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는 <일리아스ΙΛΙΑΣ>에서 그리스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 스파르타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렌을 되찾기 위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시인답게 원인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소아시아의 내륙에 자리잡았던 히타이트 제국(1700-1200 BC)의 문서가 해독되고 연구되 ...
호메로스는 <일리아스ΙΛΙΑΣ>에서 그리스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 스파르타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렌을 되찾기 위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시인답게 원인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소아시아의 내륙에 자리잡았던 히타이트 제국(1700-1200 BC)의 문서가 해독되고 연구되면서 역사가들은 히타이트 문서의 아키야와(Ahhiyawa)를 그리스의 아카이아인들(그리스어의 Achaioi, 영어로 Achaeans)로 보고, 소아시아 서부 해안을 놓고 히타이트와 대치하던 미케네 그리스(청동기 시대의 그리스)가 히타이트의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히타이트의 봉신국이었던 트로이--히타이트는 트로이를 기지로 삼아 소아시아의 그리스인들을 제어하고 있었다--를 장악하여 해안 지역 전체를 차지하려고 했던 것이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트로이 원정의 원인을 더 넓은 차원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기원전 1200년 경 동(東)지중해를 혼란에 빠뜨려서 청동기 시대를 실질적으로 막내리게 했던 ‘바다의 민족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바다의 민족들과 그리스인들을 연계시키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이 논문도 이러한 시도 중의 하나로, 트로이 원정 직후의 노스토이(Nostoi, 트로이로부터 귀향하는 그리스군)의 활동이 파라오 메르네프타와 라메세스 3세 때 이집트에 침입한 바다의 민족들에 포함되어 있음을 주장하려 한다. 그런데 이 주장 자체는 새로운 것은 아니라 할 수 있으나, 이집트 비문에 기록된 아카이와샤와 데니엔이 구체적으로 어떤 그리스인인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여기서는 그리스 연표와 이집트 연표를 좀 더 세밀하게 연계시키고 트로이 전쟁 후에 노스토이들이 세운 나라들의 활동을 바다의 민족들의 활동과 연계시켜 아카이와샤와 데니엔의 정체를 좀 더 구체적으로 구명하는 데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연구자가 다달은 결과는 다음과 같다. 트로이 원정을 이집트와 연계시켜 연구할 경우, 대단히 어려운 과제가 그리스 연표와 이집트 연표를 맞추는 작업이다(두 지역의 연표도 각각 여럿이다). 우선 두 지역의 연표를 맞추기 위해, 기원전 3세기에 기록된 <파로스 연대기>가 말하는 트로이 전쟁의 시기 기원전 1218-1209년을 믿을 만하다고 연구자의 믿음으로부터 연구를 시작하였다(그런 믿음의 근거는 본문에서 언급된다).
이집트에 침입한 바다의 민족들 중에 이집트 비문에서 언급된 아카이와샤(’Iḳwš, Akaiwasha)와 데니엔(Dnn, Denyen)이 그리스인들이라고 보는 데에는 학자들 사이에 큰 이견이 없다. 이집트 기록에 따르면, 메르네프타 5년에 아카이와샤가, 30년쯤 후 라메세스 3세 8년에 데니엔이 침입하였다. 트로이를 공격한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측 사료에서는 ‘아카이오이(Achaioi)’로, 히타이트 사료에서 ‘아키야와(Ahhiyawa)’로 기록되었다면, 이집트 사료의 ‘아카이와샤’가 앞의 두 발음과 비슷한 발음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연구자는 트로이가 함락된 후 ‘아카이오이’인들이 이집트를 침입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두 지역의 연표로 맞출 수 있을까? 이집트 신왕국 연표로 학자들에게 많이 사용되는 것은 <캠브리지 고대사(Cambridge Ancient History)>(1973)의 연표와 <옥스퍼드 고대이집트사(Oxford History of Ancient Egypt)>(2000)의 연표이다. 연구자는 <옥스퍼드 고대이집트사>의 신왕국 연표가 더 믿을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았고, 그 연표에 따르면 아카이와샤의 침입연도는 1208년이니 <파로스 연대기>에 따르면 트로이 원정이 1209년에 끝나고 1년 후에 아카이아인들이 이집트에 침입한 셈이 되어, 연대적으로 잘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라메세스 3세 8년에 침입한 것은 데니엔이고 그 연도는 <옥스퍼드 이집트사>에 따르면 기원전 1176년이 된다.
학자들 사이에 아카이와샤와 데니엔이 그리스인일 것이라는 데에는 대체로 일치된 생각을 지니고 있지만, 그 차이가 명확히 제시되지는 않았다. 연구자의 이 연구에 따르면,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아카이와샤가 히타이트어의 아키야와, 그리스어의 아카이오이와 관련된 것이라면, 아카이와샤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했던, 아카이오이인들을 비롯한 여타 그리스인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데니엔은 트로이 전쟁 때 아르고스 왕 암필로코스가 이끌어던 아르고인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트로이가 함락된 후에도 암필로코스는 아르고스인들을 이끌고 킬리키아의 말로스(Mallus)에까지 이동하여 클라로스의 예언자 모프소스Mopsus와 함께 나라를 세웠다. 후에 그리스 저자들에 따르면, 말로스의 아르고스인들은 시리아, 페니키아에까지 이동하였다. 연구자는 이들 아르고스인들이 바다의 민족들의 하나로서 이집트를 침입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아르고스는, 파로스 연대기에 따르면, 기원전 1511년 다나오스(Danaos)는 아르고스에 도래하여 나라를 세웠고 아르고스인들을 다나오이Danaoi(‘다나오스의 백성’이라는 뜻)로 명명하였고, 그후 다나오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아르고스 왕 암필로코스가 이끌었던 아르고스인들, 곧 다나오이인들이 이집트에 침입했다면, 이집트인들은 이들을 Dnn(Denyen, 데니엔)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