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서구철학에서 키에르케고어(S. Kierkegaard, 1813-1855)가 차지하고 있는 사상사적 중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니체와 함께 인간 존재의 가능성과 심연에 가장 깊이 파고들고, 또 이를 가장 치밀하고 상세하게 해명한 ‘정신분석자’요 ‘철학적 인간 ...
19세기 서구철학에서 키에르케고어(S. Kierkegaard, 1813-1855)가 차지하고 있는 사상사적 중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니체와 함께 인간 존재의 가능성과 심연에 가장 깊이 파고들고, 또 이를 가장 치밀하고 상세하게 해명한 ‘정신분석자’요 ‘철학적 인간학자’였다. 특히 키에르케고어는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사유가 과도한 ‘합리적 해명의 맹신’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실존하는 인간의 자기관계 자체가 합리적으로 ‘확정할 수 없는’ 계기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불확정성을 긍정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더 깊고 포괄적인 ‘합리적 사유’가 필수적임을 통찰하고 이를 여러 종류의 저작을 통해 실천했던 것이다. 그런데 키에르케고어가 이러한 새로운 ‘합리적 사유’에 부응하고자 시도한 저술 방식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간접적 전달’의 방식이다. 주지하듯이 그는 직접적인 논고나 종교적 강화의 형식뿐 아니라, 여러 익명의 편집자 내지 저자를 내세우면서 많은 저작을 집필하였다. "이것이냐/저것이냐", "공포와 전율", "반복", "철학적 단편들", "불안의 개념", "삶의 길의 단계들" 등이 이러한 간접적 전달의 저작에 속하는데, 이들 저작 안에는 ‘심미적 실존방식’에 대한 분석과 시, 음악, 오페라, 그리스 비극 등 여러 ‘예술 형식들’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어 있다. 본 연구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 있다. 키에르케고어에 있어 ‘심미적 실존방식’의 구체적인 양상과 의미는 무엇인가? ‘심미적 실존’은 단지 ‘윤리적 실존’과 ‘종교적 실존’을 향하여 넘어서야만 하는 가장 낮은 단계의 실존방식일 따름일까? 키에르케고어가 자신의 저술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가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는 일’에 있다고 천명하였으므로 심미적 실존방식은 단지 이를 위한 수단 이상이 될 수 없는가? 또한 예술과 미적 경험은 키에르케고어의 사상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예술과 미적 경험은 그의 사상이 구체적으로 펼쳐지고 독자들을 향해 말을 걸고 영향력을 미치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 본 연구의 목표는 소위 ‘심미적 저술’의 시기(1843-46)에 속한 저작들을 중심으로 - 물론 이후의 다른 저작들도 필요한 대목에서 참조하겠지만 - 이러한 질문들을 분석, 토론하고 그에 대해 설득력 있는 해답을 모색하는데 있다. 다시 말해 키에르케고어의 저작에 나타난 심미적 실존의 ‘현상학’과 ‘분석론’을 정확하게 판독하면서 이에 함축되어 있는 예술철학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해 보고, 그 사상(사)적 중요성과 현재성을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본 연구의 문제의식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키에르케고어 자신의 저술 자체, 즉 그의 ‘간접적 전달 방식’이다. 왜냐하면 그가 누구보다도 인상적이며 탁월하게 활용한 간접적 전달 방식 자체가 이미 심미적 실존방식이 한낱 사유의 ‘감각적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고유하고 진지한 철학적-인간학적 의미를 갖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키에르케고어 사상에 대한 국내외 연구사에서 그의 심미적 실존방식과 예술철학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성과는 일부 단편적인 논의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특히 본 연구자가 아는 한, 국내 철학계와 미학계에서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연구 성과는 표명재 전 고려대 교수의 논의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없었다. 키에르케고어의 사상이 앞서 언급한 정신분석학과 실존철학의 측면만이 아니라, 벤야민, 아도르노, 크라카우어 등 현대 철학자들과 입센, 릴케, 카프카, 카뮤, 프리쉬 등 현대 문필가들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감안할 때, 본 연구의 필요성과 정당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가깝게는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철학과 키에르케고어 사상 사이의 연관성과 차이를 밝히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좀 더 멀리는 19세기 후반 이후 20세기에 걸친 현대예술의 흐름, 현대 ‘예술가의 자기이해’, 현대 ‘주체이론’과 ‘예술철학’의 근본문제들과 - 대표적으로 라캉과 들뢰즈를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 관련하여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직접적으로 본 연구는, 본 연구자가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아도르노, 벤야민, 크라카우어의 예술철학과 관련해서도 그 사상사적 기원과 이론적 토대를 명확히 인식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