부정을 통해 양항을 다시 긍정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는 윤종갑의 견해, 그리고 ④‘팔불의 상반하는 둘을 하나로 묶음으로써, 그 둘 각각의 긍정을 함의시킬 수가 있다.’고 하는 우에다 요시부미(上田義文)의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고, 용수의 상호의존적 연기와 팔불의 연기를 재검토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 월칭의 언급으로부터 12연기와 상호의존의 연기는 세속제(世俗諦)에 근거한 것으로서 동일 차원에서 설해진 것이고, 팔불의 연기는 승의제(勝義諦)에 근거한 것으로서 상호의존의 연기와는 다른 차원에서 설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럴 경우 상호의존의 연기와 팔불의 연기, 즉 세속제와 승의제에 근거한 가르침의 분기점은 무자성과 공성의 개념이 된다. 즉 모든 사물이 인과 연에 의존해서 성립함을 설하는 것은 세속제에 근거한 가르침에 해당하고, 그에 따라 연기인 모든 사물은 무자성이고 공이며, 따라서 불생불멸 등이라고 설하는 것은 승의제에 근거한 가르침에 해당한다. 그런 사실로부터 나카무라 하지메의 견해 ①과 윤종갑의 견해 ②는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2) 상호의존의 연기란 두 개의 사물이나 혹은 여러 개의 사물이 서로 의존해서 성립함을 설하는 것이다. 󰡔중송󰡕과 그 주석서들에는 행위와 행위자, 청정과 부정, 아버지와 아들, 가는 자와 가는 작용 등의 상호의존이 설해지고 있다. 한편 본 연구자는 본 연구에서 󰡔중송󰡕에는 그 외에도 원인과 결과의 상호의존이 설해지고 있음을 밝혔다. 용수가 상호의존의 연기를 설한 목적은 인도의 대부분의 학파들이 실재로 간주하는 궁극적인 원인을 포함하는 모든 사물이 연기에 의해서 성립함을 밝히고, 모든 사물은 연기이기 때문에 무자성과 공성 등이라고 설함으로써 궁극적 진실인 승의제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3) 팔불의 연기란 연기이기 때문에 무자성인 모든 사물은 불생불멸 등의 여덟가지 특성을 지닌다는 의미이다. 팔불연기의 내용을 요약하면 유자성인 사물의 생멸거래(生滅去來)와 일이단상(一異斷常)을 주장하는 학설들의 불합리를 비판하고, 무자성인 여러 사물의 진실은 자성으로서 불생불멸, 불거불래, 불일불이, 불상부단임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로부터 팔불이 설해진 목적은 유자성론에 근거해서 설해지는 여러 학설들의 불합리를 비판하고, 무자성과 공성 등으로 설해지는 승의제를 더욱 분명하게 깨닫도록 돕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4) 팔불의 각각은 동일한 형식으로 설해지고 있지 않다. 즉 불생불멸과 불거불래는 유자성인 사물과 무자성인 사물에 대해서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불일불이와 불상부단은 무자성인 사물의 진실로서만 언급되고, 유자성인 사물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팔불의 각각은 ‘자성으로서 불생’, ‘자성으로서 불멸’ 등으로 종결되며, 거기서 불생과 불멸 등 두 항목을 하나로 묶어서 다시 발생과 소멸 등을 긍정하는 경우는 발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용수의 목적은 세속제인 상호의존의 연기를 바탕으로 해서 무자성과 공성 등으로 설해지는 승의제를 밝히는 것이고, 팔불은 승의제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로부터 윤종갑의 견해 ③과 우에다 요시부미의 견해 ④는 올바르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다.
    5) 팔불은 시종일관 무자성의 개념에 근거해서 설해지고 있고, 그럴 경우 무자성은 비유비무(非有非無)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와 같은 사실로부터 팔불은 비유비무의 중도를 통해서 이해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또한 팔불의 각각은 자성으로서의 생멸(生滅), 자성으로서의 거래(去來), 자성으로서의 일이(一異), 자성으로서의 단상(斷常) 등 불합리하고 극단적인 견해들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팔불이 곧 중도라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6) 월칭이 󰡔중송󰡕의 목적으로 제시했던 ‘모든 희론이 멈추어서 길상의 특징인 열반’에 도달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세속제, 즉 상호의존의 연기에 의해서 일체법은 무자성이라는 승의제가 알려진다. 둘째, 승의제에 근거해서 팔불이 설해지고, 팔불을 통해서 유자성론에 뿌리를 둔 모든 희론들이 부정되는 동시에, 무자성인 모든 사물의 진실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셋째, 그런 깨달음을 통해서 무명과 갈애가 더 이상 작용하지 않게 되고, 마침내 수행자는 ‘모든 희론이 멈추어서 길상의 특징인 열반’에 도달하게 된다.
  • 영문
  • The present researcher raised questions to ①the opinion of Hajime Nakamura(中村元) which the dependent origination(緣起) of Mūla-madhyamaka-kārikāh is the meaning of mutual dependence(相依性) and the purpose of Mūla-madhyamaka-kārikāh is to reveal the mutual dependence of things, ②the opinion of Jonggap Yun(윤종갑) which the dependent origination of mutual dependence is same with the dependent origination of eight negations(八不), ③which eight negations have the nature of affirming the both items through the coincidently and relatively negations, and ④the opinion of Yoshibumi Ueda(上田義文) which we can write affirmation into the both of two items by joining into one of the contrary two items of eight negations. So the present researcher reconsidered the dependent origination of mutual dependence and the dependent origination of eight negations in Mūla-madhyamaka-kārikāh, and confirmed as follow facts.
    1) The dependent origination of twelve elements and the dependent origination of mutual dependence are said in a same level as belonging to the teaching of unclear meaning scriptures, but the dependent origination of eight negations is said in a different level as belonging to the teaching of clear meaning scriptures. So we could know that Hajime Nakamura's opinion of ① and Jonggap Yun's opinion of ② have no validity.
    2) The dependent origination of mutual dependence is a theory of that two or several things, action and actor, pure and impure etc., come into existence in a state of mutual dependence. The present writer think that the aim of the dependent origination of mutual dependence of Nāgārjuna is to reaveal the fact that all things are no intrinc nature(無自性), emptiness(空性), dependent designation(假名), and middle-way(中道), because they are products of dependent origination.
    3) The dependent origination of eight negations is a theory of that all things as products of dependent origination have eight attributes of non-production(不生) non-extinction(不滅) etc. The dependent origination of eight negations has two aspects of the criticism on the theory of intrinsic nature and the revealation of the truth of no intrinsic nature of all things. So we could know that the aims of the dependent origination of eight negations are the negation to the irrational theories about production and extinction etc. based on the theory of intrinsic nature and the revealation of truth of all things of no intrinsic nature.
    4) When we examined the contents and forms of eight negations, we could see each items of eight negations come to a stop with no-production as intrinsic nature, no-extinction as intrinsic nature etc., but we could not find any case of writing affirmation into the both two items, by joining into one the contrary two items of production and extinction etc. So we could know that Jonggap Yun's opinion of ③ and Yoshibumi Ueda's opinion of ④ are not correct.
    5) The eight negations are described by the conception of no intrinsic nature from start to finish, and the conception of no intrinsic nature used as meaning of non-being and non-not-being(非有非無). Therefore we could know that eight negations must be comprehanded by the middle way of no-being and no-not-being. Also because each items of eight negations are denials to the irrational and extreme opinions of production as intrinsic nature and extinction as intrinsic nature etc., it is possible to think that the eight negations are exactly middle way.
    6) The meaning of Candrakīrti's mention which he presented as the purpose of Madhyamaka-śāstra, 'nirvana with auspicious feature because all of the irrational theories completely stoped', is as follow. The truth of no intrinsic nature of all thing is become known through the dependent origination of mutual dependence, and every irrational theories based on the theory of intrinsic nature is refuted by that truth. A bhikhu become clearly realize on the fact that all things, no intrinsic nature because it is dependently originated, have the feature of eight negations by that refutation. At this time the bhikhu, driving out the desire and obsession to all things, finally arrived at the 'nirvana with auspicious feature because all of the irrational theories completely stoped'.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자는 본 연구에서 ①‘중론이 주장하는 연기는 상의성의 의미이며, 중론의 목적은 여러 법의 상의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이라고 하는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의 견해와 ②‘상의성의 연기와 팔불연기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③‘팔불은 동시적이고 상대적인 부정을 통해 양항을 다시 긍정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는 윤종갑의 견해, 그리고 ④‘팔불의 상반하는 둘을 하나로 묶음으로써, 그 둘 각각의 긍정을 함의시킬 수가 있다.’고 하는 우에다 요시부미(上田義文)의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고, 용수의 상호의존적 연기와 팔불의 연기를 재검토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 월칭의 언급으로부터 12연기와 상호의존의 연기는 세속제(世俗諦)에 근거한 것으로서 동일 차원에서 설해진 것이고, 팔불의 연기는 승의제(勝義諦)에 근거한 것으로서 상호의존의 연기와는 다른 차원에서 설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럴 경우 상호의존의 연기와 팔불의 연기, 즉 세속제와 승의제에 근거한 가르침의 분기점은 무자성과 공성의 개념이 된다. 즉 모든 사물이 인과 연에 의존해서 성립함을 설하는 것은 세속제에 근거한 가르침에 해당하고, 그에 따라 연기인 모든 사물은 무자성이고 공이며, 따라서 불생불멸 등이라고 설하는 것은 승의제에 근거한 가르침에 해당한다. 그런 사실로부터 나카무라 하지메의 견해 ①과 윤종갑의 견해 ②는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2) 상호의존의 연기란 두 개의 사물이나 혹은 여러 개의 사물이 서로 의존해서 성립함을 설하는 것이다. 󰡔중송󰡕과 그 주석서들에는 행위와 행위자, 청정과 부정, 아버지와 아들, 가는 자와 가는 작용 등의 상호의존이 설해지고 있다. 한편 본 연구자는 본 연구에서 󰡔중송󰡕에는 그 외에도 원인과 결과의 상호의존이 설해지고 있음을 밝혔다. 용수가 상호의존의 연기를 설한 목적은 인도의 대부분의 학파들이 실재로 간주하는 궁극적인 원인을 포함하는 모든 사물이 연기에 의해서 성립함을 밝히고, 모든 사물은 연기이기 때문에 무자성과 공성 등이라고 설함으로써 궁극적 진실인 승의제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3) 팔불의 연기란 연기이기 때문에 무자성인 모든 사물은 불생불멸 등의 여덟가지 특성을 지닌다는 의미이다. 팔불연기의 내용을 요약하면 유자성인 사물의 생멸거래(生滅去來)와 일이단상(一異斷常)을 주장하는 학설들의 불합리를 비판하고, 무자성인 여러 사물의 진실은 자성으로서 불생불멸, 불거불래, 불일불이, 불상부단임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로부터 팔불이 설해진 목적은 유자성론에 근거해서 설해지는 여러 학설들의 불합리를 비판하고, 무자성과 공성 등으로 설해지는 승의제를 더욱 분명하게 깨닫도록 돕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4) 팔불의 각각은 동일한 형식으로 설해지고 있지 않다. 즉 불생불멸과 불거불래는 유자성인 사물과 무자성인 사물에 대해서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불일불이와 불상부단은 무자성인 사물의 진실로서만 언급되고, 유자성인 사물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팔불의 각각은 ‘자성으로서 불생’, ‘자성으로서 불멸’ 등으로 종결되며, 거기서 불생과 불멸 등 두 항목을 하나로 묶어서 다시 발생과 소멸 등을 긍정하는 경우는 발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용수의 목적은 세속제인 상호의존의 연기를 바탕으로 해서 무자성과 공성 등으로 설해지는 승의제를 밝히는 것이고, 팔불은 승의제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로부터 윤종갑의 견해 ③과 우에다 요시부미의 견해 ④는 올바르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다.
    5) 팔불은 시종일관 무자성의 개념에 근거해서 설해지고 있고, 그럴 경우 무자성은 비유비무(非有非無)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와 같은 사실로부터 팔불은 비유비무의 중도를 통해서 이해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또한 팔불의 각각은 자성으로서의 생멸(生滅), 자성으로서의 거래(去來), 자성으로서의 일이(一異), 자성으로서의 단상(斷常) 등 불합리하고 극단적인 견해들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팔불이 곧 중도라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6) 월칭이 󰡔중송󰡕의 목적으로 제시했던 ‘모든 희론이 멈추어서 길상의 특징인 열반’에 도달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세속제, 즉 상호의존의 연기에 의해서 일체법은 무자성이라는 승의제가 알려진다. 둘째, 승의제에 근거해서 팔불이 설해지고, 팔불을 통해서 유자성론에 뿌리를 둔 모든 희론들이 부정되는 동시에, 무자성인 모든 사물의 진실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셋째, 그런 깨달음을 통해서 무명과 갈애가 더 이상 작용하지 않게 되고, 마침내 수행자는 ‘모든 희론이 멈추어서 길상의 특징인 열반’에 도달하게 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오늘날 우리 사회는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을 바탕으로 하여 날로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 때문에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로서, 공산주의 사회와는 달리 물질이 최고의 가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는 실제로는 자본, 즉 화폐에 의해서 생산되는 물질의 획득을 경쟁적으로 추구하고 있고, 교환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화폐에 의해 인간 스스로가 구속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또한 현대사회는 업적중심적이고 능력중심적인 사회이다. 이에 따라 인간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창출한 지식과 기술 및 조직과 관리체계에 의하여 평가되고 조정되고 지배된다. 그와 같은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 이외의 다른 모든 사람을 경쟁대상으로 삼아 경쟁함으로써 비인간적인 모습을 가속화해 나가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폐, 지식, 기술, 그리고 조직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는 자신이 삶의 주인이라고 말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대사회 속의 많은 사람들은 비인간화된 인간, 주체성을 상실한 상실한 인간으로 전락하여, 예속적이고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편리하고 풍요로운 생활 속에서도 갖가지 불안과 고통을 느끼고 있으므로, 우리들의 관심의 초점은 이처럼 심화되고 있는 불안과 고통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모아지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용수의 중도적 연기관은 새로운 관심을 받을만 하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무명이란 진실에 대한 무지이며, 진실에 대한 착각이다. 그것은 항상 변해가고 있는 세계와 나를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무지와 착각으로부터 집착이 일어나고, 그 집착으로부터 대립과 소유의 불평등이 일어나, 인간의 본래적 자유와 평등을 손상하고,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고착화시키게 된다. 그러나 연기의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해 있으며, 따라서 실체가 없고 무상하다. 이처럼 연기의 가르침을 통해서 모든 사물이 실체가 없고 무상하다는 진실을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자연스럽게 모든 사물에 대한 집착을 떠나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집착이 사물의 변화와 소멸에 의해서 고통으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올바르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의 가르침에 의하면 연기의 진실을 알고 무상한 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사람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것은 곧 유(有)에 대한 집착을 떠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無)에 대해서 집착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무에 대한 집착은 유에 대한 집착의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상한 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나아가 유와 무에 대한 집착을 모두 버림으로써, 그는 자신과 다른 생명을 위해서 집착없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집착없이 자유롭게 행위를 펼치게 된다. 이것이 곧 용수의 중도적 연기관이 제시하는 삶의 올바른 모습인 것이다.
    이처럼 본 연구는 용수의 중관사상을 더욱 폭넓게 해명할 수 있는 학문적인 효과만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소외와 갈등의 문제까지도 치유할 수 있는 이론으로서 대학의 교육현장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본 연구자는 본 연구의 결과를 <용수의 중관사상 연구>를 저술하는데 활용할 계획이다.
  • 색인어
  • 용수, 상호의존의 연기, 팔불의 연기, 무자성, 공성, 불생불멸, 불거불래, 승의제, 세속제, 비유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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