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과 신라 고분을 정리한 결과, 적석총의 경우 계단의 남이나 남서측에 마구류와 함께 말뼈 등이 놓이며, 묘실 입구쪽에서는 식생활을 보여주는 용기류 등이 부장된다. 적석목곽분에서는 주검은 장신구와 대도 등을 착장한 상태로 안치되며, 주곽이나 부곽 등에 다종 ...
고구려과 신라 고분을 정리한 결과, 적석총의 경우 계단의 남이나 남서측에 마구류와 함께 말뼈 등이 놓이며, 묘실 입구쪽에서는 식생활을 보여주는 용기류 등이 부장된다. 적석목곽분에서는 주검은 장신구와 대도 등을 착장한 상태로 안치되며, 주곽이나 부곽 등에 다종, 다양한 유물이 복수부장되고, 분구 중에서는 장식마구가 매납되는데, 분구에 매납된 마구는 크기와 제작 방법에서 실용 마구와 차이가 있다. 따라서 구조와 출토 양상에 따른 고분 유물의 차이가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며, 매장부와 분구에서 출토된 유물은 장속이나 매장의례는 물론 시간 판단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개별 유물에 대한 편년은 고분의 구조와 유물의 출토맥락을 고려하여 형식편년과 교차편년 방법을 이용하였다. 편년 방법은 장신구나 마구류 처럼 개체수가 많은 경우에는 개개 유물을 분류하여 형식편년하고, 금속제 용기처럼 개체수가 적은 유물의 경우 고구려와 중국 유물과의 교차편년할 것이다. 그리고 설정된 편년안은 신라의 토기 편년안이나, 문헌 기록 등과 결부하여 다시 검증해 볼 것이다.
실제 신라 초대형 적석목곽분에는 이전 시기에는 없었던 관, 이식, 대금구 등 황금 장신구와 화려한 장식대도, 마구, 금.은기와 청동용기, 로마 유리 등 새로운 문물 가운데, 금, 은, 금동으로 만들어진 관은 착장한 상태로, 일부는 다른 부장품과 함께 부곽에서 출토되었는데, 의성 탑리 1곽 금동관의 깃털형 세움 장식이나, 황남대총 남분의 조익형 관식은 태왕릉에서 출토된 조익형 관식이나 개마총, 쌍령총에 표현된 인물의 새깃털 관식 등에서 서로 유사하다. 귀걸이도 삼국 중 고구려와 신라에서만 태환이식과 세환이식이 공반되는데, 황남대총 북분과 집안 마선구 1호분의 태환이식, 황오리14호분 1곽과 고구려 용강 후산리 추동 고분에서 출토된 세환이식 중간 장식의 소환연접구체 등 형태와 제작 기법에서 서로 특징을 공유한다. 이외에도 요패가 드리워진 삼엽문이 투조된 대금구의 문양 모티브나 못신 등에서 신라에 미친 고구려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 또한 호우총의 <廣開土地好太王壺玗什> 명문이 있는 청동합, 서봉총의 출토 은합의 <延壽元年> 연호, 고구려 토기의 특징적인 기형을 가진 금관총의 청동 사이호 외에도 청동제 정, 시루, 초두, 합, 세 등의 금속용기는 고구려의 칠성산 96호분이나 우산하68호분에서 일괄로 출토된 바 있어서, 고구려로부터 신라로의 직, 간접적인 영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로부터 신라가 받은 영향을 잘 보여주는 것은 갑주와 마구 등 중장기병과 관련된 기물들로 경주 일원 뿐 아니라 주변 지역의 크고 작은 고분에서 말을 부리기 위한 재갈, 안장과 등자, 말띠 드리개 등 여러 종류의 마구가 출토되었다. 금속제 마구를 무덤에 부장하는 풍습은 북방 모용선비의 무덤에서 흔히 보이지만, 그 가운데 삼국에서 공통된 심엽형 행엽은 모용선비 무덤에서 보이지 않은 형태이며, 반구형이나 화판형 입식부 운주 등은 모용선비보다는 고구려와 신라에서 더 유행하였다. 한편, 황오동 쪽샘지구 C10호묘 주곽에서 출토된 찰갑과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마갑은 고구려 벽화분에 표현된 기마무사를 실물로 복원해줌으로써 이해를 도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라 고분 자료를 통하여 고구려 고분 유물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다. 고구려 마선구 2100호분에서 출토된 금동 말모양 장식판은 금령총에서 안교와 함께 출토되어 안교 장식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마선구 1호분에서 출토된 Y자모양 장식은 황남대총 북분의 주곽 옆에 머리쪽에서 출토되어 머리 장식구였음을 알 수 있어서 유물에 대한 이해는 물론 보다 구체적으로 연대 판단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출토된 유물의 부장양상을 고려하여 편년을 시도한 결과 머리 장식이나 관이나 이식 등 일부 장신구는 커다란 시차 없이 신라고분에 부장되기도 하고, 대금구나 안교 장식품, 마구류와 같은 일부 유물은 일정한 전세기간을 가진 후에 부장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어서, 유물이 고분에 부장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개별 유물의 편년안을 통하여 고구려와 신라 고분의 시간적 위치를 판단하고, 이의 시공적 비교를 통하여 고구려와 신라는 고분 구조나 부장유물 뿐 아니라 분구에 부장된 마구나 훼기 등과 관련된 부장습의 일부를 공유하였음을 설명하고, 착장용 장신구와 금, 은제 용기, 토기 등을 차이를 통하여 고구려와 신라 고분이 화이부동하였음을 설명할 것이다.