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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한국 근대지성의 불교사 연구 및 불교인식에 관한 연구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_학술연구교수& #40;인문사회& #41;
연구과제번호 2011-358-A00058
선정년도 2011 년
연구기간 3 년 (2011년 07월 01일 ~ 2014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오경후
연구수행기관 동국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일제의 식민통치시기였던 1900년부터 해방 직전까지 불교계에서 진행된 불교사 연구의 성과와 그 인식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 과제를 수행하는 전제조건으로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을 목적으로 상정하였다.

    첫째, 일제하 불교사 연구의 배경을 검토하고자 한다.
    1895년 승려의 도성출입이 시작되고 난 이후 불교계의 지위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문명개화의 신시대를 지향하면서 근대종교로서의 탈바꿈이 시도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기 불교는 전통불교수호와 함께 불교개혁론을 통해 자기정체성을 파악하고 조선시대 탄압으로 폐허가 된 불교의 위상과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이 시기 불교사 연구는 한국불교의 전통을 확인하고 수호하는 과제와 불교개혁론을 통해 자기정체성을 확립하고 근대불교로의 전환을 위한 불교계의 현실적 과제를 해소하는데 중요한 기초를 제공했다. 역사학이 과거사를 통해 당해 시대의 이념을 설정하고 그 시대가 직면한 당면과제를 해결하는데 기초를 제공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제 식민시기 불교계의 지성들은 우리나라 불교수용부터 불교가 탄압받았던 조선시대의 불교사 연구를 통해 당시 불교의 재건과 부흥의 기초로 삼으려고 하였다. 종명(宗名)과 종조(宗祖)를 정하기 위해 신라와 고려, 조선시대의 여러 종파를 살피고, 보조 지눌과 나옹 혜근, 태고 보우의 활동과 시대적 영향을 천착하였다. 때문에 본 연구의 일차적인 목적은 일제시대 진행된 불교사 연구의 현실적 배경을 검토하는 일이다.

    둘째, 일제하 불교사 연구의 주된 내용과 그 경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 불교계의 상황은 부침의 연속이었다. 국가적 사회적 기여를 통해 존립의 근거를 찾았고 사회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으며, 탄압과 수탈 속에서 자구책을 모색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암울한 상황은 계속되었다. 불교사상과 수행의 성숙은 더 이상 발전되지 못했고, 자기정체성 확립이나 유구한 불교문화에 대한 자긍심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1900년대에 들어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신을 재확인하고, 발전의 기틀을 모색했다. 일제 식민시기 불교사 연구의 출발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이미 폐허가 된 사찰 터와 무너진 불탑을 되돌아보고,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영향을 미쳤던 불교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능화와 권상로를 중심으로 한 불교계의 지성들은 불교사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이 나라 산천을 헤매었고, 역사서를 위시한 문헌사료와 비문 등이 하나 둘씩 모이면서 먼지에 쌓이고 흙속에 묻혀있던 불교사가 복원되기 시작했다. 10여 년 이상 지속된 이들의 사료수집과 정리의 노력으로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의 불교사가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보편적 가치를 확인하고자 진력했던 불교계 지성들의 각 시대별 불교사 연구의 내용과 그 경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에는 당시 불교계가 극복해야하는 현안문제와 결부시켜 논의할 것이다.

    셋째, 일제하에서 진행된 불교사 인식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 시기 불교사 연구의 화두는 흩어져있는 불교사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이었으며, 우리나라 불교사를 체계적으로 복원하는 일이었다. 더욱이 한국불교사가 지닌 정체성과 가치를 기초로 하여 미래불교를 준비하고자 하였다. 때문에 과거의 불교사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서 지닌 가치와 영향을 규명하고자 했다. 불교계 지성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단편적이고 맹목적인 호교론(護敎論)적 측면에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김상기·이병도·최남선을 비롯한 당대의 역사가와 일본의 지식인들조차도 불교사 전반에 관한 연구와 불교와 전통문화에 관한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에서 학문적인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민족주의사관과 문화적 계몽사관 역시 이 시기 불교사 인식의 중요한 기초였다. 이 시기 불교사 연구는 항일과 친일에서 결코 자유스러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불교계 지성들은 한국종교사에서 불교가 차지했던 위상을 돌이켜 보는데 집중했다. 본 연구는 이 시기 불교사 연구를 통해 불교계 지성들의 불교사 인식태도와 성격을 살피고자 한다.

  • 기대효과
  • (1) 한국근대불교사연구의 초석
    한국근대불교사 연구는 현재 공백상태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최근 일련의 연구자에 의해 자료수집과 연구 성과들이 소개되고는 있지만, 당시 불교계의 동향과 사건 그리고 인물에 집중되어 있는 실정이다. 부족한 자료를 발굴하는 일과 함께 근대불교사를 이해하는 기초적인 부분에서부터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예컨대 항일과 친일에 대한 문제, 근대불교의 개념, 불교개혁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울러 본 연구와 같이 당시 진행되었던 불교사 연구에 대한 검토는 전연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불교사 복원이라는 학문적 차원뿐만 아니라 당시 불교계가 직면한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때문에 본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이 시기 불교사 연구를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다양한 인식을 도출해내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 한국불교사학사 연구의 체계화
    본 연구는 한국불교사학사 분야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거의 불교사 찬술에 대한 연구는 지난 시대의 사상과 신앙, 정치·사회와의 관계 등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더 나아가 현재의 불교와 불교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지향점을 상정하는데 기초를 만들어 줄 것이다. 현재 한국 불교사에 대한 연구는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사학사적 측면에서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학사가 그 시대의 정체성과 패러다임, 좌표설정에 기초를 이루고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때 한국 불교사학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한국근대불교사는 일제식민시기, 불교의 침체와 재건기라는 혼란과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시기 불교사학에 대한 연구는 불교계의 상황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사학사 연구의 기초와 체계화를 모색하는데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한다.

  • 연구요약
  • 가. 1년차 연구내용(2011. 7. 1. ~ 2012. 6. 30.) :
    불교수용, 삼국시대(통일신라 포함)~고려시대 불교사에 대한 기술(記述)과 경향

    일제 식민시기 불교계의 지성들은 한국불교의 수용부터 삼국(통일신라포함)․고려시대 불교사를 敎學의 발달과 그에 따른 다양한 宗派의 발생, 禪佛敎의 수용과 전개 등을 통해 불교가 한국 역사와 문화에서 지닌 가치와 영향을 심도있게 규명하고자 했다. 원효와 의상의 사상을 통해 중국불교와는 다른 독창성을 규명했고, 의천의 諸宗章疏 수집과 대장경 간행에 대한 검토를 통해 한국불교의 세계적 위상 등을 확인하고자 했다. 특히 宗祖․宗名 확립의 과정에서는 보조 지눌과 태고 보우가 한국불교사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여 정체성을 확립시키고자 하였다.
    이밖에 불교미술을 통해 한국 불교의 높은 수준을 재확인했고, 각 시대의 정신사조를 불교예술을 통해 해석해 내고자 했다. 또한 자료수집과 정리는 근대적 연구방법에 의해 불교사를 복원하고자 했던 당시 불교계 지성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正史類뿐만 아니라 寺誌․碑文․金石文․史傳類 등 다양한 자료수집을 통해 고승전과 불교사연표등이 만들어졌고, 󰡔朝鮮佛敎通史󰡕와 같은 역작이 집필되었다.


    나. 2년차 연구내용, 방법, 범위(2012. 7. 1. ~ 2013. 6. 30.) :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의 경향과 성격
    일제 식민시기 조선시대 불교사에 대한 연구는 삼국과 고려시대 불교사 연구보다는 미진했다. 불교의 衰退時代, 老朽時代로 규정할 만큼 사실 조선시대 불교의 사상이나 신앙, 인물의 활동은 미미했다. 탄압과 수탈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능화를 비롯한 권상로․김영수 등은 조선시대 불교사의 복원을 위해 노력했다.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를 통해 왕과 왕실의 불교신앙, 禪敎兩宗 통합의 과정, 僧, 임진왜란 당시 僧兵의 활동, 조선후기 禪論爭 등 조선시대 불교사를 이해하는 키워드를 놓치지 않았다. 일본학자 다카하시 토오루(高橋 亨) 역시 조선불교도 조선의 사상과 신앙에 일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인식했다.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를 위한 노력은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다양한 자료를 통해 불교계와 불교문화를 이해하고 분석하고자 했다.

    다. 3년차 연구내용, 방법, 범위(2013. 7. 1. ~ 2014. 6. 30.) :
    근대 지성의 불교사 인식
    일제 식민시기 불교사 연구는 근대 불교계의 재건과 발전이라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초였다. 조선시대를 거쳐 오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해 온 불교의 재건을 위해서 불교사 연구의 목적을 불교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서 자닌 가치와 영향을 인식하고 규명하는 일이었다. 최남선은 1930년 범태평양불교도대회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불교교리 등을 소개하며 한국불교의 세계적 우월성을 강조했다. 석굴암을 통해 동서예술의 종합이자 결정체임을 과시했고, 원효의 󰡔십문화쟁론󰡕을 통해 화함의 통불교를 강조했다. 아울러 불교계 지성들은 조선불교의 특성을 찾고자 노력했다. 이차돈의 순교로부터 신라불교가 공인된 점이라든가 원효의 해동소나 통불교를 통해 우리 불교가 지닌 독자성을 찾고자 했다.
    이와 같은 불교사 연구는 과거의 전설적, 신비적 경향에서 탈피하여 객관적이고 과학적 연구방법을 통해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자료조사 역시 문헌자료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2차사료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불교를 역사, 지리, 미술뿐만 아니라 시대사조, 정치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연구하여 엄격한 비판과 함께 해석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객관성과 엄정함에 기초한 불교사 연구는 근대불교학이 지닌 특성이기도 했다.

  • 한글키워드
  • 고려불교사,보우,불교개혁론,근대불교학,권상로,사료(史料),신라불교사,지성(知性),지눌,조선불교사,정체성,일본식민지배,이능화,의상,원효,역사연구방법론 ,휴정,최남선,사회진화론
  • 영문키워드
  • Bowoo,Ch`oe Namson,Modern Buddhist Study,Lee nunghwa,Kwon Sangro,Intellectual,Identity,Hyujong,Historical Material,Euisang,Chinul,the Theory of Buddhist Reform,the Methodology for a Study of History ,Wonhyo,The Japanese Colonial Rule of Korea,Social Darwinism,Buddhist History in the Shilla dynasty,Buddhist History in the Chosun Dynasty,Buddhist History in the Koryo dynasty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일제강점기 우리 불교사 연구는 식민지 시기의 암울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전개한 국학진흥운동의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더욱이 조선에서 근대기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불교수용부터 근대까지 계통을 세워 정리한 개론서 한 권 없었던 지성들의 한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과거의 흔적들에서 그 편린만을 보고서 우리 불교가 지닌 자긍심과 정체성을 회복하기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당시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는 고대와 고려시대 불교와는 달리 내세울 만한 사상도 인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지성들은 우리 불교사의 편린을 찾기 시작했고, 복원과 체계화를 시도했다.
    조선시대 불교사가 비록 이전 시대와 견줄 수 없는 암울한 역사이기는 하지만, 탄압과 소외를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비록 다까하시 토오루와 같은 학자들이 조선시대 불교사를 비천하게 그렸고, 선진적인 일본불교와 사찰령이 한국불교를 발전시켰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역시 史實을 통해 자긍심을 고취시키기도 하였다. 나라의 위기를 구하고자 했던 서산과 사명대사를 기렸고, 그 정신을 일제강점기라는 엄혹한 시절을 극복하는 정신의 기초로 삼고자 하였다. 일본인 학자조차도 세종과 세조 때 간행된 국역불전을 통해 이전 시대와 비견되는 문화사적 가치를 찾고자 했다.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한 한국 근대 불교사는 최근 다양한 방면에서 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체성이나 성격, 본질은 시각차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는 당시 진행된 불교사 연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당시 고대불교사 연구는 우리 불교사에 대한 복원과 체계화의 노력, 그리고 근대 불교 교단의 재건이라는 시대적 과제 속에서 진행되었다. 불교계의 지식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자료수집과 정리를 통해 삼국의 불교를 연구했다. 사상과 인물, 불교문학·미술·음악 등의 문화 등을 폭넓게 다루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노력은 우선 자료수집과 정리를 통해 연구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아울러 조선시대 이후 탄압과 소외된 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한국불교사가 복원되기 시작했다. 특히 수용이후부터 불교가 한국 문화와 문명화에 기여한 측면이라든가, 고승들의 사상과 행적이 중국과는 다른 독자성과 우수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고대불교사에 대한 발전적 해석은 국학진흥운동의 차원에서도 진행되어 일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고대불교사가 지닌 위상과 가치가 발굴되어 재평가되기도 하였다.


    일제 식민시기 불교사 연구는 근대 불교계의 재건과 발전이라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초였다. 조선시대를 거쳐 오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해 온 불교의 재건을 위해서 불교사 연구의 목적을 불교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서 자닌 가치와 영향을 인식하고 규명하는 일이었다. 예컨대 최남선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불교교리 등을 소개하며 한국불교의 세계적 우월성을 강조했다. 석굴암을 통해 동서예술의 종합이자 결정체임을 과시했고, 원효의 󰡔십문화쟁론󰡕을 통해 화함의 통불교를 강조했다. 아울러 불교계 지성들은 조선불교의 특성을 찾고자 노력했다. 이차돈의 순교로부터 신라불교가 공인된 점이라든가 원효의 해동소나 통불교를 통해 우리 불교가 지닌 독자성을 찾고자 했다.
    일제강점기의 불교사 인식은 당시 시대사조에 영향 받은 바가 크다. 사실 전통 불교학을 근대적 학문으로 탈바꿈시키는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사회진화론이었다. 근대 학문이 전통학문과 가장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비판적인 자의식을 통한 객관성의 유지와 방법론의 적용을 통한 과학적인 연구라고 할 때 사회진화론은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불교학의 근대화에 공헌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불교사 연구의 입장에서 사회진화론의 영향은 국민들의 역사의식이 고조되어 전통적인 왕조중심의 권선징악적인 사관(史觀)과는 달리 민족이 처한 역경을 타개해보려는 현실적 요구에서 우러난 민족주의사관을 갖고 역사를 서술하게 된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불교사 인식의 기반과 연구는 과거의 전설적, 신비적 경향에서 탈피하여 객관적이고 과학적 연구방법을 통해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자료조사 역시 문헌자료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2차 사료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 영문
  • The history of modern korea buddhism which have been focussing o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s being researched on the recently different fields. But it is true that there were different views among research's identity, its characteristic, and its essence. In order to close the gap, above everything else it needs to reconsider understanding on history of korean buddhism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those day the study on ancient history of korean Buddhism met demands of the times, such as restoration of korean buddhist history, efforts of its systematization, the reconstruction of buddhist organization. Buddhist intellectuals studied buddhism through the collecting and readjusting of historical materials for a long time. Also they treated widely buddhist thought and buddhist celebrity, or buddhist culture, including literature, art, music, and so on. These efforts could be solidified the foundation of research by collecting and readjusting of materials. Futhermore, as the weakened region which was suppressed and was boycotted by Chosun Dynasty, although history of Korean buddhism barely remained in one's existence, finally its history came to business in restoration. Expecially at these context of Korean buddhism, its history emphasized that it had contributed korean culture and korean civilization. Also its history asserted that korean high monks's thought and achievement had better than the China's on the basis of the scholarly originality and excellence. these developmental interpretation in relation to ancient history of korean buddhism was carried forward the movement to advance the korean study, so that general intellectuals came to search and reevaluate the status and the value of ancient buddhist history.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our study on Korean Buddhism history became to embark with the advent of Korea Study Movement(國學運動) in order to overcome the dismal situation of colonialization. Futhermore in the transition from the Chosun Dynasty(1392-1910) to the modernization period of Korea, the restoration of study on Korea buddhist history was result in korean intellectual's lamentation in those days, because it had no general books which dealt with systematically a historical course of korea buddhism, including the introduction of buddhism in korea and modern korea buddhism. Although we might trace into historical pieces of the past Korea buddhism, it was not proved that our buddhism can restore the its identity or its pride. Above all, research on buddhist history in Chosun Dynasty under Japanese rule had no outstanding ideology and prominent figures in Korea buddhist circle, unlike the early Buddhist times and the Goryeo period (918–1392). But intelligential persons in those days sought to find legacy of our Buddhist history and tried to not only systematize but also restore our Buddhism.
    Although Buddhist history in Chosun dynasty might be dark history in comparison with previous periods, it can be described as a suppressed period or a period of alienation just as it was. On the one hand Such scholars as Dacahashi Tooru(高橋亨) had described Chosun Buddhism as a humble history, and on the other hand, he theorized that Japanese buddhism and The Temple Ordinance(寺刹令) brought into the rise of Korea buddhism. But Buddhist history of Chosun inspired Korea people to take pride on the basis of historical facts. For example, it lauded Seosan Daesa(西山大師) and Samyeongdang(泗溟大師)'s patriotic feeling to overcome national crisis. Through their spirit, Chosun Buddhism prepared Korea people their spiritual armament of "independent spirit" under the Japanese rule. In those days, even Japanese scholars did not only study the Buddhism Scripture Translation, which published during the kings Sejung(世宗)'s and SeJo(宣祖)'s rule, but also had intended to seek cultural history's value of Chosun buddhism.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the History of Korean Buddhism in Japanese colonial period was the crucial point for Korean Modern Buddhism. The Buddhism had a peripheral position through Choson Dynasty, whereas its significance during Colonial period had changed. Buddhism Studies analyzed values and effects of Buddhism in the context of Korean History and Culture enthusiastically. For Instance Choi Nam-Sun who introduced Korean History and buddhist doctrines emphasized that Korean Buddhism had superiority over others. He also argued Korean Buddhism for synthesis of western and eastern art by Seokguram. Sipmunhwajaengron introduced by Wonhyo was used to emphasize characteritics of Tongbulgyo, Harmony. In addition, Intellectuals of Buddhism in colonial period tried to find out characteristics of Korean Buddhism. they attempted to explain indigenous characteristics of korean Buddhism through the anecdote of Lee cha-don and Wonhyo.
    The Modern Korean Buddhism in colonial period was influenced by Social Darwinism. Retaining objectivity and Modern methodologies changed traditional Buddhism to modern disciplines. Social Darwinism also contributed to establish the inclination to national historiography of Buddhism which had to do with overcome hardships of the nation in colonial period.
    These newly established viewpoints and researches showed inclinations to the scientific methodologies. Secondary source was also emphasized as important materials for researche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일제 강점기를 중심으로 한 한국 근대지성의 불교사 연구와 불교인식에 관한 연구다. 연구의 범위는 일제의 식민통치시기였던 1900년부터 해방 직전까지 불교계를 비롯한 역사학·문화방면에서 진행된 불교사 연구의 성과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연구목적은 첫째, 일제하 불교사 연구의 배경을 검토하고자 하였다. 둘째, 일제하 불교사 연구의 주된 내용과 그 경향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셋째, 일제하에서 진행된 불교사 인식을 검토하였다.
    전체 연구기간은 3년으로, 매년 일제강점기에 진행된 불교사 연구를 시대를 구분하여 그 경향과 특징을 살피는 것으로 연구를 세분화시켰다. 1년차 연구내용은 한국의 불교수용부터 삼국시대(통일신라 포함)~고려시대 불교사에 대한 기술(記述)과 경향을 검토하였다. 일제 식민시기 불교계의 지성들은 한국불교의 수용부터 삼국(통일신라포함)․고려시대 불교사를 敎學의 발달과 그에 따른 다양한 宗派의 발생, 禪佛敎의 수용과 전개 등을 통해 불교가 한국 역사와 문화에서 지닌 가치와 영향을 심도있게 규명하고자 했다. 원효와 의상의 사상을 통해 중국불교와는 다른 독창성을 규명했고, 의천의 諸宗章疏 수집과 대장경 간행에 대한 검토를 통해 한국불교의 세계적 위상 등을 확인하고자 했다. 특히 宗祖․宗名 확립의 과정에서는 보조 지눌과 태고 보우가 한국불교사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여 정체성을 확립시키고자 하였다.
    이밖에 불교미술을 통해 한국 불교의 높은 수준을 재확인했고, 각 시대의 정신사조를 불교예술을 통해 해석해 내고자 했다. 또한 자료수집과 정리는 근대적 연구방법에 의해 불교사를 복원하고자 했던 당시 불교계 지성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正史類뿐만 아니라 寺誌․碑文․金石文․史傳類 등 다양한 자료수집을 통해 고승전과 불교사연표등이 만들어졌고, 朝鮮佛敎通史와 같은 역작이 집필되었다.
    2년차 연구내용은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의 경향과 성격을 살폈다. 일제 식민시기 조선시대 불교사에 대한 연구는 삼국과 고려시대 불교사 연구보다는 미진했다. 불교의 衰退時代, 老朽時代로 규정할 만큼 사실 조선시대 불교의 사상이나 신앙, 인물의 활동은 미미했다. 탄압과 수탈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능화를 비롯한 권상로․김영수 등은 조선시대 불교사의 복원을 위해 노력했다.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를 통해 왕과 왕실의 불교신앙, 禪敎兩宗 통합의 과정, 僧, 임진왜란 당시 僧兵의 활동, 조선후기 禪論爭 등 조선시대 불교사를 이해하는 키워드를 놓치지 않았다. 일본학자 다카하시 토오루 역시 조선불교도 조선의 사상과 신앙에 일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인식했다.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를 위한 노력은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다양한 자료를 통해 불교계와 불교문화를 이해하고 분석하고자 했다.
    3년차 연구내용은 근대 지성의 불교사 인식이라는 주제로 당시 지성들의 한국근대불교사 연구의 성격과 인식을 살폈다. 일제 식민시기 불교사 연구는 근대 불교계의 재건과 발전이라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초였다. 조선시대를 거쳐 오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해 온 불교의 재건을 위해서 불교사 연구의 목적을 불교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서 자닌 가치와 영향을 인식하고 규명하는 일이었다. 최남선은 1930년 범태평양불교도대회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불교교리 등을 소개하며 한국불교의 세계적 우월성을 강조했다. 석굴암을 통해 동서예술의 종합이자 결정체임을 과시했고, 원효의 󰡔십문화쟁론󰡕을 통해 화함의 통불교를 강조했다. 아울러 불교계 지성들은 조선불교의 특성을 찾고자 노력했다. 이차돈의 순교로부터 신라불교가 공인된 점이라든가 원효의 해동소나 통불교를 통해 우리 불교가 지닌 독자성을 찾고자 했다.
    이와 같은 불교사 연구는 과거의 전설적, 신비적 경향에서 탈피하여 객관적이고 과학적 연구방법을 통해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자료조사 역시 문헌자료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2차 사료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불교를 역사, 지리, 미술뿐만 아니라 시대사조, 정치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연구하여 엄격한 비판과 함께 해석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객관성과 엄정함에 기초한 불교사 연구는 근대불교학이 지닌 특성이기도 했다.
    연구자는 이상의 연구를 통해 기본적으로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한 근현대에 진행된 한국불교사의 경향과 성격을 살폈다. 연구의 내용이나 수준이 질적 측면에서 미흡하였지만, 근대학문의 도입과 영향으로 과학화·효율화를 위해 진력했음을 살필 수 있었다. 아울러 한국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불교는 역사의 전개와 함께 하였으며, 문화·문명을 주도했으며,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탁월한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는 근현대 지성들의 인식을 살필 수 있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연구결과

    1) 한국근대불교사 연구는 현재 공백상태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최근 일련의 연구자에 의해 자료수집과 연구 성과들이 소개되고는 있지만, 당시 불교계의 동향과 사건 그리고 인물에 집중되어 있는 실정이다. 부족한 자료를 발굴하는 일과 함께 근대불교사를 이해하는 기초적인 부분에서부터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예컨대 항일과 친일에 대한 문제, 근대불교의 개념, 불교개혁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울러 본 연구와 같이 당시 진행되었던 불교사 연구에 대한 검토는 전연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불교사 복원이라는 학문적 차원뿐만 아니라 당시 불교계가 직면한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때문에 본 연구는 이 시기 불교사 연구를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다양한 인식을 도출해내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고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불교사정을 정리한 불교개관이나 인물, 사상, 그리고 국가적 기여와 같은 사실에 대한 근현대 지성들의 연구성과는 우선 오랜 시기동안 탄압과 소외 속의 우리 불교를 객관적이고 합리적 차원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더욱이 신비주의적이고, 부정적 불교 인식을 문명·문화발전의 원동력과 주체자로 인식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2) 본 연구는 한국불교사학사 분야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거의 불교사 찬술에 대한 연구는 지난 시대의 사상과 신앙, 정치·사회와의 관계 등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더 나아가 현재의 불교와 불교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지향점을 상정하는데 기초를 만들어 줄 것이다. 현재 한국 불교사에 대한 연구는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사학사적 측면에서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학사가 그 시대의 정체성과 패러다임, 좌표설정에 기초를 이루고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때 한국 불교사학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시기 불교사학에 대한 연구는 불교계의 상황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사학사 연구의 기초와 체계화를 모색하는데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본 연구는 우선 각 시대상황 속에서 불교가 기여했던 긍정성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수용을 계기로 건축·미술 등을 비롯한 진전은 정치와 경제적 상황을 향상시키는 결정적 실마리가 되었으며, 이것은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사상과 신앙은 각 시대를 살다 간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의식수준을 향상시켜 주었던 것이다. 또한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불교를 매개로 한 민족의 정체성을 재확인시키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것은 근현대 불교계의 교단과 사상·신앙 등 다양한 방면을 재편하는데 효과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때문에 일제강점기 지성들의 불교사 연구는 단순히 불교에 국한되지 않고 근현대로 진입하는 한국을 새롭게 설계하는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2. 활용방안

    1) 직접적인 연구 성과로서의 활용
    한국근대불교사와 불교사학에 대한 연구는 출발선상에 있으며,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근대불교사가 현대불교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라고 한다면 극단적이고 편향적인 연구 태도는 재검토의 여지가 있다. 일제식민시기 진행되었던 불교사에 대한 연구와 불교계 지성들의 그 인식에 관한 검토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시기 불교사 연구에 많은 동기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근대불교사 연구를 재검토하고, 다양한 인식의 계기를 마련하여 연구기반을 확충시키는데 활용될 것이다.


    2) 연구교재와 관련 부문의 수업자료로서의 활용
    본 연구의 연구 성과는 교육의 현장에서 교재로 응용될 수 있다. 본 연구과정에서 수집된 자료는 자료집으로, 연구 성과는 단행본으로 간행하고자 한다. 미개척분야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근대사와 근대불교사 수업에 활용될 수 있으며, 종교와 국가, 종교와 사회라는 주제하의 연구와 교육에도 폭 넓은 지식을 제공해 줄 것이다.


    3) 종교문화정책 수립과 보완의 기초자료로서의 활용
    한국사회는 급격한 다변화에 따라 종교의 역할이 요구되어지고 있다. 특히 문화와 의식수준의 향상에 따른 종교의 부응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요청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문화의 변화에 따른 질적 성장의 요구는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일차적으로 도전받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불교는 전통문화의 현재적 변용 선상에서 그 기초를 이루고 있다. 더욱이 우리 문화사에서 근대는 보수와 개혁을 모두 담고 있다. 본 연구는 21세기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문화컨텐츠와 같은 불교에 기초한 전통문화의 변용을 위한 문화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 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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