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민족주의적 국사교육과 서구중심주의적 세계사교육이 지배해온 역사교육을 최근 교육과정 개정과 교과서 집필기준의 마련을 통하여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한국 역사교육계의 노력을 ‘역사교육의 세계사적 전환’으로 정의하고, 이 장기적인 개혁 과제의 성공적 ...
본 연구는 민족주의적 국사교육과 서구중심주의적 세계사교육이 지배해온 역사교육을 최근 교육과정 개정과 교과서 집필기준의 마련을 통하여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한국 역사교육계의 노력을 ‘역사교육의 세계사적 전환’으로 정의하고, 이 장기적인 개혁 과제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한 이론적 실증적 자양분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미국과 독일의 민족사 패러다임 극복 논의에 대한 이론적 논의와 그 교육적 적용 내용을 심층 분석하고, 더 나아가 그 결과를 한 편으로는 2007년 사회과 교육과정 이래의 개정 내용이 반영된 한국의 역사교육 내용의 분석, 다른 한 편으로는 국내 역사(교육)학계의 이론적 논의와 비교·총합하여 미래지향적인 개혁 방향을 제시하는 통섭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전체적으로 통섭적인 접근방식을 견지하면서도 연구자는 한국 역사교육계의 개혁을 위한 방향제시를 한층 구체화하기 위하여, 미국, 독일, 한국의 개혁관심의 차이에 따라 분석의 중점을 달리 선정하였다. 즉 1994년 사상 최초로 국가교육표준을 마련하면서 세계 어느 곳에서보다 일찍이 보다 세계사적인 세계사 교육과 자국사의 세계사적 맥락화를 위한 교수법 연구와 개발에 적극 임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는 주로 역사교육의 세계사적 전환에, 유럽통합을 계기로 유럽사 교육을 현실적으로 중시하고 있는 독일 경우에는 지역사적, 즉 유럽사적 전환에 연구 관심을 집중할 것이다. 그에 반해 한국사와 세계사 교과서의 개편과 동아시아사 과목의 신설을 통하여 역사교육의 세계사적 전환과 지역사적 전환을 동시에 추구하고자 하는 한국의 경우에는 가장 통섭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따라서 미국과 독일의 사례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각각의 전환의 차원을 세계사와 동아시아사 교육내용을 통해 확대 논의하고 양차원의 전환이 교차되는 한국사 교육내용에서는 이들을 매개, 연결, 통합해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관심을 집중하기로 했다.
이러한 전체적인 연구 목적, 방법론, 연구 중점의 구도 하에서 일차년도의 연구는 미국의 역사교육의 세계사적 전환을 비판적으로 검토, 분석하였다. 일차년도 연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지구사 패러다임 자체에 대한 연구와 이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뉴욕, 미네소타, 워싱턴, 유타, 펜실베니아, 로드아일랜드 주(州)의 중등교육과정 세계사 교육표준들과 최근 출간된 지구사 교과서 5종의 분석이 그것이다. 지구사적 패러다임 전환에 관한 연구에서 연구자는 지구사가 지구화 시대에 대한 역사학적 대응으로 출발하여 그것이 내세우는 전 지구적 포괄성과 보편성과는 달리 기존의 세계사, 새로운 세계사, 새로운 지구사 등의 용어들과 뒤섞여 사용되는 용어 및 개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는 다양한 인식적 방법론적 하위 패러다임들(상호역사, 세계체제론, 포스트식민주의)이 상호 경쟁하고 있다고 보았다. 연구 결과, 각 패러다임의 문제점들이 보다 분명히 드러날 수 있었는데, 지구사 패러다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구사의 이 세 가지 하위패러다임들 간의 교차수정을 통해서 해당 주제나 시대에 따라서 더욱 다양한 서술전략을 무한배수로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미국의 세계사 교육관련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뉴욕, 미네소타, 워싱턴, 유타 주교육표준은 여타 지역의 주교육표준과 비교해볼 때, 정도와 수준 차이는 있었지만 1994/96년 국가교육표준의 시대구분법 적용, 다문화주의적 지향성, 근대 이전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사에 대한 비중 증가, 비교사적 교수법의 적극적인 적용, 전 지구적 파급력을 가진 사건 혹은 시대에 대한 집중 조명 등을 공통된 특징으로 삼고 있었다. 최근 발간된 지구사 교과서 5종의 내용 분석에서는 세 가지 주제영역을 설정하여 최근의 연구 성과와 대비하여 얼마나 세계사 교과서 내용이 과거에 비하여 지구사 지향적으로 변화했는가를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연구자는 영국에서 최초로 발생하여 나머지 세계로 전파된 것으로 오랫동안 가르쳐왔던 산업혁명,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적 세계체제에 비해 여전히 여백으로 처리될 때가 많은 인도양 무역체제, 가해자 강대국과 피해자 식민지국의 이분법적 서술이 지배해온 제국주의를 지구사적 교정이 가장 절실히 요청되는 주제 영역으로 보고 이들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교과서를 분석했다. 이들 교과서는 각각의 주제영역마다 다양한 쇄신과 교정의 수준을 보여주지만, 미국에서 발행된 교과서들로서 미국적 지구사를 대변하고 있는 만큼, 비유럽 세계의 눈으로 봤을 때에는 여전히 간과될 수 없는 문제점들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차년도에는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주요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유럽사 연구와 서술에 대한 이론적 고찰과 이러한 추세와 맞물려 강화된 유럽사 교육을 중등교육 관련 자료들을 통해 분석하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독일 유럽사 연구와 교육이 흥미로운 이유는 유럽사와 동아시아사 모두가 지역사라는 공통점 외에 지구화 시대에 민족사 패러다임의 극복과 전 지구적 연계성을 충분히 고려하는 ‘열린’ 지역사 모델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과제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이차년도 전반부에는 유럽사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상반된 두 방향, 즉 ‘신유럽사’와 유럽사의 포스트식민주의적 재구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이루어졌다. 연구 결과, 신유럽사 연구는 여전히 유럽적 시계를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서유럽 우월주의적 시각과 서유럽 공간을 떠나지 못할 때가 대부분인 반면에, 후자의 패러다임은 탈유럽중심적인 유럽사를 서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차년도의 후반부에는 유럽연합의 확대와 더불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유럽사 교육의 내용적 기반을 바이에른,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작센 주의 교수계획안을 비교, 분석했다. 특기할만한 연구 결과는 보수적인 정치성향이 두드러지는 바이에른 주의 교수계획안이 가장 지구사적 컨셉의 수용에 적극적이었다는 사실과 구동독의 지역적 정체성을 뚜렷이 투영된 작센 주의 교수계획안 내용이었다. 또한 연구자는 전국적으로 사용빈도가 높은 김나지움 역사 교과서 3종과 3권짜리 독불공동역사교과서 1종의 내용을 다섯 가지 범주를 통해 분석했다. 역사적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유럽이 어떻게 서술되고 있는가, 이러한 유럽 개념에서 두드러지는 서유럽중심주의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통해 확인될 수 있는가, 유럽연합의 슬로건이나 다름없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는 이념은 어떤 내용과 맥락 속에서 강조, 재생산되고 있는가, 유럽통합의 역사와 그 동구권 확대 과정은 어떻게 기술되고 유럽정체성 문제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 비유럽 세계와의 연계성은 어느 정도 고려되고 있는가가 그것이다.
한국의 역사교육의 세계사적 지역사적 전환을 다룬 삼차년도의 연구 역시 전반부에는 한국 역사교육의 세계사적 지역사적 전환에 관한 이론적 논의를 총체적이고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동아시아사론’에 관한 국내 역사학계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도출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동아시아사가 한자문명권과 같은 본질주의적 경계를 기준으로 고정적이고 선험적인 서술 범주를 정하거나 그 문명권의 동질성과 공통성을 밝히는 데만 치중해서는 곤란하다; 동아시아사 서술이 역점을 두어야 할 곳은 동아시아의 문서고(archives)가 가장 잘 활용될 수 있는 영역, 즉 타자에 대한 배타적 경계 의식에 기반하지 않은 공간을 생산해온 역사, 중앙아시아나 동남아시아를 포함하는 것이든 아니든 동아시아가 하나의 단단한 핵을 갖는 단위로 진화해가기보다는 항상 역외 참여자들과의 얽힘 속에서 그 때마다 새로운 경계와 형태를 창출해온 역사, 근대에 들어와 자신의 배타적인 경계를 인식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타자와의 얽힘이 본질구성적인 차원까지 강화되어간 역사의 규명에 있다.
후반부의 연구는 2007년, 2009년, 2011년 교육과정, 각각의 교과서집필기준, 중학교 역사 교과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세계사 교과서, 동아시아 교과서를 분석하되, 민족사 패러다임, 유럽중심주의, 지역주의를 무게중심으로 삼고 각각의 문제를 고찰할 수 있는 서술 내용들을 선별적으로 논의하였다. 아울러 일이차년도의 연구 성과와의 종합적인 연계 하에서 미래지향적인 개선안과 방향성을 통섭적으로 도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2007년 교육과정은 처음으로 역사를 사회와 분리하고 한국사와 세계사를 역사 과목으로 통합했다. 그러나 현행 역사 교과서 9종은 하나같이 국사 단원과 세계사 단원이 뚜렷이 구별되어 있어서 한국사와 세계사 간의 연계관계를 학습할 수 있는 구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 역사 교과서 내의 한국사와 세계사 간의 칸막이를 전격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칸막이 내에서 한국사와 세계사를 비교사와 교류사를 통해서 소통, 연계할 수 있는 주제영역의 개발이다. 흑사병, 몽골제국, 봉건제, 제국주의, 냉전은 유라시아적 관점을 함양시킬 수 있는 좋은 주제들이다. 2009년 교육과정 개정은 고등학교 1학년 과정 역사 과목은 ‘한국사’로 명칭을 바꾸고 근·현대사의 비중을 늘려 한국사 교육내용을 심화하도록 했다. 그러나 2011년 한국사 집필기준 발표 이후 출간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검정을 계기로 한국사 교육은 새로운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대한민국을 주어로 대체한 교학사 교과서는 한국사를 세계사적으로 맥락화하는 데 있어서 나머지 7종의 한국사 교과서와 동일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사 교과서 8종의 분석에서는 민족사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극복은 주어를 민족에서 국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 맥락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전제에서 선별적인 주제들(한사군, 삼국통일, 고려사, 임진전쟁, 조선 개항기, 일제침략기, 한국전쟁과 냉전)을 통해서 극복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논하는 데 집중하였다. 2011년 말에 완성된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고등학교 세계사 집필 기준과 그에 따라 새로 출간된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4종을 통해 보자면 세계사 교과서의 집필 방향은 뚜렷이 지구사적 컨셉으로 옮겨갔다. 지구사적 시각의 적용은 전근대사 서술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반면에, 근대사 관련 서술 내용은 하나의 세계를 향한 지구사적 통합을 지향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근대주의, 다른 한 편으로는 민족/국민(nation) 중심주의로 대변되는 유럽중심주의적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유럽중심주의적 서술구조는 국내 세계사 교과서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구사 교과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속하므로 연구자는 세계사 교과서의 근대주의적 편향성에 대해서 지구사 패러다임 자체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연계하여 논의하였다. 2012년도에 새로 도입된 동아시아사 교과서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분석들이 진행되었지만 주로 지리적 범주와 문명적 내용 간의 불일치 혹은 동아시아 역내 연관성에 대한 치밀한 서술 여부에 집중되어있다. 연구자는 삼차년도 전반부에 진행한 동아시아사론에 관한 이론적 고찰을 활용하여 뚜렷한 지역범주로부터 동아시아사 서술을 시작하기보다는, 역내 연관성이 높은 유럽과는 달리 열린 공간으로 진화해온 동아시아의 특수성과 개방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북방민족, 조공책봉체제, 제국주의, 냉전, 최근의 아세안(ASEAN) 중심의 지역화 논의 등과 같은 주제들을 적극 활용하여 동아시아사 서술에서 중국중심주의를 극복, 상호교류와 네트워크론을 활용,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사 서술의 가능성을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